동행 22 < 임실 사선대 - 필봉문화촌>
흰 눈덩이를 트고 나오는 노란 복수초부터 동네마다 거리마다 벚꽃이 화려하고 양지바른 산야에는 진달래꽃이 피어 내 청춘마저 다시 풀처럼 푸르고 싶은 사월이다. 매년 4월이면 한두 번쯤 우리는 방송에서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멘트를 듣는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1888-1965)은 그의 시 <황무지>에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만든 뿌리를 깨운다. /오히려 겨울은 따뜻했었다. /라고 적었다. 시간의 순환이라는 모든 생명체의 존재상황 중 적어도 보편적으로 재생과 부활을 경험할 수 있는 계절인 4월은 봄이 오더라도 결코 새로운 생명을 피워낼 수 없는 현대 유럽문명에 대한 시인의 진단이 담긴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사월은 꽃보다 이파리의 보폭이 훨씬 빠르다. 짙어지는 사월의 풍경 속에서는 담아야 할 것들이 많다. 지난주 국민축제인 왕인문화축제가 막을 내렸건만 백리길 벚꽃은 지금 더 이상은 필 수 없을 만큼 만개하여 오히려 축제기간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드니 가만히 있어도 흔들리는 주일이다. 눈에 들어오는 냉이의 푸른 싹과 뾰족 내민 달래 옆에 보라색 패랭이꽃이며 색색이 연계하여 숨 쉬는 꽃 숨에 심장은 쿵쿵거리지만 이토록 정신없이 박실박실 피어서 온 세상이 소란스러워 조용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전라북도 임실로 떠나기로 했다. 특히 혼자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많은 생각으로 찾아오는 여유는 정말 달콤하고 소중하다. 잊혀질 뻔한 사람들이 생각나고 함께 살아가면서 살펴보지 못했던 가족들에 대한 감사와 소소한 미안함까지 새록새록 떠오른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러 추억의 핫도그 하나쯤은 약이 되는 소울푸드이다. 아침에 일어나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툭 털고 나오기를 잘했다. 계절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지금쯤 무슨 꽃이 피고 풀은 피어 얼마나 푸르른지 온몸으로 느끼는 이 바람과 풍경이 벅차올라 아들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모든 느낌을 다 말할 수 없어 그냥 좋다고 말한다. 시집간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여 잘 살아주니 고맙다고 고백한다. 비단 바쁜 일상이 아니라도 평소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상가만 밀집되어 있는 낙지거리에 있다가 주말에 나와 보면 어느덧 한 계절씩 훌쩍 지나가는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꽃이 피었으니 이제 추위를 건너 활발한 계절이 왔구나 싶었는데 어디에 있어도 어느 곳을 걸어도 느낄 수 있는 봄기운과 함께 푸른 싹들이 초록초록 올라오고 있었다. 나뭇가지 끝마다 연둣빛 새싹이 그지없이 애틋할뿐더러 황홀한 봄의 생기는 어느덧 여름을 준비하는 듯 자연스레 겉옷을 벗고 반팔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 임실은 남원에 있는 혼불문학관과 가까울 뿐더러 치즈랜드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들렀던 곳이다. 지나는 길이 익숙할 만큼 하루 여행지로 적당하여 자주 찾게 된다. 이번에는 진안군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면 운수산의 두 신선이 어울려 노는 것을 하늘의 네 선녀가 보고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내려와 함께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사선대를 찾기로 하였다. 사선대는 임실군 관촌면 덕천리에 있는 관광단지로 섬진강 상류 오원천(烏院川) 기슭에 조성되어 있다. 1985년 12월 28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사선대의 주차장 입구에는 금빛 단군왕검의 모습이 있다. 주일예배를 건너뛰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 교회에 잠시 들러 출발하다보니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다. 우선 식당부터 찾아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선대 위 깎아지른 절벽 위로 병풍모양의 능선을 올라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된 운서정(雲捿亭)까지 오르고 내려오면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한 바퀴 투어를 마치기까지는 만만찮은 거리였다. 우선 식사를 끝내야만 편안한 사선대 투어가 될 것 같았다. 관광지다보니 1인 식사메뉴가 없어서 한참을 살펴 다행히 된장찌개백반으로 식사를 끝내고 싸목싸목 올랐다. 이 정자는 1928년부터 6년에 걸쳐 지었으며 전통적인 조선시대 건축 양식에 따라 정각과 동서재 가정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재강점기에는 이곳에 나라 안의 우국지사들이 모여 망국의 한을 나누며 나라의 앞날을 토론하였다고 한다. 시국이 어렵고 국민이 힘든 지금 우리의 현실도 정론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나라를 위한 위정자들의 고민을 토론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해본다. 사실 아래에서 올려다보기에는 오원천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진 거리를 완주하기에는 꾀나 힘들 것 같았는데 오르면서 주변 풍경을 내려다보며 잠시 해찰부리는 순간 조각공원에 내려와 있었다. 소나무와 벚나무가 울창하여 이 계절에 둘러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또한 네 명의 신선과 선녀가 놀던 곳이라니 얼마나 풍광이 좋을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훌륭한 사선대 투어였다. 다음은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필봉문화촌을 들러 가기로 했다. 필봉문화촌은 우리 전통의 필봉농악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예인들이 모인 곳이다. 붓을 닮은 필봉산 아래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푸진 삶을 살아온 소박한 사람들이 400년 동안 신명으로 굿을 지켜온 넉넉하고 흥이 넘치는 곳이라한다. 전설이 된 풍물굿을 축제로 만들고 아버지의 업을 천직으로 이어가는 노동과 생활의 근심을 신바람으로 바꾸는 곳이 필봉 문화촌이다. 유네스크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농악은 전북 전주와 남원뿐 아니라 전남 보성, 곡성 등 호남 동부 지역의 농악을 ‘좌도농악’이라 부르는데, 그중 필봉농악은 이 좌도농악 고유의 방식을 고스란히 전수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필봉농악이라는 개념은 이번 임실투어 계기로 알게 되었지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전통과 젊음은 상반된 개념이라 여겼었는데 도착해보니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필봉농악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풍물전시관과 다양한 전통문화체험이 가능한 필봉한옥스테이(취락원)를 중심으로 농악경연대회와 문화관광상설공연이 주말마다 있으며 한옥자원활용 및 야간상설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위한 야외공연장은 물론 내방객들의 편의시설 및 주차공간과 굿 카페 등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종교와는 무관하겠지만 교회 주일예배를 거르고 이곳을 둘러보자니 썩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세상을 볼 수 있듯 평소 관심에도 없었던 뜻밖의 필봉문화촌 투어로 새롭고 많은 것을 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