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교과서로 수업하면 이해ㆍ발표ㆍ보충 한시간에 "OK"
‘디지털 교육 1번지’. 서울 구일초등학교(교장 윤택중)는 올해 슬로건(slogan·특정 단체의 주의나 주장을 나타낸 짧은 어구)을 하나 추가했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가 사용하던 슬로건은 ‘꿈·사랑·실력을 키우는 어린이’였다. 윤택중 교장 선생님은 “디지털교과서 수업을 충분히 활용하고, 전교생이 ‘스마트 러닝’을 추구하는 학교로 거듭나기 위해 슬로건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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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구일초등 '디지털교과서 특별반' 어린이들은 종이 교과서도, 연필도, 공책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종빈 군(5년)은 "연필이나 볼펜보 다 컴퓨터 키보드로 메모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오는 2015년부터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스마트 교육을 전면 실시하겠다’고 밝힌 지난달 29일, 구일초등학교를 찾았다. 디지털교과서를 수업에 활용 중인 교사와 학생 대부분이 이날 정부 방침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40분의 수업시간 동안 디지털교과서만 잘 활용하면 학원 갈 필요가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참여 중심 수업으로 반복학습 효과 ‘만점’
이날 구일초등 5학년 2반 교실에선 과학 수업(4단원 ‘작은 생물의 세계’)이 한창이었다. 전자칠판엔 ‘미생물은 우리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를 주제로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이 떠올랐다.
“각자 정리한 내용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볼 사람?”
고현정 선생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고 선생님은 발표자를 정한 후 1분간의 ‘준비 시간’을 줬다. 발표를 맡은 학생은 인터넷과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 자신이 정리한 과제물의 이상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머지 학생들도 각자의 과제를 점검해나갔다. 발표자의 발표 직후 동일 주제에 관해 보충 발표할 학생이 정해지기 때문에 누구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현정 선생님은 “수업에서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면 반복 학습의 장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서도 주 발표자와 보충 발표자의 발표가 이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이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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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 디지털교과서를 전자칠판에 띄운 모습.(오) 취재 중 만난 학생 대부분은 디지 털 교과서의 장점 중 하나로 '밑줄 긋기' 기능을 꼽았다.
◆효과 높이려 4개 특별반 같은 층에 배치
구일초등은 지난 2008년 서울 자운초등과 함께 ‘디지털 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됐다. 서울시에서 이 분야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단 두 곳. 현재 구일초등에선 6학년 1·2반과 5학년 1·2반 등 총 4개 반을 ‘디지털교과서 특별반’으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이 네 반은 모두 같은 층에 있다. 김택호 교감 선생님은 “각 반 담임 선생님이 수업 활용 방안 등을 효과적으로 나눌 수 있도록 한 조치”라고 말했다.
구일초등의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은 4년째 이어지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연지 선생님은 “초창기만 해도 대부분의 학생이 배울 내용 자체보다 (디지털 교과서가 들어있는) 태블릿PC 보는 데만 한눈팔아 수업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현정 선생님은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교사들이 수업에 관한 학생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라며 “점차 학생들도 달라진 수업 내용에 흥미를 느끼면서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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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교과서 특별반 수업 풍경
◆사회·과학 “학원 갈 필요 없을 정도예요”
구일초등 학생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교과서의 최대 장점은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것. 유예진 양(5년)은 “솔직히 사회 수업 시간엔 ‘암기 과목’이란 생각에 집중이 덜 됐고 수업 시간도 지루하게만 느껴졌다”라며 “하지만 디지털 교과서 활용 수업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왕승환 군(5년)은 “특히 사회나 과학 수업은 디지털교과서로 수업하면 재밌고 집중도 잘돼 학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두유찬 군(5년) 역시 “예전엔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도 학원 힘을 빌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꼽은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의 최대 장점 역시 ‘높아진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다. 특히 이 같은 반응은 디지털 교과서가 공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리란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김택호 교감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 태도가 달라지면서 선생님들도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자칫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면 학생들이 수업 도중에도 인터넷 검색 등으로 금세 알아채거든요. 흠 잡히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죠. 또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디지털교과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몇몇 과목에선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배웠다’고 느끼는 학생이 점차 늘고 있어요. 흐뭇한 일입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