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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89년 11월 30일 화요공부방
□ 자력양성-박명진 교우님께서 차분히 재미나게 강연해 주셨습니다.
□ 질문과 답변
Q. 배성원 : (중요질문) 불구자들이 사실은 자력양성을 해서 보은을 하고, 진급을 해야 악순환을 벗을 텐데,
현실적으로 불구자들이 보은을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기 힘들다.
무자력자도 보은을 할 수 있도록 사회 국가 차원으로 제도적 실질적인 보장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할까?
그리고 그런 불구자들에 대해서 우리 교법으로 구제할 수 있는 교법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Q. 김신애 : 참 자력자는 타력이 자력이 되게 한다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A.박명진 : 예를 들면, 자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있으므로, 모르더라도 가서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자력이 없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
자력이 기본이다.
A.손명균 : 배우는 것도 자력양성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남의 것을 배워서 나의 것을 만드는 것이 자력양성이 아니겠는가.
Q.서도안 : 자력자로서 타력자에게 권장할 조목 3번에서, 결혼 후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주로 하라" 고 하신 말씀이
왜
"자력자로서 타력자에게 권장할 조목" 에 들어가는지 궁금하다.
A.서혜원 : 함께 서로 권장하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자력자로서 타력자로서 권장할 조목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A. 배성원 : 과거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여자가 남자에게 의존한 적이 많았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해 보면 압니다.." ㅋㅋㅋ
그런데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자립적으로 하려면,
굉장히 바쁘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밖의 일이 바쁘다고
서로 집안일을 등한시하면,
집안이 난장판이 될 것이다.
A.신천숙 : 대종사님은, 앞으로 시대가 변할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시고
이 법을 내어주신 것 같다.
대종사님 당대에는 남자는 능력자로서, 여자는 무능력자로서 살았다.
남자들은 밖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집안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굉장히 변해서, 가정생활이 정 반대로 남자가 더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력양성은 이런 시대에 결국 여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이제선 : 부당한 의뢰를 많이 받아본 사람으로서..."자력자로서 타력자에게 권장할 조목 1번, 부당한 의뢰"부분에서,
어디까지가 부당한 의뢰인지, 그리고 자력이 있고 없고를 어느 정도까지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리연마가 미흡할 경우는, 매우 매정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취사를 해야 할
것인지 ???
Q. 김명성 : 1인1기라고 하셨는데 사실 야구선수는 하나의 재주만 있으면 말년에 고생이다.
내 생각인데 1인 1기보다는 3기나 4기 정도가 맞지 않을까 ?
□ 교무님 설법
◈ 일원상 = 신앙의 대상 + 수행의 표본
우리는 일원상을, ① 신앙의 대상으로 ② 수행의 표본으로 모신다.
일원상에는 ① 외적 위력으로서의 신앙적 측면과, ②내적 위력으로서의 수행적 측면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은혜를 외적으로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복지은 사람이 복 받는 것이다.
◈ 신앙-인과보응의 이치-사은(천지 부모 동포 법률)
나라는 존재는 엄청난 위력 속에 산다.
그 은혜를 네 가지로 보아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라고 한다.
(1)
천지은 : 천지는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내려주시고 계신다.
그래서 아무리
천치와 하우자라도, 천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생존적 근원적 은혜를 받고 살고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기 선물을 받으면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버리니, 감사하다는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2) 부모은 : 부모은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없이 어떤 사람이 나왔으며, 컸을 것인가. 부모님이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인격적으로 여기까지 성장한 사람은 없다. 여기에는 근원적인 은혜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 테면, 어떤 사람은 나오자마자 버림받고, 어떤 사람은 나오자마자 예쁨 받으며, 형제 사이에도 외모나 능력이나 성격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업이라는 것이다.
(3) 동포은 : 동포의 은혜도 마찬가지이다. 이 동포은에는 사농공상의 직업 뿐 아니라, 금수 초목까지도 다 포함된다.
(4) 법률은 : 법률의 은혜는 무엇인가. 천지부모 동포가 다 은혜를 발휘하도록 은혜를 발휘해 준 것이 법률은이다. 법률의 은혜를 보통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러나 맛을 보면
알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은혜에 대해서 각각의 보은의 방법은 바로 "우주 만유 전체에 대한 불공"이라 하겠다.
◈ 우주 만유에 대한 불공(사은 보은) 중 사람에게 하는 불공 => 사요 ~!!
그런데
우주 만유를 운행하는 핵심적인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들어서,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을 운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불공이 제일 우선이다. 인류(人類) 위주(爲主) 사생(四生) 종(從)이다.
사은에는 육도사생이 다 들어가지만, 먼저 사람에게 불공해야 하겠다.
그래서 농사 중에서도 가장 큰 농사가 사람 농사다.
그러면,
사은에 대한 보은의 행위를 대 인류적으로 해 나가야 할 것이냐.
사요란, 사은에 대한 구체적 보은의 방법이며.인류에 대한 불공법이다.
◈ 사요가 구현하고자 하는 평등세계
사요는 평등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어떠한 평등세계이냐.
사요인 ① 자력양성, ② 지자본위,
③ 공도자 숭배, ④ 타자녀 교육 을
통하여.... 평등세계를 구현한다.
① 자력양성 = 인권평등의 사회
자력이 없어지면 권리가 없어진다.
자력이 없어지면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면 차별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권리가 박탈된다.
자력이 생겨야 자기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래서
자력양성은 인권평등이라 한다.
더 나아가,
내 자력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력도 양성해 주어야 인권이 발양된다.
② 지자본위 = 지식평등의 사회
③ 공도자 숭배 = 생활평등의 사회
공도자라는 것은 결국 많은 사람을 위해서 산 사람이며, 나의 삶에 도움을 준 사람이다.
그래서 공도자숭배를 하면
생활평등이 된다.
④ 타자녀 교육 = 교육평등의 사회
내 자녀 다른 자녀 구분없이
다 교육을 시켜나가서, 교육평등의 사회를 만든다.
◈ 무지와 빈곤을 해결할 정전 사요의 기가 막힌 구조
자력 |
자력 양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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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본위 |
우치 |
빈곤 |
|
타력 |
타자녀교육 |
||
공도자 숭배 |
|
|
사요는 사은에 대한 보은의 표현이요, 구체적인 인류에 대한 불공법이라 하겠다.
세상을 무지와 빈곤을 해결할 기가 막힌 방법이 이 사요에 들어있다.
사요는 어떤 사상보다도 앞선 사상으로서, 이 세상을 평화 낙원으로 만들고자 하려면 사요가
꼭 필요하다.
◈ 자력양성의 뜻 =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자력 = 사은에 보은하는 자력
그러면 자력(自力)은 무엇인가.
스스로 자(自), 힘 력(力) 자로서, 제 힘으로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기를 양(養), 이룰 성(成)이다.
자력양성을 쉽게 이해하려면, 반대인 타력을 생각해 보라.
이 자력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자력이다.
무엇에 대한 책임과 의무인가? 우리는 엄청난 사은의 위력 속에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 사은의 은혜 입은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될 것이다.
사요를 통해 사은에 어떻게 보은하고 은혜를 입을 것인가?
인과의 이치를 따라 이루어진다.
신앙의 핵심은 복생활하자는 것이다. 신앙을 하여 복이 족족하게 살자는 것이다.
수행의 핵심은 지혜가 밝아진다는 것이다. 수행을 하여 혜가 족족하게 되자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자력을 양성해서 보은의 활동을 충분히 할 것 같으면, 인과의 이치를 따라, 스스로가 복이 많이 얻고 사은의 은혜를 훨씬 잘
입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자력양성을 하지 않고, 의뢰생활을 하지 않고 타력생활을 할 것 같으면, 인과의 이치를 따라 복이 없게 되고 사은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
나라는 존재는 사은의 빚덩어리다. 엄청난 사은의 은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천지의 은혜가 5분만 없어보라. 살아있을 사람 없을 것이다.
부모의 은혜가 없으면 내 존재 자체가 없을 것이다.
동포의 은혜가 없으면 작은 물건 하나도 얻어 쓸 수 없을 것이다.
법률의 은혜가 없으면, 약육강식의 시대가 되어 밤길도 마음 놓고 못 다닐 것이다.
살 수가 없다.
* 사은에 보은하기 위한 자력양성- 사은에 보은하기 위해서 자력양성을 충분히 해야 한다.
자력양성을 사은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그 자력양성은 단지 내가, 무시 받고 살지 않겠다는 데 그친다.
그러나 사은에 보은하기 위한 자력양성이란,
인권과 권리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동포에 대한 구체적인 보은활동이 되는 것이다.
◈ 자력의 세가지
자력을 세가지 방면으로 나눈다.
(1) 정신의 자주력
(2) 육신의 자활력(자강력)
(3) 물질(경제)의 자립력
(1) 정신의 자주력
아까 예를 들기를, 어떤 사람이 [아이스베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 돈을 다 도박으로 까먹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물질의 자립력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신의 자주력이 없어서 그리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자주력이 셋 중에서 제일이다.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정신문명에 대한 대책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정치 경제만 살린다고 하니, 근본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될 리가 없다.
이처럼
과거에는 도가에서 영(靈)만 주장했고, 병원에 가면 육(肉)만 주장했고, 회사에 가더니 물질(物質)만 주장했다.
그러나 대종사님의 영육쌍전의 사상은, 영과 육 두가지를 모두 쌍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사병행 영육쌍전 두가지가 다 들어간다.
여기 선결요건은 바로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서 정신의 자주력, 물질의 자립력, 육신의 자활력을 다 얻을 수 있다.
** 정신의 자주력을 어디까지 키워야 할 것인가?
최소한 인간으로서, 사은의 은혜에 입은 것에 대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적 자주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영생을 거래하면서 자유할 수 있는 힘까지를 말한다.
(2) 육신의 자활력(자강력)
육신의 자활력도 마찬가지이다. 사은에 보은하려면,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과 체력이 필요하다.
오늘 여기 화요공부방 아파서 못 오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육신적 자력이 약하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보은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버린다.
육신의 자활력 하나만 제대로 하려 해도, 음식도 조절하고 일과생활을 제대로 해야 하는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3) 물질(경제)의 자립력
경제의 자립력은,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되어야 하겠다.
그런데 이것이 안되니,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이다.
아까 경제의 자립력에서 대산종사님꼐서 "1인1기"라고 하신 것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의 기술과 자격과 전문실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이것에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원업과 부업"이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 하나만 의지하면서 살다가 남편이 가버리면,
부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자살을 해 버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원업과 부업을 같이 해야 한다. 부업은 원업의 20%정도가 한다.
완도 청소년 수련관에서도, ==> 기타매점, 자판기, 등을 통해 20%이상 수익이 나와야 했다.
때로는 전략을 통해 20%를 만들어내든가 해야 한다.
◈ 자력양성의 예전 조항 이름은 "남녀권리 동일"
자력양성의 예전 조항의 이름은 "남녀권리동일"이었다.
과거의 여자들은, 어렸을 때는 아버지, 시집가서는 남편, 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자력이 있어야 여자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그것으로 떳떳해진다.
여러분들 부모님에게 돈 타고서 수지대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다. 내가 한 달에 부모에게 얼마를 어떻게 받아 어떻게 쓰고
있는지 항상 수지대조를 하여아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돈 번 사람은 아까워서 못쓰는데, 못 번 사람은 팍팍 써버리니 우스운 일이다.
어떤 사람은 충분히 돈을 가지고 여기에 도와주고, 저기에 도와주는데..
어떤 사람은 여기다가 저기다가 손만 벌려서ㅡ,
스스로는 무시받고 진리적으로 빚이 된다.
자력양성의 사회는 공평사회가 되는 기초가 된다.
◈ 자력양성 = 자력본위, 자타력 병진,.
자력양성이란, 자타력을 병진하되, 자력이 본위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즉 타력을 충분히 수용하고, 자신의 타력을 남에게 베풀 수 있을 정도로까지의 자력을 말하는 것이다.
◈ 본문 강독
1. 자력양성의 강령
#
자력이 없는 어린이, 노혼한 늙은이, 어찌할 수 없는 병든 이의 경우
-무자력자 보호의 도를 통하여 보호해 드려야 한다.
#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하라" 하였다.
"공부삼아 양성"하지 않는다면, 자기 남편이 돈을 잘 번다든가 아버지가 부자라든가.. 하면 자력을 양성할 필요가 없다 하여
가능하면 고생 안 하고 놀게 된다. 그것을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인과의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이라..
복이 다하면 떨어지고야 만다..
그래서 복진타락이라고 한다.
인과의 원리를 알면, 그럴 수가 없다.
공부삼아 하라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1) 하나는 내가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생산활동을 하라. "복을 감하지는 말라"는 이야기이다.
(2) 또 하나는, 자력 세우는 그것을 항상 마음공부로써 끌어들이라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내가 무지로 무명으로 탐진치로 끌려가지 말고, 습관화시키라는 것이다.
가능하면 타력생활에 길들여버리지 말고, 자력을 체질화시키라..
나도 자력을 공부 삼을 때가 많다.
사람이 편하면 습관화되기 쉽다. 그러나 가능하면 인식 간사가 있어도... (^^) 내가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와주자... 마음으로는 그런다는
말이다.. (웃음). 실지로 도와주기도
한다... ( ^^ 간사님 실체를 밝혀주시옵소서,,,)
공부삼아서 양성해라~!!!!
그 마음을 항상 챙기라는 것이다.
이런 말씀 하나 하나에 얼마나 기가 막힌 원리가 들어있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이 공부방에서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한 사람은 끝나고 모른체하고 그냥 가지 않는다.
책상도 좀 치워주고, 뒷정리도 하고 가게 된다.
우리가 어디에서나, 얼마나 큰
사은의 은혜 속에 이 속에 살고 있는가 !
어디에서도,
직장서도, 버스 하나를 타고 가도,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하는 사람은 다르다.
마지못해 시키니까 하는 소극적인 사람과,
"제가 무엇을 도와줄까요?" 하고 공부삼아 어디를 가나 도와주는 사람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내가 경동보화당에 처음 갔을 때, 칸막이가 삐뚜로 되어있기에 반듯이 해 놓았는데, 그것을 배성원 교우가 보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삐뚜로 되어 있으니까 바로 해 놓았을 뿐이다".
보통 사람은 내가 나서서 하면, 다른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 두려워서 안 해버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런다. 본 대로 해 버린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정말 그랬다기 보다는,
"자기 내면에 하기 싫은 마음이
있어서, 습관화가 안 되어서, 챙기는 마음을 못 챙겨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참으로 자력은 자력없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약자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게 할 것이냐.
그 약자가
스스로 자력을 기를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유념하도록 도와주던가..
타력생활하고 있는 것 중에서 자력생활 할 수 있는 것으로 돌려서 유념잡도록 하든가..
내가 사은의 은혜 속에 사는 존재구나 정말 보은하고 살아야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깨달아서 유념잡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앙생활도 단장이 전화를 해야만 법회에 오던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챙겨서 오고,
자기 가정과 직장 안에서도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체크해서 유념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며,
자력양성이라 하겠다.
이렇게 자기가 유념을 잡아서 보면, 작년에 자력양성을 공부하고, 이번에 또 공부하였지만,
"한 번 들었는데 또 들어서 무엇
하나" 하지 않고, 새롭게 다가오게 된다.
유념잡아 공부한 사람은, 반복한 강연이 다시 한번 유념잡아서 체크하고, 또 체크하는 기회가 된다.
2. 과거의 타력 생활 조목
(1) 부모 형제 부부 자녀 친척 중에 혹 자기 이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의지하여 놀고 살자는 것이며, 또는 의뢰를 구하여도 들어주지 아니하면 동거하자는 것이며, 또는 타인에게 빚을 쓰고 갚지 아니하면 일족이 전부 그 빚을 갚다가 서로 못 살게 되었음이요..
강자에게 의뢰해서 놀고 살자는 생각이 과거에 꽤 많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한 가정에 한 사람만 잘 되어도 어떻게 꾸려는 가더라는 생각에 장자만 교육시키던 면도 있었다 .
그러나 인과적으로 보면, 배운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보은할 수 있는 것을 가족의 울 안에 잡아두어 못 하게 끌어내린 면들도 없지 않다.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은하게 하고, 나머지 가족들도 가족들대로 일하고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 손 한 번 들어보자.
나는 자력자이다 ?? 나는 무자력자다 ??
이 경우,
두 손을 다 들어야 맞다.
왜냐 경계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나 교무님도 정신 육신 물질 사이에 무자력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경제의 무자력자다....
그래서 구하는 바에 따라서 스승삼고, 그 일의 성질과 나의 능력에 따라서 취사하라는 것이다.
모두들 아마 어떤 부분에서는 자력이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자력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결국은 누구나 자력과 타력이 어울러진, 자타력 원리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도 또ㅡ, 자력 위주냐
타력 위주냐, 무엇이 많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력자와 타력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나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까지 보아야 한다.
화요공부방 이 시간에도, 내가 얼마나 연마를 했느냐에 따라, 나의 보은의 역량이 엄청나게 달라져 버린다.
내가 자력이 없고 실력이 없다면, 이 시간에 보은을 더 크게 할 수도 있는 것을 못해버리게 된다.
(2)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의지하였으며, 또는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여 남자와 같이 교육도 받지 못하였으며, 또는 사교의 권리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자신의 심신이지마는 일동 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니라.
과거에 여자는
교육, 사교, 재산에 있어서 차별을 받았다.
대종사님 당대에, 이 "자력양성"
조항을, 동타원 권동화 선진님이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 그래 우리 종사주님께서 남녀를 해방시켜 주셨다" 고 좋아했다.
당시 일제시대인데 이런 말씀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 시대에 강연도 남녀 노소 다 똑같이 시켰다.
여자의 경우는 천막을 치더라도 강연을 꼭 시켰다. "앞으로 자력을 길러서, 이 사회에 꼭 보은하라"는 것이다.
3. 자력자로서 타력자에게 권장할 조목
(1)
자력있는 사람이 부당한 의뢰를 구할 때에는 그 의뢰를 받아주지 아니할 것이요.
정중한 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잘 모르겠으면 교무님께 물어보라. 무조건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의 자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을 발로
밟아버리는 꼴이 된다. 자식이 잘 못한다고 숙제까지 도와주다가는, 그 자식이 나중에 고생하다가 결국은 부모를 원망한다.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생각한다.
부당한 의뢰를 받는 사람의 심리는, ① 자기 편하려고, ② 인과를 몰라서 그런다.
(2) 부모로서 자녀에게 재산을 분급하여 줄 때에는 장자나 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그 재산을 받아
유지 못할 사람 외에는 다 같이 분급하여 줄 것이요..
유지를 못할 사람은 똑같이 분급하지 말라.
유지할 사람은 남녀 장자 차자 관계없이 똑같이 분급하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의미에서 장자가 상속을 받았으나,
요즘은 부모를 장자가 안 모시는 추세이다..
지금은 과도기라 장자는 장자대로,
차자는 차자대로 각기 논리를 대며 부모를 안 모시려고 한다...
(3)
결혼한 사람-물질적 생활을 각자 자립적으로 하고ㅡ,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주로 하라.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남편에게만 의지하다가 남편이 죽으니, 날마다 울고 불고 하다가 자기도 죽어버린다.
대종사님은, 앞으로 부부간에 문패도 각각 달 것이라 하셨다.
아무리 둘이 좋아해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결국 사네 안 사네 하는 말이 나와버린다.
(4) 기타 모든 일을 경우와 법에 따라 처리하되 과거와 같이 남녀를 차별할 것이 아니라 일에 따라 대우하여 줄 것이니라.
과거와 같이 남녀를 차별할 것이 아니라 일에 따라서 똑같이 대하라 하셨다.
결국 차별을 말씀하신 것이다.
역대 성자들 중에, 대종사님처럼 이렇게 여자를 위하신 성자는 없었다.
역대 종교가에서 원불교처럼 여자를
우대한 역사가 없다. 우리 원불교의 교정원장도 여자다.
기독교에서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온 존재이다.
불교에서는 아무리 나이가 어린 남자 스님이라도, 늙으신 비구니 스님이 절해야 한다. 계문도 여자가 남자의 2배에 달한다.
천주교 여자는 성직자로 치지
않는다. 수녀는 수도자일 뿐이다.
예전에 로마 교황이 오셔서 대산종사님을 만나뵈실 때에, 통역으로 당시 국제부장님이셨던 전팔근 선진님(여자)이 들어간다고 하니 교황청에서
못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원불교에서 "그러려면 안 해버리겠다고 해라" 해서 특별히 통역을 하게 되셨지만, 로마 교황청에서 그런 역사가 없었다고
한다.
대종사님은 어찌 성품에 남녀가 있을 것이냐. 그 일에 따라 대우해줘라 하였다. 나중에 원불교는 여자종법사도 나오게 생겼다.
전에 명동에서 여자들을 대상으로 "또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가?"라는 설문을 하였더니,
의외로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한 사람이 60%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이유는 "편하잖아요. 군대도 안가고, 남편이 다벌어다
주고.." 하는 것이라 한다.
◈ 대산종사님과 좌산종법사님 법문집,,,
"자력양성의 도 (대산종사 1집 수신강요)"와, "자력 타력의 도 (좌산종법사)"를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력양성의 도
=======>
자기의 자력을 따라서 타력을 수용하는 것이 다르다.
=======> 자기가 하려고 해야 도와주지, 공부도 안하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해서는 안된다. ========> 자력양성도 결국 마음공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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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타력이 한량없이 나에게 동력을 주겠는가, 자력으로 동력을 생산해 내야한다.
=====> 권리는 누구나 주장한다. 그러나 책임과 권리는 비례하는 것이다.
일은 눈치 보면서 하면서 월급만
올려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력이 없으면 있던 인연복도 감소되는 것이다. 자력을 갖추면 주인으로서 살 수 있다. 자력이 없으면 객이 되고 노예가 되어버린다.
주권을 빼앗겨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 어중간한 겉똑똑이들은 자력만을 강조하고, 어중간한 신앙은 타력에만 기댄다.
그러나 참 신앙은 관계의 눈을 뜨는 것이요, 수행은 자력에 대한 눈을 뜨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크느냐 하는 것이 자력의 범위가 달라진다. 그러면 자력의 국한을 넓히려고 하는 노력이 계속 원력이 넓혀지면서 계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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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자력이란 무엇인가?
자(自)-어떤 것이 자(自)이냐. 어떤 것이 나이냐.
배성원 교우의 질문이 여기에 나타난다. 참 나라는 개인 뿐 아니라, 사회 국가 세계와 하나된 내가 참 나이다.
만약 사회에
전염병이 돌았다면, 단지 내 자력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인가?
예전에 유럽에 흑사병이 돌아서
인구의 3분의 1이 다 죽었던 때도 있었다.
동포(同胞)란, 같은 포태란 뜻이다.
나와 사회가 다 하나다. 그래서
무자력자 보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원리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다 적용이 된다.
오늘 배운 "자력양성"이, 내 마음에 힘이 없으면 좋은 말로만 끝난다.
오늘 바로
구체적으로 유념을 잡으라.
유념잡아서 일기로 체크해 나간다.
자력양성 하나만 잘 해도, 이것이 사요로 맞물려 나가고, 수행으로 맞물려 나가게 된다.
기가 막힌 원리가 여기에 들어있는
것이다~!!!
□ 새로오신 교우님 .
배성원 교우님과 함께 오신.. 박경세 교우님이십니다. 부인 되시는 분의 외종사촌 동생이라고 합니다.
현재 군대에서 말년휴가를 나왔고요^^ 내년 3월에 복학하기 전에 와보신 것이라고 합니다.
" 이름은 박경세입니다. 82년생이고, 00학번입니다. 복학하기 전에 수학공부 하려다가 머리가 아파서왔는데, 그 수학공부 공부한 것의 두 배 정도
머리가 더 아플 만큼 자극을 많이 받고 갑니다.. "
*^^*
환영합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인연 기대할게요 ★☆★☆★ ~~~!!!
김세명 교우님 인연으로, 교양수업에서 만난 교육학과 조교누나라고 합니다.
성명은 김신애 교우님이시고요, 서울대 교육학과 석사과정 밟고 계십니다.
"필요한 때라서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모자랐던 부분들을 체크하고 정리를 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환영합니다. 필요한 때 오셨다니 기쁘고요.
소중한 인연 만나게 되어 반갑고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제선 교우님 인연으로 지난 토요법회 때도 오셨던 유원심 교우님이십니다.
고등학교 1년 후배라고 하시네요..
반갑습니다.
좋은 인연 깊은 인연이었을 것이 반드시 직감되는 유원심 교우님~!!!
우하하하하하 *^^*
환영해요~!!!
첫댓글 사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든,그렇지않은 사람이든 모두가 유무념을 고하간에 '자력양성'이란 화두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사람의 그릇에 따라,채울 양의 조만이 있을 뿐이다.성취도에 따라,고락이 상반되고 구부득고(求不得苦)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그것 때문에 집착이 생기고 응분의 댓가를 받기도하니,인생자체가
자력양성의 각축장이기도 하다.평가의 대상이기도하고,경쟁력이기도...우리가 경계하는 분별심(자력의 색깔에 따라)도 여기서 나오지않던가 ? 정신,육신,경제의 자력이 없어서는...중심축이 무너져내림을 경험한다.나는 이대목에서,좌절과 고뇌 공부심까지도 태동함을 보았다.'참자력'은 삶의 끝없는 화두다
와~~ 넘 좋아~~ *^^*
공부방을 와보지 않고서야 순명교우의 공덕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공부방을 멀리하면 신심,공심,공부심이 작아집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자력양성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