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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릉(강원 기념물 12호 )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나홀로 26차 능원묘 답사 2일차 마지막으로 강릉에 있는 명주군왕릉을 찾았습니다. 명주군왕도 신라 역대 왕은 아니지만 실직군왕릉과 같이 자료는 신라 왕릉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명주군왕릉은 삼왕릉이라고도 불리우더군요. |
▲ 명주군왕릉 초입에 있는 명왕비각 전경 |
신라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이다. 그가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해졌기에 왕릉이라고 부른다. 주원의 가계는 여러번 상대등과 시중 직책을 맡아온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 유정(惟正)은 태종무열왕의 직계로서 명주에 벼슬을 받아 와서 이 지방 토호의 딸 박연화(朴蓮花)와 결혼하여 주원을 낳았다. |
▲ 사당 입구 주변은 주차장인지 굉장히 넓습니다. |
▲ 김시습의 영정을 모신 청간사 |
▲ 숭렬전 입구인 통삼문 전경 |
▲ 통삼문 안에 숭렬전(신라 29대 무열왕의 위패를 봉안)이 있음 |
▲ 삼왕문 안에 숭의제(명주군왕 제실)이 있음 |
▲ 홍살문 앞에서 바라 본 사당 전경. 사당이 대단합니다. |
▲ 명주군왕릉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홍살문 |
▲ 몇 백 미터를 들어가면 좌측에 관리사가 있음 |
태종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문왕의 5세손이라고 하며, 선덕왕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자 왕가의 혈족인 그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경주로 가는 중에 큰 비가 내려 강을 건널 수 없어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이에 신하들은 하늘이 그를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함이니 다른 사람을 뽑자하여 김경신(후의 원성왕)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
▲ 명주군왕릉 아래 위치한 능향전과 석수 전경(홍유릉과 흡사합니다.) |
▲ 관리사 앞에서 바라 본 전경 |
▲ 능향전 우측 편에 있는 비석 |
▲ 능향전 앞 좌우로 배치된 석수 전경 |
▲ 능향전 전경 |
▲ 명주군왕릉은 능향전 우측으로 올라갑니다. |
▲ 명주군왕릉으로 오르기 직전에 돌아 본 능향전 앞 전경 |
▲ 명주군왕릉으로 오르는 초입에 망주석 비슷한 석물이 좌우로 서 있고 우측에는 명주군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음. |
▲ 명주군왕릉 전경 |
김주원은 이듬해 선대로부터 인연이 있는 명주(지금의 강릉)로 와서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명주군왕 ’으로 봉해졌으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원성왕은 그에게 통천에서 평해까지의 동해안 일대를 식읍으로 주었다. 그뒤 주원의 아들 헌창(憲昌)과 손자 범문(梵文)이 중앙 정계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모두 실패하였다. |
▲ 원거리에서 바라 본 명주군왕릉 |
▲ 석등 앞에서 바라 본 명주군왕릉 |
▲ 명주군왕릉 전경. 묘비에는 '명주군왕김주원지묘'라고 쓰임. |
현재 묘역에는 봉분 아랫부분에 긴 사각형의 둘레돌을 두른 묘 2기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가 있다.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 동물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고, 동네 입구에는 신도비가 있다. |
▲ 명주군왕릉 앞에 조성된 석물 모습 ▼ |
▲ 앞 봉분 우측에 측면으로 서 있는 묘비(명주군왕지묘) 전면과 후면 모습 |
▲ 봉분은 2기가 앞 뒤에 조성되어 있으며, 호석은 최근에 조성한 듯합니다. 봉분은 일반묘와 비슷합니다. |
▲ 묘역 사방을 두르고 있는 수목 |
▲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 |
명주군왕릉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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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 부분에 명주군왕릉이 있습니다. 소재지 : 강원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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