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휴가기간에 직장 생각은 절대 안하고 읽고 싶은 책과 영화반 뚫어져라 봐야지 했던 공약은 지키지 못했고
그래봐야 시험과 연수까지 포함된 휴가라서 마음 편안하게 볼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편하게 앉아 주문한 책을 보자니 갑자기 무력감이 슬슬 피어 오르고~~~
그래서 생각 없이 즐겁게 흥미진진하게 읽어볼만한 책 어디 없나? 두리번 거리니~~

몇 달 전에 배송시킨 책이었는데 침대밑에 껴있어서 몰랐구낭~~ㅋㅋㅋㅋ
일사천리로 이틀만에 읽겠구낭~~ㅋㅋㅋ
하지만 왠걸 이거슨 이거슨 그저 성적일탈을 주제로 한 말초적신경을 자극하는 내시류와 궁녀류가 아니었던 거시다.
출판사가 학. 고. 재!
이왕 책을 든 김에 읽어내려가는데 그야말로 학술서 수준....-.-;;;;
명청시대의 남색풍조를 문학과 사회상을 통해 분석한 책이다.
그저 지엽말단적인 흥미위주의 분석이 아니라 그 시대에서 남색의 자유로운 풍조와 서양에서처럼
마녀사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동양의 사회상을 서양보다 우월하게 그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비판적인 부분들이 더 많았다.
오늘날의 성소수자문제, 특히 게이세계에서의 뼈아픈 사실이
명청시대애도 확연히 드러나는 문제를 집요하게 놓치지 않고 있다.
<명청시대의 남성동성애 관계는 주동자와 피주동자로 나눌 수 있으며 둘의 경계가 분명하여 상류층으로,
그들은 자극과 만족을 추구하였다. 주동자는 돈 있고 지위있는 상류층으로, 피동자는 지위가 낮고 천하여 몸을 파는 계층이었다.
그들의 동성애 활동은 대부분 굴종과 매음에서 출발한 것이지 동성애에 대한 흥취에서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목적 또한 실리적인 것이었을 뿐 성애적인 것이 아니었다.
동성애를 나누는 쌍방은 지극히 불평등했으며 사회의 여론도 주동자측에는 관대했던 반면 피동자 측에는 멸시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명청 시대에 일관되게 지속되었으며, 이는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명청시대의 남성동성애 풍조는 시종 매음과 연관되었으며. 지위와 금전이 성애보다 더 중요했다.
이 같은 상황은 모두 당시의 여성동성애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만약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 개념을 적용해 명청시대의 동성애 상황을 성별에 관계없이 총괄하여 연구한다면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되기에 뚜렷한 갈피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성차별 문제는 성의 역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다.
그러나 명청시대에는 남성중심의 성의식이 팽배하고 여성의 금욕 풍조가 유행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각종의 고유한 모순들이 격화되어 가장 극단적이고 농축된 형식으로 출현했다고 할 수 있다. >
<중국 희곡이 청나라 중기 이후로 지극히 번영한 것과 당시 사회의 남성동성애 풍조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성애 풍조 중의 피동 계층인 상공은 늘 여성적인 겉모습을 가지고 고객을 불러들였다.
이처럼 여성화된 영단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또한 희곡에 대하 지극한 열정을 초래하였다.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거나 여자가 남자로 분장한 것이 실로 그 열광의 관건이었다.
동성애와 이장멱 그리고 희곡 이 세 가지는 이 시기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 큰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중들로 하여금 중국 희곡에 대해 곤혹감을 떨쳐낼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이후 중국 희곡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특휴한 심미 취미는 주변국가의 회곡형식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예컨데 언제나 남자가 여자로 분장한 일본의 가부키가 그것이다. 심지어 동서에 이름을 날린 태국의 인요도 청나라 오락 세계의 유풍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영화 '패왕별희'와 '마담 버터플라이' '왕의 남자'가 떠오른다.
우리나라도 사당패안에서 공공연한 동성애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영화의 모티브로 작용했다.
암튼, 책을 읽다보면 여성착취뿐만 아니라 계급착취가 중국에서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국 문화혁명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구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혁명은 단지 정치적 구성체만 가지고는 절대 안되고 문화적 혁명과 함께 해야만 하기에
홍위병 또한 어쩔수 없는 등장 아닌가 싶다.
뭐 명청시대 선비들의 자기합리화도 있기는 있다.
여성 화자의 슬픔, 원망, 우수를 가지고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여 적막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할 때 미인, 향초에 비유하면 실의에 빠진 여자로 거듭 자신을 묘사하는 예가 많다는 것이다.
명청시대의 꽃미남상도 젊고 활기찬 호남이 아니라 가녀리고 얼굴도 창백하여
불면 쓰러질듯한 여성적인 남자를 으뜸으로 여겼다는 것도 비슷한 사례일 것이다.
엉뚱하게도 다 읽고 난 느낌은 만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의 사회주의혁명과 문화대혁명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계급성에 입각한 전통문화를 분리수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쓴이도 밝힌바 서양과 동양의 차이점이라기보다는 전근대적인
계급적 횡포와 차별에 대한 분노와 성적인 흥미보다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진한 연민과 아픔이 먼저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