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경찰서 내 석탑 (사진찍기에 열심인 박재환샘)
구 교육청 내 석조물
동경관 (고려 - 조선시대에 걸쳐 사용된 경주 관아 객사로 외국손님이나 중앙의 관리가 경주를 방문
할 때 머물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정조대에 지워진 건물로 일정시대에 객사가 파괴되었으나 남아있던
객사의 일부인 서현건물을 지금의 자리에 옮겨 놓았다.
지금 건물은 객사의 일부 건물이기 때문에 지붕의 형태가 한 쪽은 팔작, 또 다른 한 쪽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곳에서 신라의 옥피리와 청동제 화로가 발견되었으며, 지금은 경주문화원의 문화교실로
사용되고 있다.
구 경주여중 내 집경전 구기비 (이 비석은 조선 정조때 세워진 비석으로 집경전을
다시 세워주라는 경주지역 유림들의 뜻을 받아들여 이 곳이 구 집경전터임을 나타내는 비석을
정조가 친필로 써서 세웠다)
집경전은 경주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전각으로 경주를 비롯하여 4곳에 태조의
영정을 모셨다 (전주의 경기전이 현존하고 있다)
경주에 있던 집경전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전란을 피해 강릉으로 태조의 영정을 옮겼다.
집경전 내 석조물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추정되는 집경전 내 석조물)
집경전은 당시 경주부에서 가장 신성시 되던 지역이었다. ---> 구 경주여중 내 大小人 下馬碑가 있음)
경주 읍성터 1 (동문쪽에 잔존한 성터유적 - 현재의 동부동에 위치)
경주읍성터 2
경주읍성터 3 (경주시 동부동과 북부동에 걸쳐 있다. 경주읍성은 고려 현종 3년 1012년 축성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경주를 중시하여 안동대도호부가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경주읍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고, 읍성 내에 관아와, 집경전,
80개의 우물,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약 90M의 동문 쪽 성벽만 남아있음)
복원된 경주 읍성터 일부 ( 성벽 위의 강선생 ---> 카다피 ????)
경주읍성터 4 (북부동 지역 - 계림초등학교 담장)
황오동 삼층석탑 (경주역 구내에 위치)
이 석탑은 신라 52대 효공왕릉이 있는 경주 동방동 장골 마을의 사자사지에 무녀져 있던 석탑을
1936년 경주역 건립을 기념하여 이 곳으로 옮겨세웠다.
층급받침이 4단이고, 1층 탑신이 2층, 3층에 비해 긴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의 석탑으로 보인다.
황오동 삼층석탑 옆의 석불
삼층석탑 옆의 석조물 (연화대좌, 배례석, 비석머리 등)
첫댓글 다음번 경주 골목길 답사는 성동시장 건너 경주 시내 번화가 방면으로 갈 예정입니다.
샅샅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좋은 시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 선생님 설 명절은 잘 보내셨지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또다른 맛이 납니다 다른것은 별로 머리에 남아 있지않은데 선생님의 모교 계림초등학교
개교100주년 기념식수에 동참(?)하여 이름이 등재된 것은 남아있습니다ㅎㅎ 올해도 많은 도움 부탁 드립니다
어쩌면 매일 걸어다닌 길인지도 모를찐데 저리도 많은 볼거리가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