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게 참 쉽지 않은 제도입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통치자는 항상 국민을 속이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끔 유도하기 때문에 국민은 최상의 선택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류사에서 민주주의보다 나은 정치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고수해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내는 어리석은 대통령으로 인해 혼란의
도가니이고 미국 역시 정치적 정체성이 모호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전 세계가
긴장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조금 더 시야를 거시적으로 넓혀보면 한 시대가 끝을 맺고
또 다른 백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지구촌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포지션이기에 앞으로 최소 4년을
집권할 트럼프의 공약을 보면 近미래를 볼 수 있으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면의 상황과
권력 투쟁 등이 예측 가능하며 또한 우리 삶의 왜곡된 부분과 교정해 나가야할 점 등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숱한 공약들 중 다소 터무니없거나 그저 그런 것들은 제거
하고 핵심적인 부분 들 만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내가 주목하는 공약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파리협약’의 탈퇴
‘파리협약’은 유엔가입 195개국이 예외 없이 구속력을 갖는 보편적 기후 합의입니다.
구체적으로 2020년부터 적용이 되는 ‘신 기후체제’를 의미하며 탄소감축을 못 할 경우
제재 조항과 탄소 세, 탄소배출권 매매가 강제되는 것이 골자입니다. 2015년 파리협약이
맺어지기까지 사전 작업에 걸린 시간은 약 50년에 이릅니다. 1972년 런던협약 - 1992년
리우 협약 - 1997년 교토의정서를 거쳐 파리협약에 나옵니다. 이 과정까지 과학, 금융
정치, 사상 등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결정체가 ‘파리협약’입니다. 그러므로 트럼프의 공약은
지난 50년 동안의 모든 노력을 뒤집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기후변화가 산업 활동에 기인
한다는 주류 과학계의 논리를 거부하고 회의론 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기존의 금융 자본가들이 공들여 구축한 시스템을 뒤집겠다는 의지이며 새로운
금융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금융자본주의를 ‘앙상 레짐’으로 간주하여 타파
하겠다는 혁명을 염두에 두는 것 또한 아닙니다. 트럼트의 언행을 참고했을 때 그가 고도의
지식을 갖춘 것도 아니고 다수 시민들의 행복을 바라는 의지를 가진 인물도 아니기 때문입
니다.
2. 화석연료로의 회귀
기후변화를 보는 관점이 그러하다면 당연히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열망은 포기되어야 할 것
이고 지난 세기의 화석연료를 통한 에너지 생산 방식의 채택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화석연료의 핵심인 석유가 어디에 있느냐하는 점입니다.
미국 본토의 석유가 고갈된 지는 이미 50년이 넘었고 알래스카 유전 역시 오래전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오일샌드와 셰일가스로 이 부분을 대체한다는 생각은 아닐 겁니다. 오일샌드와
셰일 가스는 석유와 LPG를 일부분 대체할 수는 있겠으나 폐해가 엄청납니다. 지진 등 인공
적인 재난 유발은 물론이려니와 석유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수자원과 농업의 피폐가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석유를 끌어와서 사용하겠다는 것일까요?
결국 석유 공급선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서 부시부자가 벌였던 전쟁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3. 북미연합 AGENDA 소멸, 멕시코 국경 장벽설치, TPP 포기 & FTA 재협상
오랫동안 진행되어왔던 캐나다-미국-멕시코를 통합한 북미연합 논의를 중단한다고 합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여 인적 교류를 통제하겠다는 것이 그의 공약입니다.
그리고 TPP 논의의 중단과 주요국과 맺은 FTA 역시 재협상 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중요한 파트너를 아시아에서 전통의 유럽으로 돌리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트럼프와 그를 움직이는 세력들은 글로벌리즘을 포기하고 지역주의(regionalism)를
추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은연중에 전 세계 경찰로서의 지위를 포기한다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한국 일본과의 방위조약을 흔들고 유럽과의 군사관계 설정도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합니다. 그가 외치는 강한 미국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모순입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 트럼프와 그 무리들이 매우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이런 공약을 내놓고 있다면 이면에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아주 심각하고 위험한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나는
이 위험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역으로 트럼프가 언론에 회자되는 정도로 안하무인이며 제멋
대로인 인간이라 단지 권력욕에 사로잡혀 아무 말이나 내뱉는 포퓰리스트라면 세상은 그의
공약과 관계없이 흐름의 방향이 꺾이지는 않을 겁니다.
4.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역할 분리
은행의 역할은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상업은행(Commercial bank)입니다. 예금을 받아
대출하고 예대마진의 차익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역할입니다. 두 번째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입니다. 금융자본이 블랙홀처럼 자본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바로 이 투자은행의 역할이
극대화된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불과 80년대만 하더라도 고 위험투자에 고 이율을 붙이는
행위가 불법적이라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자본의 흐름에 국경이 없어진 지금에 와서
실물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본의 게임에 열중하는 상황입니다. 거의 모든 돈의 뭉치에는
금융공학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설계된 파생상품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유통이 됩니다.
예대 마진 수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에 너도나도 상업은행과 투자
은행의 역할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제로 이 두 부분을 분리하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현재의 권력을 쥐고 있는 금융 자본가들을 향해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하는 모양새
입니다.
트럼프 당선이 결정된 이 후 당연히 등장해야할 기존 세력의 반발은 고사하고 순응하는
모습이 대세입니다. 물론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방탈퇴 움직임이 보이긴 합니다만
사실 이 운동 역시 지역주의라는 흐름과 궤를 같이 합니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큰 주입니다.
연방 탈퇴 후 자립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주(state)이기도 합니다. 트럼프를 지지한 지역의
주들은 스스로 생존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트럼프가 위대한 도전자가 될지 혹은 희대의
사기꾼이 될 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또 다른 백년’의 문이
열렸다는 겁니다. 지난한 가시밭길이 될지 편안한 꽃길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요.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 미연방의 한 부분으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완전한 독립국가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벌어지는 광란의 판에서 생사가
결정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대통령이 쫓겨난 후 어떤 리더가 등장하느냐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갖추어야하고 양심적인 정치력도 있어야하며 드러난
모든 반동세력에 대한 칼을 서스럼 없이 휘두를 수 있는 강단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상식을 벗어난 법을 모토로 삼는 법률가는 배제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것은 이번 혁명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각성했다는 겁니다. 전체적인 의식의 상승이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근 미래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대로 오픈될 경우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어
나만의 노트에 저장합니다. 지난번 포럼 강연에서 보았던 참석자들의 의구심과 경악에 찬
반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적으로 평균을 훌쩍 상회하는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물론 두 시간의 강연에서 한 시간을 넘어선
후 참석자의 8할 정도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고 자리를 마련했던 교수님이 따로 좋은 평과
감사하다는 표현을 해주셨지만 나는 그들이 그때의 충격을 잊지 않고 모든 정보의 알고리즘을
구축한 후 각자의 역할에 적용해 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만이 교육과 산업 일선에서
이 나라를 이끌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싹 수 있는 국회의원
이라도 한번 방문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