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2년은 시월유신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한 후 만 40년이 흐른 것이다. 만 40년이 흘렀건만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는 유신의 검은 유산은 도도하고도 울울창창하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유신의 본질과 실상을 거의 모르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유신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은(시민정신을 지닌 사람들은) 유신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치가 떨리고 몸서리가 쳐진다.
1969년의 '삼선개헌'으로 1971년 삼선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목표로 1972년 유신을 단행해서 마침내 종신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대통령직을 유지한 채 이승을 떠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일한 '종신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으뜸 저명인사가 된 덕에 그의 전반적인 내력도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됐다. 경북 선산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일본의 괴뢰 만주군 장교로 변신하면서 일본 천황에게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씀으로써 출세의 길을 다졌다.
일본 육사를 나와 관동군 장교로 독립군을 토벌하던 그는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장교로 변신했다. 남로당원에서 반공의 기수로, 군인에서 반란군 우두머리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5·16쿠데타 성공으로 그는 정권을 잡았고,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다.
재선대통령으로는 자신의 야망을 채울 수가 없었다. 대통령을 연임하고도 군대를 동원해 헌법을 고쳐 삼선대통령직을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1년 만에 또 다시 군대를 동원해 자신이 만든 헌법을 파괴하고, 종신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
종신 대통령의 꿈은 7년으로 끝났다. 딸보다 어린 여대생까지 낀 질펀한 술자리에서 자신의 오른팔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절명하는 순간까지 대통령직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종신 대통령의 꿈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전성시대, 유신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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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국 신부 인사 지난 4월 30일 파업 중인 MBC 노조원들을 찾아 위로와 격려를 하며, 방문 사제들을 대표하여 김인국 총무 신부가 인사말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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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절 7년은 그의 전성시대였다. 봉건시대의 군왕보다도 더 높고 절대적인 권력을 그는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그에 대한 일체의 비판은 엄혹한 처벌을 받았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정보기관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받고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
그의 죽음과 함께 유신은 종말을 고했지만, 유신의 검은 유산은 유신보다도 더욱 무섭고 끔찍했다. 그의 후계자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 광주에서 엄청난 시민학살을 자행했고, 1980년대를 폭압으로 통치했다.
그 후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다섯 명이 대통령직에 오르고, 수평적 정권교체 경험도 갖게 됐지만 유신독재의 독버섯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신시대에 창출된 갖가지 강압적 논리와 이데올로기들이 오늘도 힘을 발휘하며 대승적이고 민주적인 사고와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유신독재의 독버섯시월유신의 암울한 유산 한 가지는 박정희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향수다. 일찍이 박정희의 통치논리에 순치되어 유신체제 수립을 위한 국민투표 당시 93%의 찬성 쪽으로 휩쓸려 버렸던 오늘의 노년층과 장년층 다수는 반성과 자책보다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선호한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의 으뜸 자리에는 언제나 '경제발전'이라는 논리가 있다. 박정희 덕에 먹고 살게 되었다는 말을 그들은 입에 달고 산다. 박정희가 5천 년의 빈곤을 몰아내고 민생을 살렸다는 인식은 요지부동이다.
그것이 얼마나 자기 모멸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인지를 그들은 모른다. 그것이 비굴한 노예근성과도 연결되는 것임을 그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 박정희를 찬양하고 미화하기 위해 우리 민족 전체를 매도하고 부정하는 짓도 서슴없이 자행한다.
그들의 그런 인식과 심리는 그대로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고, 박근혜에 대한 환호로 나타난다. 유신독재의 유산이 그렇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과 관련하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청주교구 옥천성당 주임)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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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기도를 하는 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와 김인국 총무신부 9월 17일에는 태풍 산바 때문에 미사를 지내지 못하고 대한문 처마 밑에서 묵주기도만 바쳤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이가 '오체투지 순례기도'로 몸을 다친 전종훈 대표신부이고, 왼쪽 끝에 서 있는 김인국 총무신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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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유신체제는 한 순간도 숨이 멎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유신의 독버섯은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은밀하고 억척스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찬란하게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이렇다 할 문제의식도 없이 말이다. 박근혜보다 박근혜에 마음을 빼앗긴 민심이 더 문제다."그는 박근혜에 향한 지독한 성원과 열광을 뒤집어 보면 사람들의 어리석은 탐욕과 자신만 아는 이기심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대통령 선거 정국을 앞둔 2012년 10월은 '유신체제를 발본색원할 것인지, 부활시킬 것인지를 성찰해야 하는 중요한 때'이며 이는 '교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천민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천민자본주의란 대다수의 희생으로 소수를 살찌우는 시스템을 말한다. 당장 우리 사회의 자본의 횡포를 보라. 중산층까지 몰락시키고 공공재인 강, 바다, 갯벌까지 죄다 팔아먹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자손만대까지 물려줘야 할 공동의 유산을 빼앗기고도 박수를 친다. 참 환장할 노릇이다.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을 어떻게 했는지, 평택 쌍용차 공장 옥상에 올라간 노동자들을 어떻게 때려잡았는지 멀쩡히 보면서도 어떻게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형제를 패고, 직장에서 쫓아내고, 제 고향을 없애고, 할아버지가 어렵게 마련한 논 위에 고압 철탑을 세워도 좋다고 하는 백성이다. 이게 어리석은, 혹은 '얼이 썩은' 백성이 아니고 무엇인가."김인국 신부는 그것이야말로 유신체제의 학습효과가 뼈 속 깊이 스며든 때문이며, 그래서 유신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일부의 열광은 과거 히틀러에 대한 독일사회의 열광과 비슷한 면이 있다. 독일도 1950년대까지는 국민들이 히틀러를 최고로 여겼다. 하지만 복지사회로 들어서면서부터 극소수 극우파에서만 그를 흠모하고 있다. 한국도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고 나면 낡은 미신과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는 10월 22일 유신헌법공포 40주년을 맞아 시국기도회를 연다. 이는 잊고 지냈던 유신체제의 악(惡)을 직면하기 위해서다. 상처와 고통은 여전한데 우리는 서둘러 잊고 있었다. 유신체제는 매우 악질적인 통치였다. 악에 대한 성찰은 교회의 일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누가 이를 알려주어야겠는가. 교회가 아니면 또 누가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는 22일(월) 저녁 7시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여는 '시국미사'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이번 시국미사는 일종의 회향(回向)의 성격을 갖고 있다. 회향이란 순례를 마치면서 순례자가 길에서 얻는 공덕을 세상과 이웃에 돌리는 일을 말한다. 사제단은 2008년에는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로, 2009년에는 '용산천막기도회'로, 2010년에는 '단식기도회'로, 2011년에는 '여의도 시국기도회'로, 그리고 2012년 올해는 방방곡곡을 순례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 어디서나 미사를 드리다 대한문까지 왔다. 제발 살아 있는 목숨들을 죽이지 말라고,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달라는 기도였다. 이제 지난 5년간의 순례와 기도를 모아 다시 하느님께 고하고(天告), 세상과 나누려고(回向)한다. 부디 많은 분들이 오시면 고맙겠다." 신자들 가운데는 정의구현사제단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어떤 이들은 교회와 세상이 엄연히 구별되어 있는데 교회에 속한 이들이 왜 세상일에 그리 나서느냐고 묻기도 한다. 심지어 '빨갱이 사제'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참 딱한 일이다. 하지만 돌을 던져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사제들은 목마른 사람에게 그저 한 사발의 냉수를 건네주려는 것뿐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을 퍼주고 싶을 따름이다. 세상과 이웃이 망하든 흥하든 그게 교회와 무슨 상관이냐고 해도 좋다. 그런 믿음을 나무라거나 배척할 생각은 없다. 충분히 존중할 터이니 서로의 생각대로 각자가 아는 신앙의 길을 성실하게 가면 된다. 각자 하느님 앞에서 책임질 일이다."그러며 그는 신자들이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보기 바란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지침은 단순하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자.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이를 보고 못 본 체 외면하였다. 왜? 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봐주고 함께 아파해주라는 것이 복음이 요구하는 사람의 길이다. 오늘날 눈물 없이 사는 신앙을 어떤 신앙이라고 해야 할까?""우리는 거리를 성전으로 삼아 기도하고 있다. 벌써 5년이 넘도록 월요일마다 우리와 함께 많은 수도자들과 교우님들이 이렇게 지내고 있다. 고요한 곳에서 기른 힘을 시끄러운데서 쓰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좋을 때가 아니라서 저마다 길을 나서서 여기 모이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무력하다. 그저 얻어맞고 터져서 상처받은 사람들 곁에 있어주려는 것뿐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하느님의 살아계심과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잊지 않도록 한 점의 촛불이 되려는 것이다." 그 수년 동안의 촛불들, 명동성당과 용산참사 현장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과 대한문 앞에서 피어난 촛불들이 매월 22일 저녁 시청 앞 잔디광장에 다 모여 이 땅을 밝히는 구심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매일같이 기도한다고 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40년 전 박정희의 유신체제 선포로 말미암아 탄생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던 성직자 단체다. 그러므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역사도 어언 40년을 헤아리게 됐다. 더불어 정의구현사제단은 "유신독재에 맞서 싸웠던 많은 이들이 감옥에 끌려가 무참히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40년이 지나도 2012년 10월 대한민국에는 그날의 눈물이 멎지 않고 있다. 이제 40년 묵은 악의 고름을 터뜨려 말끔히 치유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인식도 공유하게 됐다.
그리하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22일 저녁의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 시국미사를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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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대한문미사 지난 7월 2일 시작된 대한문 월요미사의 첫 번째 미사는 전종훈 대표신부가 주례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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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의 유신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창립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므로 그 시대에 열정을 바쳐 뛰셨던 선배 신부님들을 맨 앞자리에 모셔서 교회의 사명과 본분을 새롭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부디 많은 신부님들이 오시도록 부탁드립니다. 사십년 전의 선배들부터 사십년 후의 후배들까지 모두 오시라고 초대합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실로 머나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2008년에는 오체투지로, 2009년에는 남일당 천막기도회로, 2010년에는 4대강을 따라서, 2011년에는 여의도 월요기도회로, 그리고 올해는 월요순례에 이어 대한문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제발 살아있는 것들 죽이지 말라는 호소였고,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들 살려내라는 절규였습니다. 매서운 한파 속에 덜덜 떨며 미사를 드리던 날도 있었고, 뜨거운 태양 아래 곡기를 끊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생명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봉헌기도였습니다. 말로만 드렸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오체투지로 문규현 신부님은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경을 헤맸고, 전종훈 신부님과 수경 스님은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지는 바람에 평생 그 직립보행의 고통을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제주 강정에서 또 얼마나 큰 고초를 겪으셨습니까. 몸을 던져서라도 악과 맞서려던 우리의 봉헌은 이 밖에도 무수합니다. 이번 서울광장시국기도회는 지난 5년 동안의 땀과 뜻을 모아 하느님께 고하는 천고(天告)요, 순례와 봉헌의 덕을 만백성과 나누는 회향(回向)의 잔치입니다. 지난 2008년 6월처럼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바다처럼 많이들 오셔서 이 땅의 민주주의와 생명의 부활을 위해 기도하고 노래를 불러주시도록 거듭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한 다음이라야 최선의 결과를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유신망령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활개치며 농락하고 있고 그 중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