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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稚岳山)
병술 유월 스무나흘
월드컵 16강 시합이 있던 날 새벽, 4시부터 꼬박 두 시간 동안 스위스와 싸운 그라운드의 선수들 못지않게 능선의 열혈 올빼미들이 잠과 싸웠다 그러나 마치 미리 입력 된 로봇처럼 뇌는 몽땅 빼 놓은 빈 바가지 상태로 말도 안 되는 판정을 일삼는 심판 때문에 분노와 절망에 빠져 온 세상 한꺼번에 끝나는 듯 절규했다 꼭두각시 같은, 이름도 괴상 망측한 호라시오 엘리손도 라는 늠 그리고 뒤에서 마음껏 주무르고 조종했을 블레터라는 인간과의 연관사슬을 생각하며 욕지기를 뱉고 또 뱉으면서도 분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그 날은 새벽부터 예사롭지 않게 아니 아주 기분 나쁘게 시작되었다
어둠은 붉은 옷과 붉은 피와 붉은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애탐과 열정으로 불살라지고 이 날의 뜨겁던 열기와 함성은 바이러스처럼 또 4년 동안 피 속에 잠복했다가 때가 되면 발병하듯 터져 나와 거대한 붉은 파도가 되고 붉은 함성이 되고 붉은 악마의 으르렁거림으로 지구별을 호령 하리라
내 피 속에도 바이러스는 어김없이 잠복해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4년의 기다림은 너무 지루하다 가지 않은 4년은 너무나 길다 그리고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그것의 효용가치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피의 일깨움으로 서서히 조금씩 핵분열을 시키듯 일상에서, 때론 마그마처럼 때로는 얼음처럼, 맹렬하게 냉철하게 이성을 단련시키고 싶다 이것이 산행 끄트머리에서 환영처럼 본 처절했던 자화상 이다
바람을 가르며 몇 시간이고 지치지도 않고 내 닫는 이 쇳덩이가 문득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 곳은 강원도 땅 치악산 비로봉, 스물 세명의 얼굴들이 또 새롭다
장마전선이 진을 쳐도 능선행차 날에는 게릴라, 정규 할 것 없이 비 비슷 생겨 먹은 늠은 일단은 5분대기조로 편성 되는 가 보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이렇게 엿 장수 맘대로 볕이 쨍 하고 날 수 있을까 그것도 막강기단 오츠크전선이 깔렸는데... 모진 늠하고 같이 있으면 마른 하늘에서 생짜배기 날 벼락도 치지만 물 많은 오츠크를 물 먹이는 걸 보면 능선에는 착하디 착한 사람들만 모였는게 틀림없다
시간당 산행속도 측정불가, 산행 중 퍼지고 앉는 점심식사는 때론불가, 김밥 따위는 걸으면서 통째로 뜯어 먹는 일명 행동식(야수식), 그들은 마족(馬族)이라 불렸다 추려보니 일곱 명이나 숨어있었다 그 중엔 낼 모레 환갑군번도 두 명이나 되고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의 산행 능력을 눈으로 목격하고 혀를 내 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튀긴 말로는 거의 날아 다닌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다
시간당 산행속도 측정불가, 산행 중 퍼지고 앉는 점심식사는 당연지사, 김밥은 토막토막 썰어먹는 일명 토막식, 그들은 별족(별 볼일 없는 족)이라 부른다 일곱 뺀 나머지지만 그 중엔 별별족(별나게 별 볼일 없는 족)도 몇 되는 성 싶다 별별족의 산행 능력을 눈으로 목격하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절인 말로는 거의 기다시피 한다는데 과연 그러하다 내가 대책 없이 그러함이 마냥 서글프고 마족으로 등업을 기도하다 동료의 저지로 죽음의 덫에서 구사일생 하는 듯한 한 별족의 해프닝도 산에 들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산중 우스개의 으뜸감이다
마족과 별족은 산행기점을 따로 잡는다 마족은 두 시간여를 더 걸어야 하는 행구매표소에서 향로봉 능선을 타고 비로봉으로, 별족은 황골매표소에서 입석사를 지나 비로봉으로 간다 별별족은 비로봉 꼭대기에서 시작했음 좋으려나 그랬거나 말았거나 중간중간 족간교신(族間交信)은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물기를 머금은 산공기는 서늘하고 청량하다 초입에서 바라다 본 봉우리는 안개가 자욱하다 그 기운에 골은 더욱 깊은 듯 하고 길손은 우리 뿐 고요와 적막의 세계 강원도 치악산 그 첩첩의 산중으로 마악 들어선다
삶의 겨룸은 성취와 쟁취의 욕구로 알게 모르게 심신을 피폐하게 한다 우린 그 겨룸에서 입은 무수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렇게 산으로 가는 지도 모르지 설마하니 장소를 옮긴 또 하나의 겨룸을 위해 산으로 갈까? 산은 저리도 우뚝 솟아 또 다른 성취욕을 자극하지만 급할 것 없고 애탈 것 없이 천천히 웃으며 가도 되니 그 아니 좋은가 누구라도 예외 없이 돌아가서 누울 땅이라서 살았을제 부지런히 답사라도 하는 걸까
계류에 떠가는 나뭇잎은 어느 가지에 매달렸다가 저리 떨어져 정처 없이 흘러 가는가 저 잎은 가지에 필요 없었을까 아니면 없어서는 안 될 잎새 였을까 물위에 떨어진 저 나뭇잎은 끝일까 시작일까 우리도 죽어지면 비로소 그 무한경쟁의 달음줄에 서지 않아서 자유로워질까 아니면 또 다른 시작에 몸서리를 칠까
길은 꼭대기로 난 까닭에 가파름이 당연하고 그 길을 걷는 일 또한 힘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바가지가 온통 익을 것 같고 닭똥 같은 땀으로 온몸을 씻듯 해도 억울해 하지 말기로 하자 또 강원도 산이나 경상도 산이나 산세가 거기가 거기 같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사람도 태생이 다르면 행동거지가 다르듯 감자바위 강원도 산도 그 만의 다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발효 된 먹거리는 동서고금을 넘나들어 봐도 죄다 정말 먹을 만한데 사람 뱃속에서 곰삭은 꺼리는 도저히 그러하지 못 하다 배설이 그렇고 산속에서 술 깨는 몸부림이 그러하다 유세차 2006년 6월 24일 새벽 은하계 지구별 아시아대륙 대한민국 남한 땅 부산 사직동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교촌치킨 사들고 만세를 밤새도록 외친 열혈남아가 있어 지나 내나 맛 가기는 어금버금이라 감히 수작을 한번 혀 보는데
“ 어허 저것 보소 !
어허 저것 짬 보소 !
눈은 가죽이 모자라 쨌다지만
어찌 저리 절묘한고
시방으로 기운이 솟구치면
저 누시깔 범 눈깔이고
세포죽여 살짝 깔짝시면
허심한 년늠은
단박에 잡혀 묵히제
어매 어매 환장 하는 거
내가 저 눈깔 뺏어다가
조선천지 어느 땅에선들
보았느냐 알겠느냐
구구절절 못 꿸 소냐
호령호령 못 할 소냐
그려그려 그 눈 속에
얼굴 얼굴 화상으로 그려놓고
세세토록 잊지나 마오
덩덩 덩더꿍 얼쑤! “
가세 가세 길은 천성산 대성사 가는 길을 닮았구나 골은 산만큼 패어 있고 하늘은 봉우리에 걸려 시공은 멈춘 듯한데 한 걸음 한 발짝 여기가 어디 메던고
“ 금강산도 밥 묵고 보자 ” 이런 명언중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배고픈 이는,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는 언제 어디서라도 밥은 묵어야 한다 특히 땀을 말로 흘리고 아랫도리에 풍 끼가 나타나면서 5초 안에 맛이 갈지도 모르는 늠은 우선 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체처리반이 급조 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한 늠이 운이 좋은 건지 나머지 스물 두 분이 운이 좋은 건지 시방도 똑 부러지게 말 못 하지만 이것 하나는 짚고 넘어 가야겠다 앞으로 오후 두시가 다 되도록 밥을 안 멕이고 배고파 죽는 공포에 떨게 하면 치악산 꼭대기 돌탑 세 개 다 헐은 돌로 맞을 줄 아셔 김밥이 두 줄씩이나 보따리에 있는데 배고파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여 시방!
공갈인지 협박인지 하는 늠이나 당하는 분들이나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서 장면이 어째 요상하긴 한데 좌우당간에 시원한 열무김치, 톡 쏘는 산초무침, 새콤한 첫 맛 구수한 끝 맛의 김말이 과메기, 요런 보약들을 안 묵고 아니 못 묵고 거시기 되얐으면, “묵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 카는데 뽀샵을 해도 티도 안 나는 늠 우짤 뻔 했노
앞 서거니 뒷 서거니 별족은 도토리 키 재긴데 마족의 겨눔은 별족을 앞선 치악산 제일봉 비로봉이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들의 다가섬이 별별족의 허약한 가슴에는 경이와 부러움으로 각인 된다 결단코 그랜저가 아닌겨 베엠붸 740i, 다임클라이슬러벤츠의 빛나는 럭셔리 세단 s class 인겨 그중엔 뉴 험비도 있고.. 게으른 별족과 별별족이 쉬엄쉬엄 가는 길에 이젠 거의 다 왔구나 뿌듯하게 비로봉의 돌탑 삼봉 올려다 볼 적에 마침내 그들은 챙모자 눌러 쓰고 소리도 없이 다가와 뽐내듯 자랑하듯 단 한번의 호흡으로 경악하는 우수리를 쓰러뜨리고 아무일 없는 듯 비로봉으로 올라선다
겨룸의 시간과 고통 앞에 인간은 비로소 생존본능이 드러나고 역설적이게도 그 본능이 표출될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답다 본능은 수수만년 동안 세포에 기억 된 정보 일 뿐 꾸밈도 조절도 없기에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다만 그 가당찮고 치열함의 앞에서 일말의 측은지심 따위는 추호도 없음에 생존의 법칙임을 알 수 있겠다 별별족은 그렇게 마족 앞에서 한 번쯤 가상의 본능에 젖어 보았다
1288M 비로봉에 세 개의 돌탑이 우뚝 섰다 누가 쌓았을까 세 개 씩이나 저렇게 많은 돌은 다 어디서 가져 왔을까 무슨 소망이 그리도 간절해서 이 높은 봉우리에 또 저리 높이 쌓았을까 사랑하는 이와의 별리를 막으려 했음일까 아니면 인연의 영원한 이어짐을 빌려 했음일까 바람이 탑 꼭대기에서 깃발처럼 나부낀다 바람은 탑의 진실을 알고 있을까 헉헉대며 올라온 이 산의 제일봉에는 그렇게 탑과 바람과 인간의 교감이 안타깝게 멤 돌고 있었다
사다리는 알겠는데 병창은 뭐 더래요? 병창은 절벽 이래요 그래서 사다리 병창이라 함은 사다리를 걸고 올라가야 할 만큼 깎아지른 절벽이라는 야그 더래요 그런데 깎아 지른 절벽은 어데가고 온통 계단 천진고? 나무계단, 철계단 할 것 없이 아예 도배를 해 놓았다 길이 아니면 말지 싶으면서도 그 별스러움에 슬며시 호기심이 동하고 보니 이 길을 아니 이 계단을 놓는다고 애 썼을 뭇 사람들의 노고가 돌탑만큼이나 정성으로 와 닿는다 그나저나 이런 계단 길을 두 시간 가까이 내려 갈 일도 보통일이 아닐 성 싶다
간간이 나뭇잎에 부서지는 빗소리가 길을 재촉한다 드디어 계류가 보이고 물은 그대로 명경수다 뛰어내려도 될 만큼 물은 깊이가 있어 보인다 어림잡아 두 길은 넘겠다 세렴폭포다 알탕의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다 하지만 여기서 담궜다간 직빵으로 노랑신문에 한 페이지 장식 할게 분명하다 가자 축축하고 찜찜해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계단은 신물이 나도록 이어지고 문득 이 길을 오름길로 했으면 피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바가지에 메아리를 남긴다 다행히 그와 같이 하지 않았음은 뉘 덕일꼬 입장료 비싸게 받아먹는 공원관리소장 덕일까 같은 산이라도 입장료가 제 각각인 요상스런 운영방침 덕일까 아니면 그것을 간파하고 방향을 홰까닥 튼 순발력 덕일까 누가누가 잘 했던 간에 노랑돈 굳었고 아랫도리 쥐 내리는 대형사고는 막았다 그래서일까 거의 다 내려와서 마주 친 커플이 불쌍하게 보인다 아직이야 히히낙낙 손으로 입도 가려가며 웃지만 조금만 더 올라 가 보지 입 가릴려면 손이 하나 더 있어야 할 꺼로?
두 시간 넘게 낙하산도 없이 몸서리치며 낙하 하듯 내려왔다 구룡사를 지난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걸음을 옮긴다 자그마한 쉼터에 사람들이 몇몇 모여 있다 길옆으로 계곡이 있어 맑디맑은 계류가 소리 내어 흐른다 그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물고기 비늘처럼 툭툭 튀어 오른다 또 햇살은 높은 가지에서 푸르게 물든 엽록의 싱그러움을 닮아 있다 몸은 길 따라 가는데 마음은 물 따라 흐르고 어느새 몸과 마음은 길도 아니고 물도 아닌 곳에서 유영하듯 자유롭다 의식의 무게를 내려놓는 곳에 무의식이 맞닿아 있고 그 경계를 건너는 것은 다분히 타의적이다 이제 길은 눈물나게 평탄하다
심심산천에서 흘러 온 옥수에 알 두 쪽 담그니 이게 바로 신선놀음 일세 해 떨어지기 전에 세속 가까이 왔으니 도끼자루 썩을 염려 없고 그래서 일까 알은 차디찬 물 속에서도 제법 느긋하다 그런데 오그라 붙는 양이 똑 같지 않고 짝짝이다 온통 물속에 담그고 가만히 있어보면 땀내 쉰내 다 씻긴 몸뚱아리가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에는 산천어만 사는 줄 알았는데 잘만 하면 6척 알어도 살겠구나 물가에 드리운 나뭇가지가 뽕나무 일 줄이야 일러 주지 않았으면 집에 가서도 몰랐겠지 야생 뽕나무에 앙증맞게 열린 오디가 신선놀음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요렇게 조그마한 속살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 쯩 없는 두 날신선의 입들이 바쁘다 훑고 터는 솜씨는 키 작은 신선이 훨씬 낫다 그래 이 맛이야 벌거숭이 날신선들은 오디에 금새 밑천을 드러내고 그 중에 대처출신 키 큰 날신선은 거의 콩 깍지가 씌였었다
벗어 놓은 옷가지가 그대로 인걸 보니 우리가 나뭇꾼이 아니든지 선녀가 없든지 둘 중 하나겠다 뽀송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첨으로 해 본 알탕의 여운을 온몸으로 음미해본다 골수 알탕족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바가지에 꽉 차면서 고개가 주억 거려 진다 “그래 이 맛 이구만”
산에는 무엇이 있어 이리도 먼 길 달려 왔을까 들 때나 날 때나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도 해 보고 살펴도 보지만 늘 맞춤 한 것이 없고 딱 부러 지는 것도 없어 이것 이겠거니 저것 이겠거니 지레 짐작만 해 본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인 지도 모르겠다 오늘 같으면 알탕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달리 여겨 보고 싶다
산위에 높은 돌탑을 쌓는 이의 마음으로 산에 들면 분명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 것도 같다 그 고행의 뜻과 가치가 무엇인지 또 얼마나 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수백 수천의 그 돌들이 의미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오욕칠정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숱한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갈등은 거의가 욕심과 미움에서 생기는 것인 만큼 마음에 돌덩이처럼 자리한 많고 많은 갈등의 상처들을 산에 들 때 마다 털어 내어 이 산 저 산 마음의 탑을 세워 봄이 어떠할까 그리하여 비워 낸 마음으로 산에서나 산 밖에서나 돌탑에 머무는 바람을 닮아 보리라.
첫댓글 짱 짱!!!
ㅋㅋ 오디 묵는 신선이라...멋있네요...잘 보고 갑니다.
오디는 언제 묵었노?
굿!`````
오디 먹는다고 늦어나봐, 난 산행기 맛있게 먹고 갑니다~~~
역시 !!!!!!!!
니가갑자기봉창퉁기나--오디도맛조고---글도마시데이--구구절절이맘에고고앵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재밌게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