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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은 RDRBI에서 젊은 선수를 지도 하고 좋은 선수들의 투구 동작을 분석하는 일을 한다.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꿈이다. |
2008년 연세대와 고려대의 정기전 야구 경기가 열린 9월 5일 잠실구장 관중석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의 조성민 해설위원과 손혁(35)이었다. 두 야구인은 고려대 동문이다.
미국에서 투구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손혁은 지난 6월에 이어 다시 한국에 왔다.
국내 야구인들에게도 알려진 톰 하우스의 NPA(Natural Pitching Association)를 거쳐 요즘은 국내팬에게는 생소한 RDRBI(Rod Dedeaux Research for Baseball Institute)에서 일하고 있는 손혁의 근황과 투구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톰 하우스가 설립한 NPA에서 일하다 지금은 RDRBI에서 일하고 있다. 집은 샌디에이고에 있다.
아내(미LPGA 골프 선수 한희원)가 투어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늘 같이 있을 순 없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하고 있다.
출산한 뒤 투어에 복귀했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어 다행스럽다(한희원은 올 시즌 미LPGA 투어 21개 대회에 출전해 8번 톱10에 들었다).
톰 하우스를 어떻게 알게 됐나.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무렵 톰 하우스의 이름을 알게 됐지만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아내의 코치인 딘 레이븐스의 아들이 NPA에서 강습을 받고 있어 하우스를 만날 수 있었다.
(하우스는 1971년부터 8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은퇴한 뒤 마크 프라이어(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배리 지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을 지도했다).
NPA와 RDRBI는 어떤 곳인가.
NPA는 투수들의 투구폼 교정이나 재활을 돕는 곳이다. RDRBI는 야구 관련 자료를 수집해 팬들에게 제공하기도 하고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한다.
지난겨울 (박)찬호는 NPA의 도움을 받았다. 찬호는 예전에 상체가 왼쪽으로 쏠렸는데 투구판 가운데를 이용하면서 상체 중심을 잡게 돼 볼에 힘이 붙고 중심 이동이 좋아졌다.
내가 맡은 일은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일과 어떤 자세가 좋은지 좋은 선수의 투구 동작은 어떤지 분석하는 것이다.
6월에도 한국에 왔었는데.
공주 본가에서 지내는 아들 대일(1)이 돌이었다. 투구에 관한 책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현장에 계신 분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었다. 여러 투수 코치와 감독님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미국에 건너간 뒤 2006년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선수로도 뛰었는데.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내가 던지는 걸 보고 하우스가 “지금 당장이라도 선수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그런데 하우스의 말대로 운동을 하다 보니 공이 좋아졌다.
미국 스카우트들 앞에서 투구를 했는데 구속이 140km 넘게 나왔다. 볼티모어에서 관심이 있었는지 연락이 왔다. 임의탈퇴 상태였는데 두산에서 양해를 해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리그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체계적인 운동을 통해 투구 내용이 좋아지는 걸 보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내용은 어떤 것들인가.
투구에 대해 여러 가지를 분석하고 있다. (손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보여주며 투수들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관심을 가지는 점은 ‘이 투수의 어떤 점이 가장 뛰어나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좋은 폼이라는 걸 정해 두고 폼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선수마다 자기 몸에 맞는 투구폼이 있다. 그 투구폼에서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쁜지를 찾아 내 나쁜 것만 교정하는 게 더 낫다.
일일이 다 고치려면 100가지를 고쳐도 모자랄 거다. 그것보다는 트레이너나 코치가 선수의 폼에 맞춰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를 제시해 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미국선수들의 투구폼을 보면서 “저런 투구폼은 서양인들의 체격으로 버티는 힘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얘기들 한다.
하지만 한국선수가 애초에 미국에서 야구를 배웠다면 충분히 가능한 투구폼일 수도 있다. 어려서 어떤 것을 보고 배웠느냐에 따라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투구폼은 연결 동작인데 고치기 어렵지 않나.
충분히 가능하다. 사람의 눈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지만 연속 사진 분석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와인드업부터 시작해 투구 과정을 8가지 정도로 분석해 선수들의 장단점을 짚어 낸다. 예를 들면 사람의 몸은 균형이 맞을 때 힘이 실리게 된다.
오른손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팔을 높게 드는 스타일이라면 왼쪽 팔을 같은 모양으로 아래쪽으로 내리면 좋은 투구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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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은 2004년 두산 베어스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2년 뒤 미국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
오른 팔이 ‘ㄱ’자로 구부러져 나오는 투수라면 역시 반대 팔을 ‘ㄱ’자로 구부린다. 그러면 몸의 균형이 맞아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다.
새롭다.
어떤 면은 새롭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이전의 방식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좀 더 나은 선수를 만들어 보자는 의도일 뿐이다. 투수가 잘 던지기 위해서 필요한 걸 짚어 주려고 한다. 내 투구폼을 예로 들면 나는 예전에 무릎을 굽히면서 공을 던졌다.
그러다 보니 힘의 손실이 있었다. 처음부터 굽힌 채 던지는 폼으로 바꿨더니 효과가 있었다. 팔의 각도도 마찬가지다.
페드로 마르티네스(뉴욕 메츠)의 경우 팔의 각도가 높게 나온다. 일반적으로 팔의 각도는 높을수록 좋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마지막 팔의 위치는 낮아져서 공을 최대한 타자 가까이 끌고 나와 던진다.
각도도 중요하지만 볼을 오래 갖고 있으면 그만큼 타자로선 공을 칠 시간이 짧아진다. 높은 타점에서 던지는 것을 포기하고 3~4cm 정도 공을 더 끌고 나와서 던지면 타자에게 시속 3, 4km 정도 더 빠른 느낌을 줄 수 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좋은 투구폼은 뭔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좋은 폼으로 던지는 거다. 근력 운동을 해서 공을 던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투수마다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부위가 다르기 때문에 완벽한 투구폼이란 없다. 대신 개개인의 투구폼에 맞게 근력과 유연성을 키우는 운동을 해 편안하게 공을 던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에는 어떤 투수들이 좋은 투구폼을 가졌나.
선동열 선배의 투구폼이 우리의 분석 기준에 따르면 8가지 항목 가운데 6가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역 투수 가운데에는 류현진이다. 류현진은 7가지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몸이 유연하다는 게 현진이의 가장 큰 장점이다.
부상당한 뒤 재활을 하는 투수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일단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다. 아프면 어쩔 수 없지만 왜 재활을 먼저 생각하나. 사실 나도 하우스를 처음 만났을 때 “재활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왜 다치고 난 다음에 고치려고 하느냐”고 했다.
일단 예방이 먼저다. 질문에 답하자면 참는 법을 배우는 거다. 나도 수술을 해 봤기 때문에 안다. 재활을 하게 되면 조급한 마음이 들고 운동을 서두르게 된다. 의사와 트레이너가 “던져도 좋다”고 할 때까지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 지도자나 해설을 할 생각은 없나.
6월에 <엑스포츠>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를 잠깐 맡았다. 해설을 해 보니 재밌었다. 방송국 쪽에서도 평이 나쁘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지도자는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공부를 한 다음 한국에서 후배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게 뭔가.
지난번에 국내에 들어와서 (배)영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고 조언을 해 줬다.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앞으로 후배들이 투구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좋은 투수가 되고 싶을 때 도움을 받고 싶은 선배로 손혁을 떠올릴 정도로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손혁
생년월일│1973년 8월 1일
학력│공주 중동초-공주중-공주고-고려대
경력│1996년 LG 트윈스
2000년 해태 타이거즈
2003년 두산 베어스
2006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현 RDRBI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