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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성가 &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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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고싶은 이야기 스크랩 연말연시에 기억하고 싶은 그림
청맹 추천 0 조회 161 09.12.30 14:15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성탄이 지나고 연말연시 입니다.

한파가 계속되는 연말입니다. 이런 시기에는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에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고 돌아가신 

나사렛 청년 예수가 추구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신 그 세상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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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앙커               탁아소   The Creche / 1890

 

제가 어렸을 때 알고 있던 탁아소는 우울한 이미지였습니다. 가난과 버려짐 같은 것들이 머리 속에

자리를 잡았죠. 벽 앞에 앉아 있는 좀 더 큰 아이들은 풍성하지 않은 음식을 스스로 먹고 있습니다.

더 어린 아이들은 수녀님이 음식을 먹여주고 있는데 기다리다 잠이 든 녀석도 있고 치통으로 머리를

동여 맨 아이도 있습니다. 끝에 있는 아이는 너무 오래 기다렸는지 짜증이 났습니다.

오른쪽에 혼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눈길이 갑니다.

몸집이 작은 것으로 봐서는 혹시 음식을 빼앗길까 봐서 혼자 먹는 걸까요?

수녀님의 안타까운 눈빛이 닿지 않는 곳, 우리가 봐야 할 곳이겠지요.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    박애주의자들  Philanthropists /69cm x 96cm / 1874

 

아주 잘 차려 입은 부유한 사람들이 남루한 집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를 맞이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맨 왼쪽 고개를 돌린 남자의 표정에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이 역력합니다.

손을 뺨에 대고 있는 문 앞의 소녀도 불편한 내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아이만 손을 앞에

모으고 여인을 맞고 있지만 할머니도 편한 얼굴은 아닙니다.

집 주인이 밀린 집세라도 받으러 온 걸까요?

작품의 제목을 보면 부유한 두 사람은 밖에서는 박애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로 불리고 있겠지요.

장작도 별로 없어 차갑게 식은 난로가 여인에게 묻습니다.

박애주의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죠?

가장 낮은 자세로 힘없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눈 높이에 맞춰 나란히 앉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럼 옷부터 벗고 목과 어깨 힘부터 줄이시죠.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     거리에서  On the Boulevard / 53cm x 68cm

 

겨울 초입, 벤치에 앉은 부부의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옆에 보따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시골에서

도시로 일을 찾아 올라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일을 얻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좌절이 어렸고 눈은 생기를 잃었습니다. 남편은 풀리지 않는 삶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겠지요. 부부가 꿈꾸었던 세상은 벤치 뒤 철책 너머입니다.

손풍금을 꺼내 망향가를 불러 보지만 답답한 심사가 사라지겠습니까? 어떻게든 겨울을 넘겨야 합니다.

부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살면서 주문처럼 외웠던 말  --- 세상이 눈물겹다고 끝까지 눈물겨울까요?




아르카디 플라스토프        추수  Harvest /166cm x 219cm / 1945

 

황금빛 벌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일까요?

식사라고 차려 온 것을 보니 수프하고 손에 든 감자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노인이 들고 있는 스푼의

그림자가 수프 위에 고스란히 떠 있습니다. 건더기 없는 맑은 수프이겠지요.

아이들 부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물끄러미 음식을 바라보는 노인 옆의 개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굶는 건가 ---.  

벌판은 누렇게 익어가는데 노인의 얼굴은 상념으로 검게 타 들어가고 있습니다.

 




월터 랭글리          고아   The Orphan / 1889

 

할머니는 책을 보고 있었고 젊은 여인은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구걸을 왔던 모양입니다.

몇 끼를 굶었는지 뺨이 불룩하도록 음식을 입안에 넣었지만 아이의 눈은 이미 지쳤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 보는 할머니의 표정에는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득합니다. 의자에 앉는 바람에 들린 아이의

다리가 저는 아직 세상을 혼자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립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나누어도 힘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살아갈 만한 곳이 됩니다.

성탄인데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요 ------.

 




 

월터 랭글리        슬픔은 끝이 없고   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 1894

 

등대에 불이 들어 왔습니다. 위로가 손을 타고 여인의 등으로 전해지지만 좀처럼 울음은 멈추질

않습니다. 나이든 여인의 표정에는 젊은 여인에 대한 위로도 있지만 자신에 대한 설움도 있습니다.

어쩌면 두 여인은 나이를 건너 뛰어 같은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인들의 슬픔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 수 밖에 없겠지요.

슬픔은 나누면 작아진다고요? 정말 ---- 그렇던가요?

한 때는 컸다가 지금은 작아진 슬픔이 이제 막 태어난 슬픔에게 말을 건 내 봅니다.

기다리자 아니 기다려보자. 언제고 그 슬픔을 대신할 것이 찾아 오지 않겠니 ---- ‘

여인들의 마음은 정신 없이 휘몰아 치는 폭풍의 한 가운데에 있는데 화면 속 바다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서 여인의 흐느낌이 더 크게 들리고 있습니다.

 

 

 




프랭크 브램리      희망 없는 새벽   A Hopeless Dawn / 123cm x 168cm / 1888

 

창 밖으로 날이 밝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밤 새 불던 바람과 파도는 여전합니다.

혹시 하고 차려 놓은 식탁 위 음식은 차갑게 식었고 환해지는 세상 때문에 촛불의 밝기가 힘을 잃어 가듯,

밤을 밝혀주던 촛불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희망도 사위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침착하고자 했던 몸이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 이 세상은 살아 남은 자들을 위한 곳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슬픔도

그리움도 흘러 갈 거라고, 그러니 어떻게든 일어 서야 한다는 말이 도움이 될까요?

바람은 사정없이 유리창을 흔들고 있는데, 방 안은 깊은 슬픔에 적막하기만 합니다.

월터 랭글리의 슬픔은 끝이 없고와 동일한 주제였죠.

 

 




레옹 레르미트         Mezy거위를 지키는 어린 소녀    The Little Goose Girl of Mezy / 1892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눈빛을 읽었습니다. 구멍이 뚫린 옷과 거친 머리 그리고 손에 쥔 이삭을

보면 아이의 생활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찌푸린 표정이지만 이상하게도 초점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눈빛은 단호해 보이는데, 이왕이면 나를 똑바로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피할 수 만 있다면 어려운 것은 모조리 다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삶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냐, 들고 일어날 것이냐는 내 자신의 의지였고 피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신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스티엥 르파주          걸인   Le Mendiant (The Beggar) / 1880

 

동냥 받은 것을 가방에 넣고 다음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늙은 걸인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복장으로 봐서는 겨울이 코 앞인 것 같은데, 이렇게 또 한 겨울을 맞을 생각에 눈가에 주름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어린 소녀는 돌아서는 걸인이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모양입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실내의 어둠 속에 실루엣으로 남아 있지만 걱정스러운 얼굴의 소녀는 문 앞까지

나왔습니다. 날개 없는 천사가 여기에도 있었네요----.

 

 




바스티엥 르파주          눈먼 거지   The Blind Beggar

 

아무리 아이와 눈을 맞추고자 해도 눈을 맞출 수 가 없습니다. 구멍 뚫린 바지와 신발이 벗겨진

한 쪽 발, 그리고 지친 듯 벽에 온 몸을 기대고 있는 아이를 보다가 한 해의 끝에 이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라고 저 아이 같은 아이들이 없겠습니까?

이 작품을 처음 만난 때는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림을 보고 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 속에 이 아이가 나타나는 순간 저의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내내 어떻게 험한 세상을 걸어 왔을까오직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나누고 살아야 합니다지친 입을 열어 소년이 저에게 들려준

말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들렸습니다.

 





 

장 베로     부자의 출근길    The Departure of Bourgeois / 1889

 

추운 겨울 돈 많은 부자가 출근 하려고 문을 나서자 구걸 꾼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노인도 있고

거동이 불편한데 치통까지 심해 얼굴을 천으로 묶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옆에 서 있는 아이의 맨 살이 애처롭습니다. 고개만 내밀고 입김을 뿜고 있는 사람도 밉고 못 본 척

마차로 발길을 옮기는 뚱뚱한 남자도 밉습니다. 흰 눈이 더욱 차갑게 다가옵니다.

 

 

 



 

 프레데릭 모건           나눔   Charity

 

자선이나 자비라는 말로 제목을 삼기에는 그림이 내용이 너무 유쾌합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소풍을 나온 자리에 동네 아이들이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가장 어린 여자 아이가 빵을 접시에 담아

두 손으로 건넵니다.

, 같이 먹자

주는 얼굴이나 받는 얼굴이나 즐겁습니다. 가난함과 부유함을 돈이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로 인식하는 천박한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우리 사회는 싸구려의 그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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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고 온 세상이 따뜻한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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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30 19:54

    첫댓글 연말에 이웃을 돌아 보게 하는 그림들이 많네요~~^^

  • 09.12.30 22:20

    그림들이 마음을 짠하게 함니다... 나누고 베풀어야 겠다는 생각을 함니다.. 이렇게 추운대 따스한 세상이 오겠지요.. 감사함니다..

  • 09.12.31 08:52

    명화네요. 가져가도 될까요?

  • 09.12.31 10:12

    한 해를 보내며..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림이네요...이웃을 위해....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제가 해 준게 아무것도 없는거 같습니다...새 해에는 좀더 노력하겠습니다...깨달음을 주는 .감동적인 글...그림...감사합니다..

  • 09.12.31 10:45

    과연...공동체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다시 생각해봅니다...지하철입구에서 찬바람속에서 구걸하는 이들, 재개발로 쫓겨나가는 이들..등.시대를 떠나 있는자들의 탐욕이 가져오는 비극에 찹찹해집니다...보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한 작은 연대가 시작되길 기도해봅니다...

  • 작성자 09.12.31 10:59

    스크랩도, 소스보기도 가능하도록 수정했습니다. 마음 착한 분들! 주님께서 기뻐하실겁니다. 행복하세요!!!

  • 09.12.31 11:19

    그림으로 보는 연말연시 우리 곁에 있는 아픔들 이네요. 감상 잘 했습니다. 소외받고 외로운 이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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