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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Acropolistimes 에 실린 김학천씨의 글 입니다. 글이 좋아서 퍼 날렀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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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람은 새처럼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꿈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의 날개(실은 다이달로스의 날개가 더 맞다)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하늘을 향한 그 욕망이 비행기를 만들고 인공위성까지 하늘을 누비고 우주를 날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 허전함을 달래려는 양 작은 한 개의 흰 공에 우리의 꿈을 실어 하늘을 가로질러 날려 보낸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래서인지 골프의 경기에는 모두 새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공을 홀 컵에 한 타수 적게 넣으면 버디, 두 타수 적게 하면 이글 그리고 세 타수가 적으면 환상의 알바트로스가 된다. 알바트로스는 알을 낳아 부화가 되면 바다에 떠다닌다. 상어에 제물이 안 되려면 목숨을 걸고 날개를 저어 하늘로 올라야 하는 필사의 순간을 겪어야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것만이 새의 왕자 신천옹이 되는 것이다. 만일 운이 좋아 네 타수 적게 한 번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비익조(킹버디)의 이름이 붙여지지 않을까. 날개가 하나라서 반드시 암수 둘이 힘을 합쳐야만 날 수 있는 신화의 새. 골프는 여러 명이 함께 하면서도 각자가 따로 하는 게임이지만 반면에 혼자이면서도 무리와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야하는 것이 비익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골프는 자신의 즐거움뿐만이 아니고 관전하는 갤러리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며 흔히 신사의 스포츠라고도 한다. 그래서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로 가장 중시되는 것이 예의이다. 요사이 우리나라 골프도 자랑스러운 골퍼들의 활약으로 빛나고 있으나 정작 우리의 골프문화는 어떤가. 그 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치며 후퇴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은 아닌 듯싶다. 경기규칙과 공공질서를 무시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골프는 순수한 스포츠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친 도박으로 그 빛이 바래고 부나 지위를 과시하는 허세의 수단으로 오염되고 있으니 신사도의 자긍심과는 거리가 멀다. 골프규칙 첫 구절도 ‘다른 사람의 경기를 방해하지 말라’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의 골프장에는 ‘회개의 의자’라는 것이 있어서 경기 도중 저지른 잘못을 의자에 앉아 스스로 참회하도록 되어있다 한다. 골퍼들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는 '용서 할 수 없는 잘못'과 '용서 할 수 있는 잘못'이 있는데 예를 들어 경기위원에게 욕을 하는 것은 중죄로 이 의자에 2시간동안 앉아 참회해야하는 반면에 훈수를 한다든가 경기 도중 말을 하거나 움직이는 것 같은 잘못은 1시간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용서 할 수 있다해서 저질러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예의 있는 경기자로서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무리하게 장타욕심을 낸다든지 지나친 기교를 부리는 것 등도 죄로 본다. 허나 이러한 약속들도 골퍼들의 양심과 인격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스스로 지켜주지 않으면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다시 말해 신사도(예의)를 먼저 익히고 필드에 나가라는 말이다. 예의는 장소와 때에 따라 갖추어야 하는 약속이다. 이는 서로를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예의를 알고 체면을 차린다는 것은 최소한의 덕목으로 그로 인해 인간다운 존엄과 품위가 살아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는 자신의 고귀함을 성숙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면 내가 바로 서게 되고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면 거기서 상호 존중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부족한 여건 하에서도 조국을 빛내고 한국인의 어깨를 펴게 해준 동양인 최초의 PGA 우승자 양용은 선수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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