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세상을 바로 보는 법
짐 알칼릴리의 『과학의 기쁨』은 내게 조금 특별한 책이다. 대부분의 과학도서는 특정 분야의 대해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과학적 방법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오히려 그런 신선함이 책을 읽도록 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미국사회에 만연한 음모론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백신을 불신하는가 하면, 과거 인공위성의 달 착륙을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좀 더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짧은 다목적 지침서”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고 그 중 한 가지라도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어진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가? 나는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 내리기를 원하는가? 나는 가능성, 잠재력, 더 나아가 설렘 등의 느낌으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라앉히기를 원하는가?”(24쪽)
그런데 막상 저자의 질문을 받고 보니 딱히 어느 하나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 없었다. 그래도 그 중에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고개를 조금은 끄덕거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걸 밑천 삼아 책장을 넘겼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하는 내용은 ‘과학의 본질과 그 실천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의 실천 방법은 과학적 방법을 의미한다. 왜 굳이 ‘과학적’이라는 말을 붙이는가 하면 우리는 자칫 확증 편향이나 인지부조화에 갇혀 자기주장만을 강조하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미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목도한 확증편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여전히 코로나를 음모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고립주의적, 애국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그 불안은 결국 과학자들에 의해 해결해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코로나든 기후온난화든 또 다른 질병이든 모두 국경선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지구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편협한 시각과 태도를 바꾸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은 공통분모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 역할을 과학적 방법론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에는 그것을 다른 이데올로기와 구분해주는 몇 가지 특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반증가능성, 반복성, 불확실성의 중요성, 실수를 인정하는 것의 가치 등이다.
나. 과학적 방법론
과학은 검증이 가능해야 하고, 경험적 증거와 데이터에 비추어 볼 수도 있어야 한다. 과학이론을 통해 무언가를 예측한 다음, 그 예측이 실험이나 관찰과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예측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점성술표도 예측을 하지만 점성술을 과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점성술은 우연의 결과일 뿐, 그것은 반증가능성과 검증가능성이 없다. 현대천문학이 항성과 행성의 본질을 밝혀냄으로써 점성술은 기반을 잃었다.
과학적 방법론의 또 다른 특성은 과학이 ‘자기 수정적’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하나의 과정, 즉 세상에 접근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서로를 수정해준다. 그것이 자기 수정적이다.
과학자들이 특정 이해관계에 얽혀 특정한 연구 결과를 도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학자들이 가치중립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얻는 과학적 지식은 가치중립적일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방법론의 작동방식 때문이다.
과학적 작동 방식은 자기 수정적이고, 이미 사실로 확인된 확고한 토대 위에서 구축되고, 정밀조사와 반증 과정을 거치고, 재현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모두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고, 실험하고 추론하려는 의지의 결합체이다. 물론 그 의지에는 새로 발견한 내용이 기존 생각과 다를 경우에는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고 경험에서 배우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여덟 개의 논의들은 과학적 방법론의 특정 측면에서 추려낸 조언들이다.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좀 더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공유하다면 우리는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조언들로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 항목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1) 진실, 거짓 그리고 탈진실
2) 단순성이 주는 장단점
3) 무지와 미스터리
4) 세상에 대한 호기심
5) 의견이 아닌 증거에 집중하기
6) 내 안의 편견 인식하기
7) 생각 바꾸기를 두려워않기
8) 우리가 원하는 현실
다. 과학적 사고방식
이러한 분류에 따른 설명을 통해 어떻게 하면 좀 더 합리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숙고하게 한다. 인류에게 과학적 사고방식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저자는 이 책의 결론 삼아 4개의 답변을 내놓고 있다.
첫째, 과학적 방법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배우는 신뢰성 있는 방법을 창조해냈다. 인간의 약점을 고려하고 그 교정 수단을 내장한 방법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적 사고방식의 내재적 가치이다.
둘째, 우리가 과학을 신뢰하는 이유는 과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과학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이었을지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없었다면 나날이 늘어나는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도 없고, 더 행복하게 장수하는 삶을 살 수도 없다.
셋째,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개념들에 대해 토론하고, 불학실성을 가치 있게 여기고,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고, 무엇을 신뢰해야 하는지 배우는 등은 과학의 모든 특성과 관습이다.
넷째, 지금까지 과학은 지식의 폭과 복잡성 면에서 크게 성장해왔고, 우리에게 그 모든 놀라운 기술적, 사회적, 의학적 발전을 가져다주었으며, 이러한 지식을 얻는 데 사용된 과학적 방법론도 복잡하게 뒤엉킨 풍부한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것이 우리에게 정신적 풍요로움을 준다는 데 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놀라운 진화적 성공을 거둔 종이다. 집단지식을 통해 막강한 힘과 잠재력을 얻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취약한 종이다.
또한 성미가 까다로운 종이다. 우리가 축적해온 과학 지식, 과학을 통해 발전시켜온 기술은 널리 평등하게 공유되지 못했다. 하지만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놀라운 방법인 과학적 접근 방식은 인류의 가장 큰 재산 중 하나이자 모든 사람의 타고난 권리이다.
“과학은 제한된 감각을 넘어, 선입견과 편향을 넘어,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무지와 약점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과학은 우리가 더욱 깊어진 이해의 렌즈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빛과 색, 아름다움과 진리로 이루어진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게 해준다.” (187쪽)
과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더욱 계몽된 방식으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으며, 일상에서 체화해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이로움이요, 그것이 바로 ‘과학의 기쁨’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마음 깊숙이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