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 이어
두 어 시간 잠들었을까?
어제 꿈나라로 가는 데 선두다툼에서 사투를 벌이던
코골이, 신음이, 이갈이, 잠꼬대씨가 새벽 3시인데 부산을 떤다.
“비가 오네”
“뭐 비가 와요!!!!” 나는 잠에서 빠져 나오며 외친다.
속으로 “이게 무슨 신의 축복인가?”쾌재를 부른다.
“비가 오면 경기가 순연되든지, 취소되겠지요. 하하하...”
“뭐 순연이요? 랠리가 뭐 야구경기인 줄 아세요”
잠꼬대씨가 귀신 씨 나락 까는 소리를 들은 표정을 한다.
“아니 그럼 이 빗속에 라이딩을....”
옆방에 가보니 고수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신발은 비닐 봉다리로 싸고 스카치테이프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어디서 구했는지 배추 담는 대자 푸른색 비닐로는 상의를 만들어
입은 모습이 역시나 백전노장의 모습 그 자체이다.
장대비가 와도 떠난다니, 비닐 봉다리 하나를 겨우 구한 난
그것으로 안장을 싸고 이제는 기도하는 마음이다.
“천지신명이시어 제발 비를 그치게 하소서....”
그 기도 덕분인지 새벽 5시 화천 댐을 출발 할 때 잠시 비가 그치더니,
5분도 안 되서 가랑비가 내린다,
“5분 발원하니 , 5분 비가 멈추네...”
그래서 우리 할머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염원의 기도를 하셨구나!
화천 댐에서 출발지인 화천읍까지 15분이나 갔을까?
바퀴에서 튀는 물과 등으로 흐르는 가랑비에 엉덩이부터
젖어버린다. 이는 나중에 장미의 가시가 된다.
홍천에서 비옷을 겨우 하나 마련하고
서둘러 출발선으로 가보니 몇 사람은 비오는 꼴을 보고,
서울로 버스타고 간단다.
아무래도 나도 홍천서 한 포기를 심어야 할까보다?
근데 어제 소똥차 덕분인지, 근전환 운동(자전차 밀기) 때문인지,
코골이씨가 준 맨소래담 마사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온몸은 멀쩡하다.
오히려 어제 새벽 고성에서보다 몸 상태가 더 나은 것 같아,
내 딴에는 남들보다 10분 먼저 출발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수들은 나 앞서 10분전에 떠났다니 황당할 뿐...
“내일은 자전차 타는 것도 아니야, 전부 평지이고, 180km밖에 안되잖아.”
“말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
어리숙하게 난 그 말을 가슴에 그대로 삼키고 다시 장정에 오른다.
라면과 김밥을 우겨 넣으며 배를 채우고,
자전차로 길의 풍경을 내 몸으로 치환하기위해
허걱거리는 발놀림은 단지 동물적 본능 같이 보이지만
뿌리에는 단지 길을 달릴 수 있다는 능력에 앞서
애니미즘적 상황설정(물신화)이 있어야만 했다.
나무와, 바위와 산, 비와 구름 모두가 ‘탄드라의 문’이기에
오체투지를 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물신들과의 접촉이야말로
인간을 스스로 어려움을 만들어 뛰어들게 하고
그러한 순례의 행진을 할 때
땀은 영글고, 감동이 축적되는 것이리라.
마현천을 30km를 따라 오르다보면 3km는 넘음직한 말고개가 나타난다.
말도 넘기 힘들어서 지어진 속칭이다.
쉬지 않고 올라 겨우 말고개 위에서니 노산 이은상님의 시조가 제격이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 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
전쟁의 폐허를 곁싸고 있는 실종의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낼 수만 있다면
이곳은 낙원으로의 복귀란 희망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DMZ란 긴 길 앞에서 그것은 한낱 신기루일 뿐 이었다.
비는 이미 그쳤으나 김화에서 와수리까지 맞바람이 드세다,
속도계는 겨우 10km /h 남짓...
몸을 땅에 포개다시피 깔고 바람을 뚫어보지만
목과 어깨와 엉치가 이내 마비된다.
없다던 언덕은 살짝 고개짓만하면 저 멀리 시선 끝에 걸려있다.
그래도 어제보다 낫기는 낫더라.
김화에서 만난 초로의 신사 라이더가 아이었다면
아마 이번 장정을 마치지 못했을 것.
그분은 내 자전차를 혼자 타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함께 해주겠단다.
자신이 바람막이가 되어 시속 20km를 유지하며 나를 끌어주었다.
언덕을 만나면 정상에서 몸을 풀고, 자전거 타는 요령을 하나하나
챙기며, 힘든 여정을 달래주는 그분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여정은 고석정, 철원노동당사, 신탄리역, 전곡, 적성의
수많은 고개를 함께 넘으며 계속되었다.
그이는 마지막으로 나를 법원리 고개를 쉬지 않고 넘게 격려를 해 주었고,
본인을 파주에서 근육마비가 되어 지원차량을 불러 20여 km를 남기고
포기하고 만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생면부지인 날 여기까지 아무조건 없이 인도를 해주다니.
그이는 380km 대장정보다 길고, 깊은 인품의 소유자였다.
“초짜가 대단하시네요”란 말만 남기고 자유로를 따라 사라진다.
낙하리에서 내 장정을 마무리하기위해
어둠이 내리는 산자락을 잡고 돌고 돌아,오두산에 도착한다.
오후 7시. 13시간 동안 190km를 찍고,
기나긴 랠리를 완성한다.
내 기나긴 여정은 중력과 혼의 서사적 갈등이고,
대립적 합치의 과정의 반복이 매 발자국마다 이어졌다.
자연은 시간이 지나가는 터널이고 인간이 설정한
인과 법칙이 떠난 세계이다.
시간의 길이만 재는 일에 골몰한 나머지
시간의 깊이를 들여다볼 만큼 온유 했던가 다시 한 번 자문해 본다.
다리엔 보이지 않는 아주 굵은 주름이 하나 더 잡혔다.
이 주름은 얼굴에 난 주름보다
살갑고, 자신만만하다.
매일 실망만 거듭해도 또 다른 준비를 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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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회원님들의 기원으로 ‘완주’가 아니라 이빨 빠진 ‘완즈’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장미에 찔려(?) 엉덩이에 500원짜리 동전만한 펑크가 두 개 났는데, 병원 가지 않고 때우는 방법이 없을까요? (^-^)
첫댓글 증말 대단하십니다요....박수! 짝! 짝!! 짝!!!
이래서 라이딩에 빠지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이겐 뭔가 하면서 읽다가 계속 다음 편을 기다렸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가 맘에 와닿습니다. 아는 분이 라이딩에 관해 간단히 무척 좋다고만 얘기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무사히 해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같은 사물을 봐도 느끼는 감정과 표현력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아듸 바꾸셔야겠어요 넘 멋지고 부럽습니다 고생하셨구요 회복 잘하세요 화이팅!!!!!!
긴 글이었지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소설을 쓰셔두 되겠슴다. 고생하셨구...내년에는 울 클럽에서 조진멍, 조뱅준까라...몇명 데리구 다시 해 보시는게 어떨까여?
"내 기나긴 여정은 중력과 혼의 서사적 갈등이고, 대립적 합치의 과정의 반복이 ..." 뱅주나~ 얼마나 멋진 말이냐... ^^
다같이 가는 길이나 형께서 갔던 그길은 꽤나 달랐던 것인가요? 라이더의 경륜에 감복되네요.
힘든 라이딩을 아름답고 멋지게 표현하신 글에 감동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좋은경험 축하드리며 조만간 막걸리 한잔 따라올리겠슴다.
올 제주아연맨 이후에는 어떤 멋진 그림이 그려질지 기대 넘 됩니다 !!! 글구 술하면 제가 꼭끼어야~~~
저하구 클럽동기로 도원결의한지가 엇그제인데 형님은 벌써 저만치... 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오르셨네요. 완주한 것도 대단하지만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더욱 대단하십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