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모성 그리고 페미니즘을 넘어서는 공감
2015 SEMA Green 윤석남 Heart 展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누가 나에게 예술가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상으로부터 20센티미터 정도 떠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너무 높으면 자세히 볼 수 없고 현실 속에 파묻히면 좁게 볼 수밖에 없다. - 윤석남
한국 페미니즘미술과 윤석남
한국에서 여성주의미술은 1987년에 ‘그림마당 민’에서 열렸던 ‘제1회 여성과 현실’에서 비롯된다.1) 물론 그 이전에 나혜석과 같은 여성작가의 출현과 박래현, 천경자 등이 활동이 있었다. 뿐 만 아니라 1971년 ‘표현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유연희, 손복희, 이선옥, 박영욱, 윤효준, 김형주, 노정란, 김명희, 이은산, 김윤진, 김지명 등의 활동은 “작업으로 성에 대한 인식을 표명하며 여성으로 그린다는 실존적 행위를 통해 광의의 페미니즘에 동참했다”2)라는 주장도 있지만 ‘남성적 여성미술의 시대, 또는 페미니즘과 무관한 ‘전(前) 페미니즘의 시대’라는 뚜렷한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윤석남은 그녀의 나이가 불혹에 접어들어서야 미술계에 이름을 올린다. 1982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1986년 반에서 하나로展에 참여했으며, 이후 1987년 민족미술협의회의 여성분과에서 기획했던 ‘제1회 여성과 현실’을 만든 핵심적인 작가중의 한명이다. 한국에서 여성주의미술의 서막을 연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은 사회운동의 성격이 강했으며, 김홍희의 언급대로 ‘민중적 여성주의 미술’의 성향으로 평가 할 수 있다. 페미니즘 담론은 섹슈얼리티라는 본질주의의 한계를 넘어 젠더를 이슈화했으며, 해체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사이보그 페미니즘 등으로 그 논의를 확대 재생산해 왔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윤석남의 페미니즘은 본질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도, 확대된 페미니즘의 이론이나 성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업이 주는 잔향은 아주 오랫동안, 심지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윤석남이 그림에 대한 천착을 가능하게 해준 대상은 어머니였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녀의 부친은 한국최초의 극영화감독인 윤백남 선생이었고 1920년대 한국근대초창기 연극 영화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반면 그녀의 어머니는 거의 홀로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지켜왔다. 1982년에 미술회관에서 열렸던 윤석남의 첫 번재 개인전은 바로 이러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오마쥬로 가득하다. 이후 어머니에 대한 관심은 김인순, 김진숙과의 만남으로 여성의 현실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으로 심화된다. 그리고 한국여성주의 미술이 가능 할 수 있었던 ‘시월모임’은 바로 이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윤석남은 1990년 이후 버려진 폐목을 만난다. 평면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오래된 폐목이 가지고 있는 물성과 자신의 드로잉이 만나면서 특유의 화풍을 일구어 낸다. 고단한 여성적 삶과 남루한 폐목과의 인연은 작가의 작품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내용적, 형식적 확장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이후 작가는 평면과 설치를 오가며 자유로운 창작을 감행하였고, 작품의 주제면에서도 다양한 관심을 표현하였다. 가령 황진이, 허난설헌, 나혜석, 최승희 등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여성들을 호출하여 그 녀들의 삶에 베여있는 강한 페이소스를 표현하거나, 버려진 유기견 1,025마리를 형상했던 <사람과 사람 없이>, 999개의 여인상과 1개의 독립된 여인상으로 1000개의 목녀상을 만들었던 <빛의 파종>, 최근에 새롭게 시작한 <룸시리즈>와 같은 작품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설치적인 형식을 구사하며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윤석남 Heart 展
서울시립미술관은 한국작가를 세대별로 조명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SeMA 삼색전’을 진행한다. 그중 원로작가 섹션인 2015 Green에 초대된 작가가 바로 윤석남이다. 이번 전시는 윤석남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한 기획이지만 공간의 한계로 몇몇 주요작품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번전시는 <어머니 - 반에서 하나로>, <자연 그리고 우주 - 하나에서 천으로>, <여성사 - 느슨하고 견고한 연대>, <문학 - 글을 그리다>라는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어머니-반에서 하나로>에서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했던 초기작품들과 199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이들 작품들의 특징적인 국면중의 하나는 얼굴과 손에 대한 집착이다. 1982년에 제작된 <무제>라는 작품에서 다른 신체는 생략된 체 여인의 젖가슴과 손이 클로즈업되어 있으며, 같은 해에 제작된 역시 <무제>라는 작품에서도 손은 유독 강한 콘트라스트로 강조되어 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작품에서 얼굴과 손은 매우 특별하게 다루어진다. 인체의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과감하게 생략되거나 실루엣으로 표현되어지지만 얼굴과 손에 대한 묘사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 1986년 그림마당 민에서 개최되었던 <반에서 하나로展>에 전시되었던 작품 역시 <손이 열 개라도>였다. - 손과 얼굴에 대한 집요한 표현은 이후 폐목을 이용한 작업이나 설치작업에서도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 손과 얼굴은 작가에게 있어 여성적 삶을 상징하는 주요한 모티브다. 특히 1995년에 제작된 <금지구역>이라는 작품에서는 불완정한 삶을 은유하는 뾰족한 다리의 의자 옆으로 마네킹의 손과 폐목에 그려진 얼굴이 오버랩되어 있다. 이러한 구도는 초기 윤석남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지켜진 조형적 태도라고 여겨진다. 그녀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여성문제를 인물과 손의 뉘앙스로 치환하는데 주력하였으며, 특히 ‘손’에는 윤석남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숨겨져 있었음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섹션인 <자연, 그리고 우주 - 하나에서 천으로>에서는 <사람과 사람 없이>, <빛의 파종>,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 <어시장2>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2009년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룸 시리즈 중 하나인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은 눈물 흘리는 혹은 손을 마주잡고 있는 여성이미지를 패턴화한 한지 콜라주 1000여장과 함께 채색한 나무 연잎들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다. 그리고 <어시장2>에서는 고래형상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성의 확장된 팔이 여러 무리의 물고기와 이어져 있는 작품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없이>는 1,025마리의 유기견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이애신 할머니의 삶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이 섹션을 통해 작가는 페미니즘을 넘어, 어머니의 죽음을 넘어, 그리고 인간중심주의 넘어선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다. 윤석남의 작품이 여전히 커다란 공감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 작가의 따뜻한 세계관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이번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한 <심장>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섹션인 <여성사-느슨하고 견고한 연대>에서는 <허난설현>, <이매창>, <김만덕>등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여성들을 소환한다. 특히 작가는 김만덕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존경을 표현하고 있다. 조선 정조시대 제주에서 무역으로 거상이 된 김만덕은 가뭄이 들어 아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을 풀어 5백여 석의 쌀을 사왔는데, 이중 450여 석을 모두 구호식량으로 기부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을 구원한 여성이다. 작가는 그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붉은 색 심장으로 형상화 하였다. 윤석남이 보기에 김만덕은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실천한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원형은 여성 혹은 어머니였다.
윤석남이 내미는 손
페미니스트 윤석남.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것에 조금의 미련도 없다. 그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소외되고 버려진 곳을 향하는 어머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전시를 보며 가장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 것은 ‘손’이었다. 가 닿을 수 없는 세상을 기어이 만져보려는 의지, 사라지고 버려진 것을 감싸 안으려는 마음이었다. 오랫동안 아니 지금도 여전히 작가의 작업에서 사라지지 않는 존재는 행상을 하며 자신을 키웠던 어머니 원정숙의 숭고한 아우라이다. 그녀가 목재소에서 버려지는 나무를 자신의 작업으로 되살리는 것도, 버려진 유기견들의 형상을 하나하나 다시 새기는 것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수많은 여성들의 영혼을 다시 호출하는 이유도 말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혹은 중심에서 벗어난 타자들에 대한 ‘촉각적인 연대’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모든 작품들은 그(곳)들에게 내미는 ‘손’의 다른 이름이었다.
1) 강혜진, 한국여성주의 미술에 나타난 재현과 그 의의, 2001, p143
2) 김홍희, 여성 다름과 힘,1994,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