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납승(本分衲僧)과 뜻이나 따지는 사문(沙門)
하루는 새로 온 스님 다섯 명이 동시에 서로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 스님만은 예배를 올리지 않고
그저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면서 서 있었다.
이것을 본 대사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한 마리의 훌륭한 사냥개라고 말하는 줄 아느냐?"
"영양(羚羊)의 기운을 찾아왔습니다."
"영양이란 기운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영양의 발자국을 찾아 왔습니다."
"영양은 발자국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죽은 영양입니다."
이 말을 듣자 대사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튿날 법좌에 올라 설법을 끝내고 물러나면서 물었다.
"어제 영양을 찾던 스님은 앞으로 나오너라."
그 스님이 바로 나오자 대사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어제 너와 대화를 하다가
끝에 가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어떤가?"
스님이 말이 없자 대사께서 말을 이었다.
"본분 납승(本分衲僧)인가 했더니,
그저 뜻이나 따지는 사문이로구나."
출처 : 서재영의 불교 기초교리 강좌
첫댓글
본분납승 (本分衲僧)
본분납자(衲子)와 같은 뜻으로, 새로 닦을 것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수도승,
사전적 의미로는 누더기 옷을 입은 수행자라는 뜻
사문 (沙門)
집을 떠나 불문(佛門)에 들어가 도를 닦는 사람. 중.
승려를 말하는 산스크리트의 스라마나(sramana)의 음역으로,
고대 인도에서 가정을 버리고 출가해서 옷을 입고 여행을 하면서
수행하는 행자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