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 판 속에서 명승지를 관람하다 ‘남승도 놀이’
놀이판에는 세상이 담겨 있다. 판은 적을 물리쳐야 하는 전쟁터가 되기도 하고,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낙원인 무릉도원이 되기도 한다. 놀이판은 단순한 유희의 도구를 넘어 사회와 문화의 축소판이다. 선조들은 아이들이 금수강산의 이름을 배우고 풍토를 익히는 방법으로 놀이를 사용했다. 전국의 명승지가 깃든 남승도 놀이가 그것이다.
남승도 놀이는 판에 그려진 명승지를 여행한 다음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판놀이다. 가장 먼저 원점에 도착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숫자만큼 말이 앞으로 나가는 것으로, 다른 보드게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우선 가로세로 약 1m의 종이에 직사각형을 그린 후 장기판처럼 줄을 여러 개 긋는다. 그 뒤칸의 왼쪽에 촉석루, 낙화암 등과 같은 명승지의 이름을 적는다. 아래쪽에는 1~6까지의 숫자와 옮겨갈 방향을 함께 기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 보드게임과 특별히 다르지 않지만 남승도 놀이만의 특이점이 있다. ‘신분’에 따라 놀이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다르다는 것이다. 놀이에 그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남승도 놀이를 시작하기 전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굴려 1에서 6까지의 숫자에 따라 시인, 한량, 미인, 승려, 농부, 어부 등 여섯 가지 신분 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 시인이 평양 연관정에 도착하거나, 한량이 진주 촉석루에 닿으면 각 신분과 연관 있는 고장이라 하여 특권을 누리게 된다. 이 밖에 승려는 미인이 간 곳에 가지 못하고, 승려가 먼저 간 고장에 미인이 도착하면 승려가 다음에 얻은 수를 미인에게 주어 그 말을 보내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흐름도 놀이에 적용했다. 제주도나 울릉도에서 회오리바람을 만나게 되면 방향을 바꿔 되돌아가야만했다. 유배, 교전이라는 함정 칸도 만들어 재미를 더했다.
우리네 선조들은 놀이를 학습의 연장으로 생각했다. 오락으로 전국의 지명을 터득하게 하여 재미와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남승도 놀이’는 이러한 선조들의 생각이 담긴 좋은 예다. 현명하게 유희했던 선조의 지혜가 전통 놀이 속에서 엿보인다.
게임으로 인생을 체험한다고? ‘인생 게임’
1860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인생 게임’. 인생 게임은 우리네 삶을 게임으로 경험하는 2~6인용 보드게임이다. 인생 게임은 남승도 놀이와 달리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게임 과정에서 사건을 경험하면서 가상의 재산을 많이 불리는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게임에는 직업·주택 등과 같은 개념이 있으며, 졸업·취업·결혼·출산·은퇴 등 인생의 흐름을 축약해서 약 2시간 안에 체험할 수 있다. 남승도 놀이에서는 주어진 여섯 가지 신분으로 게임을 마쳐야 했지만 시간이 흘러 이직이 자연스러워진 현재, 인생 게임에서는 전직이 가능하며 혹은 실직하기도 한다.
게임에서는 주로 돈을 얻거나 잃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단 ‘인생 게임’이란 글자가 새겨진 칸에 도착하면 토큰을 받는데, 이것은 업적을 뜻한다. 토큰 뒤에는 어떤 업적을 달성했고, 이 업적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표시되어 있다. 이는 마지막까지 그 내용을 볼 수 없는 ‘복권’과도 같아, 역전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통령 당선, 노벨상 수상 등의 업적이 새겨져 있으며 업적 토큰마다 가치가 천차만별이다. 인생 게임은 재산과 업적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리지만 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전진하면서 원하는 인생을 설계하다 보면, 이 또한 색다른 재미일 것이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이 있다. 초기화 버튼도 저장 기능도 없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놀이를 통해 현실을 좀 더 알차게 살아갈 수 있으면, 그것이 하나의 ‘지혜’이지 않을까.
글·차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