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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
김 연 수
독일에서 처음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우리 집이 정적에 횝싸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리 없는 불꽃처럼 집을 감싸고 있는 그 정적의 한가운데 텔레비전이 있었다. 서울에 머무르면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그 정적에 파묻혀 텔레비전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텔레비전은 과연 세계의 창이랄 수 있었기 때문에 정적을 피하려는 나의 의도와 잘 어울렸다. 가끔씩 친구를 만나거나 모교에 들러 선생과 진로에 대해 상의하기도 했지만, 그 외 시간의 여백은 모두 방송이든, 비디오든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지켜보는 것으로 채웠다. 글쎄, 북한은 왜 저런다냐? 가끔씩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어머니가 말했다. 요즘 여기 쇼 프로는 애들이 하도 설쳐서 볼 수가 없단다. 어머니는 내가 쇼 프로를 크게 틀자,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러는 동안, 정적은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로도, 잠을 쫓느라 전기식 일제 보온병에 항상 데워져 있는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탈 때 들리는 티스푼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나, 화장실로 걸어 들어가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로도 무시로 펴져갔다. 유령 처럼 소리 없이 따라다니는 그 정적. 소리와 소리 사이에 광범위
하게 펴져 있는, 어둠과도 같은 그 정적. 그 정적은 무엇일까?
독일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다.
관광 온 한국인 아주머니가 달빛이 흐르는 강물 속으로 던져진다. 그 아주머니를 안내하던 여자 유학생은 그녀를 내버려둔 채, 도망친다. 고딕 풍의 건물들 위로 보름달이 떠 있고, 주위는 낮처럼 환하다. 다리를 지나 도망치는 여자 유학생의 달빛 그림자 위로 사람 살리라는 비명 소리가 지나쳐간다. 디 폴리차이 Die Polizei, 디 폴리차이, 유학생의 생각이다. 달빛이 그녀의 하얀 옷자락을 더 핼쑥하게 만든다. 그녀는 하얗게 질려 있다. 순간 그녀에게는 의아한 생각이 든다. 왜 그 아주머니는 사람 살려라고 소리를 질렀을까? 힐프 고트Hilf Gott! 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아주머니는 평생 독일에 갈 꿈만 꾸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독일이란 먼 곳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찾아간 독일에서 그녀는 봉변을 당했다. 왜 이렇게 먼 곳에서 진정한 자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었을까? 한 남자의 아내이며, 아이들의 어머니인 그녀가 그 모든 조건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당당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월광이 비치는 다리를 모두 지나가 여자 유학생은 다시 생각한다. 도대체 이 세계에 보편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왜 저들은 우리를 못살게 구는가? 우리와 저들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쳇, 뭐 하려고 독일까지 와서 그런 봉변을 당한담! 여학생은 디 폴리차이를 찾는다. 힐프 고트!
‘언제 나하고 선산엘 좀 가야겠다.’ 여전히 짙게 깔린 정적 속에서 독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증조할아버지 산소에 떼를 입혀야겠다는 것이다. 무더운 날이었다. ‘산소가 반 넘어 빗물에 씻겨나갔다는구나.’ 아버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소리 없이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형식이 아저씨는요?’ 선산을 관리하던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해내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는 문중의 땅에 농사짓는 대가로 선산을 관리했다. 독일로 떠나기 전, 그가 농사지어 봐야 남는 것도 없다며 선산 관리를 포기해 집안 어른들이 골머리를 썩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 사람, 자살했다. 빚이 좀 많았더구나. 그냥 있는 땅에 농사나 지었으면 될 것을, 이러저러하게 일을 벌였더구나. 요즘 아주 문제다. 시골 사람들이 더 돈 벌려고 설친다.’ 무덤을 관리하던 사람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또 그래서 문제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무덤이란 참으로 부담스런 것이군. 무료하게 텔레비전만 들여다보던 차에 일이라도 생긴 것이 다행일 수도 있었지만, 별로 마음 내키지는 않았다. 차를 타고 강원도 골짜기까지 한참을 달려가야 하는 선산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더군다나 날이 이렇게 무더운데도 불구하고 한나절을 일해 봐야 마음에 흡족하지도 않은 벌초니, 떼 입히기니 하는 일들이 싫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이 없었다. 아버지는 애당초 그 사실을 내게 통보하려는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옛날부터 나는 낯선 사람마저 일가붙이라며 인사시키는 묘사*니, 자정 넘어서 시작하는 제사니 하는 것들을 싫어했다. 좀 자라서는 그런 일이 싫어서 교회에 다니기까지 했지만, 아버지의 불호령에 그만뒀다. 어릴 적에 선산에 따라가면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우리의 땅이며, 할아버지의 무덤을 부여잡고 소리쳐 우시는 할머니의 옆에서 할아버지 산소 옆 자리가 바로 할머니가 누울 곳이라며 끊임없이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면 우습게도, 할머니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때 나는 어렸음에도 그 모든 것이 쇼라고 생각했었다. 어서 영감 옆으로 가야겠다는 할머니의 울음 섞인 말도 쇼고, 위해주는 척 할머니의 무덤 자리를 가리키는 아버지의 손가락도 쇼다.
‘네가 독일에서 영영 오지 않으면, 네 엄마하고 나 제사 지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구나. 너 엄마한테 독일에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그게 말이 되느냐? 말 속에는 다 씨가 들어 있어. 이번에는 나와 꼭 선산엘 다녀오자.’ 아버지는 달력을 들여다보면서 언제 선산에 갈 것인지 혼자 중얼거리더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와의 모처럼의 해후가 또 언쟁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텔레비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물이 고여 있듯이, 집 안을 감싸고 있던 그 정적을 깬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칠 년 만에 처음으로 집을 나간 재식이 얘기를 했다. 나는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시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텔레비전을 볼 때였다. 재식이 집을 나가는 데 어머니가 많은 몫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성격의 소유자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당신 배에서 나오지 않은 한 아이를 매일 바라보는 것도, 또 할머니가 시앗의 자식도 자식이라며 역성드는 것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작은손주라고 재식을 귀여워하
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식이 집을 나간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찰 안 된다’ 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잘 안 된다. 그것은 처음에는 재식의 얼굴을 볼 때마다 한 여자의 얼굴이 겹쳐진다는 의미로 시작됐다가 재식이 자라면서 점점 그 여자처럼 바뀌어간다는 의미로 발전해갔다. 같이 살 때, 재식은 내 옷만 물려 입었으며, 내가 쓰던 참고서만 봤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미술대학에 간답시고 학교에서 일찍 하교해 열심히 놀러 다녔다. 학원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나이트클럽에서 춤추기 일쑤였고 걸핏하면 용돈 외에 많은 돈을 타 갔다. 재식의 장래에 대해서는 집안사람들 중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재식은 전문대학에 붙었지만, 곧 그만두고 직장에 다녔다. 나는 재식이가 직장에 다니는 게 좀 못마땅했지만, 재식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때도 나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렸지만 재식은 항상 나보다 더 잘 그린다고 칭찬받았다. 그러나 막상 재식이가 학원을 다니겠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역시 잘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돈을 주면 믿을 수 없다. 어떠한 핑계라도 괜찮았다. 문제는 재식이 돈을 들고 나가 나이트클럽을 쏘다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잘 안 된다고 느끼는 점에 있었다.
학원에 다니지 못하게 되자, 재식은 초조해지면 늘 그렇듯 손톱을 깨물면서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재식이가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전혜린의 수필집을 보면서부터라고 기억한다. 뮌헨, 쉬바빙, 니체 전집, 『데미안』. 재식이는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어가면서까지 마리라는 독일 여자애와 펜팔했고, 괴테 인스티투트에서 치르는 시험에 붙어 국비로 유학가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재식에게 독일이란 자신을 당당하게 만드는 먼 곳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전혜린이 말했던 페른베Fernweh. 처음 독일에 가서 정신없을 동안에도 나는 동양인 남자만 보면,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재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만약 재식을 만났다면 어떡할 것인가 하는 우려에 묻혀버렸다. 한국에서 나는 적자였고 재식이는 서자였다. 하지만 독일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독일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재식의 페른베, 먼 곳에의 동경은 그런 게 아닐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우울했다.
나는 어머니의 본능적인 그 감정을 싫어했다. 잘 안 된다. 재식이가 떠나고 난 뒤, 책상 귀퉁이에서 발견한 재식의 손톱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어디에선가 쪼그리고 앉아 손톱을 깨물고 있을 재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울한 손톱 조각들. ‘재식이는 제 엄마한테 갔다. 우리와 사는 것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재식이 나가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무책임한 말은 그렇다면 이제까지는 왜 우리와 살았느냐는 반문에 무너져 내릴, 그렇게 부실한 말이었다. 왜 찾아보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아버지는 친모에게 갔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재식이 떠나고 나자, 우리 집은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됐다. 그리고 삶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무덤 속처럼 풀이 잔뜩 죽어 있는 공기들, 물방울들. 그날 나는 손톱을 종이에 싸서 서랍에 넣은 뒤 벽에 남아 있던 재식이와 나의 낙서에다가 은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재식이 그린 지미페이지의 모습 위로 은색의 가루들이 날리다가 곧 벽에 들어붙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나는 우연히 사진첩을 들여다보다가 나와 재식이 찍은 사진이 모두 정교하게 오려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내 눈물이라는 것도 재식에 대한 어머니의 증오처럼 본능적인 것일는지도 모른다. 재식은 나나 어머니와는 달리 본능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재식은 버림받았으며, 그에 대한 적절한 보복으로 우리 가족을 둘러싼 생의 소음들을 가지고 떠나버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다시 어머니에게서 재식에게로 원망의 방향을 옮겼다가 이내 중립적으로 바뀌어버렸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제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는 법이며, 존재 이유에 맞게 행동하는 법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재식의 손톱을 보며 눈물짓고 어머니를 원망하던 나는 서서히 무화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식이 없는 정적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집을 떠나고 싶었다.
옛날에 독일어 선생에게서 받은 한 잡지를 찾느라 고등학교 시절의 책들을 처박아놓은 방을 뒤졌다. 그 독어 선생은 별로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선생이었지만, 열의만은 대단했다. 그가 어떻게 해서 그 잡지를 40부가량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독어 수업을 듣는 열 명 남짓한 아이들에게 한 권씩 나눠준 적이 있었다. 청소년 대상의 그 독일 잡지에는 팔코의 「지니」라는 노래 가사가 실려 있었다. ‘Jeanny, Kolnm…….’으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재식과 내가 그 가사를 보며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던 생각이 난다. 매력적인 독일어 낭송으로 시작되어 ‘Jeanny, keep Iiving on dream’이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노래였다. 그 잡지의 맨 앞에는 황폐화된 할렘가의 벽면에 벽화 작업을 하는 고등학생들에 관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재식이 그 기사를 열심히 번역해 나에게 읽어준 일이 생각났다. 이제 독일어가 어느 정도 늘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그 잡지를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다. 그 잡지를 찾아 들고 와 읽다가 나는 문득 재식이 끼워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신문에서 오려낸 듯, 질 낮은 용지는 바래 있었고 인쇄 상태는 조잡했다. 옛날에 친구 집에서 마그리트의 화집을 보기는 했지만, 원래 마그리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 데다 전공마저 르네상스 미술사라 그게 마그리트의 그림이라는 사실만 기억날 뿐, 도대체 무슨 의미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긴 초현실주의자에게 의미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인지도 모른다. 재식이 끼워놓은 그 그림으로는 형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있는 집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액자에 잘 넣어 카페의 벽에나 걸어놓으면 좋을 법한 그런 풍경. 어둠 속에 불 밝히고 있는 집,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차라리 가운을 입은 신비로운 모습의 여자라도 한 명 서 있다면 마그리트의 명성에 맞지 않겠는가? 그 그림에 관한 기사에서 재식은 다음과 같은, 미셸 푸코에게 보내는 마그리트의 편지에 줄을 쳐놓았다.
닮음과 비슷함이라는 단어들을 통하여 당신은 세계와 우리 자신들이 전혀 새롭게 존재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재식이 한테서 소식이 왔었다는구나.”
정적을 깨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그 정적을 깨기 전까지 정적 속은 텔레비전 뉴스의 앵커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내가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보다 좋아진 남북관계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늦게 들어올 것이라고 미리 말하고 나간 터였다.
“어디 있대요? 잘 살고 있대요?”
“너 독일 가고 나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 그때 얘기니까, 꽤 오래 됐지. 뭐, 어디 시골에서 산다나 봐.”
“아버지는 왜 아시면서 연락하시지 않았대요?”
“모르겠다. 연락하기가 좀 그러셨나 부다. 아무런 말씀이 없어. 어떻게 알게 됐는지, 잘 살고 있는지, 어떤지.”
“그렇게 궁금하면 어머니가 연락하지 그랬어요.”
“나도 주소밖에는 몰라.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연락하겠니? 내가 걔한테 얼마나 못되 게 굴었는데. 다 내가 죄받을 사람이지.”
“어머니나 그렇지, 걔가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고 있겠어요?”
“당한 사람은 쉽게 못 잊어. 내가 재식이를 그렇게 대한 것도 다 네 아버지가 날 속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 아니니?”
그리고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가장 큰 희생자가 어머니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야말로 자신의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가리 찢긴 사람이 아닌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나쁜 짓을 했고, 어머니는 재식이에게 나쁜 짓을 했다. 희생자가 아닌 사람은 그렇게 선산에 골몰하는 아버지와 역시 아버지가 선산에 골몰하기를 바라는 사람인 나다.
“재식이가 나가고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참 서운했다. 물론 내가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다 사람 사는 정이 있는데.”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야 진심으로 말했겠지만, 그 말에 나는 어머니의 성격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어머니는 재식이 집을 나가기까지도 본능적으로 행동한 것 뿐이다. 그리고 이제 재식을 그리워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일 뿐이다. 다시 어머니에게서 발견한 그 질긴 본능에 대해 짜증이 치밀었다.
“그건 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에요. 이럴 거면 그때 왜 잘해주지 않았어 요? 아버지는 뭐 라고 하세요?”
“네 아버지야 원래 그렇잖아. 같이 살면 가족이고 떠나면 남이라고. 어차피 제 발로 걸어 나간 놈이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자꾸만 생각이 나는구나.”
“그런데 왜 저한테 얘기하세요?”
“네가 재식이를 좀 만나보면 어떨까 해서. 너는 그래도 재식이하고 친했잖니? 자꾸 나이가 들어가니까.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구나. 요즘은 자다가도 걔가 혹여 나 때문에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눈을 붙일 수가 없다. 매 맞은 놈은 편안하게 발 뻗고 잘 잔다더니…….”
“이제 와서 나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어머니 때문에 잘못될 애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어머니에게 쏘아붙였다. 집에만 들어오면 이렇게 늘 답답하기만 하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것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텐데, 어머니는 뚱딴지같은 소리만 한다. 장가가라는 어머니의 성화에도 내가 독일로 훌쩍 떠나버린 것도 이런 어며니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어머니와 아무런 말없이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데, 풍선의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갑자기 아파트의 전기가 나가버렸다. 막무가내의 어둠이 눈을 덮쳐왔다. 바라봐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눈으로 순간적인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베란다 너머로 다른 동을 바라보았다. 다른 동도 모두 불이 나가버렸다. 어머니는 집 안에 초가 없다며 안절부절 못했다. 불이 나갈 것이라는 예고도 없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일단 더듬더듬 부엌 쪽으로 걸어가 레인지의 불을 켰다. 잠시 희미하나마 실내가 밝아졌다.
“지금 달이 밝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저는 나가서 초 좀 사 올게요.”
어머니는 체념하고 소파에 앉았다. 레인지의 불이 꺼지자, 어둠 속으로 어머니가 빠져들었다. 라이터 불만 밝힌 채, 5층에서 어두운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어머니의 저 이해할 수 없는 모성 본능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만난다고 해서 그간 패었던 골이 메워진다는 것일까? 어머니는 서로 증오했던 인간이 정(情)만으로 다시 화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같이 살면 가족이고 떠나면 남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나 집 나간 이복아들이 자꾸만 생각나서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어머니나 모두 이기적이다. 크를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저 자기에게만 이로우면 미봉책*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파트 앞 상가에 가니 이미 촛불로 불을 밝혀놓고 있었다. 나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불 꺼진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불이 나가니까 완전히 묘비구만. 불이 왜 나갔대요?”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그러자 가게의 주인이 초를 건네주면서 대꾸했다.
“낸들 알겠나? 나라가 도무지 나라 꼴이 아니야. 비행기고 배고 기차고 막 나자빠지는 거 봐.”
“허긴 그럴 때도 됐지요. 5·16혁명 나고 딱 삼십 년이 지났잖아요. 이제 한 번쯤 무너질 때도 됐어요.”
“그게 5·16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그래도 군인들이 정치할 때가 좋았지. 나도 군대에 오래 있어서 아는데, 군인들 자꾸 무시하다 보면 큰일 난다구.”
“허긴.”
갑자기 굵은 목소리로 군인들에 대해 말하는 주인의 말에, 불 꺼진 아파트를 바라보며 묘지 운운하던 사람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주인이 건네주는 초를 들고 황망히 사라졌다. 독일에 있을 때, 박정희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받은 예술가를 직접 만나본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게 주인의 그 말이 귀에 거슬렸다. 군인들이야 명예롭게 묘지로 가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용감하게 죽는 일과 그 명예를 보존할 묘지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기껏 튼튼하리라 믿었던 묘지 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갑자기 묘지가 무너져 내리니까, 옛일을 그리워하는 민족이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묘지 속의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묘지란 차라리 무너져 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계산을 하는 책상 위에 촛불을 세워뒀기 때문에 내게 초와 담배를 건네주는 주인의 엎굴은 공포영화의 괴물처럼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독일에 있을 때, 나는 매끈하게 생긴 서양인의 모습을 보고 동양인은 얼굴이나 신체 구조에서 보편적인 미에 미달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동창과 술을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가 나는 곤욕을 치렀다. 그 친구는 내게 완전히 양물이 들었다며 의식은 물론 신체 구조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보편성이 곧 서양의 보편성이 되는 이유를 밝혀보라고 떼를 썼다. 나는 단순한 인상을 말한 것뿐이라고 반박했지만, 그 친구가 계속 무례하게 쏘아붙였으므로 점점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 친구의 주장이란, 그렇다면 우리 식 대로 살자라는 방식이 아닌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편적인 미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득 이제 와 이들의 대화를 엿들으니 그 우리 식이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었다: 보편성은 지리적인 위치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독점 (獨占)의 자리에 서서 편재(遍在)*를 양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이 꽉 막힌 세상에서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자기만이 잘났다고, 자기만이 권리를 가졌다고 떠드는 수많은 사람들, 점점 무너져 내리는 봉분 안에서 차라리 무덤에 깔려 죽겠다며 귀신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
달은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 위에 걸려 있었다. 묘비처럼 서 있는 검은 아파트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아까 들혔던 말처럼 그 묘비들이 일제히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죄다 무너져 내려 평평해지면 뭔가 다른 세계가 나타날지 모른다. 그곳에 서면 나와 재식도 인간과 인간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높고 낮은 곳이 없는 상태, 사막이나 바다를 비추는 월광의 상태. 그 이전에 만난다는 것은 무너져내리는 무덤을 일시적으로 보수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식사하다가 어머니가 꺼낸 말에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걘 이제 우리 식구가 아니야. 이대로 우리끼리 잘 살고 있는데 왜 평지풍파*를 일으켜?”
그 말에 어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쏟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닫은 방문을 바라보면서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저런다냐?”
“어머니는 자꾸만 혼동하고 계신 거예요. 잘 안 되는 거죠. 이성적으로는 그래서 안 된다고 충분히 알고 계신 일을 본능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태죠.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밥은 먹지 않고 자꾸만 국그릇의 가장자리만 수저로 그으며 내가 말했다.
“도무지 난 네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솔직히 재식이가 나간 것도 네 엄마 탓이 아니냐? 그런데 지금 와서 연락을 해보자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나는 고개를 들고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버지는 재식이가 보고 싶지 않아요? 아니, 그 후로 재식이 만난 적 없어요?”
아버지는 그 말에 굉장히 흥분했다.
“아니, 제 발로 걸어 나간 놈이 왜 보고 싶겠냐? 내가 내쫓았으면 모르되, 제 놈이 스스로 이 집을 나갔는데, 왜 내가 그놈을 보고 싶어해야 하느냐? 나 죽기 전에는 재식이 그놈 못 본다. 내게 아들은 너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했다.
“집 나간 뒤에 그놈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 건 바로 그놈이다. 결코 내가 나가라고 밀어낸 적 없다. 그렇게 제 발로 걸어 나갔다면 그것은 스스로 가족이 되기 싫다고 분명히 의사 표시를 한 게 아니냐? 같이 살다 보면 서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지만, 한번 떠나면 그만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잘 살고 있는 거고, 재식이는 재식이대로 잘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은 하지마라.”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 가슴 한 켠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두 분이 비정하기는 매한가지다. 재식이가 자신 때문에 혹여 잘못돼 평온한 가정에 무슨 해코지라도 할까 봐 한번 만나보라는 어머니나, 제 발로 걸어 나갔으니 자신이 다시 불러들일 아무런 명분이 없다며 꼿꼿하게 버팅기는 아버지나.
“어쨌거나 내일 선산에 갈 거니까, 준비나 하도록 해라.”
아버지가 근엄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갈 거냐? 네가 아무리 양물을 먹었기로서니, 조상을 모른 척 한단 말이냐? 그러고도 네놈이 나 죽고 나면 내 제사를 잘도 지내겠구나.”
“제가 안 지내더라도 아버지에게는 제사를 지내줄 다른 아들이 있잖아요.”
“뭐라고?”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며 화를 참다가 내가 수저를 놓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등에다 대고 후레자식 같은 놈이라느니, 그래 내가 너 같은 놈의 덕을 보려고 했는 줄 아느냐느니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소리 나게 문을 닫고 들어가 음악을 크게 틀었다. 이제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한바탕할 것이 분명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당신 친구들이 찾아오면 재식은 빼놓고 나만 소개시켰다. 내가 장남이어서 그런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재식이 쌍둥이가 아니면서 나이가 같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그런 배려에 차라리 고마워한 적도 있었다. 다른 집의 애들도 그렇지만, 우리는 덩치가 비슷하게 커갔기 때문에 참 많이 싸웠다. 언젠가 재식이 나보다 공책 정리를 더 잘하는 것을 보고 공책을 찢어버린 일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게 대드는 재식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적이 있었다. 나가기 전까지 재식에게는 어떠한 삶의 전의(戰意)도 없었다. 그런 뒤, 다시 어머니가 재식이만 나무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게 대들었으니 야단맞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형에게 대들었으니,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우리에게 대들었으니.
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언성을 높이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다가 나는 드디어 내가 재식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깨닫게 됐다. 재식은 항상 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내게 걸었고 나는 당당히 응전해주었다. 재식이 먼저 싸움을 걸지 않으면, 내게는 명분이 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승부가 난 싸움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형이며 적자였으며 재식은 동생이며 서자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먼저 싸움을 건 재식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나는 비로소 재식과 내가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강하게 정적을 지키고 서 있는 이 가족이란 영역을 떠나기만 하면 우리는 서로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일 뿐이다. 구별될 바가 하나도 없다.
다음 날 일어나니, 아버지는 강원도로 떠나고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재식이 사는 곳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어제와는 달리 완강히 거절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우리야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지만, 걔는 우리 만나기를 싫어할 거야.”
“그런 말씀 좀 그만하세요! 어머니가 언제부터 재식이를 그렇게 생각해주셨어요? 난 가족으로서 재식이를 만나려는 게 아니고, 친구로서 만나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 얘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을 겁니다.”
“내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 너나 니 애비나 다 미쳤다. 니 마음대로 해라. 죄다 미쳤어.”
어머니는 또 눈물을 흘리면서 장롱 서랍을 뒤져 종이쪼가리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종이 위에는 아버지가 적어놓은 듯, 재식이 살고 있다는 주소지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당장 떠날 생각이었다. 가방을 꾸리는데,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와 지금 갈 것이냐고 물었다. 눈물은 많이 가신 표정 이었다.
“가져가 재식이한테 줘라.”
안을 살펴보니, 돈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봉투를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줬다.
“네 아버지의 부탁이다. 나도 주소를 가르쳐줬으니, 일단 가져만 가라. 안 주고 네가 다 써버려도 좋다.”
나는 그 봉투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이 봉투를 내게 건네줌으로써 이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책임져야만 한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한 젊은 영혼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혔다면, 그랬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책임져야만 한다. 돈 따위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봉투를 건네는 어머니의 손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정적이 우리를 감싸고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그 정적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 수 있었다.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이제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그 시끄러운 정적들. 나는 순간적으로 봉투를 든 어머니를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정적을 찢으면서 들려왔다. 그 비명은 우리 집을 감싸고 있던 정적보다는 훨씬 조용한 비명이었다. 이제 나도 그 집을 나가는 것이다. 정적으로 이루어진 집, 무덤과도 같은 집.
재식이 살고 있다던 금릉은 생각보다 서울에서 멀리 있지 않았다. 여행이 시작되자, 바로 길이 끝난 셈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해 약 세 시간 만에 금릉에 도착한 뒤, 다시 재식이가 살고 있다던 인근의 장자리라는 동네를 향해 떠났다. 자아가 곧 세계라는 말을 믿는다면, 가보지 않았던 낯선 지방으로 떠나는 여행은 곧 자신에게 감추어졌던 자아의 영역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그것은 또한 이전의 자아가 살던 공간의 점질*을 깨면서 밖으로 나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러므로 나는 두 겹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 여행은 내 앞에 놓인 길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여행이 시작되자 길이 끝났다는 말대로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은 내가 바라보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발만 내딛으면 내가 지켜온 모든 시간과 공간이 무너지는 격이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던 그 완강한 구분, 낮과 밤과 같은, 태양과 달과 같은. 단 한 발만 내밀으면…… 간신히 한 발만 내딛을 수 있다면……
교보문고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김일성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처음에 나는 귀를 의심했고, 그다음엔 멍해졌다. 몹시도 무더운 날이었다. 어둠이 내 눈을 기습한 것처럼 멍해지더니 이내 그렇다면 정상회담은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우스웠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가 정상회담을 바라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김일성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되풀이해서 보도할 뿐이었다. 예전에도 그런 보도로 황당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나는 아직까지는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교보문고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외국서적 코너로 가서 여직원에게 르네 마그리트의 화집이 있는지 물어봤다. 여직원은 내게 따라오라고 말한 뒤, 화집 코너로 안내하더니 두 가지 화집을 건넸다. 하나는 르네 마그리트의 전 작품이 들어 있는 전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8절지 크기로 여섯 개의 그림만 모아놓은 포스터북이었다. 포스터북에 내가 찾는 그림이 있었으므로 나는 무거운 전집 대신에 포스터북을 구입했다. 나는 다시 여직원에게 미셸 푸코가 쓴 This Is Not A Pipe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여직원은 철학코너의 구석에 가
서 그 자그마한 책을 가져왔다. 그녀가 책을 가져오는 동안, 나는 천장의 스피커로 들려오는, 이태리 그룹 훈카문카의 「사랑의 노래」라는 곡을 듣고 있었다. 코러스가 내 몸에 달라붙을 듯이 밀려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음악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나를 감싸는 음악 소리가 참 따뜻하다는 생각.
어머니는 네게 사랑이라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할 것이다. 너와 나는 똑같은 나이. 우리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임을 알고 있다. 그 뒤안길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낭비하지 말자. 우리의 사랑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네게 사랑은 아무런 위험도 되지 못할 것이다.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그 빛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수천의 목소리와 함께, 우리의 목소리는 하나가 될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울고 계시다면, 어머니에게 진정 한 사랑을 찾았다고 말하라. 어머니 역시 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 너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노래이다. 사랑을 원하는 사람, 사랑을 찾은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맑은 하늘 아래로 테라스에 불을 밝힌 하얀 이층집이 하나 있다. 이층집의 옆에는 키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집 뒤로는 숲이다. 하늘은 분명 낮임에도 나무를 경계로 한 지상은 어둠 속에 있다. 그리고 테라스의 불빛이 은은하게 집 앞 어두운 연못에 비치고 있다. 시간이 서서히 사라지다가 결국 정지하고 마는 그 세계. 모든 논리가 사라지고 결국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존재하는 공간.
“이곳으로 온 지는 한 삼 년쯤 되나?”
마을 초입에 있는 가게 앞 평상에서 우리는 술을 두고 앉았다. 마을은 반 이상 말라버린 못을 두고 돌아가면서 형성돼 있었다. 골짜기에 자리 잡은 탓에 틀어서자마자, 자연스럽게 아늑한 느낌을 던져주는 여느 시골 마을과 비슷했다. 나는 재식의 주소지에 가서야 재식이 인근 중학교에서 미술 선생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외였다. 언제 미술대학을 다녔을까?
“여기 지방대학이야. 우리 엄마 있잖아. 형 엄마 말고 내 엄마. 집 나가서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주소지로 가봤더니, 예상한 대로 엄마도 벌써 결혼했더라구. 별로 반기는 눈치가 아니야. 어쨌든 집 나온 나 때문에 한 번 아버지를 찾아가기도 하셨는데, 아버지가 제 발로 나간 놈이니까 제 탓이라고 말씀하셨나 봐. 암튼 그때, 엄마가 아버지에게 나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돈을 대줘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 돈으로 다녔어. 몰랐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꼭 내가 돈 때문에 집을 나간 것처럼 생각돼, 형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그건 네가 당연히 받을 몫이지, 뭐.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재식이 자꾸만 내 엄마, 형 엄마라고 말하는 태도가 서운했다. 하지만 서운함을 내색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술을 한잔 들이켜고 마을 뒷산으로 넘어가는 저녁 해를 보았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못 옆의 키 큰 버드나무 아래에서는 마을 노인네 몇몇이 술추렴*을 하며 소리 나게 재잘대고 있었다.
“결혼은 안 했니?”
농부처림 검게 그을린 얼굴로 재식이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 주제에 무슨 결혼이야. 결혼 같은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겁이 나.”
“왜 겁이나?”
“다른 건 괜찮은데, 아버지가 된다는 게 겁이나.”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연애도 한 번 안 해봤니?”
“어떻게 연애도 안 했겠어? 형도 알다시피 내가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좋았잖아.”
재식이 모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사라졌다.
“그런데 여자애를 사귀고 나면 평판이 안 좋아져.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어. 잘 대해주는데도 사귀면 사귈수록 여자 쪽에서 힘들어 해. 나와 사귀면 상처를 받나 봐.”
“나도 그렇지만, 너도 참 문제구나.”
나도 모르게 뇌까린 말에 재식이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형도 장가 안 갔구나? 그래도 엄마가 가만히 있어? 성화가 대단할 텐데. 여자 없어?”
재식이가 형 엄마라고 하지 않고 예전처럼 그냥 엄마라고 해서 좋았다.
“나도 있긴 한데, 결혼해서 괜찮을지 영 걱정이야.”
“형이나 나나 똑같구나.”
해는 어느덧 뒷산을 다 넘어가고 붉은 잔영¡만을 남겼다. 검은 산 뒤로 붉게 타오르는 하늘. 마을 노인들 중 하나가 핏대 세우며 소리 지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말리고 있었다. 나는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너, 이제는 우리 가족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니?”
“형 가족?”
“그러니까 아버지나 우리 어머니에 대해서?”
“왜 감정이 있겠어? 내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건데. 어차피 그때 나는 성인이었다구. 누가 날 괴롭혀서 나가거나 하는 나이는 지났었어.”
술을 들이켜고 나더니 재식은 한 병을 더 시켰다. 가게 아주머니가 최 선생 친구냐며 묻자, 재식이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재식이 나를 친구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자, 솔직히 어색했다.
“사실…… 내가 감정을 품었던 사람은 형이었어. 형은 나하고 비슷했잖아. 팝송도 비슷하게 좋아했고, 그림도 함께 좋아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더 잘 그렸고. 그런데도 형은 자기만 대우받는 것을 내심 즐기는 것 같았어. 나를 옹호할 수 있었는데, 한 번도 그러지 않았잖아. 내가 무서워한 사람은 엄마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니고 바로 형이었어. 엄마나 아버지야 다 자기 사정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였지만, 형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서도, 그냥 친구로 사귀었다면 친했을 사람이면서도 나를 싫어했잖아. 난 형이 언젠가는 나에게 떠나라고 말할 줄 알고 있었어. 형은 항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고 믿었잖아. 형이 보기엔 내가 나가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지금은 그냥 아무런 감정도 없어. 이젠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걸. 그래서 그때 힘들었지만 집에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재식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랬는가? 재식이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내가 더 무서운 존재였단 말인가? 참 무서운 이야기였다. 뒷산으로 하루의 끝자락이 붉게 저물고 있었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뉴스 속보는 이어졌다. 김일성이 살아온 현대사며, 북한의 동정에 대한 추측 보도, 세계 각국의 보도 내용이 이어졌다.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시절을 다룬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갑자기 중단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세상은 온통 마비된 것 같았다. 그림을 보면서 재식과 나는 완전히 같지도 않지만, 전혀 다른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건했다. 재식의 세계는 뒤집힌 나의 세계이며, 나의 세계 역시 뒤집힌 재식의 세계였다. 마오쩌둥처럼 시체를 방부 처리해 보존할 것이라는 추측 보도도 나왔다. 북한은 곧 온 나라가 상가(喪家)가 될 것이다. 나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덮고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가며 수많은 보도 내용들을 스쳐가면서 보았다. 세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재식과 나는 이제 조금씩 변해가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닮은 사람일 뿐, 결코 생사를 같이할 만한 가족이 아니다. 재식에게는 같이 살았던 정 때문에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주거나, 어머니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책임질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그 정이라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무덤 속의 정일뿐이다. 재식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을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나를 살리기 위해서 재식이가 죽을 필요도 없다. 이제야 우리는 겨우 만난 것이다.
말다툼이 잘 해결됐는지, 이번에는 한 노인이 민요를 불렀다. 목소리가 막걸리를 따르는 소리처럼 구성졌다.
“여기는 참 좋구나.”
내가 감탄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재식 이는 주위를 둘러봤다.
“달이 어디 떠 있나? 저기 있네. 내가 여기 어떻게 오게 된 줄 알아? 처음 발령받고 회식이 있어서 저 밑의 구성유원지에서 술을 마셨어. 그러다가 여기가 고향인 한 선생을 따라 여기까지 올라오게 됐지. 그날 술을 마시고 그 선생에게 내 살아온 얘기를 다 했거든. 그러자 그 선생이 술을 더 마시자며 나를 끌고 온 거야. 그날도 오늘처럼 달이 엄청나게 밝았다구. 왜 시골에 있으면 달빛이 얼마나 밝은지 알게 되잖아. 택시를 타고 와 저기 앞에서 내려 걸어오다가 문득 마을을 봤는데, 달빛이 너무나 밝은 거야. 그때 내 눈앞으로 펼쳐진 마을 풍경이 어떻게 보였는지 알아? 저기 말이야. 못 뒤에 보안등을 켜놓은 동사무소 말이야.”
나는 재식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못 뒤에 보안등을 켜놓은 동사무소, 그리고 너무나 밝은, 새로운 달빛.
“르네 마그리트?”
“어떻게 알아? 그래, 바로 그거야. 「빛의 제국」. 어떻게 알았지?”
“이젠 나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독일로 돌아가는 날, 공항에 배웅 나온 어머니는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려는 내게 가까이 다가서며 난데없는 말을 했다. 옆에 한 떼의 배낭족들이 여권과 비행기표를 받는 통에 어수선했으므로 어머니의 목소리는 컸다.
“다음에 올 때는 제발 참한 색시 하나 만들어서 와라.”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제 겨우 무덤 하나를 무너뜨리고 가는데, 또 어머니가 만드는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가란 말인가? 나는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도 세상이 좀 시원시원해지면요.”˛
나는 껄껄 웃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예중앙』 (1995년' 봄호) ; 『스무 살』 (문학동네 2000)
김연수(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에 시로 데뷔하고, 이듬해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가 당선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적 편력과 서사적 실험을 거치면서 지난 시대의 풍경 이나 사건 등을 실감 나게 재현하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문명과 야만 등을 넘나들며 삶의 미래를 탐색해왔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소설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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