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현숙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정권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무원연금을 1960년에 도입했다(군인연금 1963년, 사립학교교직원연금 1975). 공무원연금은 퇴직 후 생활의 불안감을 해소해줌으로써 공무원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재직기간 중 근로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기능했다. 또한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과 다르게 퇴직금과 재해보상보험까지 포함된 복합적인 성격을 갖는다.
산업화의 기반을 닦기 위해 도입됐던 공무원연금은 2000년 전후로 국가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가 도입한 공무원연금에 대해 강력하게 급여축소의 의지를 밝히면서 사회적 합의의 기반도 닦지 않은 채 연내 법안처리를 주문했다. 독재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던 공무원연금이, 대통령의 독선이 문제점으로 제기된 박근혜정부하에서 위협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모순적 논리
한국연금학회의 공무원연금 개혁방안이 대부분 수용된 새누리당의 공무원연금개혁안은 학회안보다 한발 더 나아가 미래 신규 공무원의 공무원연금을 사실상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은 향후 공무원연금으로 발생되는 충당부채가 5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미래세대에 빚을 넘기지 않기 위한 특단의 조치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모순적 논리는 기초연금 도입과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도 이미 적용되었다. 재정안정화를 개혁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한 프레임에서는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한 급여삭감이 동반되는데, 이것은 결국 미래세대의 연금을 깎는 것으로 귀결된다.
정부의 공적연금 개혁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미래세대에 대한 염려는 사실상 공적재정 규모를 줄이는 효과는 얻게 되지만, 그만큼의 책임을 각 개인과 가정이 떠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질임금은 계속 정체되고 가구소득이 감소하는 현실을 보면, 사실상 노후소득은 무방비 상태로 남게 된다. 국민총소득(GNI) 중 가계소득의 비중이 1995년 70.6%에서 2012년 62.3%로 감소한 반면, 법인소득은 1995년 16.6%에서 2012년 23.3%로 증가했다. 정부는 공적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정작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꾸준한 감세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를 통해 기업은 이윤을 보장받았고, 이것이 바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친기업 정책’으로, ‘창조경제’의 일환이 된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고용도 임금도 증대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국가재정 규모는 경제성장의 규모만큼 커지지 않았고, 가계빚은 1000조원이 넘게 되었다. 대다수 국민은 당장의 삶도 버거운 상황에서 노후대책에 대한 여력을 마련하기 어렵다. 이런 이들에게 공무원연금의 급여수준은 황홀하게만 느껴지고, 상대적 박탈감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치라면 이러한 국민감성을 자극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키울 것이 아니라, 공적연금 전반을 강화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국민 앞에 공무원들을 파렴치한으로 내몰았다.
국가는 왜 공무원연금에 관대했나?
그렇다면 그동안 왜 국가가 이토록 ‘관대한’ 연금을 제공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국가는 고용주로서 공무원의 노동력에 대한 적정한 댓가를 지불할 책임을 다음 정권에 계속적으로 넘겨왔다. 2011년 공무원의 급여비중은 GDP 중 6.5%로 OECD국가 평균인 10.4%보다 낮다. 또한 공무원연금에 대한 지출부담도 OECD국가 평균 1.5%보다 낮은 0.6%에 머물고 있다. 국제지표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국민에게 선전하는 것만큼 국가가 공무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1월 1일 여의도광장에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공무원·교사 12만여명이 같은 목소리를 내며 모인 이유는 이러한 억울함이 깊숙이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억울함은 공무원 인사관리 전반에 대한 당‧정‧청의 합리적인 방안이 함께 제시될 때 풀릴 수 있다. 즉 연금으로 미루어두었던 임금의 보상이나 노동복지적 요소를 기존 연금제도와 분리해서 임금의 현실화나 노동복지 제도의 설치 등이 함께 논의될 때, 비로소 공무원연금 제도는 노후소득보장이란 단일한 목표로 이해당사자들의 합리적 타협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전제와 방안 없이 공무원 전체를 자신들만 아는 이익집단으로 계속 몰아간다면 사회적인 타협을 정부 스스로가 원천봉쇄하는 것이고, 이것은 복지국가의 독재정치로 비판될 수 있다.
일방적 희생이 아닌 사회적 타협의 길로
공적연금을 개혁하는 과정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여금(보험료), 급여수준, 연금수급 개시연령이 조정된다. 공적연금의 기반을 가장 크게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기여금과 급여수준 모두를 올리고, 개시연령은 퇴직시기와 최대한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법안은 기여금을 최대 43% 올리고, 수령액은 34% 삭감하며, 연금지급 개시연령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이다. 즉 공무원 노동자들은 현재보다 더 많은 기여금을 내야 하지만, 더 늦게, 더 적은 액수의 연금을 수령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수급자의 급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적연금 개혁에서 한꺼번에 진행하기엔 이해당사자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공무원을 코너로 몰면서 일방적으로 이 방안을 추진한다면, 향후에 공적연금 개혁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는 더욱 축소될 것이다. 국민의 노후가 몇몇 정치인의 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공직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임금과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제도개혁 과정에 참여하도록 보장받아야 한다. 이것은 복지국가가 민주적으로 건설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국민의 권리이고, 해묵은 공무원연금제도를 합리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미래세대를 걱정한다면, 그들의 공적수급권은 보장하되, 현재의 정부가 우선 고용주로서 책임져야 할 재정부담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먼저 책임을 보일 때, 비로소 공무원들도 개혁과정에서 요구될 수 있는 ‘양보’를 사회적 타협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연금정치에서 독선이 아닌 민주적 원칙을 회복하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제갈현숙 /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2014.1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