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圓佛敎는 원圓과 불교佛敎가 결합된 개념, 즉 불교이되 여느 불교 종파와는 원圓의 차원에서 다른 종교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신앙 대상도 다르고, 불교와 역사적 교섭 관계도 전혀 없으며, 일반 사찰과 운영 체제도 다르다. 근본적 진리만 상통할 뿐 불교의 분파는 아니라는 말이다.
원圓은 언어와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들로 망상을 일으키고 미혹에 빠지게 하는) 명상名相이 끊어진 자리로, 만법萬法의 근원이자 실재實在로서 우주만유가 표현된 형상이다. 불佛은 깨닫다[覺] 또는 마음[心]을 뜻한다. 즉 마음으로 근본적 진리를 깨친 위에 나타나는 원불圓佛은 서로 떠날 수 없는不可分 관계이다.
1916년 10월 11일 박중빈이 창시한 원불교는 법신불法身佛 사상을 주체로 하되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해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시도했다. 누군가는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해’라는 대목에 못마땅한 시선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일으킬 것까지는 없다.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는 기원전 8천 년 무렵에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전설 속에 이미 깃들어 있는 이야기이다. 석가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여 만민평등의 개혁사상을 외쳤지만 기존 힌두교의 교리를 상당 부분 이어받았다. 선과 악의 대립, 최후의 만찬, 천지창조 등 기독교의 주요 교리는 조로아스터교가 일찍이 전파한 바 있는 종교사상이었다.
종교는 채집경제생활을 하던 구석기시대를 지나 경작과 가축기르기의 농업혁명 덕분에 정착생활을 하게 된 신석기시대부터 발생했다. 애써 한 해 내내 기른 농작물이 가뭄과 폭우 등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쑥밭이 되고, 어제까지 건강하던 가축들이 밤새 까닭도 없이 몰살하는 일을 겪으면서 인류는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종교는 신앙의 대상이 있을 때에만 성립된다.
2012년 10월 11일 중국 작가 모옌莫言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결정되었다. 모옌의 <홍까오량가족紅高粱家族>은 1988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소설이다. 모옌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필명이다.
관모예管謨業는 왜 그런 이름을 작가명으로 골랐을까? 마음으로 진리를 깨치지 못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신앙의 대상이 될 만한 존재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일까?
붉은 수수밭에서는 젊은 남녀가 사랑을 불태우는데, 여전히 그가 할 말이 없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카톡방에는 할 말이 산더미 같은 사람들이 주야불문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