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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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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고대 요수와 요동의 오해
수구리 추천 0 조회 43 24.05.04 20:01 댓글 3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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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5.10 23:57

    첫댓글 수경 대요수 본문을 보면 요수가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요동군이 속한 현들의 서쪽을 지나고 있네요. 이는 요수 동쪽이 요동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수경은 한나라때 편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따라서 요수 동쪽이 요동이라는 설은 당나라때 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 작성자 24.05.11 18:53

    제가 주장한 내용은 위만조선 낙랑군이 설치된
    한나라 시대의 요수를 이야기합니다
    (당나라 시대의 요수는 한나라 요수를 기본으로 하고요)

  • 작성자 24.05.12 11:28

    ---------------------------------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
    BC 1000년부터 지난 3000년 동안 황하 흐름을 포함한 하북성의 강들은 크게 흐름이 바뀌었으니
    수경이나 수경주, 한지리지의 강의 흐름으로 고대사서의 강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강으흐름으로
    요동군, 요서군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강의 흐름이 아닌 다른 내용으로 요동군, 요서군 위치를 찾아서
    수경이나 수경주, 한지리지에 나타나는 강들을 검증할 수는 있겠지요

  • 작성자 24.05.12 11:42

    또 하나는 한문의 띄어 읽기 방법의 문제입니다
    (고대사서 원본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후대학자들이 띄어쓰기를 한 것이지요
    물론 띄어 읽기의 통설은 있습니다 통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서지리지나 수경의 고구려현 내용인
    玄菟高句麗縣有遼山遼水所出西南至遼隧縣
    는 띄어 쓰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 玄菟高句麗縣有遼山 遼水所出 西南 至遼隧縣
    현토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요산에서 요수가 나와서 서남방향으로 흘러서 요대현까지 흐른다

    2) 玄菟高句麗縣有遼山 遼水所出 西南 至遼隧縣
    현토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요수가 나온다. (요수가 고구려현) 서남에 있는데 요대현까지 흐른다

    3) 玄菟高句麗縣 有遼山 遼水所出西南 至遼隧縣
    현토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요수가(요산의) 서남에서 나와서 요대현까지 흐른다

    4) 玄菟高句麗縣 有遼山 遼水所出西 南 至遼隧縣
    현토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요수가(요산의) 서쪽에서 나와서 남쪽방향으로 흘러서 요대현까지 흐른다

    다양한 띄어 읽기에도 변하지 않는 내용은
    현도 고구려현 요산에서 요수가 나와서 요동군 요대현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 24.05.10 23:57

    한서 지리지에 현도군을 흐르는 요수는 소요수로 수경에 나오는데요. 요수의 동쪽인 요동을 말할때 요수는 대요수입니다.

  • 작성자 24.05.11 18:50

    한서지리지의 대요수는 호타하입니다

  • 24.05.11 19:04

    @수구리 수경 원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주석이 북위때 쓰는 내용입니다.

  • 작성자 24.05.11 19:04

    현도군을 흐르는 요수를 소요수라고 주장한 내용은 수경이 아니라 수경주입니다
    수경주은 북위 역도원((AD470~527)이 주장한 내용이니

    한서지리지 보다 약 500년 후의 주장입니다

  • 24.05.11 19:05

    @수구리 소요수小遼水

    [수경]
    又玄菟髙句麗縣有遼山小遼水所出
    또한 현도군 고구려현에 료산이 있는데 소료수가 나오는 곳이다.
    西南至遼隊縣入于大遼水也
    (소요수는) 서남쪽으로 흘러 료대현(遼隊縣)에 이르러 대료수(大遼水)로 들어간다.

  • 작성자 24.05.11 19:15

    @종민이야 『資治通鑑 資治通鑑 卷七十三 魏紀五 烈祖明皇帝』 水經註:玄菟郡 高句麗縣有遼山, 小遼水所出, 西南至遼隧縣

  • 24.05.11 19:16

    @수구리 저 내용은 수경의 원문이지 주석이 아닙니다. 잘못 인용한겁니다.

  • 24.05.11 19:23

    @종민이야 57 大遼水
    58 大遼水出塞外衛白平山。東南,入塞,過遼東襄平縣。又東南,過房縣西。又東,過安市縣。西南,入於海。
    59 小遼水
    60 又,玄菟高句麗縣有遼山. 小遼水所出。西南,至遼隧縣,入於大遼水也。

  • 작성자 24.05.11 19:40

    @종민이야 백번 양보해서 수경의 원문이라고 해도
    수경은 후한 이후에도 수정 보완된 내용이 있기에 한서보다 늦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료 신뢰성에서 한서지리지가 수경보다 훨씬 더 신뢰할 수 있고요)

    한서지리지가 더 신뢰할 수 있다는 근거가
    수경의 대요수가 발원하는 위백평산입니다
    '大遼水出塞外衛白平山,東南入塞,過遼東襄平縣西"

    후한서 현도군 고구려현에서 곽박이 주석하기를
    (대)요수가 (위)백평산에서 나오고, 고구려현 요산에서 소요수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고구려현 요수를 소요수로 기록한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며

    곽박(276~324)은 동진시대사람이니, 한서지리지보다 200년 후의 주장입니다
    『후한서 고구려현』 高句驪 遼山, 遼水出. 山海經曰:「遼水出白平東.」郭璞曰:「出塞外(銜)[衛]白平山. 遼山, 小遼水所出.」

  • 24.05.11 19:44

    @수구리 주석이 없는 원본 《수경》은 전한(前漢) 시대에 상흠(桑欽)이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수서 경적지》(隋書經籍志)에는 작자 미상이라고 하였고,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진(晉)나라의 학자 곽박(郭璞)이 저자라고 하였다. 《통전》(通典)에는 지명의 명칭을 고증한 결과로 후한 순제 이후에 등장한 서적이라고 하였다. 청나라 말기 학자인 양수경(楊守敬)은 수경은 3국 시대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 24.05.11 19:46

    @종민이야 수경은 상흠이란 사람이 전한시대에 지은 내용입니다. 한서 지리지는 후한 초에 반고가 지은 내용이네요.

  • 24.05.11 19:48

    @종민이야 사료검증도 중요하지만 대요수와 소요수만 한해서 보면 수경은 한서지리지와 내용이 일맥상통하다는 거죠.

  • 작성자 24.05.11 20:00

    @종민이야 수경의 내용중에서 위백평산은
    사마천사기 한서를 포함한 전한 이전에 작성된 고대 문헌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산입니다

    따라서 수경이 전한시대 상흠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해당내용는 상흠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한서나 사마천사기에 나오는
    한나라 시대의 고구려현과 고구려현 요수, 현도군 위치, 요동군 위치, 낙랑군 위치를 찾는 일입니다
    당연히 중국 25사 중에서 한사군 설치 당시의 정사인 한서와 사마천사기를 기준으로 고찰해야 합니다

  • 24.05.11 20:02

    @수구리 상흠이 위백평산을 만들어서 조작했다는 근거가 있나요 ? 바이두에 상흠에 대한 설명을 보면

    수서 경적지에 "수경 3권은 곽박이 주석하였다"고 기록하였고, 구당서 경적지는 수서의 곽박의 注자를 고쳐 편찬했다. 곽박이 완성한 저자가 되었다.
    또한 신당서 예문지는 상흠이 편찬했다고 말하는데 송나라 이후 저자들은 대부분 상흠이 만들었다고 말한다.
    《隋书·经籍志》载“《水经》三卷郭璞注”,《旧唐书·经籍志》改《隋志》之郭“注”字为“撰”,郭成为作者。但《新唐书·艺文志》称为桑钦撰,宋以后人的著作大多称为桑钦。

  • 작성자 24.05.11 20:06

    @종민이야 그러니까요 위백평산이 서한이전 고대문헌이나 사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니
    서한시대의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의 위치를 찾는데
    현토군 고구려현에 소요수가 흐른다고 주장하는 수경 문헌 사용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소요수를 주장한 학자나 작성시기도 명확하지 않고,,)

  • 24.05.11 20:10

    @수구리 지금 본인의 설과 맞지않으면 사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건데요. 결론에 자꾸 끼워 맞추려고 사료를 부정하는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사기나 한서가 정사가 된 것도 후대에 정사로 삼은거지 사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서는 관찬사서로 자국에 유리하게 쓴사서입니다. 그럼에도 수경이랑 한서지리지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수경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거아닌가요 ?

  • 24.05.10 23:44

    연나라 소왕 때는 연나라 전성기로 악의 장군이 활약한 시대입니다. 악의는 제나라를 함락하는 공을 세우는데 한비자 유도편이 말하는 하수는 제나라와 경계로 삼은 하수 하류를 말하고 탁군과 방성은 전국시대 말 조나라와 중산국과 관련된 곳으로 연나라 남쪽을 말합니다.

  • 24.05.11 19:03

    호타하가 요수라는 건 말이 안됩니다. 요수는 고죽국이 있었던 곳으로 전한시기 문헌 '설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하북성 동부를 흐르는 강을 말해야지 지금 하북성 남부인 호타하 유역은 아닙니다.
    또한 요수와 요동의 위치가 핵심인데 수경 대요수 조를 보면 대요수가 동남으로 흐르는데 요동군 현의 서쪽을 지난다는 겁니다. 요수 동쪽에 요동을 증명하는 거죠.
    그리고 사기 소진열전 주석에 의하면 연나라 '남쪽'은 분명히 호타하와 역수가 있다고 했는데 요수가 있던 요동 지역은 분명히 연나라 '동쪽'입니다. 이 지리 인식을 우선 설명하셔야됩니다.

  • 작성자 24.05.11 19:58

    그런식으로 해서는 어떤 요수를 찾는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중국 고대사서에 따라 명칭은 요수지만 문헌을 작성한 학자마다
    다른강을 요수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문헌을 저는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어떤문헌의 요수인가를 명확히 해야하고 왜 무엇을 위해,
    무슨 목적으로 해당문헌의 요수 찾는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남면이 여개개 있습니다
    양주시에도 남면이 있고요,
    홍천,인제. 태안, 영월에도 남면이 있습니다

  • 24.05.11 20:04

    @수구리 요동을 찾으면 해결되는 부분이고 수경에 대요수 조에 대요수가 흐르는 요동군 양평은 중국 사서에 의하면 평주 노룡현지역입니다. 현재 갈석산 북부에 노룡현이 있고요.

  • 작성자 24.05.12 05:16

    @종민이야 한나라 요동, 전국시대 요동을 찾으려면
    한서 이전의 문헌에서 찾으면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요동은 사마천사기의 요동이고, 한서지리지의 요동입니다)

  • 작성자 24.05.11 20:09

    @종민이야 평주 노룡현은 당나라 시대에 등장하는 현입니다(한나라 시대의 노룡현이 아니지요)

  • 24.05.11 20:14

    @수구리 그러면 대요수를 흐르는 현들이 있는데 그 현들의 위치를 말해주는 사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제가 수긍하겠습니다. 대신 본인의 해석이 들어간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말하지 않겠습니다.

  • 작성자 24.05.11 20:15

    @종민이야 고구려 멸망후에 고대 중국 영토가 아니었던
    산서성 중북부와, 하북성 중북부의 지명은 당나라가 알지 못했습니다(고구려 영토였기에)

    따라서 고구려가 멸망시키고 나서 당나라 학자들이
    1) 산서성 중남부 지명을 산서성 중북부로 1천리 북쪽으로 이동시켰고,
    2) 하북성 중남부 지명을 하북성 중북부로 1천리 북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따라서■
    당나라 이후 학자들이 주장한 지명 위치는
    고구려 이전의 지명 위치가 될 수 없습니다

  • 작성자 24.05.11 20:16

    @종민이야 제가 쓴 글은 당나라 이후의 학자들의 주장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당나라 이후의 학자들이 잘못 주장한 내용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 작성자 24.05.13 08:10

    @종민이야 대요수가 한서지리지에 2개현에 나옵니다

    1) 현토군 고구려현에서 요동군 요대현(遼隊縣)에 대요수가 있다고 하고,
    2) 요동군 망평현에 대요수가 나옵니다

    따라서 대요수는
    1) 전국시대 연나라와 호(고조선)을 구분하는 국경
    2) 전한시기에 전한의 연나라와 부여(북부여--> 졸본부여)를 구분하는 국경선으로
    보지 않고는 한서지리지의 대요수 설명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마천사기와 한서지리지를 고찰한 결과
    전한과 부여의 국경선이 호타하로 결론 났기에 호타하를 대요수로 본 것입니다

  • 작성자 24.05.12 10:33

    @종민이야 한서지리지의 요수를 수경이 소요수라고 했지만,
    수경의 대요수는 한서지리지의 대요수로 볼 근거가 부족합니다

    수경의 대요수와 한서지리지의 대요수는 다른 강으로 저는 봅니다

    당나라 학자들의 주장을 빌리면
    1) 수경의 대요수 발원지는 위백평산이고,
    2) 위백평산은 한서지리지의 우북평군 여성현 서남에 있는 대게석산이고
    3) 이 대게석산이 고대 갈석산(우 갈석)인데
    고대 갈석산을 저는 석가장시 남쪽 찬황현에 있는 장석암으로 봅니다
    (장석은 넓쩍한 돌이고, 갈석은 비석같이 넓쩍한 돌이니 같은 의;미이고요)

    따라서 수경의 대요수는 고대 갈석산에서 나오니,
    한서지리지의 대요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 24.05.11 20:55

    @수구리 근거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서지리지의 대요수는 요동군에 흐르고 수경의 대요수도 요동군에 흐릅니다. 둘의 차이는 한서는 발원지에 대해 말하고 있지않아요. 수경에 대요수가 한서지리지의 대요수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할말이 없네요. 그리고 저는 수경의 대요수가 고대 갈석산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없습니다.

  • 작성자 24.05.11 21:11

    @종민이야 당나라 학자들의 주장을 빌려서
    수경의 대요수가 우북평군 여성현 서남에서 발원했다면,
    대요수는 요동군 이외의 한서지리지 우북평군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한서지리지 우북평군에는 대요수나 요수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1) 우북평군 무종현에 경수(浭水)가 있고,
    2) 우북평군 준미현에 류수(灅水)가 있고,
    3) 우북평군 자현에 유수(榆水)가 있습니다

    당나라 학자들의 주장이라면
    수경의 대요수는
    한서지리지의 우북평군에 흐르는 경수(浭水), 류수(灅水), 유수(榆水)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 작성자 24.05.11 21:24

    @종민이야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서 당나라 학자들이
    1) 산서성 중남부 지명을 산서성 중북부로 1천리 북쪽으로 이동시켰고,
    2) 하북성 중남부 지명을 하북성 중북부로 1천리 북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
    당나라 학자들이 북쪽으로 1천리 지명을 이동시켰으니
    -----------------------------------------------------------------------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의 위치를
    1) 북경부근의 당산시 계주구로 주장하거나
    2) 지금의 갈석산 부근인 당산시 지역으로 주장하기도 하지만...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위치인 발갈진간(발해군과 갈석산 사이의 도회지)이나
    한서지리지의 태행산맥 서쪽에 대군, 안문군, 상곡군이 있고,
    태행산맥 동쪽에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이 있다는
    한서지리지나 화식열전의 내용을 포함한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의 위치를 정확히 고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천년동안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의 위치를
    고대 문헌을 통해 완벽하게 고찰하여 주장한 학자가 없는 이유가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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