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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렸다. 달이 뜨고 있다. 한 노인이 뜨락에 눈을 쓴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거문고를 탄다. 바람결에 백설같은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흥이 다하자 거문고를 거둬 떠난다.
그를 몰래 보던 아들네 친구들은 신선을 봤다고 한다.
성세창과 그 친구들은 그 백설쌓인 날 뜨락에 울리던 거문고 곡조에
심신을 말갛게 씻었노라 회고한다.백설탄금白雪彈琴 풍류선인.
그 노인은 누구였을까? 악학궤범 편찬을 주도했던용재(慵齋)·성현(成俔)이었다.
우리시대 눈 쌓인 날 거문고는 두고 뜨락에서 기타 한곡조 쳤다는
장관급 인사를 보았던가? 그래서 용재의 눈 쌓인 날 뜨락에 거문고
소리를 다시 귀 기우려 본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성현과 눈 내린 밤 거문고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성현과 눈내린 밤 거문고’
고사입니다.
희은 성현하면 조선전기 ‘악학궤범’을 편찬했던 인물 아닌가요?
종구 그렇죠. 장악원을 이끌면서 조선 전기 음악과 의궤며
악보를 정리한 공이 큰 인물이죠. 호가 용재였던 성현은
세조시대에서 연산군 때에 이르기 까지 문화예술 분야를
이끌어간 중심 인물이기도 했구요. 그가 눈 내린 날 밤
거문고를 연주한 일화가 전하고 있습니다.
희은 성현이 그냥 머리로만 음악예술을 말한 인물이 아니었군요.
거문고 연주도 잘 했던가 봐요.
종구 그 시대 선비들은 실제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용재 성현은 거문고 솜씨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희은 한 나라의 재상 반열에 오른 인물이 음악에도 깊은
애정과 실기 솜씨를 지녔다는거군요. 헌데 눈 내린 겨울밤
거문고를 연주했다니 누구와 함께 있었던 자리였나요?
종구 ‘기재잡기’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전하고 있죠.
성현의 아들 성세창 친구였던 홍사부가 눈 내린 겨울밤 친구를
찾아왔죠. 성세창은 홍사부와 별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백발의 한 노인이 뜨락에 쌓인 눈을 쓸더랍니다.
희은 그 모습을 성세창과 친구 홍사부가 몰래 보고 있었단거군요.
백발의 노인이 뜨락에 쌓인 눈을 쓸었다. 그리고?
종구 돗자리를 펴더니 앉아서 거문고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구름이 걷히며 달이 슬쩍 나오더라죠.
희은 그림 한폭이 떠 오르네요. 그 추운 겨울에 눈이 쌓였는데
백발을 휘날리며 백설을 쓸고 돗자리 깔고 앉아 거문고를
연주하다니요. 홍사부가 많이 놀랬겠네요.
종구 달이 뜨고 매화꽃이 핀 사이로 백설이 쌓여있고
그 뜨락에선 거문고 술대에서 고고한 곡조가 울려 퍼지고
있었죠. 그 당시 놀란 홍사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은 (홍사부) 눈 내린 날 매화꽃 아래 허연 백발을 휘날리며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은 신선 같았다. 문득 맑고 시원한
기운이 가득차 올라왔다. 그 노인은 성세창 아버지
용재 성현이었다!’ 그 밤에 거문고를 연주한 사람이
용재 성현이었군요.
종구 이걸 저는 ‘성현의 백설탄금 풍류’라 하고 싶은데요.
옛 사람들 풍류를 느낄 수 있는 한 장면이죠.
눈 내린 밤 뜨락에 눈을 치우고 돗자리 깔고 앉아 거문고를
연주하며 매화에게 말하고 달맞이 했던 그 그림을 보세요.
희은 창문 틈으로 몰래 훔쳐 봤던 홍사부가 신선이 하강한
모습이라 했을만 하군요. 가을밤도 아니고 겨울 밤에
뜨락에서 울려 퍼지는 거문고 소리라니요.
종구 그런 풍류도 기풍을 보고 느끼며 배웠기에 성현의 아들
성세창과 그 친구 홍사부는 당대의 선비요. 황진이가 사랑했던
서경덕 같은 사람과 사귀며 지냈던 것이구요.
희은 여름날 서늘하고 맑은 그림 한폭이 다가옵니다.
옛 사람은 입으로 얼씨구!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몸으로
풍류의 진면목을 보여줬구나 싶구요.
종구 그런 인물이니 악학궤범을 편찬해 냈지 않았겠어요. 다른
기회에 성현의 풍류고사 다시 돌아보도록 하죠.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성현과 거문고’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넙적한 연잎을 삼각뿔로 말아 틈새를 붙이고서 코끼리 코 같은
줄기를 비녀로 구멍내 흘러 내리는 술을 마셨다는 벽통주 풍류.
고려 최고의 문인이었다는 목은 이색은 중국에서 들어 온 그
벽통주 습속을 충고한다. 연잎을 말아 마신 술에 너 자신이
발그레한 연꽃이 되려 하는가? 술 보다 연꽃의 덕성과 향기를 만나
텅 빈 마음까지 들여다 보라구 한다.
대개는 연잎을 말아 마신 벽통주 술에 취해 올해도 연꽃 구경하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벽통주도 마시며 여름을 났노라 했을게다.
헌데 목은은 거듭 충고한다. 연뿌리에서 서리를 보고 연꽃에서
바람 잔 날 달을 만나보거라. 선문답 같은 소리로 벽통주에 빠져
허우적 거리지 말라는 소리다. 헌데 조선의 서거정에게 오면
벽통주 삼백잔이라도 마시겠다. 호언장담한다.
'그 좋은 친구 반가운 그 사람이랑 마주 한다면 벽통주 삼백잔인들 사양하랴'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난 차라리 벽통주 한잔으로
날을 새 보겠다. 향기로움은 그 벗님에게서 올 것이요. 술잔은 정인지라
아껴가며 밤을 새보겠노란 소리다. 우린 그런 벗님이 몇이나 있는가?
차 한잔으로 세월 가는지 모를 사람들. 벽통주가 아니래도 그래서 보고 싶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연잎 벽통주(碧筒酒)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연잎 벽통주 고사’입니다.
희은 요즘 연꽃을 구경가는 분들 있더군요.
‘연잎과 벽통주’ 연잎을 가지고 술을 마셨다는건가요?
종구 그렇죠. 예전에 연꽃이 한창 일 때면
벽통주란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요. 우리 선비들도
벽통주에 대한 노래를 꽤 많이 남겼거든요.
희은 우선 벽통주를 어떻게 만들어 마시는지 그거부터
알고 싶네요.
종구 중국의 삼국시대 위나라 정각이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거든요. 삼복 때는 사군림이란 명승지에 가서
피서를 했다구 합니다. 그때 정각은 큰 연잎을 동그랗게
말아 붙이고 그 안에다 술을 담아서 한뼘 남짓 자른
코끼리 코처럼 생긴 연잎 줄기를 비녀로 구멍을 내서
흘러 나오는 술을 받아 돌아가며 마셨다는 겁니다.
희은 그러니깐 벽통주 하면 일단 연잎을 둥그렇게 말아서
그 안에다 술을 담는 거군요. 줄기를 잘라서
비녀로 구멍을 내 마신다는 그 부분이 풍류스런 거구요.
종구 주로 연꽃을 감상하면서 벽통주를 마시기도 했는데요.
고려말 묵은 이색은 ‘연꽃을 노래하다’라는 시에도
벽통주가 등장하죠. 여기 이색의 작품 보세요.
희은 (낭송) 연꽃의 덕을 기리고자 함이지 그 현란한 색깔이겠는가?
마음 씻고 그 향기 다시 맡으면 텅 빈 내면과 만나는 바라
뿌리는 차가운 서리인 듯, 꽃은 바람 잔 날 달인 듯 싶어
이에서 벽통주만 찾다보면 두 뺨이 물들어 연꽃인 듯 하겠지.
종구 목은 이색이 연꽃을 노래하면서 하필 꼭
연잎으로 싸서 마신다는 벽통주만 좋아할 일 아니다.
연꽃의 덕을 봐라. 그 현란한 색깔에만 취하지 말라.
마음을 씻고 향기로 텅 빈 내면과도 만나보자. 그겁니다.
희은 세상 사람들이 연꽃에게서 군자의 덕성과
향기롭게 마음을 씻어주는 그 부분을 뒤로하고
그저 연잎을 돌돌 말아 벽통주만 마시는 세태를
꼬집은 구절이군요.
종구 그러면서 이색은 연꽃에게서 찾을 경지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죠. ‘군자의 좋은 짝인 연꽃을 사랑하자.
상제님 같고 하늘 같은 고고함을 느껴보자‘
희은 하지만 연잎을 말아 술을 담아서 코끼리 코 같은
줄기를 통해 흘러 나오는 벽통주 마시는 데 마음 쏠린
사람들이 더 많았겠지요.
종구 하지만 연잎으로 마시는 벽통주, 정말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찾아 오면 ‘벽통주 삼백잔도 사양하지 않겠노라’
노래 했던 사람도 있었죠. 바로 조선전기 문신 서거정입니다.
희은 연꽃 앞에서 우리가 찾고 싶은거, 느끼고 싶은거, 만나고
싶은걸 돌아보게 해주는 ‘벽통주 고사’였습니다
‘고전기행 사설여행’ ‘연잎 벽통주’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충무공이 왔다. 우리 코 앞에 천만을 넘는 발길을 모으며 왔다.
왜 충무공인가? 우리시대에 목 마르게 기다렸단 소리 아닌가?
왜 충무공 부활인가? 일본은 다시 재무장을 서두르고 다케시마는 우리땅
외치고 있다. 백사 이항복이 전한 충무공 한장면. 소서행장이 뱃길 좀
열어 달라고 그들이 자랑하는 조총과 일본도를 선물로 바친다.
이에 조총과 일본도를 밀치며 '왜놈을 치고 쌓인게 조총이요 일본도다
내가 이딴걸 받아 무엇하겠는가?'
명나라 총사령관이라 할 진린이 일본놈들 뇌물을 먹었다.
충무공은 말한다. '하늘도 용서못할 죄인들에게 그걸 받았습니까?'
진린이 창피해 다시는 왜놈 뇌물을 못 받는다. 우리 시대에 군대는 어떤가?
무기고 시스템이고 미국식 아닌가? 충무공의 강강술래는 지역주민과
군대와 어부들까지 나서서 펼친 위장전술이었다. 우리시대 지역장병과
주민들 학생들이 강강술래로 태극진법 펼치며 한바탕 놀아보는 게
그렇게도 힘든 일인가? 이스라엘 군대는 스스로 뭉쳐 전우애 이상의
구국일심으로 하나가 돼 싸운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스라엘 보다 더
위험한 우리 군대는 누가 적인지. 누구와 뭉쳐야 하는건지. 왜 그 깊은 밤
잠들어서는 안되는지 모르고 서로 못 잡아 먹어 으르렁댄다.
우린 단잠을 잘 수 없다. 군대는 안에서 싸우고 적들은 박수치며 노린다.
그래서 다시 충무공이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칼이 아닌 북채를 들고
두들겼던 것을 기억하자. 그냥 군사들아 진격 앞으로였을까?
'백성이여 나가자. 조국이 우리를 기대고 있다!' 언제거나 다시 충무공이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백사 이항복이 본 충무공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백사 이항복이 본 충무공’
고사입니다.
희은 충무공하니깐 요즘 화제인 ‘명량’이 생각납니다.
백사 이항복과 충무공 사이에 생긴 일화를 돌아볼건가요?
종구 잠깐 한가지 짚고 가고 싶은게 여수 ‘충민사’인데요.
충무공이 전사한 다음 전라 좌수영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충무공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충민사를 지었다.
그런데 실록에서는 선조대왕이 이항복을 시켜서
‘충민사’를 짓도록 하고 충무공을 추모하게 했다.
희은 그럼 충무공 전사 후 여수를 중심으로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충무공을 추모하는 사업을 일으켰다는 것인지.
선조대왕이 먼저 충민사를 세우라고 했다는 것인지.
그런 논란도 있다는 뜻이군요.
종구 실록에 보면 선조가 먼저 충무공 추모사업을 선도한게
아니라, 비변사에서 건의를 해서 충무공 추모사업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이거든요. 다른 기록에선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충무공 추모사업을 시작했다. 그런 일면도 있더란겁니다.
희은 그 사업을 백사 이항복이 나서서 충민사도 짓고
비문의 글도 쓰고 그랬던거군요.
종구 백사 이항복이 본 충무공 일대기는 ‘고 통제사 이공유사’에
자세히 드러나 있는데요. 우선 이항복이 남긴 충무공 관련
일화 가운데 이 구절 보세요.
희은 (인용구 낭송) 왜장 소서행장이 충무공에게 바닷길을 터주길
바라면서 장수를 보내 조총과 장검을 바치자 충무공이
말하기를
충무공 (남-도도하게) 소서행장에게 전하거라. 내가 임진년부터
왜적을 죽인게 셀 수 없이 많았고, 왜적선을 깨부시고
노획한 조총과 칼이 쌓여서 넉넉한데 이걸 받겠느냐?
희은 왜적을 물리치고서 노획한 조총이 쌓여 있다.
칼도 쌓여 있다. 그런데 소서행장이 보낸 조총하고 칼이
무슨 소용 있겠느냐? 가지고 돌아가라. 그런 뜻이군요.
종구 속이 탄 소서행장이 충무공을 달래서 제발 뱃길만
열어주면 그냥 조용히 물러 가겠노란 뜻이었죠.
가등청정이나 소서행장이 나서서 충무공에게 환심을 사
보려고 전했다는 일본 조총과 일본도.
그걸 본 충무공은 한마디로 ‘일본 조총과 칼 넉넉하다’
희은 그런데 명나라에서 후원군을 끌고 온 진린은
왜장이 건네 준 뇌물을 받았다고 하잖아요.
종구 이항복이 남긴 ‘고 통제사 이공유사’에 보면
뇌물을 받은 진린에게 충무공이 했던 말이 기록돼 있죠.
이 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저 왜적은 우리 조선과 명나라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데, 노야께서 죄인이 보낸 뇌물을 받으면 어찌 되겠소?
종구 충무공의 따끔한 충고에 명나라 도독 진린은
일본 진영에서 보내 온 뇌물 보내오면
(진린톤) 앞전에 내가 통제공에게 부끄러운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재차 그런 질책을 받겠느냐 왜적에게 돌려 주거라.
희은 ‘명량’으로 다시 우리 앞에 온 충무공. 우리가 기다리는 게
이 시대의 충무공 아닐까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이항복과 충무공’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카페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빗소리가 누구 귀에 더 들릴까?
옛 사람은 빗소리에 들려오는 부름소리도 들었나 보다.
당나라 땅 나갔던 고운 최치원은 그 깊은 삼경에 내리는
빗소리 들으며 옛 사람을 부르고 어찌 오시나 귀 기우리고 있다.
마치 내가 최치원을 그리며 부르고 있듯이......
달만 떠도 불렀던 사람들 아닌가? 헌데 빗소리 사이로 오는 걸음을
기다렸던건지 자꾸만 빗방울 사이로 메아리를 놓는다.
이 적조한 사찰에 홀로 울리는 독경소리가 들리는지.
이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지. 내가 부르고 있는 소리도 들리는지
해서 오늘 이 빗소리가 누구 귀에 더 잘 들리는지 묻고 있다.
남도 흥타령에 '빗소리도 님의 소리 바람소리도 님의 소리' 구절을보라.
그리움에 젖다 못해 바람을 놓아 서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남도 육자배기 여섯 걸음 안에 바람이 문창살을 노크하는 소리가온다.
빗소리도 님이 부르는 소리요. 바람 소리도 님을 부르는 소리라면서.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흥타령 빗소리도 님의 소리와 시인들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남도 ‘흥타령’에 나오는
‘빗소리와 선대 시인들 빗소리 노래’입니다.
희은 흥타령 가사 중에 ‘빗소리도 님의 소리’ 구절이
생각납니다.
(낭송) 빗소리 님의 소리 음, 바람소리도 님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님이 오시려나. 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 님을 기다리건만 고운님은 오지않고
베갯머리만 적시네
종구 ‘흥타령’ 이 가사에 담겨 있는 빗소리는 님을 생각하게 하는
소리, 님을 기다리는 소리, 정답던 시절 님이 속삭이는
소리로 들린다는 거죠.
희은 ‘바람 소리도 님의 소리’라 했으니 빗소리 뿐 아니라
그 빗소리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까지 다 님의 소리라
했으니 비바람을 다 님으로 본 셈이군요.
종구 태풍 폭풍으로 몰아치는 비바람까지 님의 소리라 한건
아니었죠. 그 기다렸던 비가 반가워서, 아니면 예전에
빗소리 들으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던 비가 그리워서
노래를 남긴 분들이 꽤 많았죠. 여기 고운 최치원이 남긴
빗소리 노래 한번 볼까요?
희은 (낭송) 창 밖에 내리는 한밤중 삼경의 빗소리
등잔불 앞에서 만고의 옛 사람 향해 가고 가는 마음이여
최치원의 빗소리는 흘러간 옛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어했던가요
종구 그렇죠. 잠들지 못한 깊은 삼경에 내리는 빗소리
등잔불만 외롭게 깜빡 거리는데
그 빗소리 속에서 옛 사람도 이런 밤에
나와 같이 만나지 못할 옛 사람들을 그리워 했을 것이다.
희은 일테면 저 달은 알고 있겠지 옛 사람 누가 누가
저 달을 보고 말했는지. 이 빗소리도 알고 있을까
옛 사람 누가 누가 잠들지 못하고 등잔불 앞에
부르고 또 부르며 있었는지를.
종구 맞아요. 최치원도 그런 심정으로 깊은 밤 등잔불
앞에서 빗소리를 들었겠지요.
조선 중기 문신인 간이 최립이 ‘혜원에게 준 시’에 보면
(낭송) 독경소리 은은한 절간 빗소리에 잠이 오릿까?
이 밤에 이 빗소리 누구 귀에 더 많이 들릴까?
희은 간이 최립이 그날 밤 사찰에서 빗소리를 듣고 있었군요.
두 개의 소리가 겹쳐서 오는군요. 밤에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 그리고 빗소리가요.
종구 그 밤에 빗소리 누구 귀에 더 많이 들릴까?
등잔불과 먼 독경소리, 조용한 산사에서 더나 많이
들릴 수 밖에 없겠죠.
희은 옛 사람 시에 나타난 빗소리는 그냥 님을 그리는 정도를
넘어선 작품도 있었단 말씀이군요.
종구 빗소리에 묻어오는 흘러간 사람들, 전해오는 풍류들,
멋진 사랑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겠죠. 근데 남도 ‘흥타령’
그 구절이 간명하고 멋지잖습니까.
희은 (가사) 빗소리도 님의 소리, 바람 소리도 님의 소리~~
‘고전기행 사설여행’ ‘빗소리와 옛시인’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살신성인과 충열사 상량문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살신성인과 충렬사 상량문’입니다.
희은 ‘살신성인’ 한 구절에 며칠 전 소방헬기를 타고 가다
순직한 5인의 소방관들이 떠오릅니다.
종구 당시 학교와 아파트단지를 피해서 도로변으로
추락 시키고자 최후에 선택을 했던 강원소방헬기 조종사
정성철 소방경이 끝까지 조종간을 놓치지 않아서
또 하나의 대형참사를 면하게 된 거죠.
희은 오늘 돌아볼 ‘살신성인 충렬사 상량문’ 역시
일신을 던져 의로운 죽음을 선택한 고사인가요?
종구 임진왜란 때 부산 동래성이 왜적에게 포위 됐을 때
동래부사 송상헌은 겹겹이 포위된 동래성을 버리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왜적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했죠.
희은 그 송상헌의 살신성인을 기리고자 부산에 충렬사를
세웠던 거군요. 부산에는 충렬대로란 큰 길이 있고
그곳에 충렬사가 자리하고 있잖아요.
종구 그렇죠. 인조2년인 1624년에 ‘충렬사’라 이름하고
동래성 싸움 때 순절한 충렬공 송상헌과 부산진성 싸움에
순절한 충장공 정발공을 모시게 됐는데요. 오랜 세월
다시 짓고 중건을 거듭한 충렬사가 지금 모습으로
전해왔던겁니다. 그 충렬사를 지을 때 갈암 이현일이 쓴
상량문을 돌아볼까요.
희은 (낭송) 태양을 꿰뚫는 충성이요 / 貫日之忠
하늘을 떠받치는 절개로다 / 擎天之節
목숨 바쳐 나라 은혜에 보답했으니 / 殺身報國
천추에 길이 빛나는 의열이로세 / 千秋義烈
종구 송상헌의 살신성인을 갈암 이현일은 우선
‘관일지충’이라 했죠. 태양을 꿰 뚫는 충성이다.
이 얼마나 강렬한 찬사인가요?
희은 이 우주에 태양보다 강렬한 빛이 또 있을까 싶은데
송상헌의 살신성인을 그 태양을 꿰 뚫은 충성으로
찬탄했군요.
종구 그 다음 송상헌의 절개를 ‘경천지절’이라 했죠.
저 하늘을 떠 받치는 절개란 뜻이죠.
희은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보다. 송상헌이 보여 준
살신성인 구국의 한 마음은 정말 저 하늘을
떠 받치고도 남을 정도 절개였다는 말이군요.
종구 이렇게 송상헌의 충정과 절개를 말한 다음
갈암 이현일은 보국에 대해 말합니다.
‘살신보국’이라 했죠. 제 한몸 던져서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는 구절이죠.
희은 ‘살신 성인’ 구절을 ‘살신 보국’으로 바꾸었군요.
나라와 겨레를 위해 그 은혜를 보답한 일생으로요.
종구 그리고 마지막 찬탄을 ‘천추의열’로 매듭짓고 있습니다.
왜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송상헌이야말로
천년세월이 흘러도 더욱 붉을 장렬한 의로움이라고 말이죠.
희은 우린 이 시대에도 태양을 꿰뚫을 충정과
천년토록 장렬한 의로움을 남긴 분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종구 이웃을 살리고자 일신을 초개처럼 던졌던 강원소방헬기
조종사와 구조대원들이 보여준 살신성인에 고개 숙이면서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살신성인과 충렬사’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카페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추에 낙엽을 보며 놀란 사람들. 태양이 스쳐간 공처럼
빠른 세월이라 한탄한다. 사실 8월이 지나면 올해도 넉달 밖에
남지 않았다. 하여 추사는 입추에 매미가 풀어진 목으로 노래한 걸 들으며
가을 앞에 이별곡을 준비하는 걸 본다.
조선의 서거정은 가을 앞에 조금 더 솔직해 진다. 이놈의 감투 때문에
먹고 살자는 호구지책 때문에 올가미에 걸린 가을 앞에 섰노라며......
그러니 자기 신세 돌아보고 가을로 가는 산천을 보노라니
천지가 그냥 머리속으로 치고 들어와 어지럽더란 고백이다.
그러고 보니 내 가을도 어질어질하다. 올해 뭘 하다 우물쭈물
넉달 반 남은 가을 길에 섰을꼬 싶다. 이놈의 호구지책 때문에
서거정 머리로 밀고 들어 온 천지에다 숨소리 마저 가빠진다.
솔직했던 옛 사람 입추 노래 앞에서 추사처럼 목청을 놓아 우는
매미 이별곡이 싸아하고, 서거정 머리로 달려든 천지 처럼 아찔한데
그나마 하늘이 보인다. 말이라도 건네 봐야겠다. 올 추석달은
이내 호주머니 좀 훤하게 해달라고. 나도 호구지책에 가을이 가을같지 않노라고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입추의 노래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이 입추이죠.
희은 가을이 오는 길, 이제부터 가을 소리가 나오겠군요.
그래서 옛 사람들이 입추를 노래한 구절이 그립구요.
종구 우선 추사 김정희가 남긴 입추의 노래 한번 볼까요.
나이든 추사 김정희가 입추에 바라 본 들판에선
어떤 감회가 생겼는지 말예요.
희은 (낭송) 나이드니 들판에 정은 가을이 좋더라
풀잎 늘어선 오솔길도 조금은 서늘서늘
신발 끌어 가을 오는 길 걷노라니
매미 한 마리 목청 놓아 가을온다 외치더라
종구 나이 지긋한 추사가 본 들판은 가을 들판에
정이 많이 가더라. 오솔길도 풀잎도 서늘한 감이 있더라.
그 길에 매미가 목청놓아 가을온다 알려 주더란거죠.
희은 추사 김정희 말대로라면 들판을 바라보는 정도
청춘 시절은 봄 들판이 좋았을테구요.
한창 일할 때는 여름 들판에 할 일이 많았겠다 싶네요.
종구 오늘 오동잎 떨어지는 날이기도 하죠.
입추가 되면 오동잎이 가장 먼저 떨어지면서
가을을 알린다 했거든요.
희은 그게 바로 (한문구절) ‘오동일엽락/ 천하진지추’ 구절로
기억되는데요. 맞나요? 〔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종구 그렇죠.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남긴 장한가에 보면
이런 구절도 있죠. (인용구) ‘봄 바람에 복사꽃 오얏꽃 피는
밤이요/ 가을비에 오동 잎새 떨어지는 때로구나’
희은 오늘 입추에 돌아보는 옛 노래들, 우리 선인들 입추노래
한구절 소개해 주시죠.
종구 조선 전기 문신인 서거정이 노래한 입추를 볼까요.
(인용구) 눈앞을 스쳐간 공처럼 빨리 간 태양/
입추에 낙엽보며 놀란다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고/ 벼슬 높아도 궁색한 걱정 있는 법
이 놈의 감투 올가미/ 그래 먹고 살자는 호구지책이었지/
가을 산이며 들 흥취가 어지러워진다/
머리 긁는 사이로 하늘 땅이 섞여 들어온다
희은 서거정이 노래 한 입추는 자신의 삶에 대한 씁쓸함 같은게
묻어 난다 싶네요. 고관 벼슬을 지낸 요인 중에 한 사람
이었을 텐데. ‘이놈의 감투 올가미’ 벼슬감투를 올가미로봤군요
종구 입추에 낙엽보면서 놀라는 감정과 똑 같이
벼슬감투에 짓눌린 자신을 보고 있었던거죠.
그 다음 구절이 참 솔직하잖아요. 내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벼슬길 꾹꾹 눌러참고 살았던 건 호구지책 때문이었다
희은 그래서 입추에 봤던 가을 오는 산이며 들판 흥취가
어지러워 지더라. 사실 시름 많고 걱정많은 자신이
어지럽게 입추를 보고 있는거잖아요.
종구 오죽하면 입추날 가을 들판 멀건히 보면서
머리만 북북 긁어댔겠어요. 어이구 천지간 걱정이
그 머릿속으로 다 들어왔으니 얼마나 가렵겠습니까.
희은 차라리 추사 김정희처럼 입추에 오솔길 걸어보기 어떨까요?
종구 서거정처럼 걱정 많아 입추에 머리만 긁고 있을 순 없고말구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입추노래’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청장관 이덕무. 서자출신에 병약해서 힘든 삶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독서였다고 한다. 정조대왕이 그 재주를 알아줘서 규장각 검서관으로 쓰지
않았더라면 이덕무는 한참 더 울먹이며 살았을거다. 그가 남긴 서책을 보며
세상에 대한 울분을 거의 독서로 달랬다는 걸 느낀다. 박학다식하다는
것으로 말해서는 안될 깊이까지 있다. 책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빗소리에 황소 뿔이 쫑긋 하듯' 책 소리만 나도 귀를 쫑긋했던걸 알수있다.
좋은 글을 어찌나 사랑했던지. 아무개 글이 좋다네 하면
'빗소리에 황소뿔이 쫑긋하듯' 반겨했다고 한다. 빗소리에 황소뿔이
쫑긋하다는 건 무슨 일일까? 일 많은 황소가 오직 비오는 날만 쉬게 되니
빗소리가 얼마나 쫑긋하니 반가웠을까? 책에 있으면 고달프고 서러운 인생
잊고 원하던 여행길 떠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쫑긋하니 반가웠을까?
한 밤중에 찬 바람 쐬고 코가 맹맹한 요즘이다.
'빗소리에 뿔이 쫑긋해 질만치 좋은 책이랑 벗해야 겠다'면서
책은 책 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외로워 한다. 이번 가을엔 내 얼을 쏙 빼놓을
정말이지 황소뿔이 쫑긋해질 그런 서책 여행을 떠나고 싶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청장관 이덕무의 독서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조선후기 실학자
청장관 이덕무 독서 고사입니다.
희은 한 며칠 밤 기운이 선선해 졌죠. 입추가 지나서
그런가 싶구요. 청장관 이덕무라면 책을 많이 읽은 걸로
유명하잖아요.
종구 신분이 서자로 태어나서 과거를 통해 등용할 길이 요원했는데
정조대왕이 청장관 이덕무 재주를 아껴서 규장각 검서관으로
특별 채용해서 왕실 서적관리를 맡겼죠.
희은 정조시대 서자. 서얼출신들이 여러사람 등용했는데
그 가운데 청장관 이덕무, 물론 책을 많이 본 인재들이었겠죠.
종구 규장각 경시대회에 여러차례 장원을 했던 이덕무는
당시 중국을 오갔던 연암 박지원을 통해 대륙의 신문화를
접했구요. 이덕무 자신도 나중에 사신을 따라 가게됐죠.
평생 병약한 몸이지만 책을 좋아했던 청장관 이덕무
‘이목구심서’에 이덕무 어린 시절 독서에 관한 이야기 보세요.
희은 (인용구) 늘씬한 한 장부가 나의 귀에다 대고 말하기를,
“너는 한탄을 버려라.” 하기에 “감히 말씀을 따릅지요.”
또 말하기를 “성내는 버릇을 버려라.” 해서 “말씀을 따릅지요”
또 말하기를 “자만심을 버려라.” 하기에, ‘감히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연이어 말하기를 “명예에 대한 마음을 버려라.”
하기에, “감히 말씀대로 하렵니다” 또 말하기를
“책에 대한 욕심을 버려라.” 이 대목에서 내가 말하기를
“세상에 책을 좋아하지 말라면 무엇을 좋아해야 합니까?
나를 귀머거리와 장님 만들 작정입니까?” 했더니
그 장부가 웃고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화내지 말거라. 널 시험해본 것이니깐 어허허.”
종구 이 구절을 봐도 알겠지요. 청장관 이덕무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독서에 빠져 있었는지 말이죠.
희은 어린이가 너무 책을 보니깐 ‘이거도 말거라. 저거도 말거라.’
하면서 슬쩍 책 욕심도 버려라. 하니깐 소년 이덕무가
발끈한 모습이 떠오르네요.
종구 ‘천하에 책을 좋아하지 말라면 무엇을 좋아하란 겁니까.
날 장님이나 귀머거리 만들 작정입니까?’ 어릴 때
이 정도였으니 이덕무 독서 욕심이 어느정도였는지 알만하죠.
이 한구절에도 독서에 대한 뜻이 깃들어 있죠. 보세요.
희은 (인용구) 내 친구 기평자가 책과 문장을 좋아해 말하기를
황소가 빗소리 듣느라 뿔을 쫑긋거린다 했으니
내 마음의 뿔은 책장 넘기는 소리에 쫑긋하지 않을 수 있으랴!
종구 (성독조) ♬황우 청우 각 쟁영이라~~(黃牛聽雨角崢嶸)
황소가 빗소리 듣느라 뿔을 쫑긋 거리듯 책장 넘어가는
소리 들리나 귀를 쫑긋 거렸던 청장관 이덕무. 아무개 집에
귀한 책이 있다네. 누가 무슨 책을 가지고 있다네. 소리에
귀를 쫑긋 했을 이덕무 모습이 그려지지요.
희은 단순이 책을 가지고 있겠다는 장서의 마음이 아니라
그 귀한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고픈
독서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지는 구절이군요.
종구 다른 기회에 청장관 이덕무의 흥미로운 독서 이야기
돌아보도록 하죠. 날씨가 계속 선선했으면 싶군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이덕무 독서고사’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카페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경기 금강산 타령과 최익현 금강산기행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경기 금강산타령과 최익현의
금강산 기행시’ 감상입니다.
희은 여름날 지금 금강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집니다.
경기 금강산 타령으로 달래 봐야겠군요.
종구 면암 최익현이 금강산 구경 하면서 남긴 기행시와
경기 금강산타령 구절을 돌아볼까 하는데요.
구한말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면서 의병을 모아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면암 최익현이 나이 51세 되던 해
금강산 유람을 떠나게 됩니다. 그해가 임오년이었죠.
희은 그럼 최익현이 일본하고 통상을 반대하면서 도끼를 가지고
상소했다는 그때를 넘긴 시절이었겠군요. 최익현이
금강산을 유람할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들었을텐데요.
종구 최익현이 마흔 둘 나이를 넘어서서부터 벼슬을 하지 않구
항일투쟁을 전개해 나갔던건데요. 그의 나이 51세에
여러친구와 함께 금강산을 가게됐죠. 그때 기행시를남겼구요.
희은 최익현이 금강산 장안사 동구에서 본 소감이군요.
(낭송) 단발령 지나니 걸음이 가벼워 / 斷髮嶺過步屧輕
장안사 입구에는 석양놀 비켰더라/ 長安洞口夕陽明
지방 사람들은 산수 구경하는 사람 좋아해 / 居民不厭江山客
길 인도하는 소리 다투어 전하네 / 呼應爭傳路引聲
종구 그때까지만 해도 금강산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이
금강산 구경차 찾아 오는 외지인을 어찌 대했는가
엿볼 수 있는 구절이죠. 저기로 가면 장안사이고
저쪽으로 가면 금강산 영원동이고 영원암도 거기 있소이다.
이렇게 인심 좋은 금강산 주변 풍경인데요.
잠시 우리 경기민요 ‘금강산 타령’ 한 소절 볼까요?
희은 경기민요 ‘금강산 타령’ 이 구절 말이죠.
(낭송) 기암괴석 절경 속에 금강수가 샘 솟고/
구름 줄기 몸에 감고 쇠 사다리 더듬어서 올라가니/
비로봉이 장엄쿠나~~
종구 경기 금강산타령 한소절인데요. 면암 최익현이 본
금강수는 과연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볼까요?
최익현의 ‘금강수’란 기행시 보실까요.
희은 (낭송) 황금과 바꾸지 않을 금강수/ 비우고 갔다 채워 오는 사람들
폐부만 맑으랴 정신까지 상쾌함이여/ 이 금강수 각자가
자기 양껏 마신다면 세상 물욕은 모두 사라지리라/
종구 경기 금강산 타령에서는 ‘기암괴석 절경 속에 금강수가 샘솟고’
그렇게 노래했는데, 최익현의 ‘금강수’에서는
폐부와 정신까지 맑게할 금강수더라. 각자가 양껏 마시면
세상 물욕이 사라질 것이다.
희은 단지 맑고 상쾌한 금강수로만 본게 아니었군요.
각자 그 금강수를 자기 양껏 마실 줄 안다면
넘치는 물욕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구 욕심 많은 사람들 금강수를 보고서 물통에 담기 바쁘고
한통 두통 차에 싣기 바쁠 것이고, 어떤 장사꾼은
금강수란 물 장사할 생각으로 바라 보기도 하겠죠.
희은 천하절경 금강산에서 각자 양껏 마시고 욕심 좀 씻어버려라
했던 면암 최익현의 금강수 기행시.
‘고전기행 사설여행’ ‘금강산타령과 최익현’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현명할 사 세종임금/ 딱새둥지에 뻐꾸기 알이/
뻐꾸기가 낳고 날아간 걸 알았거늘/ 몽매한 시골 서생은
딱새가 뻐꾸기 알을 낳은 걸 봤다고 우겼네/
지혜로울사 세종임금/ 중국 땅 독수리가 개를 낳아 키웠다 소리에
어쩌다 어미 잃은 개를 물어다 키운 걸 알았다네/
자기 핏덩이 내던진 사람들/ 뻐꾸기 둥지를 보라 내 새끼 있다 하겠지
남의 둥지 뺏어 사는 사람들/저 뻐꾸기 둥지 내 손으로 마련한거다 외치겠지
뻐꾸기는 날아갔는데/ 둥지에 밀려 떨어진 딱새 새끼는 땅을 잡고 퍼덕인다
그럭하고도 입으로 뻐꾸기 노래 부르며 다음 둥지로 행진을 한다.
마치 정해진 승리를 자축하는 듯 허공을 날개로 북을 울리면서 행진을 한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세종과 딱새, 그리고 뻐꾸기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세종과 딱새, 그리고 뻐꾸기’
고사를 돌아볼까요?
희은 세종임금이 딱새와 뻐꾸기 관계에 대해 말했다는 건가요?
종구 당시 사람들은 딱새가 뻐꾸기 알을 낳아서 기른 걸로
오해하기두 했는데요. 세종 27년 7월에 흥미로운
기사가 있거든요. 잠시 세종실록을 볼까요?
희은 (인용구) 전 현감 장효생이 아뢰기를, “신의 집 처마에
딱새가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았는데 크기가 산비둘기나
뻐꾸기만 하므로, 이상히 여겨 노끈으로 매어 날라가지 했사오니
살펴 보소서” 이에 내관 김용을 보내 확인케 하였다.
종구 세종 27년인 1445년 이맘때 7월 기사에 딱새가
뻐꾸기 알을 낳아 기르고 있다. 이게 좋은 조짐인지. 나쁜
조짐인지 조사해 보라는건데요. .
희은 그래서 세종임금이 내관 김용을 보내 장효생 집 딱새 둥지를
살펴 봤겠군요. 이게 뻐꾸기가 딱새 둥지에 알을 낳고
떠난건데 그 당시 사람들은 딱새가 뻐꾸기 알을 낳았다고
믿었더란 이야기죠.
종구 그런데 세종임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종) 딱새가 어찌 뻐꾸기 알을 낳을 수 있겠느냐? 아마도
뻐꾸기가 딱새 둥지에 알을 낳은게 아닌가 싶다.
희은 그렇다면 당시 세종 임금도 알고 있었단 말이군요.
뻐꾸기가 딱새 둥지에 알을 낳고 날아간다는 것을요.
종구 그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 온 ‘독수리가 개를 낳아
키웠다’는 이야기도 그건 아니다. 일축하고 있습니다.
희은 세종 시대에는 그런 소문도 나돌았군요.
‘중국에선 독수리가 개를 낳아 키웠다더라’ 여기에 대해
세종임금은 뭐라고 했을까요?
종구 중국에서 들어 온 사신에게 물어 봅니다. ‘요사’란 역사서에
보니 독수리가 개를 낳아 길러서 황제 곁에다 두고 봤다는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어떻게 판명된 것이냐?
희은 세종임금도 독수리가 개를 낳았다는 말을 믿지 않았군요.
그때 명나라 사신은 세종에게 뭐라고 답했을까요?
종구 (중국톤) 맞습니다. 독수리가 어쩌다 어린 개를 물어다
먹이를 줘서 기른 것이 그리 됐을 것입니다.
어찌 독수리가 개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희은 마찬가지로 딱새가 뻐꾸기 알을 낳고 기를 수 없을 것이다.
뻐꾸기 알이 딱새 둥지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세종의
판단에 현감 장효생은 뭐라고 했을까요?
종구 장효생은 이렇게 우기며 말을 맺고 있습니다.
‘전하 그 뻐꾸기는 결단코 딱새가 낳은 것입니다. 소신이
두둔으로 봤습니다. ’
희은 장효생이 본 것은 뻐꾸기가 알을 낳고 날아간 다음
딱새 둥지에 있는 큰 알을 봤다는 것이겠죠.
종구 조선 중기 문신인 택당 이식은 뻐꾸기의 탁란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만년에 자기 신세를 뻐꾸기가 딱새에게 기대 사는 걸로
비유해 말하기도 했죠. 택상 이식의 이 한구절 보세요.
희은(낭송)사는 꼴 졸렬한 타향살이/ 딱새둥지 기댄 뻐꾸기꼴로 산다오
종구 사람도 누군가는 딱새처럼, 누구는 뻐꾸기처럼 살지 않을까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세종과 뻐꾸기’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약팔고 거문고 고치는 일 賣藥修琴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약 팔고 거문고 고치는 일’
‘매약수금’ 고사를 찾아볼까요?
희은 ‘약을 팔고 거문고 고치는 일’ 얼른 연결이 안되거든요.
종구 고산 윤선도가 그의 나이 스물 네 살 때
잠시 서울에 머물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가면서 쓴
‘남쪽으로 돌아가는 기행문’이란 글에도 ‘약을 팔고
거문고 고치는 일을 마쳤다’는 구절이 나오거든요.
희은 고산 윤선도가 스물 네 살 무렵 한양에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일이 생겼던 모양이군요. 그때
윤선도가 말한 ‘약을 팔구 거문고 고치는 일을 마쳤다’
그 젊은 스물 넷 청년이 약을 팔고 거문고를 고치다니요?
종구 광해군 시절 윤선도는 스물 여섯에 과거에 급제했는데요.
열한살 때무터 줄곧 산중에 들어가 과거시험 준비를 하다가
진사시험 급제하기 3년전에 한양을 들렀던겁니다.
희은 그럼 초등학교 4-5학년 나이 때부터 산중에 들어가
고시공부를 준비했다는건가요?
종구 예전에도 참 모질다 싶을 정도로 공부들 시켰죠.
윤선도가 한양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고향 해남으로
돌아갈 때가 그해 11월 초였는데요. 추위 속에
남으로 천리길을 가야 했으니 고생이 심했겠죠.
희은 그때 한양에 올라 온 것은 친인척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과거준비에 대한 정보도 필요했을테구요.
집안 어르신들이 소개한 사람들과 만나야 했던 부분도
있었겠군요.
종구 한양에 있는 친지와 형제들 사이에서 지내던 윤선도가
고향 해남으로 내려가면서 서두에 꺼낸 말이
‘약을 팔고 거문고를 고치는 일을 마쳤다’ 희은씨 생각은
어떤 느낌이 드나요?
희은 한양에서 볼일 다 봤다는 말을 조금 멋지게 한거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드는데요.
종구 단순하게 말하면 그게 정답이죠. 그런데 굳이 왜
‘약을 팔고 거문고 고치는 일을 다 마쳤다’ 했을까요?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중국 후한시대 한강이란
사람을 먼저 만나야 하거든요. 여기 보세요.
희은 (낭송) 한강이 숨어 살면서 약초를 캐다 수도 장안에 나가
팔았는데 하루는 약을 사러 온 여인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이건 숨어 사는게 아니구나 하여 패릉산으로 들어가
은둔하며 살았다. 아 약초 파는 일 마친 것은
원래 살던 산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군요.
종구 숨으려면 확실히 숨어 살어야 한다. 그게 약초 파는 일
마치는 것이죠. 그 다음 거문고 고치는 일을 돌아볼까요.
이게 ‘수금삼시’란 고사거든요.
희은 (인용구) 예전에 깊은 산중에 수도하던 선객이 번화한
도시로 나와서 거문고를 수리하고 다시 깊은 산으로
입산해 발길을 끊었다. 이 고사도 원래 있던데로 돌아간거네요
종구 그래서 윤선도가 스물네살 때 한양으로 왔다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한양일을 다 봤다. 내가 들어가
공부했던 산중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으로 ‘약 팔고 거문고
고치는 일을 다 마쳤다’ 했던겁니다.
희은 요즘요 ‘약파는 일, 거문고 고치는 일 마치고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갈 사람들!’ 주변에 누군지 보이시나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 ’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카페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판소리와 민요에 나오는 원포귀범遠浦歸帆’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판소리와 민요에 나오는
‘원포귀범’ 구절입니다.
희은 ‘원포귀범’하니깐 생각난 구절이 경기 방아타령에
‘어기여차 닻 감는 소리 원포귀범이 에헤라 이 아니란 말가’
종구 그렇죠. ‘원포귀범’은 민요 뿐 아니라 판소리 흥보가에는
‘제비노정기’ 대목에도 나오고, 심청가에선 ‘임당수 대목’
에서도 등장하죠.
희은 시조나 가사에도 본 구절인데요. ‘원포귀범’ 하면
먼 바다에서 돌아오는 고깃배도 떠오르구요.
종구 포구를 향해 먼 바다에서 돌아오는 돛단배를
보통 ‘원포귀범’이라고 하는데요. 그 유래를 찾아 가면
중국의 ‘소상팔경’에 나오는 구절이죠.
희은 ‘소상의 빼어난 절경 여덟 개’ 그 가운데 ‘원포귀범’이
들어 있어서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절이군요.
종구 소상 팔경, 그럼 봄 기운에 싸인 산촌풍경인 산시청람.
해질녁 산사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말한 ‘연사모종’
어촌에 깃드는 석양놀을 말한 ‘어촌석조’ 그리고
먼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를 ‘원포귀범’ 이렇게 이어지고있죠.
희은 그 가운데 어촌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림 그리듯 말한 구절이
‘원포귀범’이었군요. 옛 선비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어떤 노래를 남겼는지 궁금해지네요.
종구 먼저 고려 명종 때 학자인 파한 이인로가 노래한
‘원포귀범’ 보실까요?
희은 (낭송) 포구에 엷은 안개 푸른 나무들 우뚝우뚝
열폭 돛배은 만리 바람을 안고 온다
맛깔진 회에다 순채나물 가을맛이 나고말고
종구 만리를 달려 온 바람을 안고 포구로 들어 온 배
싱싱한 회에다 나물에 가을맛 나는 포구 표정이죠.
다음은 조선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남긴
‘원포귀범’ 노래 한편 볼까요?
희은 제목은 같은데 그 풍경과 사람들 정감은 각각 다르군요.
성삼문이 노래한 ‘원포귀범’입니다.
(낭송) 먼 바다가 온통 비단 깔아둔건가?
빠른 돛단배 새처럼 돌아 온다
가고파라, 이 좋은 세상 준수한 선비들
느닷없이 고향 가고파라 일렁이게 하는가?
종구 세종 시대 성삼문은 이름 높은 학자였죠.
당대의 선비로 촉망 받던 성삼문이 원포귀범
그 포구에서 고향 생각에 홀연히 돌아 가고플 정도
감흥이 일어나게 한 그 포구와 돛단배들 풍경이죠.
희은 이 좋은 세상 준수한 선비들도 원포귀범 풍경 앞에서
고향생각 간절하게 만들더란 구절이군요.
종구(성독)♬하령 성대사로/ 거기 토순심이라 (何令盛代士. 遽起討蓴心)
태평성대에도 원포귀범 풍경 앞에서 고향 가고픈 생각 간절
하더란 성삼문의 노래죠. 조선 정조대왕이 원포귀범 잠깐볼까요
희은 (낭송) 아득히 보이는 물은 가을 하늘과 한 색깔인데
갈대꽃 깊은 곳에 어부 사는 집이 있구려
종구 이렇게 ‘원포귀범’은 평화롭고 정감 넘치는 포구 그림 한폭
이었던 셈이죠. 우리네 어촌 곳곳이 사실 ‘원포귀범’인 셈이죠.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원포귀범’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삼척부사 김효원과 신라 금비녀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삼척부사 김효원과 신라 금비녀’
고사를 찾아 보겠습니다.
희은 김효원 하면 조선 중기 동인 서인 당파 싸움을 벌이던 때
동인의 영수였던 인물 아닌가요?
종구 공직생활 내내 청백리 소리를 들었던 김효원이었지만
당파 싸움 소용돌이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죠.
심의겸과 치열한 권력 다툼 때문에 율곡 이이가 나서서
중재를 하기도 했구요. 그래서 지방관으로 나가게 됩니다.
희은 삼척부사 시절 신라 금비녀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나봐요.
신라의 금비녀가 삼척에 전해 왔다는건가요?
종구 당시 삼척 사람들은 고을 성황사에 전해오는 신라 금비녀를
소중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해서 삼척고을에 무슨
일을 할 때도 꼭 먼저 그 성황사를 찾아가
이만 저만한 일을 하게 됐으니 잘 살펴 인도해 주십시오.
빌고 그랬던거죠.
희은 삼척부사 김효원 입장에서는 삼척 사람들이 신라 금비녀를
숭상하는 게 너무 지나치다 했겠군요.
종구 그 고을의 최고 수장이 부사인데, 부사가 결정한 일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성황사로 달려가 ‘이런 저런
일이 있는데 잘 되게 해주십시오.’ 그러더란거죠. 헌데
연달아 삼척에 흉년이 들고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겁니다.
희은 그렇게 되면 고을 사람들이 ‘삼척부사가 꼿꼿해서
성황사를 찾아와 경의를 표하지 않으니 성황사 신령이
노해서 흉년을 내릴 거 아니냐?’ 뒷 소리를 할 수 밖에요.
종구 그런 소리가 삼척부사 김효원 귀에도 들려왔죠. 그때
김효원의 선택은 두 가지 중에 하나였습니다.
고을 백성들이 원하는대로 성황사를 찾아가 신라 금비녀에
절을 올리고 빌던가. 아니면 흉년에 시달린 주민들에게
빚을 내서라도 먹을 걸 구해와 구제를 하던가. 헌데
전연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삼척골 사람들이 깜짝 놀랬죠.
희은 신라 금비녀 앞에서 삼척부사가 큰 굿이라도 올려야 할
처지인데, 흉년은 연속해서 닥치고 주민들 인심은 사나와지고
그걸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종구 김효원이 일단 신라 금비녀가 있다는 성황사를 찾아갑니다.
먼저 성황사를 깨끗하게 치운 다음
금비녀를 가져 오라 해 놓고서 그 쓰레기들 태우는
불속에 던져 넣었죠.
희은 삼척 사람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신라 금비녀를
불길에 던지다니요? 별 일 없었나요?
종구 그리고 말합니다. ‘오늘 이후로 날씨가 이상하면 내가
그 책임을 지겠다’ 하면서 깨끗이 청소한 성황사에서
민간 법도대로 제를 올리고 돌아오죠. 그런데 그 다음부터
오히려 비 올 때 비 내리고 햇볕이 나고 기상이 고르게
좋아 지더랍니다 그때부터 삼척 사람들이 부사 김효원 말을
따랐다고 합니다.
희은 신라 금비녀란 유물을 지나치게 신격화 했던걸 깨 버렸군요.
하나의 대상을 신처럼 섬기는 폐단을 일소했던 김효원 고사.
‘고전기행 사설여행’ ‘김효원과 신라 금비녀’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카페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정선아리랑 무릉도원과 다산의 무릉도원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정선 아리랑 무릉도원과
다산의 무릉도원 고사입니다.
희은 ‘정선 아리랑’에 등장하는 무릉도원과 다산 정약용이
말하던 무릉도원 이야기군요. 원래 무릉도원은
중국 땅에 있다면서요?
종구 유래를 찾아 가면 중국 시인 도연명이 말한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을 이야기 하게 되는데요.
신선이 사는 곳처럼 빼어난 경치를 가진 곳을 보통
‘무릉도원’이라 말하기도 했죠.
희은 도연명이 말한 ‘무릉도원’은 어떤 경치였나요?
종구 어부가 어쩌다 노를 저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활짝 열린 경치에 놀라게 되죠. 복숭아꽃잎이
강물에 떠 흐르고 옹기 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 평화로운
모습에다 주변 경치가 난생 처음 보던 별천지였더라.
희은 그곳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종구 한 오백년 가까이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사는 사람들이었죠.
진시황 이후 초한 싸움 때 피난 와서 살았다구 했으니깐요.
희은 우연히 무릉도원을 찾아간 그 어부가 많이 놀랬겠군요.
수백년간 바깥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아 온 사람들 만났으니
종구 복사꽃 흐르는 강물 따라 돌아 온 어부가 무릉도원
이야기를 들려주고서 다시 찾아 갔더니 도무지
찾을 길이 없더란 그 이상향이 무릉도원이었던거죠.
희은 그럼 강원도 정선골도 예전엔 그런 ‘무릉도원’ 소리를
들었더란 말인가요?
종구 그럼요. ‘정선아리랑’ 가사에 무릉도원이 여러번
나오거든요. 여기 이 가사 한번 보세요.
희은 (낭송) 정선의 구명은 무릉도원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디가고
산만 층층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 정선 옛날 이름이 무릉도원이었다. 그거죠.
종구 그렇죠. 헌데 다산 정약용이 남긴 글을 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지금의 팔당호 인근을
무릉도원 같은 곳이더라. 하필 꼭 중국에서 찾을 게 뭐 있냐.
희은 우리 산천에도 무릉도원 같이 빼어난 경치가 한두군데
아니란 말이죠. 다산이 말한 팔당호 주변이라면 지금
남양주시와 하남 그쪽 강물이 서로 만나는 곳 아닌가요?
종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 경관을 사랑했던 다산이었죠.
그 주변 초천마을은 다산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었구요.
이 한구절을 보실까요?
희은 ‘두보의 시에 화답하며’ 속에 있는 다산의 시 구절이군요.
(낭송) 두 강물 만난 이 경개를 어느 경치에 비할까
빈 배는 나무꾼을 기다릴까 어부를 기다릴까.
푸른 봉우리 저녁 안개 뿌옇고/ 남은 안개 저녁놀이랑
강물까지 번지네/ 배 안에서 바라보는 고기떼/ 절로 맑아진다
무릉도원이 난리를 피해 살 곳이던가? 이 좋은 경관 홀로보며
탄식하노니 저녁놀 깔리는 고기배에 있었더라.
종구 그 저녁놀 배안에서 봤던 무릉도원 같은 풍광이 떠오르죠.
그 좋은 경치 함께 할 사람없어 홀로 탄식하며 봤다는 북한강
남한강 만나는 그곳. 오늘은 어떤 풍광일지 궁금합니다.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정선골 무릉도원과 다산’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용재 성현이 말한 박곤의 음악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용재 성현이 말한
박곤의 음악고사’입니다.
희은 어제 백설을 쓸고 돗자리 깔구서 거문고를 연주한
성현의 겨울밤 거문고 풍류를 돌아봤잖아요.
종구 오늘은 성현이 말한 당대의 명인 박곤을 돌아볼까합니다.
희은 예조판서를 지낸 성현, 성종시대 문화예술계 대부였던
성현이 점찍은 명인이라면 누구 누구였을까요?
종구 조선초기 음악과 의궤며 악보를 정리한 악학궤범 있죠.
그 서문에 전악 박곤이란 인물이 기록돼 있죠.
악학궤범을 편찬하는데 기여한 명단에 올라 있는
그 한마디. 전악 박곤. 용재 성현은 그를 당대의 선사라했죠.
희은 박곤이 당대의 선사였다. 뭘 잘했다. 뛰어난데가 있었다
소리 같은데, 선사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건가요?
종구 성현은 당대의 훌륭한 스승을 선사라구 했던겁니다. 그 밑에서
배출된 인재를 선수라구했구요. 자, 악학궤범 서문에 등장하는
전악 박곤은 어떤 선사였는지 볼까요.
희은 (인용구) 음악을 하는데 세가지가 있다. 5음 12율의 근본을 알아서
이것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고, 합주며 독주 빠르고 느린걸 알아서
악보를 만드는 경우가 있고, 타고난 자질이 요묘하고 손끝이 정밀한
경우가 있다.
종구 용재 성현은 음악의 근본을 알아서 활용하는 이론가도 있고
합주며 독주 채보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연주 자체를
기막히게 잘 하는 실기인도 있다면서 그 가운데
황효성과 박곤을 사례로 들고 있는데, 황효성부터 볼까요.
희은 (인용구) 황효성은 음악의 근본을 깨닫고 잘 활용할 뿐 아니라
느리고 빠른 절주를 잘 알아 악보를 많이 지어 세조에게
알려져 어모장군 벼슬까지 했다. 하지만 난 전악 박곤이
더 빼어난 선사라고 본다./ 박곤이 황효성 보다 낫다구했네요
종구 세조시대를 풍미했던 음악명인 중에 황효성이란
인물이 유명했던건데요. 음악예술인이면서 장군 벼슬까지
했던 황효성, 연주도 역시 대단했다고 하는데
용재 성현이 보기는 전악 박곤이 더 낫다고 본다.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궁금하시죠. 이 구절을 보시죠.
희은 (인용구) 지금 활동하는 전악 박곤은 금천군 박강의 서자인데,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워서 전문 연주자가 아니지만 음악관련
업무까지 잘 맡아 했다. 하지만 그 재주는 황효성보다 나아
악사들을 지휘하는 선사가 됐고, 배우는 사람이 그 문하에 모여들어
많은 선수(善手)들을 배출헸으니 지금의 제1품 명인이다.
종구 전악 박곤은 서자 출신이었던거죠. 그런데 음악이론과
실기에도 탁월한 재주가 있어서 장악원을 이끄는 인물이 됐다.
여기서 성현이 박곤을 칭찬한 건 음악관련 업무를 잘 했던 점.
음악인을 길러내는 교육행정을 잘 했다는 점. 그리고
박곤의 연주실력이 황효성보다 나았다. 그겁니다.
희은 어찌보면 기획자이고 예술감독이면서 명인 반열에 오른
박곤의 예술적 면모를 느끼게 해주는데요. 많은 선수를
배출해 냈다는 건 연주기량과 솜씨가 빼어난 인재를 많이
길러 냈다는 말이었군요.
종구 서자였지만 당당하게 장악원 5품직 지도사범이었고
악학궤범 편찬에 앞장섰던 박곤같이 행정가이면서 이론가
실기인을 합친 멋진 분들을 이 시대에도 만나봤으면 합니다.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성현과 박곤’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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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지러웠던 머릿속을 옛사람들의 지혜와 시정으로 씻고 가는 시간입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즐거운 포만감.....고맙습니다 벵셉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을엔 좋은 거문고가 곡천샘에게 시집 갈겁니다.
거문고 줄 퉁기며 세상사 시름들 술술 날려 보시기 바랍니다.
제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집니다. 온고이지신 !
감사합니다 !
좋은 거문고 구하기 - 거문고 연주자에게는 군침도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만드나요? 적금 타는 날이 언제? 정악 거문고 하나 구해야 되는데...
다 읽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읽자니 글이 어른거리고 눈이 가물거리며 머리가 어찔어찔 했지만, 작가님 글따라 '고전기행 사설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직접 방송으론 못 들어 아쉽지만 읽는 기쁨도 컸습니다..
그 내용들 돌아서면 또 홀라당^^~ 날려버리겠지만, 찾고 또 찾아 우리 선인들의 멋과 지혜와 풍류를 가까이 새겨보도록 할께요..
말씀하신 온고이지신 정신으로요~~^^
작가님, 대본 원고는 작가님이 직접 쓰시는 건가요? 한문 섞인 우리 고문서들을 직접 읽고 해석하시면서요?
폭넓고 깊은 연구에 놀라움 금할 길이 없네요.. 감사합니다..
우선 옛 선인들 작품을 읽어봅니다. 물론 한문 원서도 보구요.
그날 마다 시의 적절한 주제를 선정하는 일이 먼저구요. 일테면 '명량'이란 영화가 뜨면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원전이나 자료를 찾는 거 부터 어떤 시각으로 접근할 것인가?
그 많은 내용 중에 어디다 포인트를 맞출 것인가? 듣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를
구상한 다음 쓰게 됩니다. 제가 쓰는 방송글은 매일 생방송이라 시간과 싸우면서 써야 합니다.
다듬을 짬이 없이 써야 하구요. 그래서 거친 부분이 있기 마련이죠. 제가 고전에 대한 공부를 했던 시절이
있어서 이런 코너를 쓰는가 봅니다. 때때로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보고 쓰는게 아닌가?
물론 시중에 고전 해설서들 많이 있죠. 하지만 제가 꾸리는 살림은
제가 주제를 선정하고 원전을 확인하며 쓰고 있답니다. 이 고전기행 코너의
기본정신은 중국 고전에 의존하는 거 보다 우리 선현들 작품에 중심을 두고
중국 고전에서 참고할 사항을 추가 정보로 제공하는 관점을 우선시 합니다.
흔히 고전하면 중국고전 부터 생각하는 걸 우리문화와 우리 정신에 중심을 두자는
뜻으로 돌리자는 것이기도 하구요. 원전을 해석하는 것도 기존의 전문가들 번역과
다른 뉘앙스가 있을 경우 과감하게 제가 번역한 것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작품 전체를 축약해서 핵심만 전하거나 일부분만 인용하면서
그날 주제에 맞게
@김병준 재편집 하기도 하구요. 이 코너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사람들이 남긴 삶과 이야기들은 책으로 남아 전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오늘과 내일이 살아가는 날로 생각들 하죠. 고개 돌리면
이미 살았던 사람들 생생한 삶의 지혜와 정신 그리고 멋진 풍류들과 만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많은 분들의 호응과 인기를 고려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이런 코너를 꾸려 나가나 봅니다.
민들레쌈님이 이 많은 글을 읽었다는 거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일텐데 성원해 주신게 고맙구요.
이도 벌써 햇수로 4년째 되나 봅니다. 앞으로 이런 글에 작은 손짓이라도 보내주시고
함께 고전산책길 걸었으면 합니다.
@김병준 카페에 올리면서 쓰는 해설글은 사족일 수도 있지만
방송으로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꺼내서 이야기 하는데 의미가 있을겁니다.
방송에선 보다 많은 계층 사람들이 듣고 있기 때문에 일정수위를 넘어서서는 안될
금지된 선이 있습니다. 그런걸 이쪽 카페에서는 열어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스러움 때문에
제가 해설글을 쓰면서 방송된 글을 소개 하구 있는데요. 그래서 방송글은 그야말로 방송용이고
여기 카페 해설글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사랑방 이야기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담소용 글이라 하겠죠. 앞으로 민들레쌈님도 이런 사랑방 글놀음에 동참해서
마음 내키는대로 쓰고노는 글풍류 기다려보렵니다
@김병준 선생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다들 쉽게 편하게 가려고 하는 세상에서
힘들게 가꾸시는 선생님의 우직함이 빛나보이십니다..우보천리하시니 선생님 뜻이 꼭 이뤄지리라 믿습니다..
@김병준 선생님,8월11일에 올려진 글을 다 읽은 것임니다..그것도 엄청 많은 량이던데요? 이 코너 글 다 읽은 걸로 오해하실까봐 댓글 달아요..
차츰 다른 날들 것도 읽으며 우리 옛어른들이 품으셨던 멋과 맛에 틈틈이 빠져 보겠습니다요~~^^
@민들레쌈 옛말이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에서도 그 뜻과 내용이 그대로 다가옵니다.
달라진게 있다면 종이책에서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쉽게 볼 수 있다는 환경만 좀 달라지지 않았나 싶네요 ㅋㅋ
글풍류도 좋은 풍류문화이지요. 언제든 같이 글풍류에 재미지게 춤추시면 좋겠습니다 민들레쌈님 !!
@로마네꽁띠 글풍류?^^ 에고 부끄럽습니다..
뭘 잘 모르는 저를 멋스런 마당으로 불러주시니 황송합니다...못이기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이곳에 발을 적시다 보면 선생님들따라 멋흉내를 좀 내게라도 될른지?
모방이 무조건 나쁜건 아니니까요?^^..용기 내어 볼께요... 가로늦게 글공부 하게 생겼네요? 덕분에요 ㅎㅎ
@민들레쌈 쓰시면서 글도 발전할겁니다 !!!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것 부터가 처음이니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