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 속 왕국의 공주들
깊은 바다 속은 아름다운 수레국화의 꽃잎처럼 파랗습니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처럼 맑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어떤 닻줄도 닿지 못하고, 바닥에서 물위까지 수많은 교회 종탑을 쌓아야 닿을 정도로 깊답니다.
그 깊은 곳에 바다의 종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저 흰 모래밭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는 이상한 나무와 식물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 나무와 식물들의 줄기와 잎들은 너무나 부드러워 물살이 조금만 일어도 흔들린답니다.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구요. 마치 새들이 하늘에서 공기 속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는 바다 임금님의 궁전이 있습니다.
궁전의 벽은 산호로 만들었고, 길고 뾰족한 창문들은 가장 맑은 호박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지붕은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조개 껍질들로 덮었답니다.
거기 조개껍질 하나하나 속에는 모두 빛나는 진주들이 놓여 있습니다. 정말 그런 궁전의 모습은 굉장하답니다. 거기 진주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임금님의 왕관을 멋지게 장식할 만큼 값진 것들이거든요.
바다 임금님은 혼자 살고 있답니다. 그의 늙은 어머니가 살림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영리한 그 부인은 자신이 귀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꼬리에 열 두 개의 굴을 달고 다녔습니다. 다른 부인들은 여섯 개까지만 달 수 있도록 했지요. 그것만 빼고는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요.
그녀는 나이 어린 바다의 공주들을 몹시 사랑했습니다. 여섯 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지요. 그 중에서도 막내 공주가 가장 예뻤습니다.
피부는 장미빛처럼 깨끗하고 맑았으며, 두 눈은 깊은 바다처럼 파랗답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발이 없고 물고기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주들은 바다 속 궁전에서만 살았습니다.
공주들은 궁전의 커다란 수문에서 하루 종일 놀았습니다. 그 수문 벽에는 살아 있는 꽃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커다란 호박 창문이 열리면 거기로 물고기들이 헤엄쳐 들어오죠. 우리가 창을 열면 제비가 날아 들어오듯이 말이에요.
물고기들이 작은 공주들에게 헤엄쳐 오면 공주들은 먹이를 주기도 하고 물고기를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궁전 바깥에는 불길처럼 붉고 검푸른 나무들이 있는 큰 정원이 있었습니다. 과일들은 황금처럼 빛났고, 꽃들은 타고 있는 불길 같았습니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 있었는데, 그 모래는 유황의 불길 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바다 속 공주들은 바람이 잠들면 해님을 보러 나왔습니다. 공주들에게는 해님이 자주 빛 꽃처럼 보였습니다. 꽃받침이 모든 빛을 뿜어내는 그런 꽃 말이에요.
공주들은 정원 안에 자기만의 구역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땅을 파고 식물을 가꿀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공주는 고래 모양으로 만들었고, 다른 공주는 인어 모양의 꽃밭을 만들었지요. 그러나 막내 공주는 꽃밭을 해님처럼 둥글게 만들고, 붉게 빛나는 꽃들을 심었습니다.
막내는 조용하고 신중하며 특별한 공주였습니다. 다른 언니 공주들이 난파한 배에서 주워온 진기한 물건들로 치장을 해도 그녀는 저기 위 해님과 닮고, 장미꽃처럼 붉은 꽃들과 오직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만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것은 흰색의 맑은 돌로 조각된 아름다운 소년상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서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막내 공주는 조각상 옆에 장미빛처럼 붉은 수양버들을 심었습니다. 수양버들은 근사하게 자라 푸른 모랫바닥을 향해 싱싱한 가지를 뻗었습니다. 조각의 그림자가 바이올렛 빛으로 모래바닥에 비치고 수양버들의 가지들이 흔들흔들 움직이면, 마치 수양버들의 꼭대기와 뿌리가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주는 저 위쪽 인간 세계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할머니는 배와 도시, 인간과 동물 등에 대해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주는 그 중에서도 꽃들이 향기를 낸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다 속 꽃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숲들이 초록색이라는 것과 나무들 사이에서 고기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 등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할머니가 나무들 사이의 고기라고 부른 것은 작은 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주들은 한 번도 새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너희들이 열 다섯 살이 되면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나가서 달빛이 비치는 바위 위에 앉아 지나가는 배들을 볼 수 있단다. 그러면 숲들과 도시들도 볼 수 있지."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큰언니 공주가 제일 먼저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공주들은 꼭 한 살씩 나이 터울이 졌습니다. 그러니 막내 공주가 인간 세상을 보려면 아직도 5년이나 남은 것이지요. 공주들은 자기가 본 것을, 그리고 첫날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공주들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할머니가 얘기해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 어떤 공주도 막내 공주만큼 동경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막내 공주는 가장 바다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가장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창가에 서서, 물고기들이 지느러미와 꼬리를 움직이며 이리저리 첨벙거리는 바닷물을 통해 저 위를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주 희미하게 비쳤지만 달과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검은 구름 같은 무언가가 그 아래를 스쳐 지나가면 고래이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다 속에서 작고 아름다운 인어 공주가 하얀 손을 내밀고 있으리라곤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맏이인 첫째 언니 공주가 열 다섯 살이 되어 바다 위로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맏언니는 돌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달빛을 받으며 고요한 바닷가의 모래 언덕에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곳에 앉아 수백 개의 별 같은 불빛들이 반짝거리는 큰 도시를 바라보는 것, 음악과 마차와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많은 교회 종탑을 바라보면서 종소리를 들었던 것은 잊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막내 공주는 그곳에 가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 모든 것을 정말 그리워했답니다.
아! 막내 공주는 정말 얼마나 열심히 귀를 기울였던지요.
늦은 저녁 창가에 서서 검푸른 물결을 통해 위를 올려다보면서 떠들썩하게 소리가 울리는 큰 도시를 상상했답니다. 그러면서 교회 종소리가 바다 밑까지 울려온다고 믿었습니다.
2. 막내 공주의 열 다섯 번째 생일
그 다음에는 둘째 공주가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을 때였지요. 해가 지는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온 하늘이 황금처럼 보였지요. 그리고 그 구름들! 그래요, 그 아름다운 모습은 도저히 그려낼 수 없었답니다.
구름은 붉은 색과 바이올렛 빛을 띠고서 그녀의 머리 위로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리고 길고 하얀 면사포처럼 한 떼의 들오리들이 해가 떠 있는 물 위를 향해 구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그녀는 해를 향해 헤엄쳐 갔습니다. 그러나 해는 곧 가라앉고 바다 표면과 구름 위의 장밋빛 홍조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셋째 공주가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자매들 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바다로 흘러드는 넓은 강을 따라 헤엄쳐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포도 넝쿨이 우거진 찬란한 초록 언덕과 찬란한 숲들 사이로 성을 보았습니다. 또한 공주는 새들이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햇볕이 어찌나 따뜻하게 비치는지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물 속으로 들락거려야만 했지요.
바닷가에서는 발가벗은 어린아이들이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지요. 공주도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공주의 모습을 보더니 놀라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때 작은 검은 색 동물이 공주에게 뛰어왔어요. 그 동물은 바로 개였지요. 그 개가 얼마나 크게 짖어대는지 공주는 무서워서 얼른 바다 속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셋째 공주는 바다 위에서 본 그 찬란한 숲과 푸른 언덕들, 그리고 물고기 같은 꼬리가 없이도 물 속에서 귀엽게 헤엄치던 그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넷째 공주는 그다지 호기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냥 바다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었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곳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멀리 수평선이 바라다 보이고, 그 위로 하늘이 마치 유리로 만든 종처럼 펼쳐 있었다는 거예요. 또 멀리 지나가는 배들도 보았답니다. 배들은 마치 갈매기처럼 보였습니다. 돌고래들은 즐겁게 재주를 넘고, 커다란 고래들은 콧구멍을 물을 뿜어댔습니다. 마치 수백 개의 분수처럼 말이에요.
이제 다섯째 언니의 차례였습니다.
다섯째 공주의 생일은 마침 겨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다른 공주들이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짙은 초록색이었습니다. 커다란 빙산들이 물위를 떠다니는 그 모습이 마치 진주처럼 보였습니다. 빙산은 사람들이 세운 교회의 종탑보다 더 컸고, 아주 멋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가장 커다란 빙산 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하늘이 온통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였습니다.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높은 파도가 일어나 커다란 빙산을 때렸습니다. 빙산들은 밝은 번개 불빛 가운데를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던 배들도 돛을 올렸습니다.
모든 것이 무서워 보였지만 공주는 그래도 떠 다니는 빙산 위에 걸터앉아 푸른 번개 불빛이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며 바다로 내리뻗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바다 위로 올라갔던 공주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보았던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자랑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바다 위로 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곧 바다 위의 풍경에 대해서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다 속 우리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섯 공주는 서로 손을 잡고 줄을 지어 바다 위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들은 그 어떤 인간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답니다. 폭풍우가 다가올 때면 그들은 바다 위 배 가까이 다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폭풍이 다가온다는 것을 선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원들은 인어 공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인어 공주들의 노래 때문에 폭풍이 다가온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그 선원들이 바다 속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 선원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다 속 궁전으로 오게 되니까요.
언니들이 물을 헤치고 높이 올라가고 나면 막내 공주는 혼자 남아 언니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막내 공주는 울고만 싶었답니다. 하지만 인어들에게는 눈물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아, 나도 빨리 열 다섯 살이 되면 좋으련만..."
막내 공주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저 위에 있는 세상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세월이 흘러 마침내 막내 공주도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자, 보렴. 너도 이제 다 컸구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리 오렴. 너도 다른 언니들처럼 단장을 해야지."
할머니는 하얀 백합꽃으로 화환을 만들어 막내 공주의 머리에 씌워 주었습니다. 그 화환의 꽃잎은 하나하나 모두가 진주였어요.
할머니는 또 여덟 개의 커다란 굴을 공주의 긴 꼬리에 매달아 주었습니다.
"아파요!"
"하지만, 아름다워지려면 이런 건 참아야 한단다."
아, 막내 공주는 차라리 이런 온갖 장식들을 떼어 버리고 무거운 화환도 벗어버리고 싶었어요. 정원에 피어 있는 붉은 꽃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씀에 거역할 수는 없었어요.
"안녕!"
막내 공주는 마침내 그동안 꿈에 그리던 바깥 세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공주가 바다 위에 올라갔을 때에는 마침 해가 막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이 마치 장미꽃처럼 빛나고 있었어요. 그리고 밝게 빛나는 저녁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지요. 공기는 맑고,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했습니다.
바다 위에는 돛대를 세 개나 단 커다란 배가 떠 있었습니다. 돛 가운데 하나만 감아 올려져 있었어요. 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습니다. 배의 활대에는 선원들이 올라가 앉아 있었어요. 배에서는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등불이 몇 백개씩이나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온 세상 나라의 국기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 같았답니다.
3. 왕자님의 생일 잔치
인어 공주는 선실의 창문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일렁이는 물살에 기댄 채 공주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커다랗고 검은 눈을 가진 젊은 왕자님도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거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열 여섯 살이 넘어 보이지는 않았답니다.
오늘은 바로 왕자님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배 안을 온통 화려하게 꾸민 것이랍니다. 갑판 위에서는 선원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공중에는 불꽃이 펑펑 터지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은 바다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깜짝 놀라 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곧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때 보이는 모습은 마치 하늘의 별들이 자기에게 떨어져 내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불꽃은 이리저리 튀면서 화려하게 빛나는 물고기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불꽃은 맑고 조용한 바다를 비추고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왕자님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어요.
점점 밤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아름다운 왕자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이제 화려한 등불이 모두 꺼지고 더 이상 불꽃이 하늘로 날아오르지도 않았지요. 대포 소리도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혼자서 조용히 배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배는 돛을 활짝 펼치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파도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커다란 구름도 몰려왔어요. 멀리서 번개가 치고 있었습니다. 곧 폭풍이 몰려올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은 재빨리 돛을 접어 올렸습니다. 배는 커다란 파도 때문에 바다 위를 날 듯이 달렸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마치 그네를 타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시커먼 파도가 마치 배를 덮치려는 듯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배는 높은 파도 사이에서 백조처럼 가라앉았다가 다시 치솟으면서 거칠게 흔들렸어요.
인어 공주는 그런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의 선원들은 그렇지 않았지요. 여기저기서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가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배의 두꺼운 몸체가 거센 파도에 얻어맞고 휘어졌어요. 그리고 그 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돛대가 절반으로 부러져 버렸어요. 그러면서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해진 것을 보고 인어 공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도 부서진 배의 파편들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어요.
그 때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이며 주위를 밝게 비추었습니다.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이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인어 공주가 막 왕자님을 발견한 순간 배는 완전히 두 동강이 나서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인어 공주는 무척 기뻤습니다. 왕자님이 바다 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반가웠거든요. 하지만 곧 사람은 인어처럼 물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물 속으로 들어오면 왕자님은 곧 죽고 말 거예요. 그러나 왕자님은 절대 죽어서는 안됩니다.
인어 공주는 물위에 어지럽게 떠다니는 배의 파편들을 피해 왕자님에게로 헤엄쳐 갔습니다. 자기가 다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파도 위로 떠올라 왕자님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왕자님은 정신을 잃고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아름답던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인어 공주가 아니었다면 왕자님은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거예요.
다음 날 아침,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나 지난밤 그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빛나는 해님이 붉게 떠올랐어요. 왕자님으 두 뺨이 햇빛을 받아 차츰 붉어졌어요. 하지만 아직 두 눈은 그대로 감겨 있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어요. 왕자님의 모습은 마치 바다 속 작은 정원에 서 있는 조각상 같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한 번 왕자님에게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왕자님이 살아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때 인어 공주는 육지를 보았습니다. 높고 푸른 산꼭대기에 백조처럼 하얀 눈이 덮여 있고, 그 아래 바닷가에는 멋있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어요. 그 앞에 있는 집들은 아마 교회나 수도원들이겠지요. 거기 정원에는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는 키가 큰 종려나무들이 서 있었구요. 바닷가에는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을 끌어안고 모래밭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양지쪽에 왕자님을 눕혔습니다.
그 때 종소리가 울리더니 젊은 처녀들이 정원으로 뛰어 달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래서 얼른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가엾은 왕자님에게 누가 오는지를 지켜보았어요.
어떤 젊은 아가씨가 왕자님을 발견했습니다. 그 아가씨는 깜짝 놀라 곧 사람들을 불러 왔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왕자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인어 공주에게는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가 자기를 구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몹시 슬펐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왕자님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어 공주는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막내 공주는 항상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깥 세상을 다녀온 뒤로는 더욱 말수가 줄었습니다. 언니들이 막내 공주에게 바깥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지만 막내 공주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내 공주는 매일 밤 왕자님이 누워 있던 그 바닷가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뒤 단 한 번도 왕자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높은 산을 뒤덮고 있던 하얀 눈도 모두 녹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이제 꽃도 가꾸지 않았어요. 그래서 꽃과 나무들이 날이 갈수록 시들고, 정원은 무척 쓸쓸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막내 공주는 한 언니에게 이 얘기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차츰 다른 언니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언니 가운데 하나가 그 왕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그 언니도 배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 왕자님을 보았던 거예요.
"막내야, 이리 오렴."
공주들은 막내 공주를 이끌고 왕자님의 궁전이 있는 곳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궁전은 노란 돌로 지어져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어요. 바다에서부터 커다란 대리석 계단이 궁전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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