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라
인민군이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쳤다. 전차가 짓밟아놓았다. 달 밝은 밤 이곳을 정찰하던 터키 병사들이 동물 소리 응응거림을 듣고 적인가 경계하며 놀란다. 시월 말 으스스한 곳에 춥고 허기져 기진해 쓰러질 듯이 앉아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한다. 슐레이만 하사가 안고 어찌할 수 없이 부대로 데려간다.
마을 사람과 부모가 죽어 나뒹구는 시신 더미 옆에서 멍하니 말 못하고 찡찡거리기만 하는 어린이였다. 탕탕탕 마구 총을 쏘며 죽이고 불태웠다. 참혹한 마을로 쑥대밭을 만들고 지나갔다. 아직 타고 있는 매캐한 연기 속에 엄마 아빠를 부르다 지쳐 말 못하는 둥근 얼굴의 아일라(ayla)이다. 달처럼 예뻐서 지어진 이름이다.
부대 안에 이리저리 다니며 철없이 구는 여자 아일라로 전장 병사들의 즐거운 웃음거리였다. 아이는 비타민 같아 사랑을 듬뿍 받는다. 목을 덮는 텁수룩한 머리를 깎이고 모포를 갈라 옷을 만들어 입혔다. 슐레이만이 한참 훈련 중일 때도 졸졸 따라다닌다. 하나. 둘 번호를 외치면 옆에서 같이 한다. 앞으로 갓. 차렷. 하면 곧잘 따라 한다.
말문이 트여 ‘바바’라며 슐레이만을 아빠라고 부른다. 어디든 따라붙어 지내며 눈길을 매달고 사니 바쁜 전쟁 통에 성가시다. 그런 가운데도 정성을 다하는 슐레이만이 한없이 돋보인다. 어찌 그리할 수 있을까. 거치적거리는 아일라를 대하는 그의 그윽한 눈매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내무반 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잘 자라 안아주면 자다가 저쪽 슐레이만 침대로 가 옆에 꼬꾸라져 잔다.
우유를 구해다 먹이면 발칵발칵 넘기고 한국 사람이 없어 터키 말을 하나하나 가르치면 그대로 외워 곧잘 하는 아일라이다. 부대 전선 이동으로 산 고개를 넘어가는데 시동이 꺼진 차량을 고치다가 그만 적군의 기습을 받는다.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도 아일라를 차 밑으로 밀쳐 넣고 숲속 중공군을 향해 필사의 반격을 가한다.
옷을 기워주고 머리를 깎아주며 목욕시켰다. 우유와 먹을 것을 구해주고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 싱겁게 허드레 몸짓으로 웃겨주던 터키군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풀죽은 색 카키 옷을 입은 적군이 좌우 산기슭에서 막 내려온다. 총탄 소리에 놀라 앞서가던 부대가 급히 뒤돌아오며 엄호사격을 해준다.
그 가운데 오직 아일라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싸우는 슐레이만이다. 한국 정부에서 훈장을 주고 특별휴가를 받아 일본 동경으로 갔을 때 아일라도 데려간다. 맛있는 음식과 볼거리, 장난감을 안고 부대로 돌아온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나 교체부대가 도착해서 교대해야만 한다. 공습으로 부대가 난장판이 되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선인데 아일라를 버리고 갈 수 없었다. 몇 달을 더 보듬었는데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수원에 있는 앙카라 보육원에 맡기고 떠난다. 어느새 뒤쫓아와 ‘아빠!’ 한다. 큰 가방에 넣어 몰래 가다가 그만 발각되어 이내 들통이 나고 만다. 느닷없는 세월은 흘러 그만 60년이 지났다. 눈에 삼삼하고 ‘바바’하는 말이 귀에 쟁쟁하다. 다 살기 바빠 생각뿐이었다. 늙어만 가는 슐레이만은 ‘꼭 찾아올 게 그땐 우리 헤어지지 말자.’ 한 약속을 죽기 전에 지키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외교부와 알릴 수 있는 곳을 통해 여러 차례 수소문했다. 돌아오는 답신은 이름이 바뀌어 아일라를 찾을 수 없단다.
지구 반 바퀴나 돌아가야 하는 저편 한국은 무려 8천 킬로의 머나먼 나라다. 한국 지형에 맞게 훈련한 4,500명이 커다란 미국 군함으로 한 달이나 걸려 부산항에 닿았다. 어찌 그리 쉽게 가지겠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 문화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찾게 되었다. 그들의 주선으로 한국에 오게 됐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앙카라공원에서 극적인 만남을 갖는다.
팔순이고 육순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재회하는 날이다. 그윽한 눈매로 일 년 넘게 아일라를 안고 보살폈던 이제 백발이 된 슐레이만이다. 저쯤 다 큰 아들딸 셋을 데리고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김은자 아일라를 단번에 알아보곤 달려간다. 안고 쓰다듬길 오래 한다. 남편이 일찍 세상 떠나 아이 키우느라 행상에서 청소부까지 팍팍한 삶을 산 아일라이다. 남루하고 꺼칠한 얼굴이 말해 주었다.
2002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이 태극기와 초승달에 별이 그려진 터키 국기를 흔들며 함께 ‘이겨라. 이겨라.’ 소리 소리친 것이 엊그제만 같다. ‘형제의 나라’라 불렸는데 이제 그 말을 이해하게 됐다. 한국전쟁 때 참전 연인원 일만오 천명이 미국 다음으로 서둘러 와서 공산군을 막아주었다.
7백여 명이 사망하고 2천 명 넘게 다쳤다. 행방불명과 포로로 잡힌 인원 또한 4백 명이 넘는다. 미군 사단 예하 연대로 아까운 젊은이가 그리도 많이 전사했다. 유엔에서 한국 일이라면 무조건 찬성해준다. 유럽을 잇는 해협의 교량과 온갖 토목공사를 발주해 주고 제품을 구매하는 피를 나눈 형제 나라이다.
‘잔 울카이’ 감독의 ‘아일라’ 영화는 500만 관객을 동원하여 일약 흥행으로 올라섰다. 이듬해 2018년 한국에서는 5만 명 관객이다. 개봉관 확보가 어려웠고 홍보 부족이었다.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어찌 허망하게 흘러갔나. 감쪽같이 지나쳤다. 이리 좋은 영화를 쥐도 새도 몰랐을까.
친구가 말해줘서 뒤늦게 유튜브를 통해 가족과 함께 봤다. 아내는 아역 ‘김설’ 아일라의 늙은 모습에 훌쩍훌쩍 눈물을 훔쳤다. 수렁에서 전쟁의 딸 아이를 건져내 거둬준 슐레이만을 오래도록 그 모습이 내 가슴에 남을 것이다. ‘영광의 앙카라’를 부르던 수원 ‘앙카라보육원’이자 학교는 없어졌다. 터키 유엔군을 기리는 앙카라공원만이 덩그렇게 남았다.
첫댓글 감동 글 감사합니다
잊혀져 가는 6.25 비극 속에서도
휴면 드라마 ...선생님은 진정 애국자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발은 어떻습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생각 만으로도 가슴이 찡해져 오는 이야기 같습니다.
6.25 는 이런 비극들을 간직하고 있지만,점점 잊혀지는 듯 해서 안타까울 뿐 입니다.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게 전쟁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6.25 못지 않는 비극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처절하게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었을 때, 다른 나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전쟁 이야기를 접했음을 생각하면,..
우리 현실을 일깨워주시는 글 접하고 보니....저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잘 지내시는 거지요 쌤??
다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아일라가 터키 말로 달이랍니다.
영화가 재미있어서 두 시간을 다소곳이 봤습니다.
선생님은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으시는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에서는 종교가 다르고, 이곳 문화를 흡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 등급 아래로 여기는 터키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자기네 속으로 들어가고...
터키 연안은 관광지로 유명하고 가격이 저렴하여 많은 사람이 몰려갑니다.
샘의 글을 읽고 나니
1월에 계획한 터키 여행은 다른 감정일 것 같습니다.^^
사랑님 방에 들어와 고마워요.
자주 놀러 오세요.
터키 즐거운 여행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