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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
이영춘 시인 |
‘시는, 유서 쓰듯 혈서 쓰듯 그 한 마디를 쓰는 것이라 했다. 난공불락이다. 들숨과 날숨의 거리, 아득히 멀다.’
평창 출신 이영춘(사진) 시인의 말이다. 등단 40년을 넘긴 시인에게 ‘시’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이번에 발표한 열네 번째 시집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에는 이색적인 ‘즉흥시’ 30편이 실렸다. 시인에게는 난공불락의 세계 속 새로운 시도이자 실험이었다.
시인은 인도를 기행하며 마음에 새긴 무늬들을 짧은 시편으로 지어 담았다. 눈(眼) 연작 30편에는 진리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로서의 자아가 드러난다.
‘뉴델리 시가지 한복판에 널려 있는 거적때기 집/천구백육십 년 대 맨발의 알몸 아이들이 거기 있다/뽈록한 배와 우묵한 눈 안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이 걸어나온다’(시 ‘눈眼·3’)
더불어 부모에 대한 심연의 그리움은 이시인에게도 빗겨갈 수 없는 벽이다. 부모와 긴 세월을 함께하며 빚어진 인생의 숭고한 감정이 여러 편의 시에 담겼다.
‘오래전에 벗어 놓고 가신/어머니 반지를 보았다//어머니 살아오신 흔적이 거기/덕지덕지 붙어 있다//환한 대낮 신작로, 그 길보다 늘//그늘진 비탈길을 달려오신 어머니//통증같이 밀폐된 상처가 그곳에서 절름거린다’(시 ‘반지’ 중)
시인은 또 세월호와 천안함을 상기한 작품 ‘구름의 손’과 ‘곡비’에서 보듯 이웃들이 겪는 상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스스로의 아픔으로 끌어안는다.
김백겸 시인은 작품 해설에서 “화려함을 지우고 언어에 힘을 빼서 심심하게 드러내는 시인의 의도가 백미”라며 “추사가 ‘세한도’에서 붓 가는 대로 그린 심심한 초가와 소나무처럼 힘을 뺀 경지는 오래 시를 써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춘 시인은 경희대 국문과, 동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고 원주여고 교장 등을 역임했다. 윤동주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인산문학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한국여성문학상 등을 받았다.
안영옥 okisoul@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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