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 앞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이 묘사되었다면,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출생의 근원이 나타나있다. 먼저 본문에서 저자는 부정사 '우크', '우데'를 사용하여 중생에 이를수 없는 부정적인 세 가지 요인 ((1)혈통, (2) 육정, (3) 사람의 뜻을 나열한다.
첫째로, 혈통은 '피'나 '혈연'을 의미하는 '하이마'의 복수 소유격으로서, 육체적인 혈연 관계를 의미한다. 혈연 관계가 구원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세례요한과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을 규탄할 때 잘 드러난 바이다. 둘째로, 육정(델레마토스 사르코스)이란 '육체적인 욕망'이란 뜻으로 1차적으로는 성욕을 비롯한 인간의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2차적으로는 성령의 뜻에 거슬리는 모든 육체적 욕구나 세상적 정욕을 통칭한다. 저자 요한이 타락한 세상을 어두움으로 정의했듯이, 빛이 없는 어두움 속에 처한 인간의 육체적 욕구와 이로 인한 가치 체계(사회적 명망, 권력, 부)로써는 구원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셋째로, 사람의 뜻이란 절대자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성적 노력이나 수양, 율법 준수 등을 통칭한다.
이러한 태도는 앞의 두 가지 요인보다 더 고상할지 모르지만 이도 역시 구원에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조건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무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비롯된 인본주의적 구원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육체를 따라 의롭다 여김을 받을 자는 하나도 없다.
결국 저자는 이 세계의 절망을 묘사하며, 인간 스스로의 구원의 길이 근본적으로 막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죄악된 인간이 인간을 인도한다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부조리이며, 그 인도자는 도둑이며, 삯꾼 목자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원문에서 이 문장은 강한 반전을 의미하는 접속사 '알라'가 먼저 나타난다.
이 접속사는 8절에서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에 대한 본질적인 차이를 묘사하는 데 쓰였으며, 본문에서는 인본주의적 구원 수단과 신본주의적 구원 간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문은 어둠 속에 빛이 비추듯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초자연적, 초역사적 성격을 보여줌으로써, 구원받은 성도로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케 하고 겸손하게 주의 뜻을 따르는 성도의 자세를 견지케한다.
[행 17: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 아덴 사람들은 그들이 아티카 본토의 흙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반대하여 인류는 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한 혈통과 한 조상을 가진 후손임을 언급하고 있다. '한 혈통으로'라는 번역은 '여스 헤노스 하이마토스'라고 되어 있는 후대의 사본들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서는 '하이마토스'가 생략되어 있고 단지 '여스 헤노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많은 번역본들이 이를 따르는데, '한 사람으로부터'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한데,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인류의 하나됨이라는 사상은 바울 신학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하나됨은 죄로 인해 훼손되었지만, 구속으로 인해 회복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아덴 사람들에게 성경적인 인간관을 피력하고 있다. 연대를 정하시며...경계를 한하셨으니 - '연대를 정하셨다'는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정해주셨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또한 14:17에 근거하여 볼때 계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본절은 24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알지 못하는 신'은 곧 하나님으로 창조주이시며, 그는 시간을 만드사, 사람을 시간의 흐름속에서 살게 하셨고 나아가 모든 민족들이 살 수 있는 공간적인 경계까지 정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시편 기자와 모세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땅의 모든 경계를 정하셨으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라고 노래했다. 또한 모세도 모든 민족들의 경계가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졌음을 교훈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구약성경에서 유래하는 사상에 근거하여 아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육신. - 이것은 헬라 원어로 "쌀크스"니 보통으로는 "몸"이란 말 "쏘마"와 달라서 인간의 부패성, 혹은 순전히 이성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 대하여 이 말이 사용될 때에는 부패성을 의미하지 않을 뿐더러, 도덕적 연약성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연적 연약성을 띤 인성을 가리킬 뿐이다.
히 4:15 ,16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헤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였다. 성자(聖子)께서 육신이 되심은, 우리의 죄짐을 지시기 위하여 대신 욕을 보심이요, 우리와 같이 되심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에게 관한 좋은 소식으로 두 가지 요소를 가진 것이니, 곧, 인성과 신성이다. 성경은 그의 중보자격 말함에 있어서, 그의 인성을 역설하였다. 그 이유는, 그의 신성이 그의 인성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격의 주체는 신성이다.
다윗의 혈통.- 사도는 여기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한 구약의 예언을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구약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나시리라고 한 예언이 많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들면 이렇다. 곧, 사 53:1-3에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라고 하였다. 이 예언과 같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줄기면서도 왕궁에서 나시지 않고 베들레헴의 외양간 한지에서 나셨다.
그리고 사 11:1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서 열매를 맺으리라는 말쓰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된 후, 다윗의 왕통이 오랫동안 끊어지고 그루터기로 있었다.
거기서 다시 왕손 예수님이 나셨다. 위의 "가지"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네체르"요, "결실"이라는 말은 "이프레"이다. 네체르는 마태복음에 있는 나사렛을 생각게 하고, 이프레는 베들레헴 곧 에브라다를 생각게 한다. 이것은 왕손 예수님의 생장하신 곳이 나사렛과 베들레헴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