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오랜 군 역사와 진도도호부 부사 관련>
진도 사람들이 목포꺼송구(목포새비젓), 해남물감자(해남풋보리)... 등으로 인근 지역인 육지 고을 사람들을 하찮게 보고 얕잡아 보는 데에는 진도군의 역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년)에 기록이로 멀리 백제 때부텀 군(郡) 고을이었제만 주변 목포나 해남은 100여 년 남짓한 최근에야 시(市)가 되고 군(郡)이 되었다는 점과 근대에 잠시나마 그 고을들을 관할하던 곳이 진도도호부(珍島都護府)였다는 자부심의 내재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란데 뭍에서는 조선 태종 때 진도에 목장을 만들기 시작할 때 죄수들을 이주 시켰다등가 조선 초기 지주도 대미로 전국 최대 목장지였든 진도 목장덜에가 목부덜이 아주 많앴었다는 점을 들어가꼬 ‘섬놈’이라고 향(鄕), 소(所), 부곡(部曲) 사람이나 역촌(驛村), 목장(牧場) 노비 층과 다름없는 해도(海島) 사람이라는 눈이로 댑대 얕잡어 보기도 했었제만, 진도사람들은 인근 목포나 해남 영암 등 뭍에 사람들을 나름 낮잡아 본 것이 사실이었지람짜.
※조선시대에 반촌(班村)과 구별되는 일반 민촌(民村)이 있었고, 그 외에 역촌(驛村)·원촌(院村)·사촌(寺村)·포촌(浦村)·점촌(店村)에다 교촌(校村)도 하층민들이 집단 거주하던 마을의 유형으로 치부했음.
※참고로 ‘조도꼴끼미’란 말과 ‘조도가리’란 말은 나쁜 말이 아니고 읍구리에 읍(邑)이 고을 읍자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만한 옴막한 곳’이라는 ‘고을기미’로 아주 좋은 뜻이고, ‘조도가리’는 목포선착장에서 ‘조도 갈 이(사람)’ (빨리 배타쇼~!)라고 외치던 ‘조도 갈 사람은 배가 곧 출항항께 빨리 타시오’라는 뜻이로 ‘조도 갈 이(사람)’(빨리오쇼~!) 하고 외치든 ‘조도 갈 이’였구만이라.
또 딸른 연유로도 일정 말기 때부텀 1950년대까장 진도·해남·강진·영암·완도 5개 군 대항 축구 정기전이 해마디 열렸었는데 이 축구대회서도 맨당 진도가 우승하다시피 함시로 진도인덜이 자부심이로 인근 군민들을 깜보는 맘도 더했다고 뵈져람짜.
그 역사적 근원도 챙겨 보자므는
◎목포시: 조선시대 말기까장도 무안현의 작은 포구였던 목포진(木浦鎭)은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재하는 진(鎭)에 불과했었는데 진도군에는 그러한 만호진(萬戶鎭)도 금갑만호, 남도만호가 주재하는 곳이로 두 반데나 있었고, 목포가 근대 1897년 10월에 개항됨시로 부텀 급격히 커져가꼬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후에 목포부(木浦府)가 되았고 광복 후 1949년에 목포시로 바까졌든 짤룹디 짜룬 목포에 역사가 있지람짜.
◎해남군: 해남은 1409년(태종9)에 진도군(珍島郡)이랑 합해서 해진군(海南郡)이 되았다가, 28년만인 1437년(세종 19)에 해남과 진도를 다시 둘로 나눔시로 진도는 다시 군(郡)이 되았제만 해남은 해남현(海南縣)이로 되았다가 1895년(조선 고종 32년)에야 해남군(海南郡)이로 승격된 역사가 130년배끼 안 된 신생 군(郡)이여람짜.
◎완도군도 1896년(대한제국 탄생 建陽1년)에사라 영암군, 강진군, 해남군, 장흥군에 흩어져 있던 섬들을 한나에 군(郡)이로 묶어가꼬 완도군(莞島郡)이 탄생해서 이곳 역시 역사가 130년배끼 안 된 신생 군(郡)이구만이라.
그란데 진도군에 역사넌 멀리 삼국시대 백제 때에 진도군(珍島郡, 因珍島郡?)에서 부텀의 질~고 오래~된 군(郡) 역사가 있었고라.
걱다가 1866년(고종3)에는 진도군(珍島郡)이 진도도호부(珍島都護府)로 승격되아가꼬 진도부사(珍島府使)가 유사시 영광, 함평, 해남, 영암 4개군의 군수와 임자, 지도, 다경포, 목포, 어란포, 어진포, 마도, 남도, 금갑 등의 수군 만호(萬戶)들을 지휘할 수 있는 병권(兵權)을 가졌었든 시절이 있었지람짜.
또 진도군은 87년간에 공도(空島) 시절을 벗어난 세종 19년 때부텀 영암땅에 명산면(命山面)하고 해남땅에 삼촌면(三村面)을 470년간이나 진도군의 내륙면이로 거느리고 있었고 도호부 당시에는 화원면까장도 진도군에 속했었어람짜.
진도도호부는 1866년 그때 부텀
○제275대 군수. 조존흥(趙存興) 부사. 1865乙丑~1868戊辰년 재임이로 시작해서
○280대 구영식(具永植) 1873癸酉~1875乙亥년 재임 등에 구 부사까장 6명의 부사 임명이 있었고
1874년(고종 11) 진도도호부(珍島都護府)가 8년 만에 진도군(珍島郡)으로 환원되았제만 이후에도 부사 임명은 한동안 계속 있어가꼬 .
동학농민혁명 때 진도부사 이희승은 관아를 버리고 혼차 도망을 갔던 일에다 부임초에 자신의 선정비를 세우는 등에 악행(惡行)이로 역대 최악의 진도군수란 평을 받는 사람인 이희승도 기록물에 진도부사로 나옴.
○제293대 이희승(李熙昇) 부사 1892壬辰~1894甲午년 재임.
그리케 291대 최병두 ~ 285대 이전(李琠)까지 5명도 진도부사(珍島府使) 발령자로 기록이 댜 있습니다.
한편 진도읍의 '부내면(府內面)'이라는 공식 명칭은 51년 동안 잇어지다가 1917년 이후 진도면(珍島面) 으로 바까졌지람짜.
이상 우덜 안태고향 진도에 과거사하고 도호부에 관한 야기였습니다.
-진도 솔개동리 출신/ 진도사투리사전 저자 조병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