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야 맛보는 빵… 하루 수천개씩 팔려
서울연인은
도넛, 만두, 햄버거 등 식품업계에서 20년간 일해온
민은희 대표가 지난해 5월 시작했다.
첫 점포는 서울역점.
가장 최근 문 연
양재점을 비롯해 홍대점·공덕점을 운영 중이며
오는 17일 서초점,
이달말에는
강남역점과 교대점을 동시에 오픈할 예정이다.
민 대표는
"일본 공항에서 선물용으로 팔리는
'도쿄 바나나'의 연 매출이 5000억원이라는 말을 듣고
그에 못지않은
한국 빵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좋아할 만한 단팥빵이 최적의 후보였다.
맛은 기본.
29시간 숙성한 천연 발효액종으로 반죽하고
유기농 밀만 쓴다.
맛도 맛이지만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
서울연인 매장에 커다랗게 걸린 빵 사진은
한 컷 촬영에 330만원이 든 '작품'이다.
민 대표는
"얼마 전에는 어떤 일본 교포가 공항 가기 전에
꼭 사가야 한다며 예약해서 사갔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 매달 단팥빵 400개를 납품해
'청와대 빵집'으로 뜨게 된 쟝블랑제리는
몰려오는 손님을 견디다 못해 오는
17일부터 4월 초까지 확장 공사에 들어간다.
지난 13일 점심 무렵 찾아간 매장은
소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쟝블랑제리의 단팥빵은 '몸무게'로 최고다.
장형권 사장은 "팥 앙금을 듬뿍,
정확하게는 200~220g을 넣는다"고 말했다.
5개를 사서 봉투에 담았더니
벽돌 하나를 든 기분이었다.
군산 이성당의 서울 지점 격인
양재동 햇쌀마루의 단팥빵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이성당이 뜨면서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쌀가루로 반죽한다고 해서 햇'쌀'마루다.
단팥빵은
웨스틴조선, 신라호텔, 롯데호텔 등
서울 특1급 호텔에서도 부동의 인기 1위다.
100년 역사의 웨스틴조선은
호텔 개업과 거의 동시에 단팥빵을 팔기 시작했다.
대부분 호텔은
베이커리의 구색과 가격대를 고려해 일정한 개수만 판다.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해도
저가의 단팥빵만 팔아서는 매출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단팥빵 돌풍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곳은 신라호텔이다.
크고 두툼한 기존 팥빵 외에
쌀로 만들어 희고 작은 팥빵 두 종류를 새로 선보였다.
막내인 믹스콩브래드는
국산 강낭콩을 눈에 띄게 박아
외모에서부터 차별화를 시도했다.
개당 4500원으로 '몸값'으로 최고.
단팥빵은
단맛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특한 애국 청년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서
15개 매장을 운영 중인 뚜레주르는
"3년 전 진출 때부터 단팥빵이 판매 1위"라고 밝혔다.
현지 가격은 7500루피아(약 662원).
팥 맛을 모르던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신세계를 선사하면서 매장당 하루 150개가 나간다.
국내 매장에서는 30개만 팔려도 1위 빵이니
현지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줄까지 선다고? 그러면 나도 한번…"
단팥빵은
일본에서 생겨난 동서양 퓨전 음식이다.
18세기 이후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일본은
낯선 서양 빵에 늘 먹던 팥을 집어넣었다.
그 빵이 바다를 건너와
한국화된 것이 우리의 단팥빵이다.
단팥빵의 동생뻘인
소보로빵, 크림빵도 유사한 여정을 밟았다.
1869년 단팥빵을 개발한 기무라 야스베가
1874년 긴자에서 오픈한 기무라야(木村家)에서
단팥빵의 역사는 시작됐다.
여전히
성업 중인 기무라야의 팥빵은
정작 먹어보면 무덤덤하다는 평이 많다.
맛보다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스토리가 대중을 빨아들인 경우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이성당의 인기 역시 '최고(最古)'라는 아우라에 크게 빚졌다.
이성당의 '역사'는
다른 가게가 넘볼 수 없는 절대 가치다.
그곳에서 파는
'역사적인' 빵에 대한 소문이 복고(復考) 바람을 타고 퍼지면서
경향 각지의 사람들이 차를 몰고 달려간다.
그 바람에
팔리는 팥빵이 주말 하루 1만개를 헤아린다.
이성당이 정통 복고라면
서울연인은 최신 복고다.
푸근한 옛 느낌에 얹은 새로운 콘셉트가 먹혀들었다.
눈앞에서 바로 만들어주는 신선함,
유기농, 천연 등의 요인이 발길을 끌어당겼다.
이 빵집들을 향한 대중의 욕구에
인터넷이 불을 붙이면서 '열풍'이 됐다.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종
SNS에 동시 다발적으로 대량 노출된 시식기는
'도대체 뭐기에'라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호기심을 실천으로 옮기게 하는 핵심 요인은
저렴한 가격이다.
대부분 1000원대이니
누구든 유행에 올라타기에 부담이 없다.
부산의 밀면과 마찬가지.
6·25 때 부산으로 밀려 내려간 이북 실향민들이
함경도 냉면 대신
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 것이 밀면이다. '
꿩 대신 닭'이던 부산 밀면을 먹겠다고
갑자기
외지인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부담 없이 도전해볼 수 있는 가격의 힘이 컸다.
'한 그릇 4000원'은
'맛없으면 돈 아까워 어쩌나' 라는
심리적 저항선을 가뿐히 무너뜨린다.
'줄'이 만들어낸 군중 심리도 있다.
'어떤지 모르지만 이렇게들 좋다고 하니
나도 한 번 시험 삼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김길수 누이애 대표는
"저희 가게 앞에 줄 선 분 중에는
왜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서 있는 분도 있더라"고 말했다.
◇김앤장도 뛰어든 단팥빵 시장
불과 몇 달 사이에
한 매장당 수천개가 팔려나가는 열풍이 불면서
벌써부터 잡음도 생겨났다.
서울연인,
누이애,
종로명인의 단팥빵을 맛보면 바로 알게 된다.
맛과 포장은 다소 다르지만 외모가 판박이다.
세 곳의 가게에 가보면 더더욱 놀란다.
같은 빵집인가 싶을 정도로
인테리어와 전체 디자인이 흡사하다.
천연 발효종을 강조한 문구,
윤기가 자르르 도는 홍보용 사진은 물론
빵을 전시하는 나무 접시까지 똑 닮았다.
인터넷 시식 후기에도
세 곳을 같은 매장으로 혼동하고 올린 글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셋은 엄연히 다른 곳이다.
서울연인 서울역점에 이어
종로명인이 지난해 9월,
누이애가 지난해 12월 차례로 문을 열었다.
누이애는
지난해 8월까지 서울연인에 근무했던
김길수씨가 독립해 차렸다.
문제는
뒤에 문 연 누이애가
서울연인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것.
서울연인 민은희 대표는
"가게 디자인과 빵의 기본 콘셉트를 정해놓은 후에
들어온 김 사장이 새 가게를 차리면서
그대로 베껴갔다"고 주장했다.
김길수 누이애 대표는
"서울연인 빵의 기본 콘셉트를
전부 정해준 게 바로 나"라고 주장했다.
누이애보다 한발 앞서 개업한 종로명인은
김 사장에게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표는
수년간 공들인 빵집의 아이디어를 뺏길 수 없다며
법무법인 김앤장에 의뢰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흔하고 편해서 만만하게 봐온 단팥빵 돌풍이
법정으로 옮겨 갈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