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유적지 탐방기 - 4
바이욘 사원을 한 바퀴 돌아 나와 프놈바켕 언덕으로 향했다. 프놈바켕 언덕은 지리적으로앙코르 유적지의 중앙이며, 앙코르 내의 가장 높은 산인 듯했다. 언덕 밑에 도착하여 가파른 길을 올려다보고, “버스에 앉아 기다리겠다”는 마눌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고서는 묵묵히 언덕길을 걸어 오른다. 언덕 진입로 입구에 치장한 코끼리가 몇 마리 있다. 언덕까지 타고 올라가는 데 1인당 15,000원이다. 마눌과 둘이면 30,000원..... 자꾸 코끼리 쪽에 눈길을 주는 날 마눌이 끌어당긴다. 그냥 걸어올라 가잰다. 이구.... 한번 태워주고 싶은 데.... 그냥 참기로 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는 데, 아하 언덕이 온통 사암으로 되어있다. 처음엔 황토 뿐인 이곳에서 저 많은 신전 및 왕궁에 소요되는 사암들을 어떻게 구했을까 궁금했는데, 이곳 프놈바켕 언덕을 오르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언덕위에 사원이 있고 사원에 오르는 사암 계단 역시 외적으로 부터의 보호책인가? 기어 올라가야 할 정도로 계단이 가파르다. 비지땀 흘리며 언덕에 올라보니 사방이 확 트인 게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손님 기다리는 코끼리 1회 15,000원
프놈바켕 언덕 위에서
이곳은 해만 지면 곧바로 어두워진다. 해넘이 전 서둘러 내려오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 핑계 김에 마눌의 손 꼬옥 붙잡고 내려오는 데, 땀은 여전히 줄줄 흐른다. 한겨울에 땀이라.... 싸우나가 따로 없다. 내려와서야 언덕입구를 보니, 역시 관광지답게 매점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택시를 대용하는 오토바이에 매어달린 좌석이 인상적이다. 마차의 말을 대신한 오토바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퇴근하는 길인지 자전거탄 아가씨의 모습도 보인다. 다음 코스인 킬링필드 사원으로 옮겨가기 위해, 바삐 서두느라 버스에 급히 올라타면서 사진 몇 컷 건졌다.
프놈바켕 언덕 등반로-바닥에 사암이 보인다.
손님 기다리는 마차대용 오토바이
프놈바켕 언덕입구 판매 시설
자전거를 끌고 가는 현지인 아가씨
“다음코스는 킬링필드 사원입니다.” 가이드의 안내 멘트에 온몸에 괜한 소름이 돋는다. 왜일까? 킬링필드..... 얘기로 영화로 많이도 보고 들은 내용이다. 우리는 6.25동란을 치루면서 동족상쟁의 아픔을 겪었고. 5공화국 시작 전 광주 민주화 항쟁 시에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이곳 크메르인들은 6.25동란 시에 우리네 땅에 파병을 했던 참전국으로서, 우리네와는 각별한 인연을 가진 민족이며, 이로 인해 우리 한국인을 볼 때 약간의 우월감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편협된 생각을 가진 정치지도자 한사람의 망동으로 650만 국민 중 200만 명을 살해 하였다는,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대 사건 킬링필드..... 다시는 이 땅위에 그러한 일이 없어야 된다는 경각심을 주고받기 위해, 유골을 발굴하여 이곳 킬링필드 사원 내 탑에 보존하여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유골을 공개하고 있다. 낡은 게시판엔 당시의 상황(살해 및 고문 등)을 담은 빛바랜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데, 전동드릴로 여인의 머리를 뚫는 사진이 여인의 초점 잃은 눈빛과 함께 강하게 날 자극한다. 토할 것 같다. 이 민족의 아픔을 헤아리기엔 내 가슴이 너무도 작은 탓일까? 슬그머니 발을 돌려 유골이 전시되어 있는 탑 한번 둘러보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 버렸다. 그 당시 사건을 주도한 폴폿의 잔당들이 아직도 밀림 속에서 생활하며 내전의 불씨가 되곤 한단다. 캄보디아엔 안경을 쓴 사람이 거의 없다. 민족 대학살을 시행하면서 반발의 힘을 줄이기 위해 식자층 위주로 살해하다보니, 맨 먼저 지식층으로 보이는 안경 쓴 자들부터 살해 하였단다. 전해오는 살해 방법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야자수 잎을 베어낸 그루터기가 쇠처럼 단단하다. 어린애들은 그 곳에 내동댕이쳐서 죽였단다. 짧은 기간에 200만 명을 살해 하려면 벼라 별 방법이 다 동원되었으리라. 5공전 광주 민주화 항쟁 시에 떠돌았던 소문들이 여기에서 모방한 것이었을까?
킬링필드 사원 투명 탑에 보존된 유골들
유골이 전시되어 있는 탑 (가운데 투명유리를 통해 유골들이 보인다.)
우울한 기분을 안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말문이 막혀 버린다. 이곳 씨엠립에 와서 여러 번 말문이 막혔다. 첫째는 상상외로 낙후된 이 나라의 현실이요, 둘째는 장기간 숲속에 숨겨진 천년의 신비 앙코르 유적지들의 웅장 수려함이요, 셋째는 킬링필드 대학살의 참담함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상황버섯 판매하는 곳, 귀가 번쩍 뜨인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귀가 얇아지는 법, 지금은 작고하신 어머님역할을 대신해 주는 큰형수님!~ 얼마 전 암수술을 받으셨다. 수술은 잘 되었다 했는데 암은 재발이 문제인지라, 내가 뭘 어떻게 해드려야 하는 건지 당황만 했었는데.... 원시림 속에서 몇십년 묵은 거라는 데 약효고 뭐고 가릴 형편이 아니다. 그냥 신용카드 해외한도액까지 계산하고, 가진 현금 다 털어 돈대로 구입했다. 원래 병이란 환자의 의지와 가족의 정성이 제일 큰 약이라는 데, 이곳에서 내가 형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다 하고 싶어졌다. 이거 다려 드시고 건강회복 되셨으면....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한잔 곁들여, 저녘 식사를 마친 후 그간의 여독도 풀 겸 전통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두당 20,000원 마사지사에게 주는 팁 2,000원이란다. 우리 처지에 약간 부담은 가지만, 싫다는 마눌을 설득하여, 이것도 체험삼아 한 번 같이 받아보기로 했다. 마사지 하우스에 도착하니, 역시 여기 경영자도 한국인이다. 해외에 계신 우리네 교포들 돈 냄새 나는 곳은 기가 막히게들 아신다. 추측하건 데, 이곳 마사지사 들은 팁으로만 만족하고 마사지 비용은 경영자의 몫이 아닌가 싶다. 고급인력의 월급이 30,000이라는 데 2시간 마사지에 팁을 2,000원 주었으니 일당은 넘은 셈 아닐까? 괜한데 까지 신경 쓴 건가?
기대를 잔뜩 하고 마사지를 받는 데, 제길헐 9,000원짜리 전주 단골이발소 서비스 안마만도 못하다. 전주에서는 팁 천원포함 10,000원이면 단골의 특권(?)으로 이발에 면도에 안마까지 받았는데... 태국 전통마사지 전수자들이라는 데, 약간의 간질거림만 있을 뿐, 시원함을 못 느끼겠다. “에그 안 한다 했쟎아요.” 호텔로 돌아와 마눌에게 한 소리 들었다. ㅋㅋㅋ “그냥 체험이려니 하고 넘어가셔” 그냥 농으로 받아 치고는 맥주 한 캔 나눠 마신 뒤,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 깊은 추억(?)의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