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오늘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축일입니다
다른말로는 소화데레사를 그지역명을 따서 리지외데레사라고 하듯이
아빌라의 데레사라고 부른다.
1990년대 말쯤인가 저는 본당에서 활동을 하고있었다
40대남자로서 본당에서 활동하는 몇안되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때에 새로오신 신부님이 단체나 분과와 구역에서 봉사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가족이어야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저는 1980년도에 세례와 1986년도 견진을 받았고
1981년도에는 관면혼배를했다
제가 몇 년동안 신앙생활한후에 바로 냉담시기를 가졌다
그리고 서울로 이사오면서 수원교구에 있을무렵에 냉담을 풀고 견진을 받게된다
저는 서울교구에 와서도 본당에서 봉사하지않고
주로 다른본당에 가서 말씀봉사를 했다
그러던차에 같이 사시는 선배가 사목위원이 되면서 저를 구역장으로 천거했는데
마침 본당신부님이 이런조건을 내건것이었다
아무리살펴도 다른대안이 없는 본당에서 원장수녀님이 저와 한마디 상의없이
저의 아내를 예비자교리반에 등록하고 바로 아내에게 통보를 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대구에서 천주교재단 대학을 다녔지만 집안이모두 불교신자들이라서
아직도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결격사유였지만 원장수녀님이 용단을 내리신것입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아내는 내가 본당에서 활동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어서 교리공부가시작되었고 세례를받았다
저에게 구역장을 물려준 동내선배님의 부인이 아내의대모가 되신것이었다
그당시 구역모임은 굉장히활발히되었다
아파트단지에서 만나던사람들인지라 일주일에 주일미사를 비롯해서 성당뿐만
아니라 아파트단지안에서도 자주 만났다.
그 선배님은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분의 2째아들과 저의아들이같은학년이고 해서 저는 그분 아들의대부도 섰다
선배님이 돌아가시고 저희들도 어려운생활속에서 서울을 급히떠나서
안산으로 이사오면서 선배님가정과 연락이 끊어졌다
아내의 생일이 10월 중순무렵이여서 그날짜와 비슷한 성녀를 찾다가
아빌라의 데레사를 찾은 것이다.
그일로 인해서 그당시 원장수녀님과 친하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수녀님은 성이 방씨라서 그냥 방실이수녀님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이후로 그수녀님이 건강이 안좋으셔서 다른곳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이후 몇 년이흘러서 저는 안산으로 이사오게되었고
수원교구에서 하는 성서경시대회에 참석하게되었는데 그 행사장에서
그 수녀님을 만났다. 수원교구에 있는 어느성당으로 오셨다고 하신다.
다행히도 건강은 좋아보이시는 것 같았다.
지금도 아내는 성당에나가지않고있지만 그래서 저는아내를위해서
기도드리곤한다. 아내는 오랫동안 옷가게를 하였고 주일도 없이 하였다
본당신부님이나 아는 선배님들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말라고 하셨다
제가 피정에거가나 행사에참여한다고 하면 아내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형편이다
저는 아내가 세례를 받았다는그자체로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는 지금 2014년 시청에서 정년퇴직이후에 여러 가지정부교육을 받고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햇다. 늘 아내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가족이 살아가는편이다
오늘도 요양원에 출근했다가 6시가넘어서서 집으로 돌아왔다
구순넘은 아버지도 돌봐야하고 너무 힘들어하는데
아내와는 최소한의 애기만을 나눗고 있는 형편이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게생각한다.
아직도 제역할을 하지못하는 30대후반의아들도 걱정이다
다들 제가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여겨진다
아들은 저희부부가 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파트와 근처에 살고 있다.
제가있는 곳은 평수가 넓지만 아들이사는집에 방한칸을 온전히 저의 서가가 차지하고
있어요. 사람 3~4명은 잘수가있기 때문에 대구에 오시면 저희집을이용해주시면 됩니다
요즈음은 집안에서 인터넷자료를 보면서
어떻게어려운이웃끼리 도우면서 살아갈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지금 어려움에 속해있는 아들놈은 너무 순진해서 다른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입니다
이런 애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도 저의 마지막 숙제이라 여겨집니다
저도 한때 세상에서 무슨일을 할때에 많은 거절을당하고 실패할때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것이두려울때도 많았지요
어떻게하면 아들에게 용기를 줄수있을까 하는 마음이 늘 들곤하지만
뚜렷히 머리에떠오르는 것이 없어보입니다.
아들은 개신교재단 고등학교를 나왔고 군생활을 전투경찰을 하면서
개신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주님, 자비를베푸소서
한국의 순교자이시여 저희를위해서 빌어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