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거른 것은 단 1개월 뿐인데, 새벽의 날씨는 차가워졌고,
변한 날씨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었다.
길지 않은 세월이었음에도 정이 폭 들어 버린 산행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다가
요 며칠간은 그 동안 낯설어 졌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들던 시간이었다.
한낮에는 27-8도까지 상승하여, 더위를 느끼게하는 날씨에 옷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긴소매의 티셔스에 초겨울의 점바를 걸치고 나섰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이 차가워 보였다.
집에서 농협앞까지의 거리는 500미터 정도로 지난 번에는 짧음 소매의 셔스를 입고 갔어도
땀을 느꼈으나 오늘은 몸에 걸처진 긴 옷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7시가 약간 넘어서 농협 앞에 도착하니 김ㄷㅇ씨,이ㄱㅌ씨,이ㅁㄱ씨가 나와 있었다.
반가이 악수를 하는 손에 여전히 다정함이 느껴졌다.
잠시 후에 김ㅅㅅ여사와 정ㅁㅅ여사,김ㅈㅇ여사,임ㄷㅇ이사장과 박과장이 왔다.
좀 이례적인 것은 임이사장의 부인이 같이 온 것이었다.
늘 남편만 보내다가 같이 가 보고 싶어서 따라 나섰을 것이다.
임이사장의 집이 운동을 하는 길 가여서 가끔씩 보다가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안경을 껴서인지 좀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누구도 세월은 거슬려 갈 수 없는 것이고,
기억속에 서는 늘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수 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 중의 대표적인 하나인 한ㅇㅅ여사가
이번 달 부터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산행 때마다 인사 겸 버스를 배웅하는 농협조합장은
오늘도 인사의 끝에 그 부인인 한여사를 부탁했지만
한여사는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같은 직장에서까지 근무했었기에,
이제 나이를 먹었고 조합장의 부인이니 경어를 써주어야지 하면서도 말을 시작하면
어릴 때의 말버릇이 되어버리게되는 사람으로, 내가 반말을 하는 유일한 남의 부인이다.
버스에 오르자 맨 먼저 친구 이ㅅㅎ씨가 손을 내밀며 옆자리를 권했다.
부인 이ㅅㅅ여사가 일부러 이씨의 옆자리를 비워놓고, 다른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친구 이씨는 어느날 갑자기 눈 앞이 휘뿌연해지는 증세가 나타나서
부인 이여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되었다.
산행의 길은 험한 길이고, 이씨가 그것이 가능한 것은 돈독한 부부애일 것이다.
나도 아내와 사이가 좋다는 말을 듣지만 날이 갈수록 언쟁이 많아지고 있어서
이렇게 다정한 사이가 경이롭기만 하다.
장원에서 우ㅎㅊ씨 부부,권ㅎㅅ여사,박ㅌㅅ여사,최ㅅㅈ,유ㄱㅎ씨,이ㄱㅎ씨부부,
원ㅅㅇ씨가 탔고,석송에서 김ㅇㅈ부회장,이ㄱㅈ대장,김ㅅㅌ씨,외에
북계에 사는 이번에 처음 참석하는 이 ㅅㅇ씨부부,승ㅎㅇ여사가 오르자
버스의 좌석이 가득채워졌다.
모란에서 탄 사람은 장ㄷㅅ상무,
더러 빠지고 더러 새로 참석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 반가운 표정들이었다.
거의 모든 나날을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사는 내게,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평범할 수 없는 일이고, 변함 없는 모습에
당연스런 일임에도 안도감을 느껴지는 것은 이방인의 자격심일 지도 모른다.
홍성은 같은 충남이다.
더구나 대전-당진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너무나 짧은 거리였다.
이ㅅㅎ씨와 이런저런 학교 적 친구들의 이야기를 채 끝내기도 전에
용봉산에 도착했고, 시간은 겨우 8시를 넘기고 있었다.
진입로의 짧은 거리를 제외하고는 등산로와 하늘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만약 이런 산오름을, 지난 덕유산과 칠보산에서 했다면
타는 목마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낮에 가까울 수록 날씨는 더워졌지만
거의 어느 곳이던 산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바위길은
북쪽 어느 곳에서 출발해서 적당히 식혀졌을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었고,
땀에 젖은 티셔스를 말려 주었다.
애초에 용봉산은 울창한 숲을 키울 수 있는 산은 아닌 것 같았다.
천태만상으로 돋아 잇는 바위 틈의 몇무더기의 흙에
생명력이 강한 나무들이 모진 삶에 저항하듯 버티고 있는 듯이 보였다.
박ㅌㅅ여사가 "저 소나무를 캐서서 집에 가져가고 싶다"라고 했고,
나는 "저거 뽑으려면 박여사 힘으로는 한달은 걸려야 할걸요."하고 동문서답을 했지만
모진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기묘한 모양이 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농사 일에 바뿐데다 백제문화제와 다른 행사로 피곤해서인지 박여사의 발길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워 보였다.
돌과 나무의 숲길을 돌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때의 산행과는 달리
대화보다는 미끄러워 보이는 바위 길과, 바위 틈에 놓어 있는 가파른 계단을 디디며
실수해서 다치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길이었다.
연인과 둘이서 산을 올랐다면 손을 잡고 밀어를 나누며
시원한 그늘에서 땀을 내리는 추억을 쌓기 보다는 애인이 다칠까 전전긍긍하며
손을 잡아 주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기억 밖에는 남을 것 같지 않은 험한 바위길이었다.
다른 때의 산행은 오르내리던 과정이 머리에 남았으나
수많은 바위계단길을 올라갔다가 내려 왔다는 기억만이 머리에 있을 뿐이다.
탄성을 지르게하는 깎아지른 바위들의 모양에도 어쩐지 삭막함을 느낀 것은
용봉산이 다른 산과 이어진 산이 아니라 들판에 홀로 솟아 있는 산이고,
산정상의 여러 바위봉우리들을 탐사하듯 오르내리는 길이었기 때문인것 같았다.
실제로 용봉초등학교에서 용봉사에 이르는 등산로를 바위 봉우리를 피해서,
봉우리 옆의 소로로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었고,
실제로 힘에 겨웠던 이ㅅㅎ씨 부부는 그 길로 내려 왔다고 했다.
가끔씩 바위 봉우리와 바위 봉우리 사이의 완만한 짦은 길에서
지난 번 산행때의 글에 댓글을 달아준 권ㅎㅅ여사,정ㅁㅅ여사와의 대화하면서
그저 글을 쓰고 싶어 쓸 뿐이라는 말을 했지만
나의 필력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용봉산을
주마간산격으로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을 찍은 순서대로 올려 놓을 밖에 없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용봉산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허허벌판에 세워진 도청과 어울리지 않는 고층 아파트가 서있는
내포신도시의 을시년함을 내려다 보는 심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바위봉우리를 오르내렸어도 산봉우리와 산봉우리를 오가는 시간들로
소모되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산을 내려온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어서 였었고,
축제 중인 남당리를 피해서 서산AB지구를 건너서 있는 간월도의 '간월도 횟집'에
점심 식사를 하러 들린 시간은 겨우 12시를 넘어 있었다.
버스 기사 이ㄴㅍ씨의 말로는 남당리는 바가지를 쓰러 가는 것이고, 그 식당에서
산모퉁이를 지나면 다시 엄청 비싸 진다는 것이다.
산악회라고 해서 꽤많은 돈을 들여서 참석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버스 전세비와 장비 등을 대성금고에서 부담하기에 참석하는 날만 2만원을 낼 뿐이다.
오늘은 횟집에 갔기에 1만원을 더해서 3만원을 냈을 뿐이다.
3만원을 내고서 먹을수있는 회, 그러나 가격대비 서비스였다.
우럭회,산낙지,산대하,그리고,튀긴 대하등은 조금밖에 먹지 않는 내게는 넘치듯 많은 것이었다.
교통도 멀지 않은 곳이니, 가족과 와서 먹고 가도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곧장 집으로 간다면 3시 안에 돌아 갈수 있으니 '천천히 집에 가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식사를 끝내고 횟집 앞에 나와서 멀리 물이 빠진 바다라기보다는 갯벌을 보며 잡담을 하였다.
임ㄷㅇ이사장이 재미있는 줄은 알았지만 싸이의 말춤을 흉내 내기도 하고
술취한 사람의 흉내를 내자 우리들은 까르르 웃었고, 지나는 차들은 무서워서 멀리 피해서 갔다.
왕래가 한산한 길이라 지나는 차에 전혀 방해를 주지 않았지만,
그 차의 기사는 정말로 술취한 사람으로 여겼을 지 모른다.
쉽고 빨리 갈 수 있는 고속도로가 있었지만 광천 어시장을 들리고
칠갑산의 천정호를 들려서 간다고 했다.
버스는 천천히 갔고, 버스 속은 횟집에서 오간 술로 거나해지고 있었다.
권ㅎㅅ여사가 신명이 좋은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신명이 좋은 여인인 줄은 처음 알았다.
나로서는 노래를 들어야 그 노래였구나 생각 될 노래들을 4-5곡을 불러서,
버스안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돋구어 놓았다.
그리고 처음 참석한 보물리장 원ㅅㅇ씨가 5-6곡을 연속해서 불렀는데,
이제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없고, 분위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신이 나는 노래들였다. 그 노래들은 느리지않은 노래들로서 부르기 쉽지 않은 노래인데,
정말 멋지게 불렀다.
박ㅌㅅ여사가 "노래 연습하라고 했었죠 연습했으면 한곡 불러요."라고 하기에,
나도 내 18번이라고 할수 있는 '뜨거운 안녕'을 불렀다.
용화산에 갔을 때의 엉터리 노래에 내가 마이크를 잡자 웃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한여사와 박여사가 같이 불러 준다고 옆으로 와서 응원을 했고,
무사히 불렀지만 그런 류의 노래는 분위기를 가라 앉히는 노래였다.
가라앉을 분위기를 이ㄱㅎ씨와 다른 분들이 신나는 노래로 다시 돋우어 주었다.
어시장이라고는 했지만 광천독배에 배가 들어 온 것은 아득한 옛날이고,
어물을 파는 가게들이 몇곳이 있는 곳일뿐이었다.
쇼핑보다는 가게 뛰 쪽의 테이블이 놓인 곳에서 막걸리를 먹는 행사가 되었고,
그 술은 더욱 얼큰 하게 되서 칠갑산으로 향하는 버스속은
마을금고 측의 강한만류로 舞만 없을 뿐 歌가 넘쳤다.
칠갑산은 흔들다리가 생기고 노래 칠갑산의 유명세 위에 새로운 재미거리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가까운 거리임에도 일부러 가 본 일도 지나다 들려지지 않았던 곳이다.
옛날 터널이 생기전에 맞은 편에 오는 차를 겨우 비껴서 지나던 비포장의 길가에
있었던 천정호는 이름 그대로 하늘 꼭대기에 있는 호수처럼 신비로움을 느꼈었지만
4차선은 아니지만 끊이지 않고 오가는 분주한 포장도로 가에서
첨단공법의 흔들다리를 머리에 쓰고, 문명에 힘겨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신비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지나 다니던 길이었는데,
콩밭 매는 아낙네의 조각은 너무 작은 느낌이었고, 용과 봉의 모습은 만든지
얼마 않되는 새 것이라 그런 느낌인지 몰라도, 너무 조형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흔들다리를 건널 때 누군가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 연속적으로 다리를 흔들었고,
흔들거림 속에서 마음도 덩달아 흔들거리며 흥겨웠다.
해가 이미 산속에 뭍혀서 사진들은 어둡지만 산보다는 돌아 오는 과정이
더 좋았던 것 같은 기분은 점 점 밝아지고 있었다.
최ㅈㄱ여사가 내년은 9월달이 아무리 바빠도 거르지 말자는 말을 했고,
나도 힘있는데까지 거르지 않는 산행을 주장해 보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오늘 코스가 참 좋았다는 말을 했다.
산행이라고 하지만 한달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털어 버리는 것이 목적인데,
지난 9월 한달 산악회의 산행이후 잠잠했던 우울증이 재발하는 증세가 재발하는 가 하기도 했다.
천정호와 정안 사이의 거리는 짧았고,그 짧음 때문인지
한 ㅇㅅ여사의 여자의 일생이란 노래를 제외하고 빠른 노래들이 불리어졌다.
행복한 산악회에 허물 없는 친구 한여사가 동참했기에 더욱 즐거운 기분이었다.
가수를 방불케하는 김ㅅㅅ여사의 노래.
한 없이 조신하게만 보였던 임이사장의 부인의 빠른 노래 '황진이'의 노래가 불리는 속에
버스는 청양을 넘어서 공주지경을 접어 들고 있었다.
산행시간이 짧아서 였을까?
아니면 돌아 오는 과정의 흥겨움 때문이었을까?
본말이 전도 된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하루가 어둠 속에 뭍혀져 가고 있었다.
다
앞
으
로
도
좋
은
글
자
주
보
여
주.
세
요
수고하신분께 박수를보냅니다
잘 봤습니다.
오~대박임다
하하 고추를 형상화한 다리가 특이하군요... 멋짐!!
용봉산 참 좋은 산입니다. 아마 가본사람은 10명중 8~9명은 좋다는 소리 할겁니다
높지 않으면서도 볼게 많아 초보자도 큰 무리 없이 오를수 있는 산이며 중부지방에서 보기드문 바위산이지요
주말이면 전국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랍니다.
즐거운 하루 였네요
저도 한번 찾아가고싶네요
ㄳ
너무좋아요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산행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요
고추 다리 나도 갔다왔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