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 큰스님을 생각하며
반야화(般若華)백경임|동국대 교수
가만히 앉아 큰스님을 생각하노라면 가슴에 맑은 샘물이 흐르는 듯, 마음이 상쾌해지고 어떤 알지 못할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큰스님께서 이 세상에 머무실 때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큰스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기뻐했고 감격했다. 큰스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장점을 일일이 찾아 칭찬해 주셨고 격려해 주셨다.
우리는 영혼이 허기질 때 큰스님을 찾았고 생각했다. 큰스님을 찾아 뵈면 새로 충전시킨 밧데리처럼 힘을 얻었고, 우리의 무한 가능성에 대해 다시 믿음을 내고 도전을 했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다져서 보다 더 큰 힘을 얻어 새 희망을 갖고 가지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큰스님의 이런 특별한 능력은 큰스님 자신께선 잘 모르겠지만 상담요법 가운데 ‘장점 충격요법’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상대의 장점만을 찾아 이야기해 주는 방법인데 그 효과가 하도 커서 충격적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 사람들은 타인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자꾸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 요법을 실시하기 전에 사소한 사물의 장점을 찾는 훈련을 먼저 하게 된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그대로 모든 사물의 장점과 가능성을 단박 볼 수 있는 특별한 안경을 갖고 계셨다. 어쩌면 중생을 있는 그대로의 부처로 볼 수 있는 진정한 안경이 아닐까 싶다. 참으로 큰스님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무척 부럽기도 한 안경이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큰스님과의 일화들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누구나 다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그것은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시는 큰스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큰스님과의 작은 일화 두어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몇 년 전 내가 심한 병에 시달릴 때, 큰스님께서도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일체유심조라는데 나 같은 사람이야 마음을 잘못 다스려 병이 났겠지만 큰스님 같은 분이 왜 아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셨던지 어느 날 황송스럽게도 큰스님께서 친히 전화를 주셔서 ‘병고를 약으로 삼자’는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 자신의 그 힘든 상황에서도 간곡히 나를 격려해 주셨다. 나는 그날 살아야 할 이유를 비로소 확인했던 것 같다. 또 큰스님께서 왜 편찮으신가 하는 의문도 자연스럽게 가시게 되었다. 말하자면 병자와 아픔을 나누어 힘이 되어 주시기 위한 것으로, 또 아프면서도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 하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날 큰스님께서 도움을 받으라고 소개해 주셨던 보살님은 지금도 내가 언니처럼 의지하고 지내는 좋은 도반이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또 ‘참 큰스님다우신 일이다’하며 내가 귀하게 여기고 있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불광사에 머무셨던 어느 날 큰스님께서,
“나는 마음속에 어떤 맑은 노랫소리가 들리는데 밖으로 소리 낼 수는 없어.”하면서 웃으셨다. 이어서 내가,
“어린 시절 부르시던 노래인지 한번 곡조를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였다 큰스님께서는 조금 흉내를 내려하시다가,
“아니야 노랫소리를 계속 들리지만 입으로 표현할 수는 없어. 샘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아!” 하면서 웃으시는데 꼭 소년처럼 느껴졌다.
나는 때때로 ‘천상의 음악소리는 그런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쨌든 큰스님께선 내면으로부터 기쁨이 충만하여 넘쳐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큰스님의 인상이 부드럽고 따뜻했기 때문에 감성적인 면이 많이 드러났는데, 큰스님께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실 때는 그 핵심을 꿰뚫어 보시는 힘에 놀라게 된다. 그때는 큰스님의 눈빛과 이마가 유난히 빛났고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내가 교수가 되고 난 뒤 「불광」지에 글을 쓰면서, 또 논문을 쓰기 위해 경전에 대해 여쭈어 볼 때의 일이었다. 큰스님은 확고한 지성과 부드러운 감성을 겸비하시고 실천 수행까지 철저히 하시는 종교인이라는 생각을 그때 다시금 했다.
큰스님의 말씀대로 전생의 인연 때문이겠지만, 금생에 큰스님을 가까이 뵈올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행운 중에 행운이었다. 항상 미소를 머금으셨던 큰스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글 송암지원
http://www.donggukin.org/news/articleView.html?idxno=240169
첫댓글 큰스님께서 보편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셨다는 일화입니다. 누구나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똑 같이 대하시며 칭찬의 충격요법을 자연스럽게 하십니다.
일화들 속에서도 보면 한결같은 큰스님의 모습이 보이듯이 이 글도 큰스님의 한결같은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셨습니다.
이 글을 쓰신 백경임 님의 글을 인터넷 검색하니 동영상이 있어서 주소를 복사합니다.
가정교육과 교수님으로 <불교의 가족관>에 관한 정각원 강의 내용입니다. 1시간 정도의 내용으로 목소리가 아름답습니다.
상대의 장점을 찾아 이야기해주면 참으로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도 장점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한공덕생명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_()()()_
좋은글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최고!!^^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마음 속의 음악 소리...
마하반야바라밀..._()_
광덕큰스님 자비하심이 느껴집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마음속에 어떤 맑은 노랫소리가 들리는데 밖으로 소리 낼 수는 없어.”- 자비가 그저 울어나오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참으로 높고 맑으신 큰스님 이셨습니다..누구하나 차별없이 부처의 불성을 그대로 꿰뚫어 보시며 대하시는 모습에서 차별심이 소리없이 자꾸일어나는 제 모습을 견주어 많이 많이 참회해야 할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언젠가 기회되면 한번 정식으로 글로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보현행원에 첫걸음을 내딛고 기이한 인연으로 보현행원의 책을 내게 될때, 출판사와 제목을 상의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내게 불현듯 떠오른 제목이 <행원의 노래>였습니다. 왜 행원을 <노래>라고 했는지, 그때는 이유를 알지 못했어요. 그냥 그렇게 <행원의 노래>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너무 직설적이라 제목으로 채택되지는 못하고, 제목은 다른 걸로 하고 <부제>로 <행원의 노래>라고 제목 옆에 붙게 되었지요. 그리고 행원의 노래라는 제목은 책안의 chapter로 따로 붙이게 되었고요.
그런데 그후 송암스님이 펴낸 시봉일기를 보니, 이런 일화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하!하고 잠시 탄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큰스님이 고운 노래말을 지으시고 왜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셨는지도 알게 되었지요.
행원은 끝없는 우리 <일심의 울림>입니다. 그래서 <노래>에요! 우리 안에 깃든 무한한 불성이, 그렇게 노래로 나오는 게 보현행원이랍니다.또한 보현행원을 하면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불성이 울리게 되요! 마치 종을 치면 종소리가 울려나오듯, 행원을 하면 우리 안의 불성이 그렇게 노래로 울려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행원을 하는 분들은 어두워질 수가 없어요. 왜냐? 우리가 본래 광명 덩어리거든요?
닦아서 광명덩어리가 아니라, 본래가 광명덩어리이기에 보현의 종을 치면 광명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미워질래야 미워질 수가 없고, 잔인할래야 잔인해 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게 우리 모두의 본모습이요, 우리 모두의 본래 소식이지요! 그래서 <행원의 노래>인 겁니다. 우리 모두가 부를 수 있는, 부처만 아니라 중생도 부를 수 있고, 인간만 아니라 미물도 부를 수 있는, 그리고 유정물만 아니라 무정물까지도요. 그러니 보현의 세계에서는 일체 만물이 모두 살아있는 겁니다! 그것도 <진리생명>으로요!
그러니 이 국토가 <화엄국토>가 되는 겁니다. 더하고 빼고 닦고 쓸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깃든 본래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모두가 진리로 그리고 진리 생명으로 빛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화엄이지요.
우리 마음이 본래 맑고 곱기에,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든, 아무리 거칠고 모진 중생이라도 모두가 본래는 맑고 곱기에, 본래가 부처이기에, 부처님처럼 모두 그렇게 자비롭기에, 우리는 악인을 봐도 악인으로 볼 수가 없고,행원으로 그분들을 모시면 모두가 본래의 그 고운 모습을 보이시게 되지요.
따라서 행원의 자리에서는 악인은 없어요! 가난하고 불쌍한 이도 없어요! 모두가 존엄하고 모두가 부처님 생명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할 그런 분들이지요. 저분이 부처가 못되고 악행을 하고 어리석은 일을 하는 건 모두 내가 서원과 행이 부족해 저분을 부처님으로 만들어 드리지 못해서 그럴 뿐, 저 분의 탓은 아닌 것이지요! 이것이 보현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보현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이 세상의 진실상입니다.
이런 말씀은 언제 다시 한번 제가 정식으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땐 한분도 빠지지 말고 꼭 읽어 보시기요...
하나 더. 우리 큰스님이 참 좋아하신 노래가 뭔지 아세요? 슈베르트의 <보리수>랍니다.
진리의 소리...자비의 말씀 감사합니다 ...어제 보리수 법명을 가진 보살님을 뵈었었는데...^^
슈베르트의 보리수...흥얼흥얼..다시한번 그 가사에 감동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큰스님 몸으로 보여주신 법문 다시 새겨 간직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오늘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마찬가지로, 세상은 모두 공경, 찬탐, 섬김의 대상일 뿐입니다., 찬탄의 , 섬김의 들로 가득합니다.
세상을 향해 공경, 찬탄, 섬김의 노래를 퍼부을 때,
세상은 온통 공경, 찬탄, 섬김의 노래로 화답합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또한 그렇게 됩니다,
공경의
이것이 화엄경 보현행원품이 제게 가르쳐준,
불가사의한 해탈세계, 우리가 사바세계로만 아는 우리 세계의 진실한 모습입니다.-보현명상 언어中 -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긴 글의 법문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