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간의 긴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다녀와서 긴 잠을 잤습니다만 바뀐 시차에 헤메이다 늦은 일기를 올립니다.
벨기에에서 묵었던 한 호텔입니다. 넓은 보리밭 들판 한가운데 2백년 넘은 옛 농가를 개조한 아담한 호텔의 다락방에서 묵었지요.
새벽에 일어나 보니 호텔 앞마당에 양떼가 보이길래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가만히 보니 조각상 이더구만요.^^*
회사 업무의 출장 길 이었습니다만 북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를 걸쳐 다니는 길 여유로워 보이는 농촌 풍경이 가슴으로 눈으로 다가옵니다. 여기 저기서 만났던 그 동네 도시사람들도 촌에 가서 농사짓고 사는게 꿈이라고 합디다.^^*
5월 28일 토요일
일을 마치고 귀국하던 토요일,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무의도에 들렸습니다. 공항이 있는 영종도에서 아주 가까워 잠시 틈을 내어 방문을 했지요. 근처에 실미도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에는 아주 혼잡한 곳이랍니다.
찾아간 곳은 자연농업으로 포도재배를 하시는 실미원님 부부의 농장입니다.
마침 도시 소비자들을 초청하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던 중이더군요. (손수 기타 반주를 하며 한곡 뽑으시는 멋진 실미원님^^*)
앞바다에서 잡아온 동죽이란 조갯국을 큰 대접으로 한 그릇 주시길래 한주간 느끼한 음식에 질려있던 주린 배를 한 껏 채웠습니다. 손수 담으셨다는 기가 막힌 포도주와 함께... ^^*
포도원 내부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화분 삼아 양액재배로 포도나무를 키우는 아주 독특한 재배방법입니다. 아무도 시도한 바 없었고, 농대 교수님들의 “절대불가”라는 판정을 무시하고 분재를 키워보았던 경험을 토대로 한번 해 보자는 실미원님의 농부고집으로 멋지게 성공을 시킨 농법입니다. 작년까지는 고가의 수입산 양액으로 재배하였지만 올해부터는 자가 제조한 자연농업 액비로 시도 중입니다. 잘 될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아주 성공적이랍니다. 저지대 논 위에 하우스를 만들었기에 침수피해를 고려하여 컨테이너를 허리춤 높이로 설치하였고 흙 바닥에 잡초들을 그대로 방치하여 해충 유인식물로 활용해서 지금까지 농약 없이도 해충의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았답니다.
사진은 바닥에서 절로 자란 소리쟁이인데
진딧물들이 포도나무가 아닌 이 풀에만 잔뜩 달라붙어 있어
아주 신기하더군요.
농약이 없으니 온갖 벌레들이 제 세상이고 곳곳에 크고 작은 거미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잡초와 작물, 해충과 익충이 공존하는 건강한 생태계, 도시 소비자들도 이런 광경을 보면 더욱 큰 신뢰를 보내겠지요.
창고에는 각종 자연농업 자재가 제조날짜와 함께 항아리 마다 가득했구요, 칠판에는 농사메모가 꼼꼼하게 적혀있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대접과 친절한 농사이야기를 듣고 떠나오기 전에 행복이 철철 넘치는 실미원 내외분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상업논리가 점령한 고가의 유기농 자재와 기술로부터 독립하여 농민 스스로가 연구, 개발하고 스스로 만든 자재를 활용하자는 자연농업의 철학을 머리와 가슴으로 실천하시는 실미원님 부부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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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일요일
한낮까지 늦잠을 자고 오후에 부모님을 모시고 밭에 다녀왔습니다.
감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촉이 나서 제법 무성하게 자랐고 옥수수와 헛골의 호밀도 경쟁하듯 키를 높이고 있습니다만 긴 가뭄에 고추들이 좀 비실거리고
비어있던 콩밭이랑들은 봄 잡초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했군요. 때를 놓쳐 콩밭 헛골에 호밀씨를 뿌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지난 달 화분에 심어놓았던 고구마 순을 꺾어보니 50여주가 되길래 남새밭 서너 평에 두둑을 짓고 심었습니다. 물을 주고 심기는 했지만 워낙 가물어 걱정입니다. 주중에 한차례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있기는 한데...
참, 이야기 안 해드렸지요? 몇 주 전, 엉성한 오두막 안 나무기둥 틈에 작은 새 둥지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어제 가 보니 딱새인듯한 작은 새 한 마리가 후두둑 하면서 날아가더군요. 둥지를 비운 틈을 타 가만히 들여다 보니 알록달록한 작은 알이 6개가 얌전히 놓여있습니다. 이녀석들 허락도 없이 집주인 보다 먼저 입주를 한 셈 입니다만 ^^* 함께 살면서 (뭐, 일주일에 한번씩 쫓겨나야 하긴 하겠지만) 인기척에 놀라지 말고 별 탈없이 부화해서 이 아름다운 세상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해가 많이 길어진 5월의 끝, 산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지는 밭둑에 앉아 저녁 해를 바라봅니다. 한동안 부산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이내 먼곳의 벗들이 그리워지는 시간 허전한 마음 한귀퉁이의 아쉬움을 접고 다시 가로등 환한 도시로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햇빛과 그늘 사이로 오늘 하루도 지나왔다 일찍 저무는 날 일수록 산 그늘에 마음 베인다
손 헤도 별은 내려오지 않고 언덕을 넘어가지 못하는 나무들만 내 곁에 서 있다
가꾼 삶이 진흙이 되기에는 저녁 놀이 너무 아름답다
매만져 고통이 반짝이는 날은 손수건 만한 꿈을 헹구어 햇빛에 늘고 덕석 편 자리만큼 희망도 펴 놓는다
바람부는 날은 내 하루도 숨가빠 꿈 혼자 나부끼는 이 쓸쓸함
풀 뿌리가 다칠까 봐 흙도 골라 딛는 이 고요함
어느 날 내 눈물 따뜻해지는날 오면 나는 내 일생 써 온 말씨로 편지를 쓰고
이름 부르면 어디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릴 사람 만나러 가리라
써도 써도 미진한 시처럼 가도 가도 닿지 못한 햇볕같은 그리움
풀잎만이 꿈의 빛깔임을 깨닫는 저녁 산 그늘에 고요히 마음 베인다
(산 그늘에 마음 베인다/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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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리 먼 곳을 다녀오시고도 지기님은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차분하신거예요? 연륜 탓이라하면 누구(?)처럼 삐치실테고 원래 성격이 그러하다면 좀 재미없는 사람같을테고..아무래도 차분함에도 등급이 있고 경지가 있음이분명해!! 어쨌든 오랫만에 지기님 글로 오두막마을에 등을 켠듯합니다~^^*
지기님의 마음은 가득한데 도시의 훤한 그림자가 지기님의 마음을 베어 버리지나 않는지..
반갑습니다. 나무지기님!! 저도 "하루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야만 할 듯한 분위기를 내포하시는거 아세요??
잘 다녀오셨군요. 오시는 길에는 또 멋진 농장도 방문하시고...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그럼 조만간에 또 뵙겠습니다.
^^* 나무지기님 앞에서면 제가 좀 많이 쫄아요. 너무 완벽하셔서리. ㅎㅎ. 되도록이면 제가 피해다니는 것 아시지요?
몸건강하 잘 다녀오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ㅎ 재미없는 사람 맞습니다요^^* 요즘, 몸도 마음도 좀 무겁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