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시대 2019 여름호 』가 배달되었습니다.
이번호에는 저의 졸고 수필 <생애 가장 행복한 출판기념회> - 세상에서 가장 조촐한 출판기념회 後記가 실렸습니다. (본문에 들어간 사진은 대전문인총연합회[문총] '카페용'으로 올렸는데, 편집진에서 사진까지 지면에 실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애 가장 행복한 출판기념회
- 세상에서 가장 조촐한 출판기념회 後記
윤승원 수필문학인
졸저 수필집이 출간됐다. 출판사에서 책을 택배로 보내온 날은 마침 어머니 기일(忌日)이었다. 어머니 뵈러 산소에 가는 날, 공교롭게도 내 책이 도착한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가장 먼저 칠순의 누님이 내 책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생, 참으로 고생했네. 이 책을 만드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책 표지 색깔도 내 마음에 쏙 들고, 정성이 많이 들어갔구먼! 축하하네. 어머니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네. 동생 책 어머니 산소에도 가지고 가세.”
역시 누님이었다. 동생을 위로해 주시느라 찬사의 말씀이 넘친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황금색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넨다. 이게 뭐냐고 했더니, “몇 푼 안 되지만 동생의 귀한 책을 그냥 받을 수 없어서 노란 봉투에 조금 넣었어. 황금색은 행운과 복을 부른다네.”
누님의 깊은 정성과 사랑에 감동했다. 더구나 어머니 산소에도 책을 가지고 가자는 말씀은 동생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 누님이 주신 황금색 봉투 - 동생의 책을 가장 먼저 받아 보신 누님이 이런 봉투를 주셨다. 극구 마다해도 동생의 주머니에 찔러 주셨다. <황금색>은 '행운과 복'을 부른다고 하셨다. 그보다 더 감동적인 '사랑의 말씀'이 어디 있는가 싶어 가슴 뭉클했다. 더 큰 감동이 이어졌다. "부모님 산소에 동생 책을 가지고 가자!"는 말씀이었다. ※ 봉투에 삽입한 문자는 필자 스마트폰 갤러리 메시지 기능
그렇잖아도 어머니 산소 앞 상석(床石)에 새 책을 올리고 ‘보고’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누님이 먼저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의 겸연쩍음은 덮어지고, 숨어 있던 용기가 슬며시 되살아났다.
누님을 모시고 충남 청양의 선산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찾아갔다. 술잔을 올리고 내 책도 상석에 올려 드렸다. 책 속에 글[어머니께 드리는 편지글]도 한 편 독축(讀祝)하듯 낭송했다.
▲ 부모님 산소 - 새로 나온 수필집을 들고 맨 먼저 부모님을 찾아가 상석에 책을 올리고 '보고' 드렸다. 부모님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따뜻한 '격려의 말씀' 주셨다. 가장 뜻 있는 '출판기념회'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쌍분(雙墳 : 같은 묏자리에 합장하지 아니하고 나란히 쓴 부부의 무덤)이니, 아버지께서도 옆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생시에도 집안 대소사에 이런 저런 잡다한 참견보다는 늘 말씀이 적으셨던 어머니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지켜만 보셨다. 옆자리 아버지께서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셨다.
“오늘이 너의 어머니 제삿날이냐, 자식 책 출판기념일이냐?” 누님이 동생 대신 고(告)하였다. “둘 다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우리들의 술잔 받으시는 것보다 동생의 책을 받아 보시는 것이 더 기쁘시지요?”
아버지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동지섣달 긴긴 밤 사랑방에 혼자 누워 있으면 저 책을 쓴 승원이가 눈이 어두운 이 아비에게 책을 읽어 주곤 했었지. 역사책도 읽어 주고, 신문도 읽어주었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글도 쓰는 법이어. 오늘 너희들이 가져온 그 책 속에 무슨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오늘은 죄다 읽어주지 않아도 이미 내용 파악 다했다.”
어머니께서도 그제야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농사꾼 너희 아버지는 자식이 글을 써서 상 받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셨어. 막내가 글을 써서 방송국에서 상을 탄 적이 있는데, 우체부(집배원)가 소액환(원고료)을 가져왔어. 그 돈으로 동네 어르신들에게 막걸리 턱을 했지. 이 책 속에 그런 얘기도 들어 있다니, 기념할만하구나.”
굳이 이름 붙이자면 부모님께서 자식 출판기념회에 ‘격려사’와 ‘축사’를 동시에 하신 셈이다.
이튿날이었다. “윤 선생님,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합시다. 책을 내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않습니까?” 교육자이자 수필작가이신 K 선생님의 전화였다.
K 작가는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말씀을 이어갔다. “B 작가님도 좋아 하시고, Y 작가님도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자리를 함께 하기로 약속해 놨습니다.” K 작가의 주도적인 역할로 ‘책 출간 기념 - 4인의 수필문학인 저녁 식사 모임’이 이렇게 성사됐다.
출판기념회의 본뜻은 저자 자신이 책을 자랑하기 위해 요란하게 개최하는 것이 아니다. 책 출간을 기념하면서 또 다른 목적을 이루려고 거창하고 화려하게 개최하는 게 출판기념회 본질이 아니다. 세(勢)를 과시하듯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자기 홍보하는 정치 선전장이 진정한 의미의 출판기념회가 아니다. 출판기념회는 보통 남들이 해 주는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책을 냈을 때 제자들이 마련하는 자리다. 평소 저자의 글과 인품을 좋아하는 친구나 가까운 문사들이 따뜻한 정을 담아 조촐하게 열어주는 게 출판기념회다.
그렇다면 K 작가가 주도적으로 마련해 준 ‘4인의 수필문학인 저녁 식사 모임’은 조촐하지만 출판기념회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는 자리여서 기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 신간 수필집『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출간 기념 저녁 식사 - K 작가의 주도적인 역할로 <4인의 수필문학인 저녁 식사 모임>이 대전 둔산동의 한 음식점에서 이뤄졌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조촐한 출판기념회였지만 저자에겐 평생 잊지 못할 뜻깊은 출판기념회였다.
K 작가의 ‘건배사’가 저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책 만드시느라 고생했어요. 윤 선생께 가끔 전화하면 손자 목욕시키느라 전화도 제대로 못 받으시더라고요. 어느 때는 <×싼 손자 밑 닦아 주느라 전화 못 받았어요.>라고 문자가 오더라고요. 노년에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게 책을 내셨으니, 이렇게 조촐하게라도 축하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조촐한 출판기념회였지만, 저자에겐 평생 잊지 못할 뜻 깊은 출판기념회였다. ■
-『한국문학시대 』2019년 여름호
첫댓글 참 멋진 드라마와 같은 한편의 글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대화는 더 큰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곁에 그런 마음이 통하는 누님이 계셔서 지극한 행복을 누리시는 것을 실감합니다. 형제남매는 부모님으로부터 시간을 달리하여 태어난 각기 다른 존재이지만 마음이 통하는 순간 부모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한 몸이 됩니다. 효자, 효녀이시군요. 저도 윤선생과 같은 멋진 출판기념회를 가질 기회가 왔으면 합니다. 현재 '사학사를 통해본 한국통사'를 집필중입니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수필이란 글은 필자가 주인공이기에 부끄럽고 두려운 글입니다. 지면에 발표한다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글이 소개되고 나서 조마조마 긴장하는 필자에게 존경하는 정박사님이 위로와 격려가 담긴 과찬의 말씀을 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死後 孝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은 생시에 그토록 염려하던 자식들이 평탄하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산소에 가서 '보고' 드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박사님 효심을 저는 만분지 일도 못 따릅니다. 과분한 격려 말씀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효자는 아들 손자에게 전해질 때에 살아있는 효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윤선생은 효에 있어서나 글을 쓰심에 있어서 제가 따라가야 할 분이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이는 진심에서 하는 말씀이외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정박사님 말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모두 새겨 들어야 할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효자(효심)는 아들 손자에게 전해 질 때 살아 있는 효가 된다"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효>란 말씀이 가슴에 꽂힙니다. 진정한 효는 대를 이어 실행에 옮겨질 때 살아 있는 효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효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사례는 많습니다. 효를 말로 강조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평소 일상 생활을 통해 마음에서 우러나서 조상님 음덕에 감사하고 살아계신 어르신께 정성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낙지리 구순의 장모님 뵙고 오면서 아들과 차안에서 그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