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몽고 연합군의 일본침략
1차 침입
고려 원종 15년(1274) 9월에 원종이 승하 하자,
태자 심이 원나라에서 돌아와 등극하나 충렬왕이다.
몽고의 세조는 고려 백성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일본을 정벌할 목적으로 고려 조정에 계속 압박을 가해왔다.
충열왕은 1274년 김방경을 원나라에 보내 고려에 힘든 사정을 알린다.
김방경이 귀국하려 하자, 세조는 활 1천발 ,
갑옷 이 백 여벌을 주면서,
일본을 침입할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였다.
원종 15년 10월 초순, 일본의 원정군은 900여척의
배로 함포(마산)에서 출정을 한다.
김방경은 도독사(都督使)가 되어 고려군 5천 3백여명을 통솔했다.
원나라는 흔도가 원수가 되어 이끈 병사가 2만여 명이다.
해마다 이맘 때 폭풍이 불어 닦치는 철이다.
폭풍에 배들이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물에 빠져 죽은 군사가 1만 3천 5백여 명이다.
배도 200여 척이나 파손 되어서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가 없어 철수를 하였다.
2차침입.
충렬왕 7년(1281) 5월에 원나라는 입본을 침략키로 하였다.
고려와 몽고는 10만의 군사를 동로군과 남로군으로 갈랐다.
동로군은 고려군 일 만명, 몽고와 한나라 군사 3만명에
배는 900여 척이다.
동로군의 장수로는 김방경, 몽고 장수로는 혼다가 이끌었다.
강남군은 중국 강남의 군사 10여만 명에
배는 3만 5천 척의 대군이다.
바닷가 마을들을 공격하면서 하카다(博多)에서 적과의 싸움에서,
저항이 강해 육지에 상륙 할 수가 없었다.
두 달이 지나도 싸움은 계속되었다.
배안에서 싸우느라 때 아닌 전염병으로
군사 3천여 명이 죽어 갔다
7월이 되자 큰 태풍이 불어왔다.
배들은 거의 파손이 다 되어 벼렸다
몽고군 10만 여명, 고려군 8천여 명이 희생되었다.
실패로 끝난 전쟁이다.
광산김씨 약사
2023년, 6월 편집 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