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공부를 하다가, 시험이 의외로 일찍 끝나길래 볼만한 공연이 뭐가 있을까!
하며 찾다가 시험 끝나는 날에 코심의 말러 5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몇몇 오페라 반주로 코리아심포니의 연주를 들었을 때 상당히 불만이긴 했지만 새 상임 지휘자의 취임 공연이고
말러 5번인데다 코심을 관현악 연주로만 들은적이 없어서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은 하이든 교향곡 88번 G장조, 말러 교향곡 5번이었습니다.
하이든 교향곡 88번은 들어본 곡이 아니었지만, 역시 다른 고전파 교향곡들처럼 앙상블 맞추기가 꽤 까다로워 보이는 곡이었습니다.
베이스와 바순에서 빠르고 복잡한 패시지가 나오는데 앙상블이 확실히 잘 맞는 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현악 주자들의 스피카토도 정확하여 날카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목관 쪽에서 상당히 긴 호흡을 요구하는 패시지들이 나왔는데 모두 잘 해냈습니다.
2악장의 오보에와 첼로 솔로 멜로디가 특히 좋았습니다.
3악장 미뉴에트 같은 경우, 평범하게 연주하면 그저 식사용 배경음악이 되버릴 수도 있는데 리듬감을 확실히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적절한 아고긱도 좋았구요. 4악장의 마무리도 굉장히 깔끔했습니다.
1부만 보아도 적잖이 준비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현악 앙상블이 상당히 정교했기 때문에 말러 5번에서도 어려운 푸가토 패시지 등을 멋지게 잘해낼 수 있을것 같다는 기대도 들었구요.
팸플릿을 보니 트럼펫 수석은 객원인 유병엽 씨였습니다. 경희대 음대 폭행 사건이 터진 뒤에도 계속 연주 생활은 하시나보네요... 트럼펫 솔로의 기량은 말러5번을 소화해내는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처음 시작 때 긴장해서인지 템포가 살짝 불안했지만요. 투티의 사운드는 음량도 충분히 크고 밸런스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교향곡 전체적으로 보자면 확실히 관보다 현이 더 뛰어났습니다. 3악장 호른 솔로야 워낙 어려운 부분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끝냈던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튜바는 중요한 부분마다 소리를 아예 제대로 못내거나 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구요. 목관은 몇몇군데서 확신이 없는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중요한 솔로 패시지들은 대체로 잘 해냈지만요. 1악장의 장송행진곡 멜로디나, 2악장의 빠른 부분에서 현이 잘해주었습니다. 현의 앙상블이 잘 다듬어졌다는게 1부에서도 티가 났는데 4악장과 5악장에서 특히 빛을 발했습니다. 5악장 푸가토는 정말 깔끔하게 잘했어요.
지휘자 최희준씨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는 좀 엄격한 인상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전혀 다른 인상이어서 놀랬습니다.
사진에서도 잘 보이지만 이마가 많이 드러나시구요 ^^;;
뭔가 만화 캐릭터를 닮은 것 같기도하고, 여튼 굉장히 인상 좋은 분이었습니다.
키도 상당히 크고 몸도 마르셔서 지휘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상당히 독특했어요. 므라빈스키를 상상하시면 좀 비슷할것 같습니다.
성부간 균형을 상당히 신경쓴 것 같은데, 자세한 스타일은 표현하기 어렵네요. 여튼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지휘자가 한 분 더 생긴 것 같아 좋습니다ㅎㅎ
몇가지 공연 외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팸플릿을 2000원이나 주고 파는건 좀 황당하더라구요. 내용은 정말 아무것도 없던데... 민간 단체이니 그려려나 싶었습니다.
장일범 씨가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곡 소개를 하셨는데 준비가 좀 부족하고 시간도 촉박했는지 자연스럽게 진행되진 않았습니다. 내용 중에서도 좀 의아한 부분도 있었구요.
2부가 시작하기 전에 프로젝터로 '2부의 말러 교향곡 5번은 일본 지진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연주됩니다' (정확한 문장은 아닙니다만)라는 글을 내보냈습니다. 한참 전에 정해진 프로그램일텐데 이렇게 막 갖다 붙이는 것도 좀 아니다 싶더라구요. 그냥 '추모하는 마음으로 연주하겠습니다'라고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마치 말러 5번을 선정한 이유가 일본 추모를 위해서였다- 라는 식으로 내보내니까 그냥 생색내기로 밖에 안 보였습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에 일본 재앙 추모를 위해서보다 최희준씨와 코리아심포니의 새 출발이 궁금해서 오는 거였을 텐데요. 코리아심포니 측에서 정말 추모하고싶었던 마음이 있더라도, 개인마다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러 5번을 '일본 추모 기념'으로 못박고 연주하는 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공연장에 놀러가면서도, 학교의 잇따른 자살 사건으로 정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도 학교 생활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적도 있고, 올해 초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인도 영화 '세 바보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비슷해 한참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코리아심포니의 말러 5번을 들으면서도 그 생각이 안날 수가 없었어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말러의 교향곡을 공연장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항상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비록 음향 상태라든가, 연주자의 기량 같은 것은 음반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지만서도 계속 말러 공연을 찾게 되는 것은 공연 하나하나가 매번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최희준씨의 말러 5번을 보며 눈물도 흘리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마침 구자범씨가 떠난 광주시향의 새로운 상임지휘자 루드비히의 취임 공연이 있어 보러갑니다. 구자범 씨가 떠난 광주시향은 어떤 모습일까요. 과연 취임 2년간의 '구자범 바이러스'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구자범씨가 뿌린 씨앗이 앞으로도 계속 자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사실 아침 10시반에 리허설을 공개했다고 하는데 피곤해서 못갔네요ㅜ 갔다 와서 후기 써 볼께요ㅎㅎ
첫댓글 자세한 공연후기 감사드립니다. 많이 궁금했는데... 그래도 나름 좋은공연을 해준 것 같네요. 말러 5번 공연본게 언제였던가 싶을만큼 오래됐는데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는군요. 최희준 지휘자의 역량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의미깊은 취임연주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그나저나 광주시향도 보러 가신다구요? 와~ 동해번쩍 서해번쩍!! ㅎㅎ 대단하신 울 다샘님... 광주시향 후기도 기대해보겠습니다^^
음...저는 말러에 대해 아직 잘모르는데 코리안 심포니의 말러를 듣게 되었네요~^^저는 관악기 연주자라 잘은 모르지만 1악장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 연주는 건강한소리로 자신있게 잘연주 되었다생각되고~ 3악장 호른의 솔로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잘 연주하신듯 합니다. 말러 1번 교향곡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데 카페 어디에 정보가 있을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