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평생 가장 극혐한 인간이 있음.🥹
총을 든 사람도
거짓말하는 사람도 아님.
"타인을 평가밖에 할줄 모르는 인간"
그리고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한 단어로 정의함.
르상티망(ressentiment).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임.
근데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음.
이걸알면 왜 그사람이 그러는지 이해하게 됨
<도덕의 계보학 - 니체>
이 책의 핵심개념 중 하나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것 대부분이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못 이겨서
만들어낸 복수의 도구다."
이게 이 책의 코어임.
하나씩 풀어줄게.
니체 본인 얘기부터 해야 함.
니체는 24살에 대학교수가 됨.
박사 학위도 없이.
당시 학계가 다 충격 받음.
"천재가 나타났다."
근데 28살에 첫 책을 냄.
「비극의 탄생」.
이 책이 학계에서 박살남.
문제는 비판한 사람들이었음.
다 니체보다 어린 신참 학자들.
본인 책 한 권 못 쓴 사람들이
"니체는 학자가 아니다"라고 떠들고 다님.
니체는 그때부터 학계에서 외톨이가 됨.
옆 분야로 옮기려고 신청했지만 거절.
강의실은 점점 비어감.
건강도 같이 무너짐.
35살에 대학을 떠남.
이 7년이 결정적이었음.
평가받는 입장에서 7년을 살면서
한 가지를 깨달음.
본인 작품 못 만든 사람일수록
남 평가에 시간을 더 씀.
근데 더 무서운 건 그 다음이었음.
그 사람들은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걸
인지조차 못 함.
본인 머릿속에서는
"학문의 수준을 지키는 정의로운 비판"이었음.
니체가 여기서 한 발 더 나감.
"잠깐.
그러면 우리가 매일 쓰는 '도덕'이라는 것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거 아닐까?"
이 의심 하나에서
「도덕의 계보학」이 시작됨.
도덕이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어느 시점에 만든 거라면.
언제 누가 왜 만들었냐.
이걸 따라가본 책.
니체가 추적한 결과.
옛날에는 "선 <-> 악"이 아니었음.
"고귀함/비천함"이었음.
귀족이 사냥하러 가면? 고귀함.
농부가 진흙에서 일하면? 비천함.
이게 도덕적 비난이 아니었음.
그냥 사실 묘사에 가까웠음.
"저 사람은 귀족이고 저 사람은 평민이다."
귀족은 자기 행동을 "고귀하다"고 부르고
귀족이 아닌 모든 걸 "비천하다"고 불렀음.
여기까진 단순한 신분 구분.
근데 어느 순간 뒤집힘.
비천하다고 불리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시작함.
"잠깐. 우리가 약한 게 아니라
저 귀족들이 나쁜 거 아닌가?
힘이 있는 게 죄 아닌가?
부자가 죄 아닌가?
강한 게 죄 아닌가?"
이렇게 정의를 통째로 뒤집음.
힘 = 악.
약함 = 선.
직접 못 이기니까
정신적으로 이긴 척한 거.
이 뒤집기가 르상티망의 출발점.
여기서 르상티망이 정확히 뭔지 짚자.
한국어 "원한"으로 번역되는데
원한보다 훨씬 정교함.
핵심 두 가지.
첫째, 즉시 화내는 게 아님.
화나서 바로 따지면 그건 그냥 분노.
르상티망은 따질 힘이 없어서
속에서 누적되고 발효된 감정임.
둘째, 본인이 본인을 모름.
본인 머릿속에서는 "정의로운 비판"임.
"저 사람이 잘못된 거야"라고 진심으로 믿음.
근데 진짜 동기는 단순함.
"내가 못 한 걸 저 사람이 했다.
견딜 수 없다."
이 자기기만이 르상티망의 본질.
르상티망 가진 사람의 특이한 능력이 있음.
본인 머릿속에서는
이런 흐름으로 돌아감.
"내가 부러운 게 아니라
저게 진짜 잘못된 거야."
"저게 잘 되면 세상이 망해."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해."
"그게 바로 나야."
부러움 → 분노 → 사명 → 자기 정체성.
이게 한 사람 안에서 한 달이면 일어남.
본인은 모르는 채로.
니체가 이 메커니즘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이 있음.
리하르트 바그너.
니체가 한때 신처럼 따르던 음악가.
독일 음악의 거장.
니체가 어느 날 깨달음.
바그너는 평생 신을 부정하던 사람이었는데
말년에 갑자기 기독교 오페라를 작곡함.
「파르지팔」.
니체한테 이게 충격이었음.
"이 사람은 강해 보였는데
사실 약했구나.
종교한테 굴복한 거구나.
약자가 만든 도덕에
강자가 무릎 꿇은 거구나."
니체는 평생 친구를 끊음.
근데 여기서 한 번 더 비틀림.
니체의 바그너 비판이 좀 이상했음.
한 번 끊고 끝낸 게 아님.
죽기 직전까지 글을 쓰면서
계속 바그너를 깎음.
학자들이 의심을 시작함.
"잠깐.
니체의 바그너 비판도
혹시 르상티망 아닌가?"
바그너는 거장이었음.
니체는 학계에서 외면당하고 있었음.
니체 본인이 분석한 그 메커니즘에
니체 본인이 빠진 거 아니냐는 의심.
이 질문은 지금도 학계에서 결론이 안 남.
근데 이게 책을 더 위대하게 만듦.
르상티망을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사람이
본인이 르상티망에서 자유로운지
본인도 확신 못 함.
니체가 일기에 비슷한 의심을 적은 적이 있음.
"내가 X를 비판하는 게
그가 가진 걸 내가 못 가져서일 수도 있다.
이 의심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게 니체를 진짜 철학자로 만든 부분임.
분석한 함정에 본인도 빠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한 사람.
이 책이 100년 넘게 팔리는 이유.
"비판하는 사람이 더 똑똑한 사람이다"라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착각을 박살냄.
비판? 분석? 깊이?
전부 아닐 수 있음.
남을 깎는 데 쓰는 에너지의 총량은
본인이 못 채운 결핍의 총량과 같음.
비판은 똑똑함의 증거가 아니라
약함의 증거일 수 있음.
니체가 짚어준 신호 4가지.
1. 자기 작품 얘기보다 남 작품 얘기를 더 함.
2. "진짜 X"와 "가짜 X"를 자주 구분함.
3. 다수가 좋아하는 걸 자동으로 의심함.
4. 본인이 못 도달한 자리를 "원래 저급한 자리"라고 부름.
이 4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면
르상티망이 본업이 된 사람임🥹
누가 SNS에서 누군가를 단정 짓고 있으면
"저 사람 본인 작품이 잘 안 되고 있구나"
하면 됨.🥹
잘 되고 있는 사람은
남 평가에 시간을 안 씀.
자기 일이 재미있어서.😘
도덕의 계보학 핵심 흐름:
본인 작품 못 만듦
→ 평가가 본업이 됨
→ 시기가 도덕으로 바꿔치기됨 (르상티망)
→ 카테고리 만들기 시작
→ 본인은 좋은 쪽 자동 배치
→ 결국 르상티망이 정체성이 됨
이 책 한 줄:
"비판은 똑똑함이 아니라 결핍의 표현일 수 있다."
이 한 마디면 됨.
카페 게시글
쉴만한 물가
르상티망(ressentiment)_니체
예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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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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