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 운동화를 사려고 집 근처 대형마트에 들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웬 아줌마가 아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잘못 들었으려니 했는데, 아이를 부른 것이 맞다.
아이를 세우더니 네가 oo 지? 친구 oo 왕따 시키고 협박했니?
왕따, 협박 뭔 말들인지 무시무시한 단어들로 내 머리가 혼란스럽다.
생판 모르는 아줌마 앞에서 아이는 아니라고 고개를 내 젓는다. 면전에서 내 아이를 세워놓고
따지고 드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단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조치를 취하겠노라며
집에 왔다.
말로만 듣던 왕따!
내 아이가 왕따 당하는 것도 걱정이지만 친구를 왕따 시키는 무리에 끼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으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아줌마 말이 사실이야? 네가 친구들과 함께 친구 oo 왕따 시키고 못된 행동 한 게 사실이야?
솔직히 말해." 처음엔 두려워서인지 아니라고 하더니, 이내 자백을 한다.
oo가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인데, 몇 이서 친구를 둘러싸고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말로는 장난이었다고 하는데.. 아이들 장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같은 반 여자아이가 이 모습을 보고 왕따 당하는 그 친구가 불쌍하다며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한 모양이다.
그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힐 사건이었다.
"네가 장난으로 한 행동이 그 친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 줄 알고 한 행동이냐?
왕따 당해 자살했다는 뉴스 못 봤냐? 그 친구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
엄마 아들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
잘못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첫째 거짓말(처음에 안 그랬다고 잡아뗀 죄) 한 것, 둘째 친구 왕따 시키고
잘못된 행동 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잘못에 대한 벌로 스스로 다섯 대 맞겠다고 한다.
힘껏 다섯 대를 때린 후 앞으로 오늘 맞은 매를 절대 잊지 말라고 했다.
그리곤 친구에게 용서를 빌러 가자고 했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큰 아이에게도 늘 강조하는 말이다.
잘못을 하고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숨기는 것은 용기 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아이 손을 끌고 친구 집을 찾았다. 친구 엄마와도 안면이 있었고 아이 들도 집을 오가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친구 엄마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아이들 사이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미안하다고.. 아이 잘 이해시키고 상처받았다면 위로해 주라고..
그 엄마도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속상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아이를 잘 알고 있던 터라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끼리도 사과하고 용서하라며 둘만의 시간을 주었다. 친구에게도 아줌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니,
"아니에요. 아줌마. 장난으로 그런 거예요."
아이는 아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다. 워낙 착한 아이여서 그렇다.
어쨌든 아이 마음에 상처가 됐을까 봐 마음이 안 좋았다. 아이와 집으로 오는 길, "우리 아들, 잘했어.
우리 아들이 진정한 사나이야." 혹시나 오늘 일로 내 아이 마음도 다쳤을까 봐 안아주며, 잘했다 격려해 줬다.
"진정한 용기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것 아닐까?
이 시대에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자신의 잘못을 어쨌든 숨기기에만 급급하고 나중에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많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내 아이들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것도
부모의 욕심일까?
작가의 서랍에서 꺼내 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