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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자연 선택 이론을 향하여 – 친족 선택, 유전체내 갈등, 발달 체계 이론
이 글은 『진화 심리학의 이론적 기초』에 포함될 것입니다.
뉴턴의 이론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 즉 일반 상대성 이론이 더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등학교에서는 뉴턴의 이론을 가르치며 많은 기술자들이 뉴턴의 공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뉴턴의 이론이 더 쉽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에우클레이데스(Non-Euclidean,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미적분을 짬뽕한 미분 기하학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수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우 어렵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뉴턴의 공식과 아인슈타인의 공식의 결과 사이의 차이는 아주 미미하다. 따라서 뉴턴의 공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빛의 속도에 근접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나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는 경우에는 그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사용해야 한다. 요컨대, 뉴턴의 공식은 아인슈타인의 공식의 근사치이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때도 많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 매우 다른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에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더 어려운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사용해야 한다.
자연 선택의 경우에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모델이 필요하다. 우선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보자.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이해하기는 가장 쉽지만 가장 부정확하다. 이 모델에 따르면 자연 선택은 자식 낳기 경쟁이다. 더 많은 자식을 낳는 자가 경쟁에서 승리한다. 이 때 단순히 낳은 자식의 수만 따져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식을 낳는 족족 즉시 몽땅 스스로 잡아 먹는다면 아무리 많은 자식을 낳아도 진화론적 측면에서 보면 망한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 나중에 번식할 수 있을 때까지 생존하고 번식에도 성공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직계 자손이 얼마나 번성하는지가 자연 선택의 기준이 된다. 이것이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59)』에서 제시한 자연 선택의 모델이며 여기에서는 직계 자손 모델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모델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직계 자손을 낳는가를 따지는 고전적 적응도(classical fitness)다.
직계 자손 모델은 친족과 밀접하게 상호 작용하는 생물의 경우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친족들이 모여 커다란 군락(colony)을 이루며 사는 개미의 경우가 이 모델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군락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체인 일개미들은 유전적 구성을 보면 암컷이지만 보통은 아예 자식을 낳지 않는다. 자식 낳기 경쟁이 자연 선택의 유일한 논리라면 일개미의 진화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 수수께끼는 일개미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를 관찰해보면 풀 수 있다. 일개미는 군락을 위해 거의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군락의 “목적”은 차세대 여왕 개미와 수컷 개미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차세대 여왕개미는 일개미의 여동생이며 수컷 개미는 일개미의 남동생이다. 결국 일개미의 노력은 방계 자손을 더 많이 낳을 수 있는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
일개미 속에 있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일개미의 직계 자손이 번성하느냐 방계 자손이 번성하느냐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방계 자손에도 자신과 똑 같이 생긴 유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물이 방계 자손을 위해서도 애쓴다. 고전적 적응도의 경우에는 직계 자손만 따지는 반면 포괄 적응도(inclusive fitness)의 경우에는 직계 자손과 방계 자손을 모두 따진다. 이것이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이 「The Genetical Evolution of Social Behavior(1964)」에서 제시한 모델이며 흔히 친족 선택 이론이라고 부른다. 해밀턴 이전에도 친족 선택과 관련한 단편적인 통찰들이 있었지만 온전한 개체군 유전학(population genetics, 집단 유전학)적 모델을 제시한 것은 해밀턴이 최초였다.
이 모델은 직계 자손 모델에 비해 더 복잡하지만 더 정확하다. 뉴턴의 공식은 물체가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느릴 때에는(중력 문제는 잠시 무시하도록 하자) 아인슈타인의 공식과 거의 비슷한 값을 산출한다. 마찬가지로 직계 자손 모델은 친족과 상호 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생물의 경우에는 친족 선택 모델과 비슷한 것을 예측한다. 반면 빛의 속도에 근접하는 경우에 뉴턴의 공식과 아인슈타인의 공식의 산출 값은 매우 다르다. 마찬가지로 개미처럼 친족과 매우 밀접하게 상호 작용하는 경우에는 직계 자손 모델에 비추어보았을 때에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친족 선택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레고르 멘델은 다윈이 한창 활동할 시기에 이미 유전 이론을 발표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학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멘델의 이론이 발굴된다. 그 후 한 동안 멘델의 유전 이론과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이 마치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취급 받다가 1930년대에 로널드 피셔(Ronald Fisher), J. B. S. 홀데인(Haldane), 슈얼 라이트(Sewall Wright) 등의 기여로 두 이론이 통합된다. 해밀턴이 포괄 적응도 모델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통합 덕분이었다. 다윈 시절에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유전자가 이제 자연 선택 이론의 핵심을 바꾸어서 더 온전한 이론이 탄생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품고 있는 개체가 포괄 적응도(inclusive fitness)를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대체로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개체는 자신의 번식을 위해 애쓰거나 친족의 번식을 위해 애씀으로써 포괄 적응도를 높일 수 있다. 개체가 번식을 해야 개체 속에 있는 유전자가 미래 세대의 유전자풀(gene pool)에 존재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자신의 복제를 최대화하려는 유전자의 경향과 자신의 포괄 적응도를 최대화하려는 개체의 경향은 대체로 동등하다. “대체로 동등하다”라고 쓴 이유는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 개체가 포괄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과 어떤 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최대화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스틴 버트(Austin Burt)와 로버트 트리버즈(Robert Trivers)가 쓴 『Genes in Conflict: The Biology of Selfish Genetic Elements(2006)』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어떤 갈등이 있을 수 있는지를 매우 간략하게 소개할 것이다.
세포의 핵에도 유전자가 있지만 미토콘드리아에도 유전자가 있다.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유전자는 난자를 통해서만 미래 세대로 복제된다. 반면 핵에 있는 유전자는 정자를 통해서도 복제될 수 있다. 이것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개체가 정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핵 속에 있는 유전자들끼리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의 경우 보통 감수 분열을 통해 핵 속에 있는 유전자 중 절반만 생식 세포에 포함된다. 통상적인 경우 어떤 유전자가 생식 세포에 포함될 확률은 50%인 것이다. 만약 어떤 유전자가 이런 메커니즘을 교란하여 자신이 생식 세포에 포함될 확률이 50%가 넘도록 만든다면 그 과정에서 개체의 포괄 적응도에 손상이 가더라도 그 유전자에게는 유리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유전자에게는 불리하다.
세포 속에 있는 여러 유전자들 사이에 이해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생물은 포괄 적응도를 최대화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진화할 수 있다. 어떤 유전자가 포괄 적응도에 손상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해 관계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에 대한 철저한 고려 때문에 진화 생물학자들은 결국 유전자 이론의 산물인 포괄 적응도 모델까지 어느 정도 파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개체는 포괄 적응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친족 선택의 명제도 결국 온전한 자연 선택 이론의 근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더 온전한 이론을 위해서는 유전체내 갈등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포괄 적응도 개념을 사용한 개체 수준의 분석으로는 정확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개체의 수준이 아니라 유전자의 수준에서 자연 선택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개체 수준에서의 분석은 근사치에 불과하다.
영어로 유전은 inheritance고 유전자는 gene이다. 서로 어원이 완전히 다르다. 반면 한국에서 쓰는 번역어인 유전과 유전자는 한 글자만 빼고 똑 같다. 이것은 유전과 유전자를 동일시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불행한 일이다. 보통 유전자는 DNA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생물의 경우에는 RNA로 구성되어 있다. 유전자에 대한 정의가 여럿 있기는 하지만 모두 DNA나 RNA와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유전자가 유전의 유일한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발달 체계 이론(developmental systems theory, DST)에서는 지금까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비유전자 유전(non-genetic inheritance)에 주목한다. 발달 체계 이론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수전 오야마(Susan Oyama), 폴 그리피스(Paul Griffiths), 러셀 그레이(Russell Gray)가 편집한 『Cycles of Contingency: Developmental Systems and Evolution(2001)』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위에서 유전자가 고려되기 전의 자연 선택 이론인 직계 자손 모델에서 유전자 이론이 통합되면서 친족 선택 모델이 탄생하고 유전체내 갈등까지 고려하게 되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비유전자 유전 메커니즘의 존재가 하나 둘 밝혀지면서 더 온전한 자연 선택 이론을 위해서는 비유전자 유전까지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20세기 생물학에서 유전자 혁명은 엄청난 발견들로 이어졌다. 한편으로 분자 생물학 분야에서 유전자가 단백질 합성에서 하는 역할이 상당 부분 밝혀졌다. 다른 한편으로 개체군 유전학의 발전 덕분에 친족 선택, 상호적 이타성(reciprocal altruism) 이론 등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생물의 이타성 중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유전자만 고려한 자연 선택 이론은 여전히 온전하지 못하다. 유전자 중심론(gene centrism)은 틀렸다기보다는 온전하지 못하다. 아직 발달 체계 이론이 비유전자 유전 메커니즘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서 쓸모 있는 예측을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듯하다. 그래서 유전자 중심론자들로부터 철학적 사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온전한 자연 선택 이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비유전자 유전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적 모델을 만들어야 하여 이것을 유전자 유전의 이론과 통합해야 한다. 이것은 미래의 진화 생물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는 “이렇게 쉬운 이론을 왜 나는 생각해내지 못했을까”라는 식으로 한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화 생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이 자연 선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자연 선택 이론은 매우 골치 아프며 여전히 미완성이다. 다윈과 월리스가 생각해낸 자연 선택의 핵심 아이디어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그로부터 시작하여 온전한 이론적 모델을 만들려는 시도는 온갖 골치 아픈 것들로 이어졌다. 자연 선택 이론을 심리학에 적용하려는 진화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골치 아픈 것들까지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첫댓글 "유전체내 갈등"에 대해서는 과문합니다. 관련 책/사이트/논문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위에 예로나온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인간의 유전자의 진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유전자가 아니라 외부 다른 종이 인간에게 흡수 된 유전자라고 합니다.......세포막이 이중구조라는 점과 여러 특성이 미토콘드리아가 인간과 다른 종의 유전자임 증명한다고 합니다(일반생물학)....식물의 엽록체도 외부에서 들어온 유전자라고 하고요...미토콘드리아가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고 인간에게 기생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한다면.....세포질 유전을 통해서라도 유전자를 남길수 있다면......그런 방식으로라도 유전자를 남길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은거 아닐까요? 살아남은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위에 예로나온 개미가 보이는 행동 특성이 일반적 종의 개체가 보이는 특성과 불일치 하는 매우 강한 이타심을 보이지만....개체의 범위를 확대해서 개미 집단 하나를 종의 한 개체에 대입시켜 보면 개미 한마리는 인간의 세포 하나와 동일시 할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몸의 세포 중 생식세포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포들도 세포 단위로 보면 무한한 이타주의 자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관념적 생각이지만요;;;
유전자가 유전자의 이익(배에탄 사람)과 개체의 포괄적응도(사람이탄 배)를 동시에 높히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말은......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자는 "다른 배와 경쟁해서 살아남은 배"에 타고있는 "같은 배에 타고 있는 다름 사람과 경쟁해서 살아남은 사람" 이라는 말의 다른 해석이 아닐까요? ...........이상 단편적인 생각을 나열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