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즐기기 ②비 오는 날 생각나는 그 맛, 그 집
- 1원조녹두집의 ‘ 해물파전’. 2혜성 칼국수의 ‘닭칼국수’.
■비 오면 떠오르는 어릴 적 추억의 맛
조선일보 음식담당 김성윤 기자는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음식으로 닭칼국수를 꼽았다. "여름이 되면 할머니가 항상 뜨끈뜨끈한 닭칼국수를 만들어 주셨어요. 닭을 푹 고아 만든 진한 육수에 직접 반죽한 칼국수 면을 넣은 후 닭고기살을 찢어 꾸미로 올렸지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이 요맘때가 밀을 수확하는 시기라 예부터 닭고기와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햇밀로 닭칼국수를 만들어 시절음식으로 먹는 풍습이 있더라고요. 어른이 된 지금 장마철 몸이 으슬으슬할 때면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뜨끈뜨끈한 닭칼국수 한 그릇이 생각납니다." 김 기자가 할머니의 닭칼국수가 생각나면 종종 찾아간다는 혜성 칼국수(02-967-6918, 동대문구 청량리동 50-18)는 1968년 문을 열어 45년째 한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그야말로 오래된 맛집이다. 닭칼국수(6500원)와 멸치국수(6500원) 2가지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이곳 닭칼국수는 닭을 밤새 끓여 국물이 뽀얗고 진한 것이 특징이다. 칼국수 면은 반죽부터 썰기까지 모든 것을 직접 손으로 한다. 양도 푸짐하다. 반찬은 직접 담근 김치가 전부지만 적당히 익어 아삭한 김치 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는 손님이 있을 정도라고.
■빗소리 들으며 들이켜는 막걸리와 제철 요리
- 해달밥술의 ‘산야채전’ ‘능 이버섯모둠볶음’ ‘가지선’ ‘광어조림’ ‘오디막걸리’.
음식 관련 케이블 채널 올리브TV의 옥근태 PD는 비 오는 날에는 술과 맛있는 음식 생각이 절로 난단다. "음식과 전국의 맛집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직업의 특성상 항상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있죠. 요즘같은 장마철에는 촬영 후 동료들과 비 구경하며 촬영 지역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에 막걸리 한잔 곁들이던 게 생각납니다." 옥 PD는 비가 오는 날이면 해달밥술(02-322-4748, 마포구 동교동 150-19)의 음식들이 궁금하다. 이곳은 정해진 메뉴 없이 그날그날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물 좋은 해산물과 제철 채소로 만든 다채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1인당 일정 금액(1만5000원 전후)을 내면 한정식 못지않은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든 효소로 음식 맛을 낸다. 인공감미료가 들어 있지 않은 진천막걸리에 생오디를 갈아 넣은 오디막걸리는 오디 수확철인 여름에만 판매한다. 산에서 뜯은 취나물, 다래순 등을 넣고 기름에 부친 산야채전, 당일 울진군에서 가져온 자연산 광어로 만든 광어조림, 들깨가루와 땅콩가루로 만든 드레싱을 곁들인 능이버섯모둠볶음 등 매일 색다른 메뉴를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소한 전과 된장 풀어 담백한 민물매운탕
음식 칼럼니스트 전우치씨는 비 오는 날이면 종로와 을지로 등의 골목 속 단골집을 찾는다. "몇 년 전 서울의 오래된 맛집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위해 취재를 다녔어요.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와 을지로의 골목 사이사이 얼마나 많은 맛집들이 숨어 있는지, 마치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었지요. 그때가 장마철이었는데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들어간 곳이 전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어요. 고소하고 맛있는 전에 반해 단골이 되었지요." 전씨가 추천하는 원조녹두집(02-2277-0241, 중구 입정동 272-8)은 일흔이 넘는 노부부가 28년째 운영하는 곳으로 해물파전, 고기녹두전 등 13가지의 다양한 전을 맛볼 수 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쪽파, 오징어 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마지막으로 달걀을 풀어 지져내는 해물파전(9000원)은 이 집의 인기 메뉴다.
전씨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장마철에는 민물매운탕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어릴 적 외가에 놀러가면 삼촌이 직접 잡은 메기로 매운탕을 끓여줬어요.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어릴적 먹었던 뜨끈한 메기매운탕 생각이 나요." 전씨가 즐겨 찾는 전라도집(02-2274-2481, 종로구 종로5가 493-1)은 민물매운탕으로 40년간 영업해 온 식당이다. 메기잡고기매운탕(2만원)은 된장을 넣어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