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둔치와 어머니의 남새밭
나는 그곳에서 강물에 헤엄치는 물고기며, 물결 파장따라 일렁이는 수초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곳엔 강이 도심을 흘러도 둔치(고수부지는 동일어인데, 그게 일본 냄새가 난다고...)엔 온통 잔디밭(그걸 나는 골프연습장이라 불렀음)을 만들어 잔디를 보호하니 그게 못마땅 하던 터이다.
자연을 보호하는건 홍수때 물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일정 공간은 나무와 풀이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관리하는 것이 좋은게 아닌가?
강변을 걷다보면 자주 보이는 빛바랜 글씨의 팻말이 있다. '하천법....' 그곳에선 농사를 짓지 말라는 표식이다.
그곳 사람의 손이 간 경작의 흔적들, 작은 땅데기들, 남(국가)의 땅이니 규모가 클리가 없다.
문득 어릴적 장꼬방(장독대)옆 서너평 됨직한 작은 남새밭 생각이 떠올랐다. 웬만하면 집집마다 그런 공간이 있어 급한 먹거리를 조달했다.
우리집의 구조는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오른편엔 남향으로 지은 본채와 동향으로 보는 아랫채가 있었다.
그 가운데쯤 장꼬방이 있고, 장꼬방 주변엔 키큰 앵두나무와 어릴적 내가 얻어다 심은 빨간꽃의 칸나가 심겨져 있었다. 남새밭은 그 장꼬방 뒤편, 돼지우리와 토끼사육장 곁이다.
그 남새밭은 기후가 허락하는한 많은 채소들을 품고 지냈다. 시금치, 상추, 옥수수, 것절이, 봄동, 강낭콩...
그 작은 밭은 어머니의 단골 마트였다. 겨울지나 걷잎 얼다녹은 배추포기며, 여름철 보리밥상에 강된장 찍어먹는 푸성귀들, 아무튼 남새밭은 없는 살림에 한끼 반찬을 만들어 내시는 어머니의 마이다스의 손을 돕는 조력자 역활을 톡톡히 내는 것이었다. 그런 남새밭을 볼때마다 가난한 시절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변의 그 작은 남새밭(?)들을 보면서 세상 인심을 조명해 보았다. 관에서 농사를 짓지말라고 하니, 그걸 곧이 곧대로 따르는 사람, 그러건 말건 현상을 유지하는 사람, '설마 니들이 어쩌랴?' 하는 생각으로 작은 비닐막까지 설치하는 배짱도 있었다.
나로서는 사람들이 활용하는 공간을 문제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려진 황폐된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물가, 특히 서민들이 일용해야할 채소값 마져 비싸져가는데, 수급조절 못하는 정부를 보면 둔치의 빈땅들에 파란 채소들이 자라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렇다고 국가가 텃밭 농사를 방치하면, 앞에서의 힘의 원리를 작동하여 상업용으로 활용할 여지는 충분하니 지킴이의 고민도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