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종목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딴 금메달의 승전보를 듣는 것이
너무나 통쾌하고 감격스러워서,
밤새 잠을 설치고 난 뒤라 비록 몸은 피곤하더라도 마음은 깃털과 같다.
어제 오후 7시,퇴근무렵 우생순의 기적을 다시 한번 일으킬 여자 핸드볼선수들이
최강 노르웨이와의 시합에서 후반전 내내 2-3점을 리드당하는 불리한 시합을 종료 30초를 남기고
상대방의 실수로 잡은 공을 어김없이 슛-골인시킴으로 동점으로 만드는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세계 제1위 주포 김 연경이 활약하는 여자배구가 지금까지 7연패를 당하던 세르비아를 이기고
그 다음 상대로 세계 랭킹 2위인 브라질을 셧-아웃시키는 것을 보니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깜짝쇼를 또 보일런지 상당히 기대된다.
7연패의 기적을 계속 이어가는 여궁사들의 16강전을 보는 사이에
이름도 생소한 샤브르 펜싱에서 얼짱 검사 김지연이 그리고 사격에서 4차원 소녀 김장미가
결승에 올라서 승리하는 장면을 보지도 못한 채 금메달을 하나씩 획득했다는
기분좋은 뉴스가 T.V의 자막에 올랐다.
자정이 넘도록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던 33세의 노장, 송 대남이 한 편의 드라마도 같은
인간승리의 감동을 연출하고 우승대에 올라가서 태극기를 올리고 애국가을 울리게 하는 장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도저히 이길 수없을 것같던 막강한 상대를 이기고 결승전에 오르면서
" 지금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김연경의 말대로
우리의 선수들이 제 정신을 잃지 않고서야 이렇게 잘 싸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금메달이 6개,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3위를 계속 유지하고 여기에다
5위 북한까지 한몫을 더해 런던 올림픽에서 스포츠강국 코리아의 강한 인상을
세계인들에게 보이고 있는 놀라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음미해야 할 것인가?
36년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에서 최종 결승전에 오른 양정모가 몽고의 오이도프선수에게
10대8의 스코어로 진 상태에서 종료부자가 울리자 껑충껑충 뛰며 환호하던 장면을 보면서
온 국민이 함께 얻어 누리던 그 짜릿한 쾌감과 가슴벅찬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합에는 졌지만 금메달을 딸 수있었던 것은 미국선수가 오이도프를 이겨 주었기 때문이다.
1936년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이래 40년만에
태극기를 단 대한민국의 선수로써 최초로 얻어 낸 값진 금메달이고 애국가가 이 때 처음으로 울러퍼졌다.
항상 공한증으로 우리 팀에게 주눅이 들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중국축구의 이상한 징크스가 이제는 일본,노르웨이나 미국선수들에게 까지 제대로
전염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펜싱 3연패를 노리던 최고의 미국 펜싱선수가 시합이 끝난 후 얼떨떨한 상황에서 당한 패배를
도저히 이해할 수없다고 했다.
그리고 분명히 반판승으로 이기고 있던 송대남선수가 종료 직전에
일본의 니시야마에게 기습적인 밧다리 후리기의 기술로서 오히려 한판패를 당할 수있었음에도
한판으로 선언한 판정을 번복하여 반패로 인정한 주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노장선수의 마지막 쾌거였다.
외국에 나가보면 40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위상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 큰 감동을 주었던 가이드 선생도 15년전 I.M.F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해 한국이 완전히 망할 수밖에 없겠다는 비관적인 무드가 한동안 교포사회를 지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6.25 동란으로 온 국토가 폐허가 되고 경제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제로 포인트에서
오뚜기같이 일어 난 한국이 온갖 시련과 위기를 극복해서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되고
세계 제일의 반도체, 휴대폰,T.V등 전자제품,자동차를 생산하는 일류기업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한류문화의 폭발적인 인기가 세계를 휩쓸고 이제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예술이나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최고의 수준임을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해외교포들의 민족적인 자긍심과 자존감을 크게 만족시켜 준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있음을 이번에 그랜드캐년을 여행하는 중에 만난 20대의 예쁘고 발랄한 미국 아가씨들이
나를 보고 K-팝가수의 이름을 나렬하면서 최고라고 엄지 손으로 츄켜세워 주는 것을 보고 확인할 수있었다.

일본 나리다 공항에서 책을 몇 권 샀다.
" 일본인,한국인 중국인 "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중국과 함께 동양 3국의 대등한 라이발로 인정을 한 것도 놀랍지만
그 내용을 읽던 중 작가가 한국의 I.T 분야에서 앞서가는 젊은이들의 실력을
높이 평가를 하고 초식동물이라고 비하하는 일본청년들에게 없는 기백과 도전정신을
많이 부러워하고 시새움하는 것을 볼 수있었다.
반도체나 전자업계는 이미 자기들이 따라 잡을 수없는 수준까지 갔고
다른 원자력이나 첨단산업계에도 상당히 경계하고 조심해야만 한다고 엄쌀을 떠는 모양이 싫지는 않았다.
잠시 생각해 본다. 40년,80년,120년의 세월을,
예지의 증조 할머니는 처음으로 지금부터 80년 전,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나왔다.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밤새 창문에 스며들어 오는 가로등의 불빛을 보고
누군가가 전봇대에 밤새도록 메달려서 호롱불을 켜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사람이
불쌍하고 측은해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40년전 예지의 할아버지는 방학때만 되면 서울에서 내려온 조카들이 집에서 사나흘간 놀다가
돌아갈 때면 언제나 대구역에까지 마중을 가서 떠나는 기차를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했다.
그 당시 대구에서 서울까지 8시간이라는 굉장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를 타 보는 것이 꿈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번씩 회고를 한다.
그래서 돈을 벌면서 세계여행을 마음껏 할 수있는 대학에 입학을 했고
직업상으로 아니면 순수한 여행의 목적으로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좋은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쌓아오면서 " 꿈은 항상 이루어진다 "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40-50대에 와이즈맨 타워클럽 활동을 하면서 일본의 자매클럽의 초청을 받아서
히꼬네에 가서 3박 4일의 귀한 홈-스테이 경험을 아이들이 할 수있었던 것이 참 좋았던 것같다.
어릴 때부터 외국이나 외국사람들에 대한 친밀감이나 국제감각을 키워줄 수있었다.
어쩌면 그 때 벌써 세계로 향하는 큰 비젼의 씨앗이 그들의 마음밭에 뿌려졌을 것이다.

부산 근교 내원사 계곡에서

일본 사토클럽 초청 홈 스테이 3박 4일여행을 가며 " 88 올림픽호 " 에서

현성이 입대기념 동남아 여행을 가서 방콕에서
10개월,20개월되는 예지와 서린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웰로스톤까지 다녀왔다고 하니까 놀라면서 나무래는 친구들도 있었다.
웰로-스톤이 언제 폭발할 줄 모르는 화산지대이고 10000군데나 되는 간헐천에서 부글부글 물이 끓고
가스가 올라오고 주기적으로 분수같이 물을 뿜어올리는 것이 장관이긴 하지만
유황냄새가 자욱하고 수시로 비,바람이 불고 안개가 낄 때는 더럭 겁이 나게끔 하는 그 위험한 곳에
간난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참 무모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웰로스톤을 사흘간 구경하는데 날씨의 변덕이 심해서 비와 안개로 아이들이 상할까봐 노심초사 하였습니다


예지는 많이 피로하면 이렇게 담요를 물고 잠을 청하지요. 모처럼 서린이의 표정이 활짝,아주 흡족스런 표정

저녘식사는 푸짐하게,두툼한 비프스테이크에 모두 만족스런 표정, 할아버지 부부가 부러운듯이 바라보네요.,
일주일 동안은 현성이가 직접 가이드가 되어 8인승 차를 렌트하고 운전해서 다녔다.
아침,점심은 한국에서 가져 간 헷반으로 떼우고 저녁만 제대로 먹고 허름한 호텔에서
숙박을 했음에도 비용은 상당히 많이 들었다.
팩키지 여행으로 안전하고 편리하게 다니는 것보다 고생은 되지만 재미는 있었다.
3박 4일의 패키지 여행인 그랜드 캐년에 동반하지 못한 현성이네는
나중에 알고 보니 웰로스톤에 다녀온 뒤 한 주일동안 서린이가 39도가 넘는 고열과 몸쌀로
밤새 울어서 마음을 졸이며 안타까와서 마음 고생을 엄청나게 했다고 한다.
아이에게는 무리한 여행스케쥴이고 조심하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생각이 부족했다는
자책감으로 특히 며느리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귀국하기 하루 전에 호텔을 찾아 온 아들과 며느리는 서린이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방긋,방긋 웃어주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이역만리에서 부모의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자력으로 육아의 고초를 몸소 겪어나가는 둘이에게 한참이나 미안하고 또 안스럽고 안타까웠다.
하늘에 계시는 서린이의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당신의 방법과 다르게 자식들을 너무 겁이 없고
자유롭게 키우고 있다고 우리를 보고 나무래시지나 않을런지 걱정이 된다.
이번에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딸이 주고 받았던 대화이다.
" 나는 30년 키워서 네 덕분에 미국을 구경할 수있었는데
30년 뒤에는 예지가 너희들에게 달나라 구경이나 우주여행 정도 시켜 주겠지? "
그래서 우리는 우주여행의 꿈을 안고 내일을 향하여 큰 기대와 희망을 가져본다.
첫댓글 온 가족이 뜻 있는 여행을 즐겁게 하셨군요. 정말 이런 식으로 발전하면 다음 세대는 달나라 구경, 우주 여행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러운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남는 것은 여행인 것같습니다.그리고 사진이 있는한 그 이야기는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지니까요
50년,100년뒤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