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서일지(2024.07.04~07.25)*
<7월 8일 월요일>
시간의 마법
그녀는 모든 면에서 아주 유연해.
오래전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이렇게 인생을 향해 전력질주 했고,
이제는 그것에 탄성이 붙어
모든 일이 스스로 알아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1
가스검침원을 기다리는 시간
창밖으로 장맛비는 내리고
《닥터 지바고》는 손 안에서 속삭인다
¹아무 댓가도 없이
어찌 이런 여름이 주어졌는가?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채
양쪽 세계의 여름을 오간다
이렇게 여름을 보낼 수 있다니
이렇게 여름을 보내도 되는 건지
곧 가스검침원이 방문할 텐데
열어둔 창문 틈으로 튄 물방울이
설핏 들려는 잠을 깨운다
¹<1854년 여름>이란 제목으로 러시아의 대표적 서정시인인 표도르 이바노비치 튜체프(1803~1873)가 지은 시.(《닥터 지바고》, 제9장 <바르이키노>에 수록됨)
2
괜히 책을 많이 빌렸을까. 제대로 읽으려면 온전히 작품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다른 책까지 읽어야 하는데 《닥터 지바고》를 읽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상상했던(어떻게 해서 《닥터 지바고》가 쉽게 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을까?), 줄거리보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들려주는 여러 가지 사유(思惟)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탓에 꼼꼼하게 이해가 되도록 읽다보니 그런 것이다.
백석의 시를 깊이 읽기란 부제로 나온 《백석시, 백 편》, 개그맨 전유성의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법의인류학자의 삶을 그린 《발굴하는 직업》 등의 여러 가지 책을 잠시 두서없이 읽어본다.
한 권의 책만 줄곧 파고드는 방법도 좋지만,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독법도 독서의 한 방법으로, 다양한 주제의 책이 주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제각각의 책을 돌려가며 섭렵하다 보면 참신하고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 독서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이전 경험에서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주가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이 주는 부담감과 아침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장맛비의 영향으로 독서에 대한 소신(?)이 잠시 흔들리며 후회 비슷한 자책감이 몰려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뒤돌아보면 애초 계획했던 대로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밭으로 치면 출발점으로부터 돌을 골라내고 제법 흙을 일군 탓에 조금만 더 일구면 이제 갖은 씨(감자, 고구마, 방울토마토, 마늘, 상추 등)를 뿌려도 될 듯하다. 이런 게 바로 시간(時間)의 마법(魔法)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3
-그는 그녀 쪽을 바라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려고, …(중략)… 한 손으로는 책을 앞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무릎에 올려놓은 다른 책을 잡고 집중해 책을 읽었다. (제9장 <바르이키노> 중에서, 《닥터 지바고》)
유리 안드레예비치가 피난 간 도시 유랴틴의 시립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라라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의 독서습관인데, 굳이 작가가 주인공 유리 안드레예비치의 독서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도 재미있지만, 1910년대 당시 러시아는 모두들 그렇게 독서를 했던 건지, 작가를 비롯한 주인공만 특이한 그런 자세로 책을 읽었는지를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이다(왜 읽지 않는 책을 책상에 두지 않고 불편하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읽었을까).
-혁명의 무법자들이 두려운 것은 그들이 악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철로에서 탈선한 열차처럼 조종할 수 없는 메커니즘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제9장 <바르이키노> 중에서, 《닥터 지바고》)
주인공 유리 안드레예비치가 러시아를 혁명의 도가니로 몰고간 적군들을 향하여 라라에게 비난의 소리를 퍼붓는 장면이다. 즉, 그는 혁명을 장구한 인간역사라는 궤도에서의 ‘순간이탈’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랬을 때 역사가 늘 대응해 온 사회적 메카니즘이 이런 사례에서는 어떻게 작동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을 성토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역사현실을 돌아볼 때, 이 작품을 쓴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60년 소련에서 사망해서 그 이후를 목격할 수 없었지만, 결국 소련은 혁명이후의 체제를 지키지 못한 채 사회적 붕괴가 일어나고 제정시대는 아니지만 기존의 러시아로 점차 회귀하고 있다.
4
건강한 삶, 새로운 도전
-《도배 달인의 이야기》, 박완규 지음, 좋은땅 2024년판
40대 후반에 다니던 회사(금융업)에서 나와 다소 늦기는 했지만 업종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된다. 낯설고 거친 건설 현장의 도배 기술을 익힘으로서,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과 노후의 안정된 삶으로 생(生)의 터닝포인트를 실현한 박완규 선생의 인생 이야기다.
도배 기술에 입문하게 된 경위, 도배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따고 사업자등록증을 내는 과정, 견적을 내고 인원을 수배해서 하나하나 현장을 일궈가며 성장의 열매를 가꿔가는 인내의 시간, 후배와 제자를 키워가는 기쁨과 권유, 현장에서의 마음가짐과 비전 등을 읽기 편안한 문체, 상황에 맞는 유명한 격언과 사진들을 곁들여 처음 입문하고자 하는 초보자와 호기심을 가지는 일반인들 모두에게 흡족한 결과를 안겨주기에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