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철인3종을 하는 이유. (2023년 군산새만금 하프코스를 완주하며.)
나는 치과의사다. 어쩌다 치과의사가 됐는지 이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나는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 취업을 위해 준비하던 중 기업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면접 직전 입사가 취소되었고 이 일을 친구에게 하소연하자 친구가 나보고 “그럼, 회사 취직하지 말고 치과의사나 해봐. 이제 제도가 바뀌어서 대학졸업하면서 치의학전문대에 입학해야만 치과의사가 될 수 있으니 너도 해봐.” 라는 말 한마디에 학원 등록하고 5개월 간의 열공 끝에 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공부로 날고 긴다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터라 유급을 면하려 똥줄 타며 공부했던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유급없이 졸업해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했고 드디어 졸업. 하지만 진료 경험이 없는 나를 흔쾌히 받아줄 치과는 많지 않았고, 치과의사도 취업난이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던 와중에 선배의 권유로 구강외과 수련을 결심하고, 또 다시 4년간 수술과 공부에 전념하며 달렸다. 생사의 기로에 있는 구강암 환자들을 수술하고 케어하면서, 의사생활의 큰 보람을 느꼈고, 점점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 속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개원도 하고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관심은 오로지 아이들에게 집중되고, 개원 후 치과는 생각처럼 운영이 안되고, 하소연할 친구들도 많지 않고, 점점 소외되는 내 자신이 안타까웠다. 2년 전 큰 마음을 먹고 치과를 이전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꿨으나, 이 마저도 생각처럼 되질 않았고, 매일매일 술에 절어 살았다. 처음에는 매일 맥주 한 캔으로 시작한게, 매일 소주 두 병 이상 마셔야 겨우 잠에 들 정도로 술에 중독되어 살았다. 술을 끊기 위해 병원에 가서 약도 먹어보고, 사이다 콜라로 술을 대신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우울한 감정만 점점 짙어질 무렵, 문득 ‘그래. 내가 수 년간 자전거를 타봤으니 술생각 날 때 자전거를 더 열심히 타보자.’ 라는 마음으로 술을 끊고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자전거를 몰아치며 타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다. 한 순간에 술을 끊은 것이다. 그러던 중 예전에 수영장 다닐 때 회원분들이 ‘자네는 수영도 하고 자전거도 타니 철인3종을 해봐.’라고 얘기했던 것이 생각나 철인3종 클럽을 검색하던 중 강남철인클럽에 입회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오래 탈 때, 마라톤을 할 때에 문득 내가 오로지 내 자신에게만 집중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들 생각, 돈버는 생각 이외에 내가 내 자신에게 집중했던 적이 없었다. 내 스스로가 소중하고, 내가 무언가 할 수 있고, 순간순간 목표를 향해 갈 힘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했다.
클럽 가입 전에는 혼자 운동을 했고 스스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선배님들과 같이 운동 후에는 내가 뭐만 하기만 하면 칭찬일색이었다. ‘뭐지?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살면서 이렇게 칭찬받아본 적이 있었나? 근데 기분이 왜 이렇게 좋지?’ 이런 선배님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작년에 인생 첫 철인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작년 2022 삼척 그레이트맨 올림픽 코스를 첫 출전했을 때, 수영 몸싸움에 충격을 받아 어리둥절 했던 것을 제외하면, 완주에 큰 어려움은 없었고,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올림픽코스 완주 후에야, ‘아~ 드디어 철인에 입문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최종 목표는 킹코스 완주이므로, 올림픽코스, 하프코스를 연습삼아 완주하면 킹코스도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올해 2023 군산새만금 하프코스에 도전했다. 올림픽코스를 해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하지만 하프코스를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결과는 6시간7분 완주. 성공적인 완주처럼 보이지만, 스스로에게는 처참히 무너진 경기였다. 수영을 마치고 자전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페이스 조절 실패로 봉크가 왔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느껴본 봉크는 처음이었다. 기록을 보니 수영도 최고기록, 자전거 초반 페이스도 내가 아니었던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정신이 나갔었나보다. 숨도 잘 안쉬어지고, 어질어질하여 정신도 혼미하고, 몸도 잘 움직여지지 않은 상태로 꾸역꾸역 자전거를 마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뛰어본 달리기 중 최고로 힘든 달리기였다. 첫 1km 뛰는 동안에도 여러 번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태로 21km를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5km 반환점에서 총무님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나보다 1km쯤 앞서 뛰고있었는데 다리를 약간 저는듯해 보였고 나와 비슷한 페이스로 뛰고있었다. 쥐가났나보다. 그리고 날 보며 건넨 한 마디, “완주만해~”. ‘나도 그러고 싶다고…’ 하지만 뛰는 내내 머릿속에 가득 채웠던 ‘이건 불가능해.’라는 생각이 총무님의 ‘완주만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뛰는 내내 완주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근데 완주만(?)하라니? 완주하는거 말고 다른게 또 뭐가 있지? 완주하는게 다 아닌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의심하지 않고 완주만(?) 하겠다는 일념으로 완주했다. 신기한 마법이네.
하프를 뛰는 동안 이대로는 킹코스 완주는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이 상태로 철인을 계속해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만 둘까도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든 경기였다. 하지만 지금 구례 아이언맨 킹코스를 열심히 준비하고있다. 무엇인가 나를 계속 이끄는 것 같다. 내가 왜 이렇고 있는거지? 완주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나는 매우 행복하다. 오로지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내 자신과 대화하며 계획한 대로 나아갈 수 있고, 그 결과에 만족하며 운동한다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선배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포기하지않고 완주만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총무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ㅎ 역시 철인은 멋진운동인거 같습니다. 범상씨도 멋지십니다. 그리고 사진도 추가해주세요. ㅎ
네. 정말 멋진 경기고 운동한걸 되돌아볼때 웬지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있네요. 이 운동 안해봤으면 이런 행복 누리지 못했을텐데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잘 이끌어주세요~^^
대단하세요, 웃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구례 아이언맨도 기대됩니다.
너무나 멋지십니다
진솔한 이야기에 감동받고
더블로 가~~!! 구례대회 반드시 성공하는걸루~~~^^
우와~~~멋있어 멋있어요...구례에서도 완주만 목표로~~ 글구 이제 더이상 울지마쎄여~^^
넵. 선배님들 한분한분 모두 감사합니다. 군산 묻고 더블로 구례가서 '완주만' 하겠습니다~^^
몰두하시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저렇게 열정을 가지고 집중력있게 계획하는 모습을 보니까 소망하시는 일이 다 이루어 지겠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응원합니다....^^
삼종 재밌지요?
그 재미있는 거 20년이상 하세요~
너무나 멋지네요
범상씨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궤적도 대단하고
앞으로도
목표한바 다 이룰겁니다
화이팅!
형님 구례 킹코스 함께 완주합시다~
오호 역시 ~ ...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대단한 분이세요 ..
킹 ! 도 해보면 별거 아닙니다. 잘하려고 하니 힘든거라 생각합니다. 완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젓고 비비고 뛰시면 결과는 예상밖 호기록일꺼라 생각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진솔한 글을 읽어내려가며 가슴이 콩닥콩닥
공감가는부분으로 새롭게 범상님을
알게되었네요~~
역시 멋진 정범상 파이팅입니다~~
코로나때문에 경기후기가 몇년 뜸했고 한동안 홈폐지를안보다가 오늘 군산대회 구래대회 휴기를보니 감동이짠하게 오네유.
범상씨는 올해 철인운동코스는 모두완주하셨네요.
축하합니다~^^
쭉~욱함께운동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