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 시험공부보다 얼굴도장 찍는 게 먼저"
평가 반영되는 표창장도 교육청 인맥 영향 커…
"전문직 출신 교장들 전횡"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전문직(장학관·장학사) 임용시험' 관련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현직 교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교총이 26~28일 소속 교원 544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교원 10명 중 8명(78.5%)이 "교육전문직 인사비리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부의 사례일 뿐"이라고 보는 교원은 21.0%(114명)에 불과했다. 그 원인에 대해 교원들은 ▲투명성·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구조(47.8%) ▲학연·지연 위주의 선발(37.1%)을 주원인으로 뽑았다.
본지가 28일 서울·경기지역 교사 20여명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교사들이 현장에서 경험한 부조리 문제는 장학사 임용시험에 그치지 않았다.
-
◆"장학사 응시하려면 인맥관리 필수"
몇 해 전 장학사 시험에 응시했다 떨어진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시험 과정도 전반적으로 불투명하지만, 특히 현장 실사(實査)에서 인맥이 작용한다는 게 교사들 사이에선 기정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교육청에서 학교 등 교육현장을 지도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직 공무원인 장학사는 일정 경력이 되는 교사 중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데, 2단계 시험에서 30%를 차지하는 학교 현장실사는 다른 학교 교장이나 교육청 장학관 3~4명이 와서 평가한다.
A씨는 "학교에서 했던 일을 서류자료를 근거로 평가한다지만, 아는 사람이 평가하면 아무래도 유리하지 않겠느냐"며 "이 때문에 장학사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은 시험공부에 앞서 학교 밖에서 윗사람 얼굴도장 찍는데 주력한다"고 지적했다.
◆교육청 '라인'에 학교도 골병
교사들은 전문직 인사 문제가 단순히 장학사 시험 응시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학교 현장도 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표창장 수여 문제다. 장학사 시험에 응시할 때 위촉장이나 표창장이 있으면 추가점수를 주는데, 사실상 추가점수 없이는 합격이 쉽지 않아 이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고교 교사 B씨는 "몇 해 전 교육당국에서 주는 상 후보로 학교에서 추천 교사를 선정해 놓았는데, 이른바 '교육청 라인'을 탄 다른 교사가 학교장에게 '교육청에 다 얘기했으니 날 추천하면 수상(受賞)할 것'이라고 해 추천교사가 바뀐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학사 시험에 응시하려면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근무평정(교장·교감·동료가 교사에 대해 내리는 평가) 문제도 심각하다고 교사들은 말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2년 연속 '우' 이상을 받은 교사만 장학사시험에 응시하게 하는데, 이 때문에 교사들이 수업보다는 '윗사람에 잘 보이기'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전문직이 학교장으로 오는 관행 없애야"
취재에 응한 평교사들은 대부분 "전문직과 학교장을 분리해야 학교가 산다"고 주장했다. 일부 교사들은 "전문직 출신 교장이 오면 학교에 없던 파벌도 생긴다"며 "교사들의 전보 결정권을 쥐고 있는 교육청 인사들과 친한 전문직 출신 교장들의 전횡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지난해 내내 교육청 장학관 출신 교장과 교사들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 학교 교사 C씨는 "쓸데없는 학교공사를 추진하기에, 일부 교사들이 다른 의견을 제기했더니 '분란을 일으키니 다른 학교로 전보시켜버리겠다'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교직 경력 25년의 초등학교 교사 D씨는 "전문직 출신들이 교장·교감으로 오는 관행이 문제"라며 "임기 끝나고 갈 자리를 바라보며 학교를 운영하면 결국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 교육전문직
교과부나 교육청, 교육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교사 출신 전문직 공무원. 장학관·연구관은 흔히 학교 교장과 비슷한 직급으로 여겨지며, 장학사·연구사는 학교 교감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