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옛 다이버 15명이 봄빛 드는 통영 풍화리로 모였다. 첫날밤은 지난겨울 동안 쌓은 긴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이튿날은 망산(望山)을 올랐다. 따뜻한 수국(水國)에는 바다를 내다보는 망산이 많다. 통영의 남망산, 한산도 망산(해발 293.5m), 추봉도 망산(256m)이 그렇다. 망산은 등산과 유적 탐사를 겸할 수 있는 산행길이다. 망산은 임진왜란 때 망루를 세울 만큼 시계가 좋은 곳이다. 발아래 점점이 떠있는 수려한 섬들 사이로 물 맑은 바닷길이 흐르는 절경을 볼 수 있다. 봄은 다도해 한려수도의 섬을 징검다리로 겨울을 뿌리치고 서둘러 달려오나 보다. 우리 일행은 두 팀으로 나누어 한산도 망산과 물 맑은 추봉도 봉암몽돌해변으로 트레킹을 나섰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쑤기미의 안내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매화향 은은한 풍화리 허브팬션에서 머무는 동안 23일 저녁은 남해안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물로 조셰프의 솜씨가 바베큐파티를 화려하게 만들었고 이튿날 24일 아침 9시 풍화리를 떠나 11시 한산도를 잇는 여객선터미널로 나갔다. 점심은 승선에 앞서 서호시장에서 산 김밥을 한 줄씩 나누고 승선권을 구입할 때 주민등록증을 숙소에 두고 온 영희씨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기에 종종걸음을 쳐야했다. 하린형수는 전날밤 과음으로 산행은 끝내 빠졌다. 서울의 망개떡과 부산의 팥빵이 산행 비상식으로 훌륭했다. 오후 4시 30분 한산도를 돌아오는 원점회귀 당일산행이다. 통영으로 돌아온 일행은 도천사우나에서 피로를 풀었다. 저녁 7시 통영식당에서 북용 형님이 마련한 유숙명표 도다리쑥국으로 고향의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통영 모임 때마다 쑤기미의 세심한 준비와 안내로 언제나 분에 넘치는 먹거리와 볼거리로 알찬 일정을 잡았다. 아침 11시 우리는 한산도 제승당을 오가는 카페리에 올랐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통영항을 뒤로한 여객선은 불황으로 텅 빈 조선소 도크를 비켜 30분 만에 거북등대가 있는 제승당 나루터에 가닿았다. 한산도로 가는 아침 뱃길은 윤슬 핀 호수를 지나듯 감미로웠다. 배가 입항하자 선착장은 왁자지껄 성시를 이루었다. 한숨을 걸었을까 망산 정상까지 3.9km라는 안내이정표를 끼고 숲길로 접어들었다. 짙은 소나무향에 취한 산새들이 소리 높이 노래하는 오솔길 따라 편백나무 낙엽을 밟으며 걸었다. 능선 따라 번지는 봄햇살을 머금은 동백나무 잎에 메아리 되어 빛났다.
파노라마로 펼치는 사방의 시야 따라 편백나무 숲이 울창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푸른 바다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 같았다. 깊은 숨으로 속세의 피로를 씻어내며 힘겹게 정상을 향했다. 올해로 미수를 맞은 북용형님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형수를 이끌며 A팀의 산행을 리드했다. 조앤과 엘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동안 조셰프가 켚틴 부부의 뒤를 책임졌다. 바다로 둘러싸인 통영에서는 갑갑한 가슴이 탁 트이고 흐릿한 눈빛의 핀트를 맞춰주었다. 그래서 통영의 사계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누군가는 모든 남자가 통영에 오면 가슴 넓은 사나이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통영의 수국은 엄마의 품속처럼 언제 찾아와도 포근하고 따뜻하다.
B팀은 의암항에서 내려 정겨운 섬마을버스를 타고 문어포를 거쳐 한산도를 한 바퀴 돌고 추봉도 봉암에 내려 몽돌해변을 걸었다. 지난 가을보다 바다의 물빛이 맑고 해조음이 가깝게 들리는 것 같았다. 해풍이 싱그러운 진두에서 만난 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제승당 선착장으로 향했다. 켚틴을 비롯한 이곳 출신들은 가는 곳마다 어릴 적 추억에 사무쳤다. 섬 이름인 한산도의 ‘한(韓)’자는 크다는 뜻에서 유래할 만큼 한산도는 통영앞바다에 자리 잡은 큰 섬이다. 그 밖에 ‘한(閑)’자는 ‘막다’라는 의미의 ‘어(禦)’자로 풀이해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무찌른 곳이라 하여 붙였다는 이야기와 통영 앞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다 하여 붙였다고 전해진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산면을 둔덕면(屯德面)이라 했다. 예서 여수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닷길 백리를 한산도와 여수의 첫 글자를 따서 한려수도라 했다. 한려수도의 중심, 통영 앞바다에 펼쳐진 다도해의 정경은 젊은 날의 꿈을 펼치기에 넉넉했다. 한산도를 깃점으로 욕지도와 사량도, 비진도와 연화도, 매물도와 소매물도, 연대도와 장사도 등등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바다를 수놓으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해마다 여름이면 가족 단위 캠핑으로 꿈같은 잠수 포인트를 헌팅하고 장비를 옮기며 활동무대를 넓혔던 지난날의 일들이 새삼스러웠다. 사순시기에 나선 바닷길이 깊은 잠에 빠진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먼 옛날 조선사에서는 이곳에 목장이 있었고 세종 1년 1418년 삼군도제찰사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만 7천 285명을 이끌고 대마도 정벌의 대장정에 오른 대마도 정벌의 전진기지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1592년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제승당(制勝堂)을 설치했고 이듬해인 1593년 에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되어 통영(統營)이라는 지명의 실마리가 된 곳이다. 원래는 한산도가 거제군의 부속섬이었으나 1900년 고종 때 진남군에 편입되고 1914년 용남군과 거제군이 통폐합하면서 통영군 한산면이 되었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지난1959년 사적 제113호로 지정되고 1979년에 마침내 문어포 산정에 거북선을 대좌로 한 높이 20m의 <한산대첩비>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망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봉수터와 유적지가 지난날의 역사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망산은 오늘도 먼 바다를 내다보며 수평선을 응시한다. 25일 아침 준비해온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d았다. 막 피기 시작한 보라빛 히야신스의 짙은 향이 영원한 사랑을 전한다. 서호시장 시락국집에서 브런치를 즐겼다. 일행은 북용 형님이 제공하는 이별의 커피를 나누며 오는 5월 기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2박 3일의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재촉한 부산팀은 거가대교를 지나 남항대교와 북항대교를 거쳐 남천동의 보리밥집에 들렀다. 이별은 노상 아쉬움과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설렘으로 우리를 새롭게 일깨웠다. 통영향토지에 수록된 이순신 장군의 시 한 편을 옮겨 본다.
첫댓글 지난 세월 잠시 머물렀던 통영의 기억들이 지명 하나 하나마다 떠오릅니다...^^*
30여년이 넘은 여름휴가 때 비진도로 향하는 배에서 온가족이 태풍으로 고생하다가
거제도에서 보내고 온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분들의 만남, 제 마음까지도 행복해집니다.^^
역사 유적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사랑이 느껴지며 다이버였던 옛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
눈에 선하고 마음까지 행복해집니다.^^
건필로 건강 보여주심에 감사합니다.^^
국장님 글을 읽으니 낚시대 하나 들고 훌쩍 떠나고 싶지만 사순시기니 참아야 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