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3
권혁웅
대해 건너 동쪽에서는 현왕이 늙어 버퍼링 걸린 화면처럼 느릿느릿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백귀(White Walker) 왕의 저주라 불렀다 백귀 왕은 곧 흑요석 관에서 부활하리라 그의 혈관에는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르며 그의 몸은 살이 아니라 햄버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는 자본의 왕이라 어디든 출현할 수 있다 그의 다른 별명은 버거킹이다
남쪽의 지배자인 기용 1세가 왕위를 찬탈한 과정은 이렇다 처음에 그는 하늘신(Heaven empty god)에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하늘신이 손에 왕의 표식을 내려 주자 그는 용기백배하였다 그 후 선대와 선선대 왕의 처형을 집행하여 촛불 왕의 신임을 얻었으며 이 일로 킹스가드 단장이 되었다 왕이 된 후에는 흑마술로 두 선왕을 되살려내어 수하로 삼았다
그는 왕의 수관(Hand)을 매수하고―그의 이름은 떨어진 별(fallen Stone)이며, 별명은 엄중(嚴僧, Majestic Monk)이다―, 킹스가드 수하들로 협의회(Council) 출입문을 봉쇄한 다음 선양을 강요하였다 반대하는 대학사(Grand Maester)를 참수하고 그의 삼족을 멸하니, 더는 이의를 표하는 자가 없었다 이 사건을 피의 즉위식(Bloody Coronation)이라 부른다
즉위 후에 그는 수관에 좀비를 임명하여 무력화하고 대신 사법대신을 총애하였다 그의 별명도 오래전 폭군의 별명과 같았으니, 이름하여 대담한 학살자(Bald Slayer)다 법을 칼처럼 휘둘러 백성들이 한 집 건너 한 명씩 죽어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하이힐을 신은 죽음이라고 불렀다
기용 1세는 사방의 강대한 왕들을 적으로 돌려세웠으나, 협해와 대해 너머의 왕들 앞에서는 가신을 자처하였다 바다 건너 왕들이 남쪽 왕 보기를 애완견 보듯 하였다 해마다 해류를 타고 선스피어(Sunsphere)에서 독수가 도달하였으나 그는 생수 다루듯 하였다
그는 자객에게 발리리아 강철로 만든 단검을 들려 보내 백주에 민중의 지도자를 척살하였으며, 참수당한 대학사의 가족을 마지막 한 명까지 추격하여 벌 주었다 그것은 얼굴에 묵형을 가하는 형벌로 고졸(古拙)이라 불린다
놀랍게도 그의 뒤에 섭정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숨은 왕은 다면신(Many Faced god)의 사제로 다른 학사와 석사와 박사의 얼굴을 거쳤으며,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발라 모르굴리스, 그가 지나간 곳마다 사람이 죽고 길이 휘며 주식이 구겨진 종이가 되었다 거기에 놀라워라, 하늘신이 현신하여 드래곤마운틴에 강림하니 발라 도하에리스, 민중은 삼위일체를 목도하였도다
온 세상에 암흑이 임하였다 번성한 생물들은 계란판에 둥지를 트는 텃새인 기레기, 떼로 몰려다니며 먹이를 구하는 청소동물인 태그키뿐이었다 왕이 양성한 검사(Sword)들이 영주와 백성을 가리지 않고 잡아들였다 그러나 기적이로다 경동맥을 잘려 피를 뿌리며 쓰러졌던 지도자가, 레드킵 성벽에 목이 걸린 대학사가 부활하였다 이들이 이끄는 무리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실로 그들은 불멸자들(Undying)이었던 것이다
개암나무 가지에 이 글을 걸어 둔다
새, 고통이 그것을 날게 한다
기(記), 무명의 성사가 쓰다
시작노트
1
덤불숲을 기어서, 엉금엉금 기어서, 가다가 늪지대가 나타나면 악어 떼가 나온다. 그게 다가 아니다. 옛날에는 여러 모습의 악어가 살았다. 시모스쿠스는 굴을 파고 살아가던 초식동물이었고 파카수쿠스는 고양이만한 사냥동물이었으며 탈라토수쿠스는 상어를 닮은 해양동물이었는데, 모두 악어의 일종이었다. 악어는 시행을 닮았다. 모든 시가 엎드려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사슴뿔을 키우려면 칼슘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봄에 사슴들은 새끼 새들을 잡아먹곤 한다. 육식을 하는 사슴이라, 으스스하구나. 고래밥 노래에 피처링하던 목소리, 사슴의 것이었구나. 칼슘을 많이 먹자는 말씀.
3
불곰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민족은 아주 많다. 숲속을 어슬렁거리는, 덩치 크고 느릿느릿한, 먹성 좋고 붙임성 좋은 짐승의 이름으로는 제격이다. 하긴 우리 단군 할아버지도 그랬지.
4
청어들은 부레에서 나온 공기를 항문으로 짜내어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제법 커서 1.7~22킬로헤르츠에 이른다고 한다. 방귀 깨나 뀌는 물고기들이다. 민어들은 부레를 이용해 북 치는 소리를 낸다. 이번엔 트림하는 물고기다. 점쏠배감팽은 라이언피시(lionfish)라 불리는데, 아예 사자처럼 포효한다. 인간은 물고기에서 진화했지만 그들보다 나은 게 없다. 선조들을 따라서, 선조들만큼 시끄러울 뿐이다.
5
투리톱시스 도르니라는 해파리의 일생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 해파리는 늙거나 다치면 해저로 가라앉아 갓을 접는다. 그러면 몸통이 퇴화하여 점점 작아진다. 물방울만 해지면 거기서 폴립 하나를 내서 출아법으로 자기 자신인 새끼를 낳는다. 그러니까 이 해파리는 중국집 접시에 오르지 않는 한 영생불멸하는 것이다. 불멸의 꿈이란, 그렇다. 양장피 재료가 되지 않으려는 꿈이다.
6
거란에서는 멧돼지를 ‘우이’라 부르고 일본 고대어에서도 ‘위’라고 불렀다. 우리말 ‘오이’ 혹은 ‘외’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까 돌아다니는 참외가 멧돼지이고, 한 자리에 머문 멧돼지가 참외다.
7
아일랜드 민담에서는 오월제 전야에 고양이 왕이 세계의 고양이들을 불러 모아서 집회를 연다고 한다. 참석한 고양이들은 인간 사회에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왕에게 보고한다. 이 이야기가 민담일 리 없다. 픽션일 리 없다.
권혁웅(權赫雄)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마징가 계보학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세계문학전집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