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를 여행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하나같이 물어본다. '구미에 뭐 볼게 있어?' 라는 반응이다.
구미는 산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 1970년대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구미에 전략적으로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됐고 현재 3천여개가 넘는 기업체가 입주해있다. 말 그대로 공업도시가 맞다.
나 또한 구미 여행계획을 세울때 금오산 정도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여행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찬찬히 구미를 들여다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신라 불교가 처음으로 시작된 지역이 바로 구미라는 점이다. 의외였다. 평소 인문지리나 답사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이 내용을 처음 알게 됐다는 점이 못내 부끄러웠다. 하지만 진짜 부끄러움은 모르는 데 있는게 아니라, 모르는데도 배우려 하지 않는데 있지 않은가! 이번에 구미여행을 통해 신라 불교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보자.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됐다. 백제는 384년 마라난타에 의해, 고구려는 372년 순도에 의해 불교가 전해졌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이는 바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다.
하지만 초기 신라는 타문화에 대한 배척이 심했기에, 거부감없이 불교를 받아들인 백제와 고구려오 달리 불교 박해가 심했다.
그래서 아도화상은 신라에 온 뒤로 숨어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숨어지낸 곳이 바로 구미에 사는 모례라는 사람의 집이다.
모례는 동네에서 나름 부자였다. 그리고 불교에 긍정적이었기에 선뜻 자신의 집을 내주었을 것이다. 아도화상은 이곳에서 불교를 전파했고, 모례는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가 된다.
그러던 중 미추왕 3년에 성국공주가 병이 나는데, 아도화상이 신통한 불력으로 공주의 병을 낫게 해준다. 그로 인해 신라에 정식으로 불교가 공인된다.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
아도화상은 모례의 집에 머물며 수행처를 찾던 중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발견한다. 그곳이 바로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가 된다. 눌지왕 2년, 418년의 일이다. 도리사란 이름은 복숭아꽃과 오얏꽃에서 따온 것이다.
종교는 늘 신비로운 이야기가 따라온다. 추운 겨울에 복숭아꽃이 피다니 기후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실 유무를 해석하는건 무의미하다. 영웅의 탄생설화처럼 우리는 그저 이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나름대로 안정되던 도리사는 1677년 큰 화재로 한 순간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이후 1729년 근처의 금당암으로 옮긴 것이 현재의 도리사며, 옛 도리사는 터만 전해져온다.
도리사는 특이하게도 일주문에서부터 사찰까지 5km 가량이나 떨어져있다. 구불구불 오르막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사찰에 다다르는데, 평일인데도 생각보다 방문 차량이 많다. 이렇게 유명한 절이었다니 새삼 놀랍다.
사찰에서 멀찍이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니 몇 걸음 못가 숨이 차오른다. 그럴것이 도리사 까지는 가파른 언덕길이다보니 마치 등산하는 것처럼 힘이 든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올라가보자. 도리사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면 그 고생이 단번에 사라질테니. (적멸보궁까지 꼭 올라가야한다)
적멸보궁에서 바라본 풍경
도리사가 세간의 관심을 모은 또 하나의 이유는 세존사리탑이다. 1977년 절 담밖에서 뜻밖에도 8세기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 사리탑과 사리가 발견됐다. 현재 극락전 뒤편에 모셔있으며, 사리탑은 국보로 지정되었다.
극란전 앞쪽으로는 옛 도리사 터와 아도화상이 수행했다는 좌선대가 있다.
산 중턱에 있다보니 사찰 곳곳의 풍광이 남다르다. 국내 여러 사찰을 다녀봤지만, 도리사의 풍경은 몇 손가락 안에 들정도로 뛰어나다. 한 걸음 거닐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이 가히 예술이다. 도리사가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해도 이 경치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도리사에 온 보람이 충분히 있을 듯하다.
극락전
세존사리탑
아도화상이 수행했다는 좌선대
도리사를 창건한 아도화상
성철스님도 이곳에서 머물렀다
적멸보궁
신라불교초전지, 최초의 신라불교신자 모례의 집
도리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 모례의 집이 있다. 그래서 이곳은 신라불교가 처음으로 전파됐다는 신라불교 초전지로 불린다. 행정지리적으로는 도개면이다. 불교를 통해 도가 열렸음을 뜻하는 것이다. 길 도(道)자를 쓰지 않고 복숭아 도(桃)자를 쓴건 이미 길 도자를 쓰는 도개리가 있어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다.
신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은 박해를 피해 모례의 집에 숨어 지낸다. 아도화상은 이곳에서 불교를 전파했고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를 세웠다. 아쉽게도 지금은 모례의 집은 없고 그가 사용했다는 우물만 남아있다.
신라불교 발상지라는 의미가 다소 무색하게 초전지는 휑했다. 초전지는 유적지라기 보다는 한옥마을처럼 보인다. 갓 지은 깨끗한 한옥민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실제로 숙박을 할 수 있어서 성수기에는 제법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모례의 집, 아니 우물을 찾아본다. 한옥마을을 지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조금은 실망스럽긴 했지만 어쩌면 아도화상 또한 이 우물물에서 물을 마셨을 거라 생각하니, 그래도 특별함을 찾아본다.
모례의 우물을 지나면 신라불교 초전지 기념관이 있다.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과정과 아도화상의 이야기가 알기 쉽게 전시되어 있다.
신라의 불교흔적을 쫓은 이번 구미 여행은 마치 빈 도화지에 하나씩 그림을 채워나가는 것처럼 전혀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 길이었다. 때론 기대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보자. 어쩌면 기대이상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신라불교초전지
모례의 우물
수행하는 아도화상
재현해놓은 모례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