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이 젊어졌어요! [맛난 집 맛난 얘기] 강정이 넘치는 집 역사 인물 가운데 존경하는 위인은 이순신이지만 부러운 사람은 박지원이다. 조선후기 문예부흥을 주도했던 인물군인 백탑파를 이끌었다. 당대 최고의 문인 지식인 사상가를 모두 벗으로 두었으니 어찌 여불위나 석숭 따위를 부러워하리. 그의 문장은 임금인 정조와 갈등을 빚을 만큼 참신했다. 그렇다고 근본 없는 가벼운 글이 아니었다. 박지원은 글뿐 아니라 제도나 문물의 존재방식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름하여 법고창신(法古創新)! 이 네 글자를 간판에 박고 강정을 만드는 집이 서울 강남에 있다.
활기 넘치는 21세기 강정의 산실
섣달 세밑이 다가오면 할머니와 엄마의 종종걸음은 더 빨라졌다. 엿을 화로에 녹인 뒤 튀밥이며 참깨, 들깨, 볶은 콩 등에 버무려 강정을 만드는 건 할머니 몫이었다. 며칠 있으면 동네 청년들과 집안 젊은 패거리들이 묵은세배를 하러 몰려온다. 그들에게 입 다실 거리로 내놓을 것들이다. 그날은 신나는 쥐불놀이며 썰매타기도 마다하고 온종일 할머니 곁에 붙어 앉았다. 할머니가 강정을 입에 넣어줄 때마다 옆에서 맷돌에 두부콩을 갈던 엄마가 눈을 흘겼다. “그냥 둬라!”하시며 할머니는 손에 남은 강정을 마저 내 입에 넣어주셨다.
그렇게 내 영혼을 빼앗았던 강정이 나이 들면서 시들해졌다. 아니 잊혀졌다. 세상은 강정 아니라도 먹을 것 천지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강정을 잊었다. 그저 명절 상차림의 구색 갖추기 정도쯤 됐다. 다들 그렇게 강정을 과거의 음식으로 여길 때 “아니라고, 현재의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있다.
청담동 <강정이 넘치는 집>에 들어서면 어린 시절 잔칫집에 온 느낌이 든다. 잔칫날 받아놓은 집 안마당과 헛간의 분주함과 그대로 마주친다. 한 쪽에선 가마솥에 팥을 삶고, 한 쪽에선 강정 재료를 조청에 뒤섞는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안마당(홀)에서 바로 먹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일하는 이들이 모두 20대 청년들이라는 점. 이 집 주인장은 “강정이 노인들의 주전부리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강정뿐 아니라, 떡과 음청류(飮淸類)도 갖췄다. 옛 음식인 강정이나 떡 음청류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했다.
강정 만드는 방법은 큰 틀에서 옛날과 다르지 않다. 다만 건강에 좋은 견과류 등 재료를 다양화 했다. 현대인 입맛에 맞는 재료들을 폭넓게 사용한 것. 그리고 조리기구 조리공간을 개량해 생산효율성을 높였다. 강정 만드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움직임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전통 깨장정에서 퓨전 찹쌀브라우니까지
강정의 대표선수는 역시 깨강정. 이 집에서는 세 가지 삼색 깨강정으로 풀어냈다. 검은깨, 들깨, 참깨 모두 국내산이다. 여기에 아몬드, 피칸, 검은땅콩, 해바라기, 호박씨를 넣어 고소함을 극대화시켰다. 예전 깨강정에 비하면 재료가 다양화 고급화 됐다.
마치 김밥처럼 생긴 깨말이(3500원)는 보는 재미에 먹는 재미까지 준다. 먼저 검정깨로 김처럼 얇고 넓은 시트를 만든다. 여기에 내용물을 발에 감싸 말아서 원기둥 형태로 소성하는 방법은 김밥과 똑같다. 국내산 깨로 만들어 고소함을 더했다. 주재료에 따라 곶감 깨말이, 마카다미아 깨말이, 해남 무화과로 만든 무화과 깨말이 등으로 분류한다. 선물용인 깨말이 세트(4만5000원)도 있다.
개성모약과(2000원)는 꿀, 생강, 참기름, 조청 등의 전통 재료와 방식으로 만들었다. 흔히 제상에 올리는 둥근 약과와 달리 네모꼴로 생겼다. 바삭한 식감과 달콤한 맛을 지녀 디저트로 제격.
그런가 하면 고객의 니즈를 적극 반영한 퓨전형 강정도 적지 않다. 초코바를 닮은 초코강정(3800원)은 각종 견과류가 들어간 건강 친화적 강정. 녹인 초코시럽을 뿌려 굳혔다. 젊은 청년들이나 어린이들도 스스럼없이 집어 든다. 한 끼 식사 대용식으로 만든 ‘하루견과바’도 있다. 찹쌀브라우니(2000원)는 밀가루가 아닌 찹쌀로 만든 한국형 브라우니. 달콤한 초콜릿이 부드러운 찹쌀에 스며들어 식사 후 디저트로 가볍게 먹기에 좋다.
‘이북식 인절미’ 대추차 등 떡과 음청류도 적지 않은 고객들이 각종 행사 선물용 강정을 찾는다. 이들을 위한 선물세트도 다양하게 마련했다. 수제강정세트(3만원)는 견과류와 말린 과일 곡물 시리얼 등 다채로운 재료로 새로운 강정 맛을 냈다. 맛과 영양의 밸런스에 신경 써서 만든 12가지 강정 맛을 골고루 먹어볼 수 있다. 빻거나 부수지 않은 통견과류를 직접 볶아 만든 견과류세트(3만5000원)나 전통한과세트(5만원)도 있다.
이 집 강정은 예전 강정 맛에 비해 단맛은 퍽 줄었다. 대신 고소한 맛과 깊은 풍미는 더 깊고 다양해졌다. 치아에 들어붙지 않고 바삭한 것도 예전 강정보다 개선된 부분. 디자인과 색감이 세련된 것도 눈에 띈다.
강정뿐 아니라 적지 않은 떡과 음청류도 갖췄다. 팥소가 거죽으로 나온 이북식 인절미(6개 7500원)는 씹을수록 쫀득하고 담백하다. 맛도 좋지만 누드김밥처럼 속과 겉이 전도된 형상이 재밌다. 제주산 쑥으로 빚은 제주 쑥 찹쌀떡은 쑥향의 은은한 향과 달콤한 팥이 조화를 이룬 제주 떡이다. 고흥유자 인절미는 상큼한 유자 향이 일품.
음청류로는 국내산 엿기름을 전통방식으로 삭혀 만든 살얼음식혜(5000원)을 비롯해 가마솥에서 12시간 푹 곤 희도 대추차(8000원), 백 가지 맛과 향을 지녔다는 백향과차(7000원), 고흥 유자차(5000원) 등이 있다. 커피 마니아를 위해 커피도 종류별로 갖췄다. 학부모 모임 등 다양한 주부 모임과 1차로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즐기기 위해 들르는 2차 모임 손님들이 많다 .
박지원의 벗이자 후배인 이덕무는 작고양금(酌古量今)의 글쓰기를 강조했다. "옛것을 참작해 지금 것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박지원의 법고창신과 더불어 옛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모색하는 자세다. <강정이 넘치는 집>은 법고(法古)를 강화하기 위해 이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창신(創新)들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 435, 010-7585-7272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조경환(월간외식경영 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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