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은 사귀지 말라.
성경본문 : 잠언 20: 19
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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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복 목사(부산재송교회)
목사가 누구는 사귀고 누구는 사귀지 말라 라는 말씀을 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만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말이니 부담없이 하려고 한다. 기독교는 사귐의 종교이다.교리에 상으로도 모든 사람을 다 사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이런 불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기야 살아가다 보면 사람을 잘못 사귀어서 낭패를 당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고 더 큰 시험으로 신앙 마져 힘들어 했을 때가 있었던 것은 경험한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사귀지 말라고 하였는가?
물론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오늘의 말씀에서는
1.입을 늘 벌리고 사는 사람을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
입을 늘 벌리고 사는 사람은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다.인격적으로는 더구나 꼴불견이다. 입을 늘 벌리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수다스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다스런 사람, 사귀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권장 할 사항은 못 된다. 말이 많다는 것은 쓸 말이 적다는 뜻도 되고 나의 말을 남에게도 그 이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말이 많으면 자연히 실수도 많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말이 너무 적은 것도 좋지 않다.
우리는 금방 돌아서서 후회하는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은 엎질러진 물과 같고 쏘아 버린 화살과 같다. 사실 우리의 생활에서 입을 벌리고 살만치 마땅히 해야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 꼭 해야 할 말이 많다면 눈으로도 할 수 있고 몸으로도 할 수 있고, 표정으로도 말 할 수 있다. 以心傳心도 그런 뜻이 아닐까? 말을 많이 남발(濫發)하면 다치는 사람이 많다. 말을 많이 난사(亂射)하면 상처 받은 사람이나 죽어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
잠언26:20에는 수다스런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였다.
"마치 나무가 없으면 불이 꺼지듯 말쟁이가 없으면 다툼이 끝난다"고 하였다.
수다스런 사람은 사귀지 말아야 한다.
2. 말수의 다수보다도 입만 열면 흔담하거나 불평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
남을 흔담하는 것은 인류역사 이래로 줄곧 있어 왔다고 본다.성경에도 흔담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 흔담이 어찌 그리 재미가 있던지 듣는 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가 가끔 장단이라도 맞추는 날에는 그칠 줄 모른다. 얼마나 말로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지 모른다.
잠언18:8에 흔담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을 잘 표현하고 있다. 흔담의 말은 별미와 같아서 입에서 씹을 겨를도 없이 곧장 속으로 넘어가 버린다고 하였다. 얼마나 재미 있는 표현인가!
마5:22,7:2에서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도 여기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마12:36~37에는 우리가 한 말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대 앞에서 일일이 심문을 받는다고 하였다. 바울사도도 자기를 무척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으나 한번도 그를 흔담하지 않았다. 거저 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하는 정도의 말씀만 하셨다.(딤후4:14) 하물며 우리는 무척 흔담을 많이 한다. 불평을 많이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소금으로 고루게 맛을 내듯이 하라고 골4:6에서 말씀하셨다.
야고보 사도는 약1:19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 하실 때 귀를 두 개로 하고 입을 하나로 한 것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그렇게 만드셨다고 하였다.
우리는 남을 흔담하거나 불평 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
3. 그러면 왜 수다스럽고 남을 흔단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곧 그렇게 동화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않 좋은 점은 아주 잘 배운다. 고상한 말 보다는 욕부터 먼저 배우는 우리들의 자식들을 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수다쟁이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그 친구 많이 변했어" 라고 말한다. 그렇다. 전에는 않 그랬는데 언제 그 수다쟁이하고 같이 놀더니 만 금새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동화가 잘 되느냐?
잠18:8의 말씀과 같이 수다쟁이들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서 금새 힘이 되고 살이 되어 활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는다. 좋은 것의 동화는 만인이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않 좋은 것의 동화는 바라는 바가 아니다. 나는 안 그렇다고 말 할 사람들이 있지만 못 믿는다. 나도 나를 못 믿는 다는 결론이 나온다.나는 전혀 요동하지 않을 사람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착각이고, 그 마음은 마귀가 주는 마음이다. 거기에 속고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
결 론
우리는 한해를 서서히 준비하면서 다른 것도 다 잘 살펴야 하겠지만 그래도 실수가 적고 보람된 한 해를 보내고 내인생의 황혼기를 멋지게 준비하여 하나님 앞에 가서 떳떳이 서려면 사귈 사람,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 구분 하며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성경은 늘 입을 벌리고 수다스런 사람은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
입만 벌리면 흔담이나 불평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고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귐의 대상이 되지 못함은 너무나 비극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비극의 주인 공이 되지 않도록 말의 수가 적고 꼭 쓸 말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입을 벌리고 있을 정도로 쓸 말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나를 믿지 말자, 나는 그런 사람과 사귀어도 절대 동화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어 한다.
그것은 착각이고 속고 산다. 마귀가 주는 마음이다. 지혜롭게 살며 서서히 준비하자. 끝